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김우남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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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말은 유년 시절 즐겨보았던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어른이 되어서도 영화나 소설에서 행복한 결말을 찾고 있지만 팍팍한 현실처럼 그것은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

어차피 행복한 결말도 주관적인 것이고 명백하게 밝혀지는 결말도 없는 마당에 그 모든 것은 독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약자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단면

<거짓말>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선은 중학생 소녀다. 부모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외삼촌댁에 얹혀살고 있다. 이쯤 되면 주인공이 이 집에서 얼마나 ‘찬밥신세’인지 대충 가늠이 될 것이다. 외할머니는 아들내외를 의식하여 지선에게 더 혹독하게 꾸지람을 하기 일쑤다. 지선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다만 자신의 처지가 서러울 따름이었다.

용돈을 주지 않는 어른들이기에 지선은 스스로 용돈을 벌어야 했다. 일제 시디플레이어나, 시디도 여러 장 사고 싶은 지선은 동네 세탁소와 반점 주인에게 몸을 허락하여 용돈을 마련한다. 겨우 중학생의 나이에 말이다.

엄마가 지어준 별명 ‘햇님’은 왠지 지선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험한 세상의 이치를 다 경험하게 되는 아이, 시간만 나면 게임랜드에 달려가 게임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지선이 가엾다.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의 천안댁도 가엾기는 마찬가지. 아이가 어려서 남편은 바람이 나 집을 나가고 혼자서 아들 하나를 근근이 키워왔다. 간병인 노릇을 하며 지금껏 지하와 반지하를 전전하며 살아온 한평생이 생각하면 눈물겹다.

이번 환자는 돈깨나 입는 집 양반이어서 꼼짝 못하는 노인네 신세지만 아들이나 며느리가 영감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 환자는 천안댁만 찾아댔다. 천안댁이 환자를 열심히 돌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친척들은 천안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행여 재산이라도 노리고 노인네 곁에 철썩 들러붙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처음에 천안댁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죽기 전에 한번쯤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다가 가고 싶은 마음도 오롯이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들이 벌이가 시원찮아 임신한 며느리가 유산을 해 목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잘만하면 노인네가 귀찮은 아들과 며느리가 제발 영감을 돌봐달라고 한몫 챙겨주며 노인네를 떠맡기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혼자 해보기도 했다.

여하튼 기름값을 아끼려고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는 반지하방에서 겨울을 난다는 게 너무 끔찍해 천안댁은 어떻게든 난방이 기가 막힌 병원에서 겨울을 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있는 특실을 기웃거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천안댁은 할일없이 12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영감이 잠을 자거나 하는 틈을 타 잘 꾸며진 특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천안댁은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 12층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어이없게도 사람들은 천안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떳떳한 천안댁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했다.

점점 영감의 건강은 호전되었고 며느리가 통근치료를 의사와 상의해보겠다는 이야기를 천안댁에게 흘리자 천안댁은 두려웠다. 당장 간병인 노릇을 그만두면 다시 반지하방으로 돌아가야 하며 일자리를 잃으면 아들에게 약속한 돈도 마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영감을 보았을 때만큼만 안 좋은 상태로 돌리기 위해 침대에서 영감을 밀어버린다. 그러나 왠일인가. 영감은 곧 죽을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만다. 자신의 욕심이 지나쳐 일을 그르치게 된 천안댁은 그만 아연해졌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는 남모를 폭력

<비너스의 꽃바구니>에서는 가정 폭력을 다루고 있다. 천사표 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은 언제나 차가웠다. 그런데 왜 그토록 착한 천사표 언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 허우대 멀쩡한 형부란 작자는 일 년에 반은 언니를 구타했다.

