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포트 -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까지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바다 바람이 차다. 그 바람이 전보다 더 차갑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오르르르 떨었을 때 책을 다 읽었다. 흐린 하늘 아래 바다는 하늘보다 딱 4% 더 흐리고 우울해 보인다. 그 바다를 뒤로 하며 돌아선 곳에는 그 바닷빛을 닮은 호수가 있다. 하나의 길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호수가 공존하는 화진포, 그 사잇길이 에테르일까? 어디서부터 바다고 어디서부터 강일지 모르는 그러나 분명 존재할 미세하고도 미세한 존재인 담이 그곳에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에테르를 닮은 길을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내면이 담긴, 책이 아니고 그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김경주 시인을 잘 모르기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김경주 시인의 산문집을 들고할수만 있다면 발자국 흔적이 남길 바라며 아스팔트 길을 걸어 돌아왔다.
 

 내가 책을 읽었던 곳은 거기(바다)였는데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곳은 여기(집)이다. '여행이란 여기가 있어서 저기로 가는 것이다.' (패스포트, p.396) 라는 시인의 말에 장난 아닌 장난을 치며 책을 이야기 하고 있는 손길이 낯설다. 어쩌면 바다와 우리집까지의 30분 거리보다 더 멀리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경주 시인을 따라 고비와 시베리아 그리고 그곳에 있는 바이칼 호수까지 따라다녔기 때문일까? 내가 간 곳은 장소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였기 때문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펜으로 책의 구절을 공책에 적다가 팔이 아파 쉬기를 반복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책을 읽을 때는 할수만 책의 전부를 내 손으로 나만의 기록장에 옮겨 적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 놓고서는 몇 문장 쓰지 않아 팔이 아프다며 금방 손을 놓고 만다. 그러고는 작가를 탓한다. 시인이 쓰는 글은 왜 이리 멋지냐고, 마음에 남기고 싶은 부분을 골라 낼 수 없을만큼의 대다수의 문장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시인이 글을 써서 라고 무심코 투덜거리다가 화들짝 놀란다. 사람 마음을 들어놓고 무슨 소리냐고, 누가 나에게 그 글을 적으라고 했다고, 마음에 글을 담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시인의 잘못이냐고 스스로를 혼낸다.

 

 서점에서 책은 여행기에 분류되어 있었다. 고비와 시베리아 두 곳을 여행하면 적은 글이거니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떠한 장소로의 여행이 아니었다. 김경주 시인의 마음 속으로, 사람의 고독하고 깊은 심연 속으로의 여행이었다. 어느새 책은 나의 마음을 창문으로 만들었고 그 창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 창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도 있으며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들여다 볼 수만 있을 뿐 다가갈 수는 없다. 딱 그만큼의 두께로 인해 나는 나를 안아주지는 못하지만, 시인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없지만 알 수 있었다. 힘들었음을, 아팠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 나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많은 거리에서 나는 외로워 움직였고, 외로워서 움직이지 않았고 많은 거리에서 시간은 자신의 허기를 내 몸으로 채웠고 시간은 여러 개의 나로 헐었다. 그러나 그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별과 나 사이에 그 긴 거리가 놓여 있지 않았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별을 바라본다. 그 많은 별에 대해서 바라본다. 별 속에 수많은 눈이 아직 머물러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사람은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의 시들이 깜깜한 어둠이어서, 그 어둠조차 식별하기에는 내가 가진 고독의 깊이보다 작가의 깊이가 너무 깊어 되려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불행에 내 불행을 위로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사악함일까? 그런 나의 사악함은 <패스포트>에서도 나타났다. 내가 투정처럼 외롭다고 골백번 외치던 소리는 작가의 글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진다. 정말 외롭지 않기에 입밖으로 말할 수 있었음을 깊은 고독은 말조차 못하고 글로, 시詩로 태어남을 알게 된다.

 

<멀미는 길 위에서만 겪는 시간의 어지러움이었고 그 길을 향해 내가 던졌던 물음들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할 때마다 여행은 멀미를 동반했다. 멀미는 생이 출현하는 방식이었고 생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고비와 시베리아, 그곳에서 시인은 삶을 보고 자신을 보고 풍경을 보고 바이칼 호수의 얼음을 보고 더 더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멀미를 하고 또 하며 여행에 적응하기 위해, 삶을 견뎌내기 위해 엽서를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내면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은 버리기 위해서 떠날 수도 있지만 버리지 못하고 돌아올 수도 있음을 알게 된 <패스포트>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시인의 말대로 나그네의 권리를 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나그네는 외롭지만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여기를 다 보지 못해 다른 곳에 가지 못함이 아니라 여기가 존재하기에 저기에도 갈 수 있다는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나그네의 권리를 사용해야 한다. 삶이란 여정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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