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지역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비옥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던 농경사회에서도 신격화된 지배자가 통치하는 고대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지금의 이란, 이라크에 해당하는 아라비아 지역으로 우리에겐 서아시아이지만 유럽인에겐 오랫동안 동방으로 지칭되었습니다. 이민족의 침입 통로가 없었던 이집트와는 달리 이 지역은 사방이 이 민족이었습니다. 현대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지역의 종족간의 갈등은 그 뿌리가 매우 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4000년 전에도 이곳에서는 수메르로부터 시작하여 아카드,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페르시아와 같은 수많은 인종의 왕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습니다.

 

 
 

 

수메르

수메르 인들은 이 지역에 기원전 3000년 전 부터 인공으로 만든 계단식 언덕 꼭대기에 지구라트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 이 곳을 중심으로 경배를 드리고 생활하였습니다(도1,2,3,4). 지구라트는 '높은 건물'이라는 뜻이죠. 지구라트는 신전과 가옥이 혼합된 복합적인 건축 공간으로 죽은 이를 위한 건축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교되는 구조물입니다. 이 건축물은 주변에 큰 바위나 돌을 구할 수 없어서 진흙을 구워 쌓아갔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형태는 비슷하지만 그 재료와 용도가 다르지요. 벽돌 건축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특징으로 후대의 왕조에서 지은 바빌로니아의 성벽은 유약을 바른 벽돌로 발전하여 그 화려함을 더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라트는 수메르,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왕조를 거쳐 계속해서 건축되었습니다.

 

도1 <지구라트> 우르왕조, 기원 전 2100년 경, 이라크
 
 
 
도2 우룩 (Warka)의 지구라트 위에 세워진 <화이트 템플> 유적,
기원 전 3500-3000년경
 
 
도3 <지구라트>의 북동쪽 전면과 복원된 계단, 우르왕조
이라크, 기원 전 2100년 경
 
 
도4 <지구라트>를 공중에서 본 모습,
아랫분은 복원된 것이다.
 
 
 

 

 
 
수메르의 아부 신전에서는 크고 작은 인간 모양의 형상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도5,6). 커다란 눈은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듯, 그 느낌이 매우 종교적입니다. 상들이 한결같이 두 손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경배자의 모습 같습니다. 이집트와 같이 이 상들의 경우에도 신체의 자연스런 움직임이나 사실적인 묘사는 만든 이의 관심 밖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보다는 큰 눈을 통한 종교적인 교감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을 것입니다.

 

도5 <아부 신전 출토의 조상들>
기원 전 2700-2500년경, 이라크, 텔 아스마, 가장 높은 것 76.3 cm,
시카고 대학 동양미술관
 
 
도6 <여성 두상>
기원 전 3500-3000년경, 석회석, 높이 20.3cm
바그다드, 이라크 박물관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에서는 반인반수 형태를 지닌 상상의 모티브가 자주 등장합니다. 우르 왕의 묘에서는 청동과 보석으로 만든 황소가 장식된 하프가 발견되었습니다(도7,8). 황소 머리 아래엔 동물 우화적인 이야기가 펼쳐 있습니다(도7). 사람 얼굴에 몸통은 소 형태의 반인반수가 중앙의 사람에 의해 좌우대칭으로 서 있으며, 그 아래 엔 사자와 갖가지 동물들이 사람 같이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음식물은 나르고 있습니다. 아마 향연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도7 우르 출토 하프의 상감 패널
기원 전 2600년 경, 31.1×11.3 cm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
 
 
도8 우르 왕 고분에서 출토된<황소 머리모양의 하프>
기원 전 2600년 경, 31.1×11.3 cm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
 
 
 
 
 

 