그 세월동안 언니는 왜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을까. 친정 식구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서라고 했지만, 그것이 결국은 잘못된 판단임을 깨닫게 된 때에는 이미 심신이 황폐해진 다음이었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도 마찬가지. 어린 나이에 이모부에게 성폭력을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꾹꾹 눌러 기억을 압사시켜버리려 했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머니에게 이미 고인이 된 몹쓸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다소 식상한 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거짓말>,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는 자본주의의 그늘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비참한 상황들은 몇 겹씩 겹쳐 나타나고 아무도 그 현실을 타계해줄 수 없다는 사실만 번번히 확인하게 된다. 이 외에도 <문수산 가는 길>, <내가 만난 어린왕자>와 <파워 게임> 역시 힘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비루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김우남의 첫 소설집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는 사회적 약자의 고단한 삶을 내밀하게 그린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소외된 자들의 삶을 통해, 야비한 권력이 판치는 세상을 통해 저자는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독자들에게 생각의 골을 깊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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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
문용린 지음 / 갤리온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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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사교육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중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까지 아이들은 밤늦은 시간이 되도록 방과 후 학습을 하느라 힘이 든다.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할 나이지만 아이들은 양치기에 몰리는 양처럼, 부모에게 등 떠밀려 사교육의 현장으로 투입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기에 주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초등학교 3~4학년의 나이에 벌써 특목고를 준비하는가 하면, 유치원생도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현실은 얼마나 우리의 교육열이 높은가를 반증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학벌지상주의도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류대 유명학과를 나와야만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늘도 아이들은 학습에 시달린다.

100명의 아이들에게는 100가지 학습법 있고, 100명의 아이들에게는 100가지 재능이 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획일된 교육 방법으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 아이를 닦달한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상처받고 부모와의 골이 깊어지는 수순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공부 못하는 것보다 꿈이 없는 게 훨씬 위험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제 삼자를 통해서 풀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과외 선생님과 상의하고 담임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과의 상담도 중요하지만 우선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것부터 아는 게 순서라고.

아이가 공부를 좀 못한다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공부를 좀 잘한다고 우쭐할 이유도 없다. 모름지기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진로를 선택한 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열정적이다. 그런 열정을 안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분명 부모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크게 성공할 것이다. 열정보다 확실한 성공의 비결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26쪽)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 아이의 재능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면 충분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많은 책을 선물하고,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수학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

물론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만, 다른 곳에 재능이 있다면 기꺼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바람은 접을 수 있는 것이 좋은 부모의 모습일 것이다.

내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가 되라

나는 부모에게 매번 강조한다.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오타쿠’가 되라고. 오타쿠란 마니아의 수준을 넘어 한 분야에 대해 득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뜻한다. 부모라면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오타쿠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자기 아이가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교육 전문가보다 더 잘 알아야 하고, 자기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에 대해서는 어떤 철학자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 철저하게 아이를 안 이후에 성적이든, 성격이든, 생활 태도든 아이의 어떤 변화를 꾀해도 늦지 않다. (149쪽)

'내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가 되라'는 말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이와 연애하듯 대화하라는 부분에서 부모들은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다.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호통을 치지는 않았는지, 훈육을 목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언어폭력’으로 들리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참 어려워 보인다. 아이를 기르며 '희생을 통한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부모는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좋은 부모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의 성장 발달에 맞는 ‘적기교육’을 시켜라

저자는 발달단계에 맞게 적절한 교육을 시켜야 그 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영아기(태어나서 한 살까지)에는 그저 스킨십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한다. 어떤 교구보다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는 것이 이시기 최고의 교육이라고.

유아 전기(두 살부터 네 살까지)에는 간단한 미술 교육이 지적 자극으로 이어지는 시기라 할 수 있고, 유아 후기(5~6세)에는 인성 교육을 시작할 때라고. 종이접기나 색칠하기 등의 놀이가 성장 발달을 돕고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등의 교육이 정서와 신체 발달에 효과적인 시기라고 했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려면 아동기(일곱 살부터 열두 살까지), 이 시기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골격이 단단해지는 시기이므로 발레 등의 신체 운동을 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문용린의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에는 좋은 내용들이 가득하다. 부모 뿐 아니라 아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서다.

우리의 미래가 아이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파행적인 교육행태를 묵과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발현해서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곧 모두를 위한 길이다.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만큼, 결국 이 책은 부모들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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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김윤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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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인물들이라면 애초에 주인공으로 발탁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윤영의 두 번째 소설집 <타잔>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설 속에 투입되어 무명배우 자격으로 소설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타잔>에 실린 8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두 작품은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와 <검사와 여선생>이었다.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

캐나다로 이민을 간 부부가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괜찮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타국에서는 그에 합당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갈수록 남편은 힘이 들었던 것이다. 불만은 쌓여갔고 그것은 몸무게가 느는 일로 구체화되었다.

