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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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색>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이 책에서 크게 사랑, 욕망, 청춘, 진실 4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제마다 연관된 소주제를 두었는데 인용이 참 많다. 저자의 방대한 스크랩 규모를 생각하니 절로 탄성이 날 지경이다.

책을 읽고나면, 좀더 건설적인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해질까. 내지는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더 나은 인간형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책장을 펼쳐들었다.

사랑도 일종의 정치경제학?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상당 부분 정치경제학이다. 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사랑에서 정치와 경제의 몫을 인정하는 자세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걸 당당하게 인정한 때도 있었고, 가급적 그걸 감추려는 때도 있었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애와 결혼을 당당히 분리해 말하는 최근 세태는 사랑의 정치경제학이 오늘날 가장 솔직한 인간관계론으로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30쪽)


‘전율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뜨겁고 격렬한 사랑은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라는 저자는 의학자의 분석부터 심리학자가 본 사랑에 이르기까지 학문적으로 사랑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불륜 드라마와 불륜 폭로 범죄는 불륜 공화국의 한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며 인터넷이 불륜을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광수의 자전 소설과 쇼펜하우어의 말이 참 가관이었는데, 나혜석과 같은 선구적 인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광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욕망은 인간 세계의 엔진’

욕망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무엇인가 원하는 게 있어야 노력도 할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이 남에게 해가 되고, 자신에게도 독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구’ ‘욕망’ ‘욕심’에 따라 세상을 본다. 심리학에선 이를 지각적 강조라고 한다. 예컨대, 가난한 아이는 동전을 크게 보고 부자 아이는 동전을 작게 본다.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잘생기고 더 똑똑하게 보는 경향도 있다.'(86쪽)

저자는 과잉 욕망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잉인지 아닌지 그걸 판결하는 게 쉽지 않더라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통사람들의 욕망은 ’평등주의‘라고 꾸짖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은 무한대를 추구하는 엘리트들의 이중잣대’를 경계해야 하며, 이미 우리는 욕망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불러오는 싸움과 논쟁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청춘, 계급갈등의 비무장지대인가?

‘청춘 예찬’은 거대한 음모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저자는 김훈처럼 청춘에 대해 의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고 보니 한 해 한 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를 어쩌면 좋은가.

빨리 올해가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19세 소녀와 올해는 좀 천천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29세 여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과 청춘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바로 그 차이가 아닐까.

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체득한 사회적 현상에 가장 큰 원인이 두고 있을 것이다. ‘동안 열풍’이나 ‘새것을 광신하는 풍조’가 바로 청춘 예찬의 반증이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겠다. 나이보다 더 젊어지고 싶은 마음, 가진 것을 아끼는 마음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청춘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는 기업의 상품 판매 전략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책에 인용된 여성학자 정희진의 이야기에도 나이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전해졌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차이는 언제나 특정한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정치적 해석이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려면, 나이가 아무런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시기마다 모든 시간의 가치는 균질해야 한다. 나이에 따라 인간의 권리가 다르지 않다면, 노후라는 말부터 없어져야 한다. 노전 생활이 따로 없듯이 노후 생활도 없는 것이다.’ (155쪽)

또한 정희진은 ‘사십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식의 언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바, 자기 성찰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설파했다.

그러고 보니 가는 세월이 그리 아까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시간의 가치는 균질해야 한다’는 말이 귓전을 맴돈다. 청춘의 시간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장 ‘진실’에서는 기억과 신념, 의리와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고집과 도덕적 우월성이 합쳐지면 독선이 된다는 이야기와 성찰 없는 신념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저자 특유의 입담으로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책의 장점이다. 자칫 지루하고 딱딱하기 쉬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책은 흔하지 않을 법하다. 책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저만치 물러나 바라보며 사색하는 귀한 시간을 독자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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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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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소설이다. 1권이 다 끝나갈 까지만 해도 평범한 부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폭우 속에서 회사를 구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회사에 그렇게 충성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본능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해고라는 현실이 그들 앞에 닥쳐왔고 온몸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이 회사를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개혁이라는 말은 고용주와 우리에게 동일한 의미를 띠는 말이 아닙니다. 경영인들, 자유주의자들, 어용 노조들에게 개혁이라는 말은 단 한 가지, 그들의 은행구좌의 돈을 불리겠다는 의미를 띨 뿐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쫓겨나고, 용도폐기 처분의 대상이 되고, 사용 불능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권 289쪽)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나라처럼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심화되고 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복지가 잘된 나라가 갈수록 부럽다. 혼자서만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게 인간 사회 아니던가.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헛된 꿈인가.


