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에 대해 심취해 있다기 보다는 사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의 육성이 담긴 노래를 듣기 보다는 다른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노래들이 더욱 익숙했으며 그 리메이크 된 노래들의 원 가수가 김광석이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았으니 말이다. 수 많은 가수들에게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해서 화자가 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의 추모 공연들이 계속되고 있기에 그저 지나가다 한 번 그의 노래를 들어볼 심산으로 동영상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를 만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의 음색을 들으면서 뭐랄까. 참 편안하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은은하니 귓가에 맴돌았다.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기에 그저 귀에 들려오는 것이 편하고 좋으면 좋은 음악이라 판단하는 나로서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감미롭게 들렸다.
지금으로 이야기하자면 꽃미남의 외모도 아니고 무대 위의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느낌은 아니다 만은 나지막이 울리는 기타 선율에 진솔한 그의 음색을 듣노라면 왜 그가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가수임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영원히 20~30대의 모습으로만 남아있는 그의 모습과 노래들을 마주하면서 그 역시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이가 든 그는 또 어떠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지.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안되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멈춰버린 시간을 살고 있는 그가 남긴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이 책은 노래 이외의 방식으로 그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다. 노래 속 가사를 넘어 조금 더 그에 대해 알고 싶었기에 <미처 다 하지 못한>이라는 제목은 <미처 다 들려주지 못한>이란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리하여 별 다른 고민도 없이 이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담담한 듯 하지만 그의 글을 보고 있으면 아련하니 슬픔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미 결과를 알고서 영화관에 들어서는 관객인 냥 환하게 웃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마주하면서도 ‘결국 주인공들의 결말을 새드 엔딩이야.’ 라며 그들이 웃는 것마저도 즐길 수 없는 듯한 느낌 말이다.
혼자만의 상념을 기록해 놓은 이 곳에서도 그 역시도 홀로 있으면 외롭고 처연한 마음이 드는 한 인간이었구나, 라는 것이 베어져 나온다.
여유로움 속의 답답함이여.
한가로움 속의 조급함이여.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의 해지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피우다 말고 재떨이에서 다 타버린 마지막 담배처럼 뭔가 느끼고 싶어 집을 나섰다.
저녁 여덟 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모습들 사이로 무력한 얼굴을 하고 다가선 어색함이여. –본문
<서른 즈음에>를 시작으로 그의 노래들을 하나씩 찾아보면서 <사랑했지만>을 들었을 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하는 그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너무나 싫어하고 가당치 않은 것이며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는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었고 어느새 또 동화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김광석씨 개인적으로는 사랑 앞에서 너무나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 노래를 싫어했다고 하는데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이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감정은 나이와는 상관없다고들 하면서도, 할머미나 부모님이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쉽게 단정 짓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반성을 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그 할머니의 잊었던 감정을 되살려준 노래이기에 조금 더 열심히 부르고 좋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하찮게 여기는 것이 남에게는 소중한 것이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은 같습니다. –본문
마음이 허전할 때 창가의 메뚜기를 보면서 멍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있는 대신 사치스러운 생각일랑 접어 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비상구라는 녹색 불이 들어온 것을 보면서 가끔 가야 사람이 지나가는 그 길을 보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바쁜 일상 속에 그야말로 스타 가수였던 그가 그 누구도 부러울 것도 없을 것만 같았던 그의 삶 속에도 우리네 평범한 모습들이 녹아있었으며 때론 그의 모습은 쓸쓸함이 깊이 베어 있는 듯 했다.
5집 음반을 준비하던 시점에 미처 다 하지 못한 노래 이야기가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어떠한 음색으로 이 노래들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가사만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도 왠지 모르게 먹먹해지는 이야기들이 실제 그의 목소리를 타고 울렸으면 이 느낌들이 배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젠 어른이 된 우리의 회색빛 하루하루
희망을 잃은 흐려진 눈빛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다시 어린아이의 눈빛 되어 그 무지갤 찾는다면
우린 평범한 속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어요.
다시 어린아이의 눈빛 되어 그 무지갤 찾는다면
그땐 잃었던 우리의 꿈들을 찾을 수가 있어요. –본문
미처 다 하지 못한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가 또 다시 보고 싶어 진다. 아마 한 동안 그의 영상을 계속 마주할 듯 한데, 영원히 늙지 않는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서글프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