이에 비해 아내는 점점 능력을 발휘하여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직장을 옮기게 될 만큼 만족스런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급기야 남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아내는 그러기 싫었다. 캐나다 이민도 남편의 뜻이었고 재이민도 남편의 뜻이다. 아내에게 더없이 좋은 남편이었지만 이제 남편은 예전의 남편이 아니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결과만 통보하는 남편을 아내는 이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비만인 남편의 돌연사로 보았는데 결국 아내는 남편을 살해하고 만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면밀한 아내의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그 사실을 환기하게 될 것이다.

이민생활이 아무리 만족스럽다할지라도 이건 너무했다 싶지만, 남편과의 남은 생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마당에 아내는 극단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재이민 결정만 없었더라도 그냥저냥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들 부부의 문제를 한 가지로 집약하기에는 어렵다. 저자는 살인사건을 평온한 일상의 일부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고 있음이 섬뜩했다.

'검사와 여선생'

잘나가는 마담뚜를 엄마로 둔 주인공은 넉 달마다 한 번씩 남자를 갈아치우는 집에서는 망나니로 통하는 인물이다. 아빠는 땅 장사, 엄마는 중매질로 돈을 불려 살림은 넉넉했다. 사촌 언니 지인은 교사로 애들을 수시로 불러 거둬 먹이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애들 공납금을 대신 내주기도 하는 보기 드물게 착한 교사였다.

하나 밖에 없는 언니의 외동딸인 지인을 엄마는 끔찍이 위했다. 이북이 고향인 엄마는 언니와 둘이 내려와 자매애가 각별한 이유도 있었지만 일찍 엄마를 여윈 지인이 가여웠기 때문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좋은 상대를 조카에게 찾아주고 싶었던 엄마는 열심히 상대를 찾아 지인에게 맞선을 주선해주었다. 지인은 이모의 성의를 생각해 마지못해 한두번 만나다가는 번번이 상대에게 퇴짜를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은 자리라며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지만 지인은 사람을 보는 나름의 안목이 있었던 것인지 좋은 자리들을 다 마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망에 검사가 올랐다. 엄마는 이때다 하고 지인에게 소개 시켜줬고 웬일인지 지인은 석 달간 강 검사를 만났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인은 강 검사를 데리고 이모의 집을 방문하기까지 하여 주인공은 그날 코에 큰 점이 있는 강 검사를 보게 되었다.

강 검사의 코에 있는 점마저 ‘나 소심해요’하고 외치는 듯하다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형적으로 소심해 보이는 강 검사에게 어떤 문제라도 있는 걸까. 이모에게 강 검사를 소개시키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지인은 강 검사를 그만 만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왔다. 일이 잘 되어 결혼하나 싶었는데 엄마는 앓아누울 지경이 되었다.

그 후 검사는 뚱뚱하고 괴팍한 성격의 홍 선생과 결혼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검사가 밑지는 결혼이었는데 남녀의 일은 실로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그 후 두 달이 지나자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홍 선생의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제발 이혼해달라고 애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검사가 성도착자라는 것이다. 그런 내밀한 정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지인이 귀띔해준 것이었다.

이럴 수가. 강 검사가 취향이 독특하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둘은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고 지인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홀아비 학교 선생과 결혼을 선언했다. 이번에 엄마는 진짜로 앓아누웠다. 행복하냐는 사촌 동생의 물음에 지인은 사람들이 다 날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조건에 맞추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 조건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조건은 단지 조건일 뿐이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결혼도 불행할 수 있고,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결혼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마음이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남들 눈을 의식해 살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단편마다 굵직한 주인공들..

표제작 <타잔>의 주인공인 마장동 김씨는 파산한 뒤 태국의 정글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오랜 세월 소의 목을 따며 번 돈으로 아끼고 또 아끼고 살았지만 아내로 맞아들인 여자의 허영과 낭비벽이 한 사람을 쇠락의 낭떠러지로 밀어 넣었다.

