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

그 남자는 왜 그랬을까.

텔레비전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왜 사람을 죽인걸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65쪽


*



소설 아몬드는 출간 전 연재부터 챙겨보던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 윤재의 모습이 너무 무표정해서 사실 윤재가 범죄를 일으키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실제 '윤재'들에게 미안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윤재는 사람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공감만 할 뿐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예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위의 발췌문은 윤재가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애꿎은 시민들을 향해 뿜어버린 남자에 의해 엄마와 할머니를 잃었던 사고를 당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의 아픔에 타인이 공감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실제로 유사한 사건들을 보면 피의자 자신은 엄청나게 힘들고 괴로운데 아무렇지 않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적인 화를 참지못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그런가하면 곤이의 경우는 또 다르다. 곤이는 자신의 슬픔에 공감해주길 강요하거나 그렇지 못한것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화를 낸다. 그것은 마치 자해와 같았다. 강해지기 위해 악마와 다름없는 상대를 직접 찾아나서는 것 역시 그만큼 곤이가 의존적이라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 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보통의 기준으로 정상적인 사람은 '도라'라고 볼 수 있다. 제꿈을 위해 반항도 하지만 결국 가족들의 응원을 기대하는 모습은 10대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적확한 모습이었다.


*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난 늘 죄의식에 사로잡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책을 읽는 것처럼 너무 웃겨서 배를 부여잡을 만큼 재미있었던 완득이도 그랬고, 우아한 거짓말 또한 읽은 뒤 한참을 방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몬드 또한 마찬가지다. 초반에 윤재 엄마와 외조모가 윤재를 정상적인 아이처럼 보일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과정은 웃음이 날만큼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어두운 내용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윤재와 곤이의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 때즘이면 두 아이 모두를 잃게 될까봐 심장이 오그라드는 불안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나 윤재와 곤이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작품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위험인물'이 아닌 '어른들'과 '사회'다. 독자인 나는 하필이면 어른이자 그 사회의 일원으로 숨쉬고 있으니 죄의식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우아한 거짓말>리뷰를 쓸 때 말미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적었는데 역시나 <아몬드>를 읽고 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나를 볼 때마다 역시나 청소년 소설은 정작 읽어야 할 독자가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