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서 돌아온 해외 입양인 얘기는 미담처럼 회자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수 해외 입양인의 얘기는 미국과 유럽으로 보내진 20만 명이 넘는 해외입양인들의 운명 또한 한국에서보다는 나았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유포시키고, 한국의 아이들을 해외로 보낸 어른들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는 오랫동안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또 홀트아동병원에서 50년간 헌신한 조병국 원장의 책이다. 그는 책에서 그가 그동안 만났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해외로 입양되었거나 국내 입양된 아이들, 병원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 버려지고 상처받았던 아이들......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단체의 성격과 역할, 그 한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솔직하게 서술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책에서 항변하고 있다.
집 없고 병든 아이들을 위해 양부모를 찾아주고 싶었을 뿐이고 국내에 없어서 해외로 입양보냈을 뿐이라고. 그러나 하루 아침에 입양수수료 받고 고아를 수출한다는 사회적 비난에 상처받고 인생전체가 흔들리는 위기감을 겪었다고. 성장한 후 한국을 찾은 해외입양인들은 생모와 모국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가 없다고.
생후 몇 개월만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제인 정 트렌카는 지금 한국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연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해외입양인인 제인 정 트렌카가 요구하는 진실과 화해는 무엇인가? 입양되었던 당사자가 경험했던 무수한 아픔과 상처, 좌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을 입양보냈던 기관들은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건가?
가난한 미혼모는 국가로부터 1달에 5만원을 지원받지만,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면 해당 고아원은 아이 1명당 105만원을 지원받는단다. 아이를 낳은 생모에게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돈을 지원해주는(물론 '가난한' 미혼모에게만 그나마 5만원이 지원된다) 제도, 5만원과 105만원의 차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지..
더구나 해외 입양이 증대된 것은 전쟁고아를 해외로 입양하는 것이 거의 종료된 시점부터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양을 이야기 전에 먼저 생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권리부터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작 해외입양인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