<집 없는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의 수지는 입양아로 자라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해외입양에 대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며 넘을 수 없는 인종 문제나 사회와 문화의 이질성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나머지 단편들도 주인공을 통해 하나 같이 우울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소설이 읽히는 계절이 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독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윤영의 <타잔>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되는 것은. 그러나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 모두 오래 기억될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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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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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만 보았을 때 내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소설은 이렇다 할 주인공도,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여느 소설처럼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설정된 것이 아니라 딱히 주인공이라 내세우기 어려운 여러 명의 인물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먼저 몰락한 지식인 '마'가 등장한다. 자세한 기술은 없지만 마는 사고로 몸과 마음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있다. 그에게 미래는 없어 보이고 단지 찬란했던 과거만이 현재의 불행을 더 처량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는 국립대학 교수에서 쉴 새 없이 침을 흘리는 불쌍한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번의 사고는 무참하게도 그를 다른 인생의 행로로 데려다 놓았고, 그의 단란했던 가정까지 빼앗아버렸다.

마와 함께 살고 있는 두 번째 부인 돈경숙은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인물의 전형으로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재단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의 전처 박혜전의 방문으로 잠시 돈경숙의 집은 소란스러워지는데 박혜전과 인물 대비는 극을 이루고 있었다.

돈경숙의 아들 세원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계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돈경숙에게 용돈을 받으며 직업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거기서 배운 기술로 취직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세원이 사랑하는 부혜린은 무보수로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다. 부혜린의 어머니 표현정 역시 돈경숙처럼 지상 최대의 과제는 돈 모으기다. 부혜린은 드물게 아름다운 처녀지만 70킬로그램이 넘는 인물로 계속 몸무게는 늘어가는 중이다. 부혜린이 그렇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커보인다. "부혜린을 키운 건 8할이 죄의식이고 2할이 초콜릿과자"라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표현정은 딸이 어렸을 때부터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함께 갚도록 교육했고, 부혜린은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도록 키워졌다. 세원은 부혜린을 어머니에게서 탈출시키고 싶었지만 무능한 자신이, 가난한 집안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의 전처인 박혜전은 부유한 가정은 아니나 궁핍하게 자라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마와 결혼했으므로 노동으로 직접 돈을 벌어본 일이 없다. 집안 살림을 돌보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게 다였는데, 이혼 후 경제활동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가난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더는 아이를 스키강습에 보낼 수도 없고, 한번 입고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할 옷은 있지만 세탁소에 자주 맡길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박혜전의 아이를 돌보는 보모 진주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진주의 신랑이 될 성도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가령 집을 구할 경제적 능력이나 지속적으로 수입이 보장된 직업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하려는 두 사람을 친구 배유은과 김요한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도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돼 결혼이 망설여지지만 진주는 단호하다. 함께라면 가난 정도는 헤쳐나갈 수 있는 난관이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배유은은 냉담한 척했지만 진주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가난한 청춘이란 낭만도 뭣도 아니다. 게다가 진주는 지금도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지 않은가. 성도는 근본적으로 한량의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적이었고 돈이든 사람이든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진주에게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기는 싫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타인답게 굴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느니 말이다." (147쪽)

가난과 빈곤, 결핍에 대한 '배수아식 보고서'

어쩔 수 없이 가난과 대면해야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자발적 가난으로 뛰어난 인물도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남은 음식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구해 먹고자 하는, 힘들게 노동하지 않아도 남아도는 음식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 말이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가난이나 빈곤은 지향하고 싶은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가난을 경험하게 된다. 가난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난이 때로는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난이 동력이 되어 자아실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성공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질로 재단하는 가난이 정신적 풍요를 가늠하는 절대적 단위가 아닌 만큼, 어쩌면 물질적 가난보다 정신의 가난이 더 큰 문제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연작 소설 형식으로 다양한 인물의 가난과 빈곤, 결핍과 소외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성장과 분배를 비롯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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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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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 상진이 밤에 보았던 은빛 여우는 환영이었을까? 그것이 가공의 산물이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여우를 처음으로 본 날은 첫눈이 내린 날이고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지만 여우는 좀처럼 상진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여우는 아마도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지금은 힘들지만 꿈꾸는 자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왠지 쓸쓸해 보이는 눈빛으로 여우는 상진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상진은 동네에서 가장 허름한 청운연립, 그것도 옥탑방에 산다. 201호나 301호처럼 호수도 없어 '하늘호'라 스스로 이름 지은 옥탑방에 상진의 가족이 살고 있다.

