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고대풍속사 - 고대사를 이해하는 즐거운 상상력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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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밭의 엽기 역사 시리즈는 역사를 유머러스하게 혹은 흥미롭게 볼 수 있게 하자는 의미로 쓰여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에 다가감에 있어 진지하고 무거워야 한다고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그 까마득한 시간이 담긴 역사 속에서 가벼움은 자칫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역사를 대함에 있어 어떤 자세가 좋은 것일까? 우리나라의 역사를 언제부터인가 시험점수로만 연결짓는 학생들을 보면서 역사가 아이들에게 혹은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역사는 딱딱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 속에도 사람이 살고, 역사 속 삶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역사 속 사람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엽기 고대 풍속사>에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담겨 있다.

 

 고대 연맹왕국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혹은 오해했던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은 역시나 엽기스런 말투를 고집하면서 요즘의 언어로 고대를 이야기하는 등장인물들이 속속 나와서 웃음을 전하려 한다. -이번에는 북한 사투리까지 (그랬음둥? 저랬음둥? 처럼) 나온다.-

 

 선덕여왕의 웃지못할 육감에 얽힌 사연부터 고대시대의 환경에 좌우될 수밖에 없던 출세수단, 신라 화랑들이 통일 후에 쓸쓸히 잊혀져가는 존재가 된 것등 책에는 4가지 주제로 얽힌 27 가지의 이야기들은 유쾌한 언어로 (어쩔때는 유쾌함을 넘어버려 살짝 불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시작하지만 읽고 나면 웃을 수만은 없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역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읽은 후에는 역사에 한 걸음 다가서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역사란 관심을 가지기만 한다면 언제나 우리에게 문을 열어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문은 우리가 열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책은 여러 이야기를 다뤘기에 이 책을 읽고 궁금한 역사 사건에 대해서는 스스로 찾아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책의 전편인 <엽기 고대왕조실록>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신선함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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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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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는 달린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 때마다 읽는 순간을 즐기며, 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을 구르고 100m를 뛴 것처럼 두근되는 가슴이 되어 최선을 다해 읽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보다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들의 우정을 느끼며, 꿈을 향한 질주를 부러워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
읽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다. 

 

 세 권의 책을 쉼없이 읽어버릴 수 밖에 없는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책을 읽는동안 가장 조심해야 했던 순간은 달리러 나가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거였다. 오랜만에 책을 읽는 감동이란 이런 것임을 깨달으며,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달리기를 할 때의 쾌감을 되살려 본다.

 

 주인공 가미야의 시선으로 쓰여진 이야기는 중학교 3학년때까지 형을 동경해 축구만을 위해 살다가 축구에 소질이 없음을 알고 축구를 그만두고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육상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가미야만의 성장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면서 달리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렌과 육상부라는 하나의 집단을 통해 아이들은 함께 성장해 가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것만으로 시릴만큼 눈이 부신데 서로 같은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그 시절만의 아니, 생을 통틀어 귀하고 값진 시간이 된다.

 

 가미야가 달리면 그의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내 손끝에 전해져 오고, 그가 땅을 박차고 달릴 때는 책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으며 가미야의 심장이 두근거림은 고스란히 내 심장으로 이어졌고 그가 흘린 땀방울은 햇빛에 반사되어 내게 반짝임으로 다가온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길어지고 말줄임표 6개가 뒤에 붙는 일이 많아진다. 간단 명료하게 답할 수 있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이 가미야가 꿈을 말할 때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더 빨라지는 것."

 

 사람의 꿈은 언제부터인가 먼 훗날을 내다봐야 하는 것이라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은 포기해도 된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하면 안 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를 생각하며 운동장을 달려 보았다. 반바퀴도 달리지 못해 숨은 턱에 차 오르고 심장은 터질 것 같음을 느끼며 가미야를 비롯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 하루고 육상부 아이들은 이 고통스런 감각조차 꿈을 향한 발걸음이란 생각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만다.

 

 아이들을 얕보는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난 아직 덜 자랐구나라고, 더 커야 겠구나, 제대로 달려봐야 겠다고 가슴을 쫙 펴 보며 다시 발을 굴러본다. 가미야처럼 땅을 밟을 때 땅이 나를 차주는 듯한 기분을, 렌이 스타트를 할 때 바람을 가르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아, 나도 달리고 싶다' 라고 달리면서도 입으로 중얼거리는 내가 재밌어 혼자서 꺄르르르 웃으며 또 달린다. 이 책의 감동이 땀방울로 소진되는 날까지 달리기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꼭 그러하기를 바라는지도. 더, 조금만 더, 달리고 싶다.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 앞에는 운동장이 펼쳐진다. 당신은 달릴 것이다. 꿈을 향해. 꿈꾸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당신이라면 달리다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꿈을.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달려라. 달리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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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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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로콩밭에서' 를 붙여 읽는지도 모르고 '오로로 콩밭에서 붙잡아서'라고 내 맘대로 책 제목을 입에서 굴려보지만 대체 무슨 제목인지 감은 잡히지 않고 그럼에도 표지는 가을 새벽 5시에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을 떠올리게 하며 나를 잡아끈다.
 

