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요즘이다. 방학이지만 발수술 끝에 이어지는 연수, 여행으로 몸이 폭삭 늙어버렸다. 그래도 기록은 남겨야겠기에 쓰긴 쓰지만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끝까지 쓰기 위해서 조금씩이나마 올려본다. 더불어 이 기록은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과 추억을 나누기 위한 순전히 사적인 기록임을 밝힌다.)

 

1. 이번 여행은 2010년 중국동관여행, 2012년 일본교토여행에 이은 고향 친구들과의 여행 제3탄이다. 작년 1월부터 매달 10만원씩 여행적금을 착실하게 불입하여 꿈에 부푼 날들을 보냈다. 지난 일본여행하고 남은 60여만 원의 금액도 더해져 통통한 볼 살을 키우고 있었다.

   10월 초 인자의 제안으로 대만이 입에 올라 얼떨결에 이번 여행지는 대만으로 결정이 났다. 물론 만장일치는 아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2005년 여름에 가족과 함께 5박6일간 타이페이 시내를 땀을 뻘뻘 흘리며 싸돌아다닌 경험이 있었다. 허나 그게 뭐 대수이랴. 친구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정해주는 여행선배인 내가 그냥 선배 구실을 하면 될 터. 인정받는 재미로 총대를 멘다고나 할까. 흐흐.

   일찌감치 항공권 예매와 호텔 예약을 얼추 끝내고 일상의 의무에 충실하던 중...2년 전부터 시작된 무릎 인대의 통증이 서서히 발바닥으로 내려와 1년 이상 보행에 어려움을 주더니 이번엔 아예 발가락 아래 부분의 발등에 이상한 혹이 울퉁불퉁 솟아나기 시작했다. (병명이 지간신경종이라고 한다.) 나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수술로 혹을 제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한 과정? 학교 선생은 아파도 방학 때 아파야 하고 수술도 당연 방학 때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불문율을 무시하고 방학을 며칠 앞 둔 시점에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2~3일간 실시되는 시험기간에 연가나 병가를 내면 그 사람이 해야 할 시험 감독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 기간에 연가를 쓰는 사람들에 대해서 몰염치한 인간으로 치부해왔었다. 그런데 그 짓을 내가 하게 되었다. 시험기간 이틀과 그 다음 날 까지 3일간 병가를 쓰겠노라고 했더니 교장으로부터 한 말씀 들어야 했다. 수술 같은 건 방학 때 해야 하는 거라고. 물론 나도 말실수를 하긴 했다. 방학 때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노라고 했으니. 차라리 몹시 아파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엄살이라도 떨어야 하는데 엄살떨기가 싫었다. 단지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방학 때 해야 하는 일’로는 방학 시작하자마자 5일간 연수가 있고 연수가 끝나는 다음 날 친구들과 대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일이었다. 발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도저히 이 발 상태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다.

   내가 엄살 대신 사실을 중시한 것에 대해서, 다시 이 같은 일이 생겨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8시 30분 출근시간에 맞춰 출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한 시간 빠른 7시 30분 전에 이미 교무실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성실성만큼은 철저하다고 여겨왔기에 내가 설사 학기 중에 병가를 쓴다고 해도 내 성실성이 의심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건 내 착각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어진 시간에 제 할 일만 하면 되는 게 조직사회라는 것을. ‘열 개중 아홉 개를 잘해도 한 개를 잘못하면 그 한 개 때문에 욕먹는 게 조직사회’라고 넌지시 위로 아닌 위로를 남편이 건넨다. 열 개중 한 개를 정도 이상으로 잘해도 다른 한 개를 대체할 수 없다는 이 가차 없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했다. 평소에 아부라도 좀 해둬야 하는 건데..

 

   그간 혹사하던 발을 2주 동안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살살 모셔가며 겨우 겨우 출근했다. 짓궂은 녀석들은 몰래 내 뒤에서 절뚝거리는 흉내를 내곤 했는데 뭐 괜찮다. 애들은 원래 그런 거니까. 이번에 나도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었는데, 툭하면 발이나 팔에 붕대를 감고 오는 아이들이 많은 학교에서 이제야 비로소 그 다친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발이나 다리에 깁스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나머지 한 쪽 발에 실내화를 신으라고 하는 게 얼마나 모질고 배려가 없는 처사인지를 알게 되었다. 두 다리가 균형이 맞지 않아 바닥이 납작한 실내화보다 바닥이 두툼한 일반 운동화가 그나마 통증을 완화해준다는 사실을 내가 발에 깁스를 하기 전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 점에선 아이들이 선생이고 나 역시 조직화된 맛대가리 없는 인간이었다.