아카드의 바빌로니아 왕국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일찍 차지한 수메르 인들이 이 지역을 선사문명에서 자치도시 국가로 변모시켰다면, 수메르를 침략하여 승리한 아카드 족은 왕이 통치하는 전제국가로 이끌었습니다. <나람 신의 승리비>(도9)를 통해 우리는 호전적인 왕의 승리를 볼 수 있습니다. 뿔이 달린 헬멧을 쓴 왕은 태양과 달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아카드 족이 세운 바빌로니아 왕국은 함무라비왕 시대에 법을 만드는 등 체계가 잡힌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높이 2.1m의 돌 아랫 부분에 쐐기 문자로 새겨진 이 법은 인류 최초의 법전입니다. 그리고 그 위엔 태양신 샤마쉬로부터 법의 내용을 전달 받는 함무라비왕의 모습을 새겼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듯이, 함무라비 왕의 법 또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으로 부터 받은 것이라고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법이 더욱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겠지요. 신은 함무라비 왕에 비해 훨씬 크게 묘사되었습니다. 어깨에서 무언가가 솟아 나오는 것을 보면 이는 아마 초자연적 능력을 가시화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이처럼 법의 권위를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이미지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도9 <나람신 승전비>
기원전 2254-2218년, 사암, 이란, 수사출토
파리, 루브르 박물관
 
 
도10 <함무라비 법전 비석>
기원전 1769년경, 높이 2.1 m, 부조
높이 71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도11 <함무라비 법전>의 윗부분
기원전 1769년경, 높이 2.1 m, 부조
높이71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앗시리아 왕국

바빌로니아와 서로 패권을 다투다 기원전 900년경에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앗시리아는 그 엄청난 힘을 왕궁에 과시하였습니다. 궁의 한쪽 길이가 200m에 달하는 사르곤 2세의 왕궁은 실로 화려했습니다(도12,13). 한 기록에서 사르곤 2세는 "나는 내가 내 손으로 내 발 밑에 복종시킨 아수르, 나부 (…) 등의 노동력으로 내 궁을 지었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12 사르곤 2세의 왕궁 추정도
기원전 720년경 (Charles Altman의 도면)
 
 
 
도13 사르곤 2세 왕궁의 내부 추정도
 
 
 
 
도14 <라마수>
사르곤 2세의 왕궁, 기원전 720년경, 대리석
파리, 루브르 미술관
 
 
도15 <라마수>
사르곤 2세의 왕궁, 기원전 720년경, 대리석
파리, 루브르 미술관
 
 
도16 <사르곤 2세>
기원전 720년경, 대리석
파리, 루브르 미술관
 
 
 

도1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왕궁은 채색된 환조와 벽면의 부조로 장식되었습니다. 지금은 채색이 벗겨져 있지만 조각만으로도 우리는 그 성격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왕궁 안의 양쪽에 버티고 있었던 반인반수 조각 라마수(도14)를 봅시다. 우선 얼굴은 사람이고 다른 부분은 동물이죠. 수염이 더부룩하고 뿔 달린 왕관을 쓴, 눈이 큰 위엄 있는 얼굴입니다(도15). 많은 학자들이 이 얼굴은 사르곤 2세의 모습(도16)이라고 말합니다. 몸통은 황소인데 독수리 날개를 지니고 있군요. 라마수는 땅과 하늘에서 힘센 동물의 특징을 모은 초인간적인 힘의 상징인 듯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라마수는 다리가 다섯 개나 됩니다. 물론 다리가 5개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낸 것은 아니겠죠. 아마도 정면에서 보면 다리가 2개, 옆면에서 보면 4개가 보이도록 이런 방법을 쓴 것 같습니다.

 

 
궁 내부의 벽면 전체에 새겨진 방대한 부조는 주로 전쟁과 사냥의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도13). 앗시리아의 가장 중요한 장르인 부조는 아주 낮은 부조기법으로 이야기를 서술적으로 펼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아쉬바니팔 왕의 사자사냥 장면을 봅시다. 마차에 탄 왕은 활을 힘껏 당기고 있으며 신하는 앞뒤에서 사각지대를 막아주고 있습니다. 으르렁대며 떼를 지어 달려오는 사자들은 아주 용맹스럽습니다(도17,18). 죽어 가는 사자들도 매우 실감나게 묘사되었습니다. 창에 찔려 죽어가면서 피를 토하는 사자나 암사자의 모습을 보면 그 처참한 광경의 피 냄새가 진동하고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도19,20).

