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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유는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무소유란 책을 통해 소유는 행복이 아니라 번뇌라고 일깨워준다. 소유함으로 집착하게되고, 집착은 근심을 낳으니 소유가 행복이라는 어설픈 생각을 버리기로 하자. 다음의 예화를 보면 소유와 행복은 별개라는 것을 알게된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산 왕이 있었다. 그러나 몸에 병이 들어 눕게 되자 불만에 가득차 신하들을 괴롭혔다. 왕은 용하다는 의사를 다 부르고 좋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에게 아픔을 호소했다, 현자는 말했다.
"임금님의 병은 아무 걱정이 없고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얻어다 입으면 나을 것입니다."

왕자와 신하들은 방방곡곡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한 사람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행복하다고 소문 난 사람도 한 가지씩의 불행은 꼭 가지고 있었다,

실망한 왕자가 어느 시골 오두막 앞을 지나고 있었다, 오두막 안에서는 즐거운 웃음과 노랫소리가 새어나왔다, 왕자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 집의 주인인 농부에게 왜 즐거우냐고 물었다.
"온 가족이 건강하고, 부지런히 일해서 배부르게 먹고 지내니 무슨 걱정이 있나요?"

왕자는 뛸뜻이 기뻤다,
"당신의 소원을 다 들어줄 테니 입고 있는 속옷을 벗어 주시오."

그러나 농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하여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속웃은 입지 않고 삽니다."
왕자는 할 수 없이 빈 손으로 돌아갔다.  

 

-행복을 주는 몇 권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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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의 인성지도는 평생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침에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각국의 부모들은 조금씩 다르다.

영국 어머니: “밖에 나가면 공중 도덕을 잘 지켜라!”

독일 어머니: “항상 자기 책임을 완수해라!”

미국 어머니: “나보다 약한 사람을 항상 보호해라!”

일본 어머니: “남에게 폐되는 일은 하지 마라!”

 

각국은 이렇게 자녀들에게 당부한다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무의미하게 매일의 삶 속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들이 커가면서 정체감을 형성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가 가르쳐준 삶을 만들어 나간다. 귀가 따갑도록 들려주는 어머니의 당부 말씀이 그 나라의 국민성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들이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를 닮아간다. 부모가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살아가면 자녀는 부모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역시 부정적인 사고를 하며 살아간다. 자녀들은 그러나 부모를 싫어하고 '나는 부모님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보고 배운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를 닮아가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한다. 부모를 그대로 닮았다는 증거이다. 

 

자녀의 인성지를 위한 첫걸음은 부모가 먼저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올바로 살고있는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고있는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꿈을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매일의 삶에서 실천한 계획표를 만들어야 한다.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위대한 인물 이야기이다. 초등학생들은 아무생각없이 살지 않는다. 그들도 도전을 받고 싶어하고, 소망이 있는 멋진 사람처럼 닮고 싶어한다. 초등학생들에게 탁월하게 살았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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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는 아래와 같다.

<삼국지연의>(1330년)
<수호전>(1573년?)
<서유기>(1590년)
<금병매>(1610년)
여기에 <봉신연의>를 덧붙여 5대기서로 불리기도 한다.

네 작품을 '사대명저'(四大名著)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연의>(1330년)
<수호전>(1573년?)
<서유기>(1590년)
<홍루몽>(17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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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도(鷄鳴狗盜) 

닭이 울고 개가 훔치다는 뜻이다.
  

언뜻 보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아래와 같은 일화가 있다.


전국 시대의 제후들은 각기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하여 인재를 모으는데 힘을 기울였지만 제후들뿐 아니라 당시의 유력한 귀족들도 그 신분에 따라 인재를 모으기에 광분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의 사군(四君)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의 전문,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 위나라의 신릉군, 공자 무기,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黃歇) 네 사람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 유명한 것은 맹상군이었다. 맹상군은 선왕의 막내동생이며 위왕의 손자이다. 그의 문하에는 식객(食客)이 3천명이나 되니 제후국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경양군을 인질로 보내놓고 맹상군 보기를 원했다. 맹상군의 진나라에 가려하자 그의 식객들은 모두 반대하였다. 식객 가운데 소대가 만류하며 말하였다.  