그렇게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은 언제나 유효하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세상, 한 사람의 수입이 다른 사람의 삼백 배가 되지 않는 세상을 소망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는 위협받지 않는 세상 말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는 싸워 얻을 세상 말고는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절규는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설령 우리가 짓밟힌다 하더라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이끌게 될 투쟁을 기억할 것이고, 그건 가능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럼 그때는 성공하게 될 겁니다!’라고 외치는 노동자의 함성은 그래서 의미있다 하겠다.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앞당겨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방대한 분량 만큼 소설은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갈수록 의미를 더해가는 소설이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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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연애편지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서간집 시리즈
김다은 엮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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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연애 경력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말이 아닌 글로 써서 보내는 일, 그것은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말하는 순간 허공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버리지 않는 한 언제고 꺼내 볼 수 있는 편지, 그래서 말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띄우지 못했으나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 그때만큼은 누구라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

김다은이 엮은 <작가들의 연애편지>는 편지를 쓴 이의 진심이 켜켜이 녹아있기에 독자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떤 소설보다도 아름답고, 어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그들의 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훌쩍 시간이 흘러버린 후에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건 삶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 책에는 배우자에게 띄우는 연서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가슴 속을 더 파고든다. 한때는 불꽃이었으나 이제는 재만 남았더라도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추억 한 자락은 딱 단편 소설감이었다.

연애편지이다 보니 주된 정서는 사랑이다.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의 힘이 우세하다. 내용에 흠뻑 취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책은 독자를 흡인한다. 가슴이 뭉클했다. 서문에는 ‘이럴 땐, 이런 편지’를 읽어보라고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지만 그냥 담담하게 처음부터 읽었다. ‘지금 연애편지를 쓰느라고 끙끙대는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고 엮은이는 말했는데 그만큼 행복한 사람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인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문인들의 편지가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바깥 날씨를 조소하기라도 하듯 따뜻하게 다가온다. 책장을 덮은 후에서도 이문재 시인과 최문자 시인의 편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사랑은 속도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봅니다. 걸으면서 작은 꽃잎의 입술에, 목백일홍 가지에 입 맞출 때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 차를 타고 빨리 가서 당신을 열 번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만일 산을 올랐더라면 산을 걷는 일을 몰랐더라면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었을까요? … 산을 걸으면서 꽤 많은 시를 써냈습니다. 그 시 속에 당신도 있습니다. (147~148쪽)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보다 홀로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 훨씬 좋다는 말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한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면 답은 나오는 것 같다. 곁에 있어도 곁에 없어도 마냥 좋은 것이 사랑이겠거니.

‘기억의 편집이 추억이다’

기억과 추억을 구별하듯이, 나는 연애와 사랑의 경계를 알고 있다. 연애는 정신병적 징후이다. 몸 없는 마음의 질주가 연애다. 몸 없는 마음은 몸이 없어서 오직 상대방의 몸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마음 없는 몸이다. 몸 없는 마음과 마음 없는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다. K, 젊은 날의 내가 그러했다.

연애는 사랑의 영토에서 변방이다. 변방이 아니라면 아주 특수한 지역이다. 연애와 사랑을 혼동하는 것은 백 미터 달리기와 마라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폭이 넓어질수록 유속이 느려지는 섬진강 하류에서 나는 그대에게 뒤늦은 사랑을 말하려 한다. 사랑은 온전한 몸과 마음이 또 다른 온전한 몸과 마음을 만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온전하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헌신이거나 희생일 터이다.(158~159쪽)

스물네 살 시절, 땅을 밟지 않고 늘 지상에서 삼십 센티미터쯤 떠 있었다는 이문재 시인은 연애와 사랑의 정의를 그렇게 내리고 있었다. ‘기억은 날 것이고, 추억은 발효된 것이며, 기억의 편집이 추억이므로 추억은 정확하지 않다’던 시인은 지리산 자락을 돌며 헤드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 편지를 쓴다.

이제는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가 시인에게 너무 아득해져 버렸지만 그때의 추억은 생생하기만 하다. 앞으로 세월이 그때의 나이 만큼 흘러버릴 지라도 추억은 유행가처럼 퇴색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줄 것이라 믿는다.

중학생 시절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소설가 박상우의 편지와 재수생 시절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홍섭 시인의 편지도 너무나 눈부셨다. 수록된 편지마다 생각해볼 거리를 한 보따리씩 건네 받은 느낌이랄까. 잔잔한 피아노 음악처럼 시나브로 몰려와서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만들어 주었다.

시간의 속도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벌써 사랑을 한번쯤은 해본 사람들일 것이다.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성숙하게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순간 고독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필연이다. 문인들의 편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사랑하고 있을 때이며 그 때의 설레임, 떨림, 고독, 외로움 그 모든 것은 사랑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빛과 그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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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편지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던 시절,
답장을 받으면 열어보기 전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지요.


