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시, 주리 그림 / 바우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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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전국에 함박눈이 내렸다. 그로인해 불편한 이들도 많았겠지만 눈을 좋아하는 내게는 신이 내려주신 새해 선물처럼 느껴졌다.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읽기에 '적당한'날이었다.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문구 앞에 두 문장이 빠져있다. 못잊을 사람과 함께 한계령을 넘을 때라는 전제가 존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뜩밖의 폭설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고립이 아니라 두사람만의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는 고마운 장치가 된다.  그렇기에 저 한 줄 문장에 마음을 한참 빼앗겨버렸다.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공유와 전도연이 열연한 영화 <남과여>속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폭설'때문이었다. 고립된 두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심신이 지쳐있었던 상황에 많은 말 대신 서로의 체온으로 위로와 응원을 함께한다. 소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상황을 전부 묘사해주고 설명해주는 소설이나 서사구조의 장르보다 시, 혹은 활자가 많지 않은 동화책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 같다. 어떤 때에는 감명깊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고 또 어떤 때에는 실제로 폭설로 인해 뜻하지 않게 두어시간 휴게소에 머물며 눈밭을 걸었던 독일의 아우토반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잊고 살았다. 참 많이 울었던 영화의 한 장면을, 그 좋았던 이십대의 마지막 겨울 밤을.


시인의 시선은 폭설로 고립된 연인을 쫓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여자인듯 싶다. 폭설로 인해 헬기가 떠도, 겨울 한 밤 어두움이 사방을 잠식해도 여자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고립되어 있는 그 시간이, 발과 함께 '운명'도 묶인 그 상태가 계속, 계속, 지속되기만을 바란다. 그림속에 빠져들수록 나또한 여자의 마음을 응원하게 된다. 부디, 부디, 눈이 다 녹는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두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뤄질 수 없는 희망에 대한 응원.

폭설이 내리면,
눈으로 인해 발이 묶였을 때면,
이 동화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이 동화가 떠오를 수 있도록 다정한 사람과 눈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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