상진에게는 형이 한 명 있다. 형은 덩치가 상진보다 크지만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아이다. 그런 형을 둔 덕분에 늘 말썽이 생기면 상진은 가해자, 형은 피해자 처지에 놓이기 일쑤다.

그래서 상진은 언제나 불만이다. 다친 아버지나 모자란 형 대신 이 집의 희망인 상진은 어깨가 무겁다. 기둥이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다.

창문을 열면 노란 물탱크가 보인다. 상진은 거기에다 지난 밤 보았던 은빛 여우도 그리고 1층에 사는 동갑내기 소연의 모습도 그린다. 상진은 무언가 다시 보고 싶은 것을 주문처럼 거기다 그렸다.

만만치 않은 세상과 마주하는 열세 살 소년의 성장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방 안에 누워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세월을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집안 분위기는 바뀌어갔다. 건물 폭파작업을 하는 아버지가 부상으로 다리 수술을 하게 돼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어머니가 집의 기둥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트럭을 타고 장사하다가 여의치 않아 포장마차로 전업했다.

"어머니는 밤늦게 들어와서 씻지도 못하고 돈주머니만 겨우 방 한구석에 끌러놓고 곯아떨어졌다. 아버지가 돈주머니를 들고 절룩거리며 마루로 나왔다. 아버지는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 마룻바닥에 편편하게 깔았다. 흐린 불빛 아래 내복 바람으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옷 위에 대고 돈 주머니를 거꾸로 흔들었다.

(중략) 만 원짜리를 간추린 다음 오천 원, 천 원 순으로 차곡차곡 분리해나갔다. 간추린 지폐를 한 편에 쌓아두고 동전을 분류했다. 아버지의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행복해보였다. 한편으로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진지'와 '행복'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그 밤 풍경을 나는 오줌을 누러가다가 목격했다."
(117쪽)

장사가 잘되면서 점점 어머니의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어머니의 유일한 화장품이었던 존슨즈베이비 로션은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게 되었고, 더 향이 진한 화장품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빨간색이나 진분홍색 립스틱도 화장대 위에 등장했다. 상진은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온가족이 모여 앉아 꼬치 재료를 손질해 꿰고 어머니를 도와주면서 차츰 집안 분위기가 밝아오는가 했더니, 집주인이 바뀌면서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다른 집들은 임대차계약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법의 보호라도 받을 수 있는 모양인데, 상진이 사는 옥탑방은 무허가여서 일이 어렵게 된 것이다.

곧 중학생이 될 꿈 많은 소년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여러 상황들이 현재를 힘들게 하지만 상진은 '전인슈타인' 같은 인물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안식을 찾았다. 얼마 후 '전인슈타인' 할아버지마저 떠나버렸지만, 또 다른 어딘가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나타나 줄 것이라고 상진은 믿는다.

"전인슈타인이 색소폰을 집어 들었다. 숨을 고르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색소폰 소리가 내 가슴을 살살 흔들었다. 색소폰 소리에는 서글픔이 배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괜히 울음이 나왔다.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방구석에서 64빌딩 도면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주꾸미를 입 안 한가득 밀어 넣던 모호면(기자 주 - 상진이 형의 별명)이 머릿속으로 스쳐갔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들던 엄마, 그 품에서 풍기던 비릿한 꽁치구이 냄새가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소연이의 하얀 가르마가 어른거렸다. 색소폰은 이 모든 것을 달래주었다."
(156쪽)

열세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을 재치 있는 어조로 풀어나가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성장 소설이다. 어려운 상황이 연이어 찾아오더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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