 '오로로' 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책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마술같은(오로라가 떠올라서 일지도;;;) 일이 펼쳐지는 내용을 선물할 것 같고 그런 기운을 표지가 더한다는 나의 생각은 책장을 넘기자 마자 왠걸 몽환적이고 마법같은 일은 커녕 분명 듣는다면 웃음이 먼저 나올 사투리를 쓰는 농촌 노총각(다행히 몇몇은 결혼을 했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들이 모인(왠지 퀘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마을 회관이 눈 앞에 보이면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내용을 기대하던 나의 상상을 깨버렸다.

 

 "여덟이여." 라는 사투리로 시작해 준 책의 주인공들은 우시아나 청년회의 전부이다.(정말 여덟명이 전부다;;;) 청년이란 말이 무색할만큼 이들은 중년에 가까운데 거의 서른 살이 넘었으며 머리카락도 점점 머리를 떠나고 뱃살은 허리띠 위가 집인지 알고 사는 남자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이들의 고민은 여느 농촌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인구감소와 경기침체. 우시아나는 깡촌중의 제일 깡촌이란 말을 들을만한 시골로 여느 시골보다 그 문제가 심각해서 마츠리도 할 수 없을지경에 이르렀다. (마츠리의 대형가마 미코시는 전통으로 남자들만 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시아나의 청년회장 신이치는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단 하나뿐인 대안이지만 그가 도쿄에서 대학을 나왔기에 가능한(?) 대안인지도 모른다.)

 

 도쿄에서 학교를 나왔기에 제 2 외국어인 도쿄어(?)를 잘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이치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도쿄로 가고 그곳에서 광고계에도 일류와 삼류가 있다면 후자에 가까운 (하지만 이름은 분명 일류다) 유니버셜 광고사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우시하나 청년회와 유니버셜 광고사 직원들은 (모두 더하면 12명이다) 한바탕 사고를 치며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책의 표지와 같은 풍경이 가능한 시골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까만 밤하늘에 총총히 밝힌 별을 올려다 보는 일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며 별이 잘 보이지 않는 하늘아래 사는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간절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람일이란게 이상한 일이 참 많지만 커가면서 가장 이상했던 일은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한 공기를 두고서도 사람들이 들어오기보다는 나가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친척들이 와서 이곳에 살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지만 정작 마을에는 사람이 없어 어른들은 한숨을 많이 내쉬고는 하시는 일이 많아지는 그 연관성이 내게는 그 당시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마을도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바다를 끼고 있음에도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마을에 점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래서 시작했을 명태축제는 언제부터인가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겨울에 일거리가 없는 우리 마을을 활기차게 만드는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문득 명태축제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 있는 바다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역시 책에서 느낀 유쾌함 때문일 것이다. (무얼 집어넣으면 좋을까나...^^;;;;)

 

 책은 읽는동안 힘든 상황에 처한 농촌의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한숨은 커녕 웃음보가 점점 차오르고 따뜻함이 베여나온다. 시골이 주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동안 참 재미있었다. 영화 <훌라걸스>가 떠올랐는데 훌라걸스가 잔잔한 감동이라면 이 책은 웃음을 주는 감동이었다, 큰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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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트 -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까지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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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람이 차다. 그 바람이 전보다 더 차갑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오르르르 떨었을 때 책을 다 읽었다. 흐린 하늘 아래 바다는 하늘보다 딱 4% 더 흐리고 우울해 보인다. 그 바다를 뒤로 하며 돌아선 곳에는 그 바닷빛을 닮은 호수가 있다. 하나의 길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호수가 공존하는 화진포, 그 사잇길이 에테르일까? 어디서부터 바다고 어디서부터 강일지 모르는 그러나 분명 존재할 미세하고도 미세한 존재인 담이 그곳에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에테르를 닮은 길을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내면이 담긴, 책이 아니고 그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김경주 시인을 잘 모르기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김경주 시인의 산문집을 들고할수만 있다면 발자국 흔적이 남길 바라며 아스팔트 길을 걸어 돌아왔다.
 

 내가 책을 읽었던 곳은 거기(바다)였는데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곳은 여기(집)이다. '여행이란 여기가 있어서 저기로 가는 것이다.' (패스포트, p.396) 라는 시인의 말에 장난 아닌 장난을 치며 책을 이야기 하고 있는 손길이 낯설다. 어쩌면 바다와 우리집까지의 30분 거리보다 더 멀리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경주 시인을 따라 고비와 시베리아 그리고 그곳에 있는 바이칼 호수까지 따라다녔기 때문일까? 내가 간 곳은 장소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였기 때문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펜으로 책의 구절을 공책에 적다가 팔이 아파 쉬기를 반복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책을 읽을 때는 할수만 책의 전부를 내 손으로 나만의 기록장에 옮겨 적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 놓고서는 몇 문장 쓰지 않아 팔이 아프다며 금방 손을 놓고 만다. 그러고는 작가를 탓한다. 시인이 쓰는 글은 왜 이리 멋지냐고, 마음에 남기고 싶은 부분을 골라 낼 수 없을만큼의 대다수의 문장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시인이 글을 써서 라고 무심코 투덜거리다가 화들짝 놀란다. 사람 마음을 들어놓고 무슨 소리냐고, 누가 나에게 그 글을 적으라고 했다고, 마음에 글을 담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시인의 잘못이냐고 스스로를 혼낸다.