연잎차 2006-12-0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본 일이겠지요^^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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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그리고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걸까. 우리는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때는 그 말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관념으로만 그렇다고 여길 뿐,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위한 책읽기가 즐거울 리 있겠는가. 방학이면 꼭 책을 몇 권 읽고 독후감 숙제를 해야 했고, 일기도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고 써야 해서 일기 쓰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매일이 아니라 며칠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몰아서 일기를 쓰며 몸과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을 놀이가 아닌 숙제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목적이 있는 책읽기는 잘 되지 않는다. 목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책을 읽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해서 내게도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책을 두고 독후감을 쓰라면 당연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단지 줄거리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면 백이면 백 그런 책을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는 힘들 것이다. 독후감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쓸 때, 바로 진정한 독후감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책 속에서 책과 함께 놀기

저자는 바로 그런 점에 착안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놀이로 책을 접하게 하는 것, 처음에는 책을 읽지 않고 여기저기서 장난만 치더라도 언젠가 다가와 책을 읽어달라고 조그만 입을 오물거릴 수 있게 만드는 힘, 바로 그것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흔히 조용히 앉아서 책 읽는 모습을 상상하기 쉬울 텐데,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다르다. 아이들의 도서관이니만큼 책을 읽다가도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오밀조밀 모여 여러 가지 놀이도 한다. 매주 수요일이면 ‘이야기극장’을 열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잘 안다. 어떻게 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도, 그러니까 어른들이 무섭게 혼을 내고 심지어 매를 드는 건 그다지 쓸모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 아이들인데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를 혼내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릴 때마다 지금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면 꼭 그리 효과가 있을 성싶지 않다.

혹시 그렇게 해서 예의 바른 아이가 된다고 해도 나 같으면 오히려 그걸 참기 힘들 것 같다. 그건 아이들에게 힘으로 누군가를 억누르고 거기에 맥없이 따라가는 관계를 가르치는 셈 아닌가. 차라리 제 감정을 못 이겨 화풀이를 한 거라고 털어놓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셈이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진짜 용기다." (122~123쪽)


아이를 기르다 보면 화낼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려고 해도 힘든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저자에게도 힘든 일이 많아보였다. 이혼이나 빈곤의 이유로 방치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아이, 사랑을 받지 못해 엇나가는 아이들을 거두며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단다.

‘목숨을 지니고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 권리를 누릴 환경을 만드는 게 바로 어른들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저자는 기실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제 아이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운 마당에 동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며 책과 친구가 되도록 힘쓴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타고난 호기심에 굳은살이 박이기 전에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할 수는 없을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전에 어울리는 기쁨을 누리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이 오늘의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나고 보면 누군가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물음을 가끔 할 때가 있다. 최소한 나쁜 사람으로는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자는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을 만나서 기분이 좋다. 새싹 같은 아이들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도록 어른들이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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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서점에 놀러다니곤 했지요.
지금도 방학때 집에 오면 서점에 가자 하면 되게 좋아한답니다.
서점이 일종의 놀이터였답니다.


연잎차 2006-12-0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는 일은 참 흐뭇한 일인 것 같아요~
 
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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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환경오염은 심해지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도 점점 나이 들어가며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참살이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많이 편성되고 그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은 그만큼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충분히 반영해주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질병판매학>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각을 키워주고 있다. 책을 통해 제약회사도 일종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환기하게 되었다. 제약회사는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되도록 약을 많이 팔아서 그만큼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다.


골다공증을 환자 수나 골밀도 수치 등 숫자로 관리하는 것보다 노인들이 낙상 등 미끄러져 다치는 것을 방지하는 전략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약 회사들을 가장 불안하게 한 것은 그가 보여준 증거들이 뼈의 다른 변화, 즉 골밀도보다는 뼈의 고조와 관련한 변화들이 장래 골절 가능성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한 점이다.


그는 오늘날 널리 퍼진 골밀도 검사가 어떠한 이익도 없다고 결론 내리며, 여성들이 현재 복용하고 있는 시기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약을 먹는 것이 더욱 이로울 것이라고 밝혔다. 달리 말하면 나이가 들어 골절이 일어나기 쉬운 시기에 가까워졌을 때 복용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80쪽)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와 일체 육류를 멀리하시는 아버지나 골다공증에 필요한 약과 칼슘제를 병행해 드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책의 내용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약을 복용하기 전에 약이 아닌 다른 것으로 먼저 증상의 완화를 꾀해 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에는 굳이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이 질병으로 분류되어 약물을 남용하고 있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것들을 약으로 대치하려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약으로 복용하면 간편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꼭 기능하지 않아도 될 장기에 기능해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건강염려증도 일종의 병이라는데,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약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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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다공증은 과잉진료의 경향이 있습니다.
저역시 못마땅하답니다.
골다공증으로 환자들을 겁주는 병의원은 피하시도록..

연잎차 2006-12-0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