 

도17 전쟁중의 아쉬바니팔 2세, 아쉬바니팔 2세의 왕궁, 기원전 875년, 높이 약 101cm
런던, 대영박물관
 
 
 
도18 아쉬바니팔의 사자사냥, 이자르, 니네베 출토
아쉬바니팔 북쪽 궁전의 부조, 기원전, 645-640년경
런던, 대영 박물관
 
 
 
 
도19 피 토하는 사자
 
 
 
도20 아쉬바니팔의 사자사냥, 이자르
니네베 출토아쉬나르팔 북쪽 궁전의 부조
기원전, 645-640년경런던, 대영 박물관
 
 
그럼 왕은 왜 사자사냥의 장면으로 왕궁을 장식하였을까요. 아쉬바니팔 왕은 평소에 하느님이 자신을 위해 이러한 야생의 동물을 주었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에 사자 370마리, 코끼리 30마리, 황소 257마리를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였습니다. 즉 이렇게 용맹한 동물들을 잡을 수 있는 왕은 더 큰 힘이 있음을 과시하는 방법이지요. 한 시기도 쉴 틈 없이 적과 대치하여야 했던 앗시리아에서는 용맹스러움이 가장 큰 덕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신 바빌로니아

아쉬바니팔왕이 그토록 강성하여 주변국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의 계승자에 이르러 이 지역은 다시 아카드 족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신 바빌로니아 왕조가 세워졌습니다(기원전 612-538). 구약 성경의 다니엘 편에 묘사된 이 왕조의 느브갓네살 왕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지어진 '공중 정원'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또한 바빌로니아의 지구라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에서 지칭하는 바벨탑이라고 추정됩니다. 즉 그 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문화는 강인한 앗시리아의 미술과 비교해 볼때 보다 섬세하였습니다. <이쉬타르문>(도21)은 유약을 발라 구운 벽돌로 지은 세련된 건축물의 일부입니다. 이들도 역시 앗시리아인들이 애용한 사자로 벽을 장식하였지만 규칙적인 패턴으로 묘사된 사자는 용맹스럽기보다 오히려 장식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도21 신 바빌로니아의 <아쉬타르 문>
기원전 575년경
베를린 시립미술관
 
 
도22 도21의 부분
기원전 575년경
베를린 시립미술관
 
 
 
 

 

페르시아 제국

바빌론 왕국을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이 지역의 마지막 승자였으며, 이집트와 그리스에게도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기원전 525년엔 이집트를 멸망시켰으며 기원전 4세기에는 그리스와 여러 번 접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30년의 익수스해전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함으로써 동방의 왕국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긴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왕궁을 초토화 시켰지만 그 폐허만으로도 우리는 옛 웅장함을 엿 볼 수 있습니다(도23,24).

 

도23 페르세폴리스
다리우스 1세
기원전 500년경, 폴리스궁전
 
 
도24 도23의 층계 부분
 
 
 
 
 
 
이웃 나라 이집트가 3000여 년 동안 한 민족에 의해 지속된 것에 비교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실로 여러 민족의 힘의 각축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힘의 과시는 용맹스러운 미술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탑이라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부터 받는 위협을 묘사하였거니와 이 지역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적대감 또한 매우 컷습니다. 그리스에서 다루겠지만, 그리스 미술에서는 젊은 영웅과 추한 적을 대치시키는 주제를 많이 다루었습니다. 그리스인의 적은 바로 페르시아였으며, 그 들은 이 적을 반인반수로 그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메르인의 하프(도7,8)나 사르곤 왕궁의 문지킴이 '라마수'(도14,15)에서 보았듯이 반인반수의 상상적 존재는 바로 이 지역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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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9-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제 그림도 보여드리고 싶군요... 호호호

panda78 2004-09-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ㅡㅡㅡㅡㅡ^ 마태님, 언제 마태님 실물부터 보여 주세요. 정말 뵙고 싶어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