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주펀으로 가는 길. 택시기사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종 이 폐광촌을 찍으러 온다기에 한번 담아봄.)

 

   이번 여행의 진수는 단연코 주펀이다. 물론 우라이(烏來)의 고즈넉함과 신기한 강변온천, 예류의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양새, 이곳저곳의 각종 먹을거리 등 얘깃거리들이 많지만 주펀이 주는 감한 인상에는 훨씬 못 미치리라.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2005년에 왔을 때는 한나절 일정으로 와서 못내 아쉬움이 남았었다. 아기자기하고 번잡한 예쁜 상점들과 먹거리에 눈과 입이 얼얼했고, 앞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경을 마주한 테라스가 있는 찻집에서의 차 한 잔은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듯했었다. 그래서 그때 다짐해 두었다. 다음에 다시 대만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기필코 꼭 이곳 주펀에서 하룻밤을 보내보리라, 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숙소가 하나 있다고 했다. 여행 블로그에 심심찮게 올라오고,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씨도 다녀갔었다는 유명한 숙소를 드디어 알아냈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예전 안내책자에는 불행히도 정보가 없었다. 영문 구글로 검색하니 대강의 정보는 나오는데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에 신뢰감이 들지 않았다. 결국 또 한 권의 안내책자를 샀다.(<프렌즈 타이완>)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지난 3일 간은 날씨가 화창해서 여행하기에 딱 좋았다. 심지어 도착한 첫날은 영상 20도가 넘는 기온이어서 한겨울의 옷차림으로 호텔을 찾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겨울이 우기라고는 하나 살짝 흩뿌리는 겨울비는 마치 요리에 후추라도 뿌리는 것처럼 옷도 적시지 않아 내심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펀 윗동네에 있는 진과스라는 광산마을을 먼저 들러 관광객이면 누구나 사먹는다는 광부 도시락도 하나씩 사서 들고 나왔다. 폐 광산촌을 관광지로 탈바꿈한 진과스는 예전에 왔을 때는 들어보지도 못한 동네였는데(내가 몰랐을 지도 모른다), 주펀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구경거리를 하나 더 추가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버려진 마을도 살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었다. 물론 입장료가 없는 착한 정책도 한 몫 하고 있었다.

 

(진과스의 폐광산 철로)

 

   드디어 주펀의 <진스커잔>라는 숙소를 얘기할 때가 왔다. 얼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찾는지 한글로 민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진짜 진수는 이게 아니다. 우리가 묵게 된 방은 불행히도 구멍 숭숭 바람이 드나드는 아홉 개의 창문이 달린 옥탑방 이었다. 화장실과 방을 나누는 벽에 달에 창문까지 합하면 창문의 개수는 10개에 이르는 가히 창문으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추측컨대 이 옥탑방을 덧붙일 때(지은 게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창문 먼저 주워다 놓고 나머지 벽 부분을 알맞은 크기의 판자로 메꿔 나갔을 것이다. 방이 사과 궤짝도 아닌데 사과 궤짝보다도 훨씬 더 못 생기고 덧붙인 판자조각 크기도 제멋대로이다. 이걸 도대체 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허나 방 값은 매우 저렴했다. NTD 1600$(약 57,000원). 주인 할아버지도 매우 친절하고, 석공예로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그중 멀쩡한(?) 창문 몇 개 찍어봤다. 나머지 6개의 창문은 상상에 맡기련다. 도저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다. 창문이 무언가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북쪽 벽은 그나마 제일 방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도 꽃무늬 커튼)

 

(팔각형의 창틀은 분명 창틀이지만 위쪽에 고리가 있어 살짝 걸어놓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주인장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 방과 화장실을 나누는 벽에 달린 창문은 사진이 실제보다 훨씬 예쁘다.)

 

   비바람 치는 밤. 밤새 지붕과 창문은 덜컹거리고, 잠은 쉬이 오지 않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밤, 유일한 난방기구인 원적외선 온열기를 마치 모닥불인양 방 가운데 두고 지치지도 않는 수다 삼매경에 들어갔다. 최근 눈꺼풀과 눈 밑의 처진 피부에 손을 본 성란이의 시술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역시 눈 밑이 처진 나를 두고 성란은 시술을 적극 권장하고 종학은 그냥 살라고 하는 가운데 미선이도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질문 공세를 펼친다. 참, 네가 나고 내가 너다.

   얼마 전 손녀를 본 성란이가 손녀가 보고 싶은지 손녀 흉내를 낸다. “함무이! 함무~이이...” 이렇게 부르면서 할머니를 놀린다고 한다나. 이제 결혼한 지 6~7년이 되어가는 미선은 권태기에 들어갔는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의 한숨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불편하고 울적한 기분을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친구의 아들 결혼을 얼마 앞둔 종학은 아들 결혼식을 어떻게 치러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듯, 나에게는 아들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지도 모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한다. 이유는 아들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나. 흠, 나도 그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마는 솔직히 서운하긴 한데. 결혼식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충분히 공감해. 나도 우리 딸내미 결혼식을 가족끼리 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지 꽤 되었어. 부조금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단순하고 소박한 결혼식이 어떨까 고민하고 있지. 허나 나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면 요즘 방과후와 자율학습으로 밤늦게 돌아오는 딸아이의 저녁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으니, 결혼은 무슨...곧 다가오는 무서운 대학입시를 잠시 잊고 있었다. 손녀 얘기에, 연하의 남편과 살고 있는 친구의 낯선 고민에 잠시 나를 잊은 밤이었다. 10개의 창문이 달린 옥탑방에서 4인 4색의 이야깃거리는 끊일 줄을 몰랐다.

 

(모닥불 같은 온열기)

 

 

(숙소에서 바라본 밤 풍경)

 

 

(비바람에도 끄덕 없었던 옥탑방의 사랑스러운 자태)

 

7. 한바탕의 꿈같은 여행이 4박 5일 만에 끝났다. 종학이도 아쉬웠던지 이런 말을 흘린다.

“네 딸, 꼭 수시에 붙으라고 해.”

“왜?”

“그래야 돌아오는 겨울에 인도 가지.”

“그게 마음대로 돼?”

“내가 매일 기도할게. 꼭 수시합격 하라고.”

“만약 수시합격하면 네 기도덕인 줄 알게. ㅎㅎㅎ”

친구들아, 기도하고 있겠지? 우리 딸 수시 합격하면 남인도와 스리랑카는 나에게 맡기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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