“오늘 아침 제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무로 만든 인형과 흙으로 빚은 인형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당신은 장차 부서지고 말거야’하니 흙으로 빚은 인형이 말하기를 ‘나는 흙에서 태어났으니 부서지면 곧 흙으로 돌아갈 뿐이지. 이제 비가 내리면 당신은 떠내려가서 그칠 곳을 알지 못할 것이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 같은 나라이온데 군께서 가려고 하시니 만일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군께서는 흙 인형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소대의 의미 깊은 말을 듣고 진나라로 가는 것을 중지하였다. 제나라 민왕 25년 다시 진나라에서 맹상군을 보내달라고 강요했다. 어쩔 수 없니 맹상군은 진나라로 들어갔다. 진의 소왕은 즉시 맹상군으로 진나라 정승으로 삼으려고 했다.
소왕의 측근 가운데 어떤 사람이 말했다.
“맹상군은 현명하나 제나라의 일족입니다. 그가 진나라의 정승이 된다해도 반드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뒤로 미룰 것이니 진나라로선 위태로운 일입니다”  


소왕은 그럴듯하게 생각하여 정승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맹상군을 가두었다. 어진 사람을 등용하지 않을 경우 죽여 없애는 것이 당시 제후들의 일반적인 에고이즘이었다. 우선 가두어 놓고 계략을 써서 죽이자는 것이 진나라의 계획이었다. 맹상군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있었다. 맹상군은 서둘러 사람을 지켜 소왕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에게 뇌물을 보내고 그의 석방운동을 벌이게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했다.
“석해 주는 대가로 맹상군이 가진 흰 여우 갖옷을 나에게 주시오 그렇게 한다면 맹상군을 석방하도록 한 번 힘써 보도록 하겠소”

그러나 맹상군은 단 한 벌의 호백구를 이미 소왕에게 바친 뒤였다. 호백구는 여구 겨드랑이 의 흰털만을 모아 만든 가죽옷으로 한 번 만드는데 여우 천 마리가 드는 진기한 물건이었다. 맹상군은 크게 근심하여 널리 식객들에게 좋은 방법을 물었으나 모두가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다. 그런데 제일 말석에 개의 흉내를 내어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나서며 말하였다.
“제가 호백구를 구해 오겠습니다.”
그는 밤에 개처럼 진나라 궁중 보물창고에 들어가 전날 소왕에게 바쳤던 호백구를 가져왔다. 그것은 진왕의 총희에게 바치자 그 여인은 맹상군의 일을 소왕에게 말하자 소왕은 맹상군을 풀어주었다. 맹상군은 옥에서 풀려나자 즉시 말을 달려 귀국길에 올랐다. 통행증을 고쳐 이름과 성을 변경하여 관소를 통과하려고 하였다. 맹상군은 말을 채찍질하여 국경 지대인 함곡관에 도착했다. 이미 밤중이었다. 소왕은 맹상군을 석방한 것이 곧 후회가 되어 그를 찾았으나 이미 떠나고 없었다. 즉시 사람을 시켜 역마를 달려 그를 뒤쫓아 잡아 오도록 명했다.  


맹상군은 밤중에 관에 도착하였으나 진나라 법에 닭이 울어야 관을 통과하게 되어있었다. 맹상군은 뒤쫓아 오는 자가 염려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식객 가운데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모든 닭들이 함께 울기 시작했다. 맹상군은 통행증을 보이고 무사히 관을 통과하였다. 이 두 사람이 닭이 울음소리를 내자 때문에 위기일발의 죽을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맹상군이 얼마나 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모이기를 원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작은 재주라도 있으면 인정해 주고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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