 

 서점에서 책은 여행기에 분류되어 있었다. 고비와 시베리아 두 곳을 여행하면 적은 글이거니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떠한 장소로의 여행이 아니었다. 김경주 시인의 마음 속으로, 사람의 고독하고 깊은 심연 속으로의 여행이었다. 어느새 책은 나의 마음을 창문으로 만들었고 그 창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 창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도 있으며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들여다 볼 수만 있을 뿐 다가갈 수는 없다. 딱 그만큼의 두께로 인해 나는 나를 안아주지는 못하지만, 시인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없지만 알 수 있었다. 힘들었음을, 아팠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 나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많은 거리에서 나는 외로워 움직였고, 외로워서 움직이지 않았고 많은 거리에서 시간은 자신의 허기를 내 몸으로 채웠고 시간은 여러 개의 나로 헐었다. 그러나 그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별과 나 사이에 그 긴 거리가 놓여 있지 않았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별을 바라본다. 그 많은 별에 대해서 바라본다. 별 속에 수많은 눈이 아직 머물러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사람은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의 시들이 깜깜한 어둠이어서, 그 어둠조차 식별하기에는 내가 가진 고독의 깊이보다 작가의 깊이가 너무 깊어 되려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불행에 내 불행을 위로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사악함일까? 그런 나의 사악함은 <패스포트>에서도 나타났다. 내가 투정처럼 외롭다고 골백번 외치던 소리는 작가의 글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진다. 정말 외롭지 않기에 입밖으로 말할 수 있었음을 깊은 고독은 말조차 못하고 글로, 시詩로 태어남을 알게 된다.

 

<멀미는 길 위에서만 겪는 시간의 어지러움이었고 그 길을 향해 내가 던졌던 물음들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할 때마다 여행은 멀미를 동반했다. 멀미는 생이 출현하는 방식이었고 생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고비와 시베리아, 그곳에서 시인은 삶을 보고 자신을 보고 풍경을 보고 바이칼 호수의 얼음을 보고 더 더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멀미를 하고 또 하며 여행에 적응하기 위해, 삶을 견뎌내기 위해 엽서를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내면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은 버리기 위해서 떠날 수도 있지만 버리지 못하고 돌아올 수도 있음을 알게 된 <패스포트>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시인의 말대로 나그네의 권리를 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나그네는 외롭지만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여기를 다 보지 못해 다른 곳에 가지 못함이 아니라 여기가 존재하기에 저기에도 갈 수 있다는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나그네의 권리를 사용해야 한다. 삶이란 여정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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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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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있는 시간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나요? 가지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 행복한가요?' 무턱대고 당신에게 묻는 저를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해서 그렇답니다. 더 많은 사람에 둘러싸이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데도 왜 즐겁지 않은지 궁금해서 그렇답니다.

 

 생生은 즐거워야 한다고, 그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홀로 살아감을 견디어 내시는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즐겁기 위해 혼자 산다니요? 약속 하나없이 방바닥을 뒹구르는 날이면 얼마나 지루했는지가 생각나는 제게는 낯설은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홀로 지낸다라는 말은 외로움의 동의어가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품었던 제게 스님의 글마다 외로움은 커녕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법정 스님의 글은 여백의 미를 생각나게 합니다. 분명 글자로 채워진 종이는 한 페이지를 다 읽고나면 글자들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스님이 전해주는 말씀의 공기로 종이는 백지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백지에는 꽃이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며, 나비가 앉았다 가기도 하고, 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흔들며 숲의 냄새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스님의 삶은 이처럼 자연에 취해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동안 잊고 지낸 자연이 주는 에너지가 그리워지고 맙니다.

 

 홀로 있되 홀로 있지 않은 분이 스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연과 소통하고, 스스로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고마운 이에게 편지를 띄우는 스님은 세상과 단절됨을 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자유롭게 보기 위해 홀로됨을 택한 것임을 책을 덮고서야 알겠습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책을 통해, 스님의 삶을 보며 배웁니다. 고독하되 고립되지 않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 가난한 마음이 되어 빈그릇으로 삶을 닮으려는 모습,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그리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너무 많이 가져서 넘치는 것도 모르기에 만족도 모르는 현재를 돌아보며 제가 살아 온 발자국을 응시해 봅니다. 그 발자국 하나마다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흙과 나무와 대화 한 시간은 오래 전이며, 홀로 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사람에 둘러 싸여 있어도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살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글에 제 마음을 덜어놓으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 이웃분의 닉네임처럼 빈그릇이 되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가난한 마음에 더 큰 행복이 깃들 수 있음을, 빈그릇이 되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홀로 되어야 삶을 즐겁게 살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책을 당신께도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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