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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 벨리니의 제자였던 죠르지오네(Giorgione: 1477-1510)는 서정적인 톤을 자아내는 벨리니의 화법을 이어받아 르네상스 회화개념에 큰 변화를 보여줍니다. <폭풍>(도2)이라고 일컬어 온 그의 작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회화를 이해하는 종전의 방법과는 사뭇 다른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른쪽엔 누드의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왼쪽에 목동복장의 젊은이는 여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화면에서 빗겨나 있으며, 먼 곳에서 폭풍이 이는 어두운 풍경이 화면전체에 펼쳐져서 詩的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는 매우 모호해서 학자들에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이는 원죄 이후의 아담과 이브라 하고, 어떤 이는 비너스와 마르스라고도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젖을 먹이는 여인이 이브라면 옷을 입고 있어야하고, 비너스라 하면 아기가 없어야 하니 어느 학설도 충분히 납득할 만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림에서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 불길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 뿐 입니다. 이 그림은 이야기로 설명하기보다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지요. 죠르지오네에게 있어서 회화는 특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회화만이 할 수 있는 감성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습한 개울과 천둥이 번쩍이는 원경의 도시,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인물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검푸른 나무들, 이 모든 것은 어떤 암시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림이 이야기 내용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워진 것은 19세기말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내용이 없는 듯한 죠르지오네의 회화는 실로 현대적인 회화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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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 죠르지오네 <폭풍>, 1505년경, 캔버스에 유채 |
82×73㎝,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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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가 구사한 빛과 색채의 효과와 관능적인 감각은 신화그림에 더욱 적합해 보입니다. 티치아노는 베네치아에서 내륙 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페라라의 에스테(Este)가문의 주문으로 세점의 바카스 신화이야기를 그렸는데 도9에서 보는 <바카스 축제>(도9)는 그 중 하나입니다. 주제와 티치아노의 회화기법이 잘 어울려서 밝고 경쾌하며 또한 질펀한 쾌락의 축제를 보여줍니다. 쾌청한 날 나무그늘에서 벌어지는 장면으로 선택함으로써 티치아노는 원경을 밝게, 근경은 오히려 아주 어둡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공기 원근법을 적용한, 앞에서부터 점차 뒤로 물러나는 원근법적인 공간과는 아주 다르죠. 남녀는 서로 어울려 술 마시고, 춤추고, 또 한껏 취하여 널브러져(오른쪽 언덕 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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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9 티치아노 <바카스 축제>, 1525년경 |
캔버스에 유채, 175×193cm,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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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0 죠르지오네 <전원의 합주곡>, 1508-09년 |
캔버스에 유채, 110×138cm, 파리, 루브르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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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죠르지오네의 <전원의 합주곡>(도10)과 비교해 보면 티치아노의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죠르지오네는 여성의 누드와 음악, 야외라는 소재를 갈색톤으로 어우러진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광경으로 다루고 있다면 티치아노는 경쾌하고 관능적인 한 바탕의 축제로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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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7, 8, 9주에 걸쳐서 살펴본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어온 르네상스의 전통은 많은 부분이 피렌체와 로마에 치우쳐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10주에서 살펴보고 있는 베네치아와 북유럽의 회화 또한 그와 비견되는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티치아노의 <박카스 축제>(도9)에 묘사된 남성근육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으며 다음 주에 다룰 매너리즘회화는 티치아노의 빛과 색을 과감히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전통의 화법은 이후 17세기 바로크시대의 회화에서 함께 융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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