 

2. 욕먹는다고 굴할 나냐, 그래도 여행은 계속 되는 거지. 그런데 이번엔 인자에게 문제가 생겼다. 아파트 관리소장인 인자는 특히 겨울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대만여행을 먼저 제안한 사람이 인자였는데 ‘눈이 많이 오면 여행을 못 갈지도’ 모른다고 해서 눈이 오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있었는데 직원 한 명이 과로로 쓰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가뜩이나 겨울엔 적설에, 동파에 아파트관리에 정신이 없다고 하는데 와중에 직원까지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가는 일이 발생하니 여행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포기하기 전에 날짜를 연기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다시 날짜 조정에 들어갔는데 항공일정과 호텔예약 상황을 새롭게 짠다는 건 사실 내 알량한 일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행 날짜가 보름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결국 인자는 여행을 포기하게 되었는데 성실 그 자체인 인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추진하는 내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항공권 취소도 짜증나고, 두 군데의 호텔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펀의 <진스커잔>에는 4명이 간다고 이메일까지 다 보냈는데 다시 수습해야 했다. 빈 한 자리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마침 미선이가 안부전화를 걸어왔다. 얘기 중에 대만여행계획이 나왔고 이러저러한 일로 한 명이 빠지게 되었다는 말에 미선이가 끼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종학과 성란은 미선을 모르는 상황인데 이 친구들에게 타진을 해보니 ‘뭐 이 나이에 사람을 가리냐.’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보여 나를 감동시켰다. 항공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미선은 하루 늦게 출발하고 귀국 편은 같은 항공권을 구했다. 그렇게 해서 조합이 약간 어색한 구성원이 되었다.

   사람이 뒤끝이 짧아야 되는데, 그게 가까운 사이라면 더욱 그래야 되는데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몇 년 전 라오스에 갈 때도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 인자와 성란이가 갑자기 못 가겠다는 말을 전해 왔다. (물론 성란이의 교통사고 같은 피치 못할 이유야 있었지만 나는 내 서운함만 우선한다.) 항공권 취소, 열차 예약 취소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었던 기억이 더해져 내 심사가 사나워졌다. 인자야, 다음 여행은 네가 기획하고 항공권 예매, 호텔 예약 다 해봐라. 그런데 실제 인자가 주장이 되어 여행 기획을 하게 된다면 이 뒤끝 질긴 나 같은 친구는 끼어주지도 않을 터, 미우나 고우나 다음 여행에도 내가 기획하여 인자랑 함께 하게 되겠지? 인자가 빠진 우리는, 맵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예쁜 옷을 걸어놓은 옷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함께 하지 못한 서운한 마음에 ‘인자가 있었으면....할 텐데’를 연발했으니까. 글쎄 내가 빠지면 우리 친구들은 뭐라고 연발하고 다닐까. ‘얘가 있었으면 한 성깔 부렸을 텐데 없으니 조용하네.’라고 할까.

 

3. ‘타이페이101빌딩에서 입장료 안 내고 35층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을 얘기하고자 한다.

높이로 세계2위를 자랑하는 이 빌딩의 89층 전망대에 오르는 게 일반적인 관광 코스인데 비싼 입장료(16,000원 정도)도 그렇고 전망도 그게 그거 아니겠나 싶어 현지인만 아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종학이가 알아온 정보에 의하면 지하1층에 있다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35층 전망대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90분간 체류할 수 있다는 쿠폰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하 1층에는 스타벅스가 없고 대신 지상1층에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내고 점심밥부터 해결하였는데, 다음에 대만여행 하는 분들을 위한 조언인데 이 101빌딩 지하 식당 밥이 최고로 맛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첫날 용산사 뒤편에 자리한 허름한 길거리 식당에서 먹은 베트남국수와 스프링롤이 훨씬 더 저렴하고 훨씬 더 감동적인 맛이었다.

 

(용산사 경내)

 

     

 (베트남 쌀국수 NTD 85$, 스프링롤 NTD100$)

 

   지상1층의 스타벅스에 갔더니 로비에 있는 안내처에서 다시 물어보라기에 쭈르르 몰려가 보았더니 열댓 명의 사람들이 닭장안의 닭들처럼 어떤 표시선 안에 무리지어 줄 서 있었다. 뭐시여, 이건? 35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기 위한 번호표를 나눠주고 순서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역시 정보시대라는 생각에 내심 외국인인 우리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는 묘한 성취감 같은 흥분을 느끼며 기꺼이 동참했는데...한참(여행지에서 보내는 무의미한 10분은 마치 1시간 같은 초조함을 일으키지 않는가.)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35층 스타벅스에 입성했는데...전망대? 내 작은 손으로도 한 뼘쯤 될까 말까한 각도를 가진 유리창문이 있었다. 여느 커피숍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카페였다.

 

(35층에 자리한 스타벅스)

 

속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스타벅스 찾는데 걸린 시간과 줄서서 기다린 시간, 기대감에 찬 흥분의 시간, 게다가 일인당 한 잔씩은 꼭 마셔줘야 한다는 커피 값까지 따지면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NTD(뉴타이완달러)450불을 주면 5층에서 87층까지 37초 만에 올라가는 그 희열감에, 87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함을 맘껏 만끽할 수 있으련만, 언제 또 이곳에 오겠다고 그걸 아끼나...그러나 난 괜찮다. 그 둘을 다 경험해봤으니까.

 

 (1층에서 받은 스타벅스방문객카드를 35층 스타벅스에 제시하고 최소 일인당 한 잔씩의 음료수를 마시되 주말에는 90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푯말이다.)

 

 (아예 엘리베이터를 스타벅스가 있는 35층으로 고정시켜놓았다. 일부 고급 식당과 지하층의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 101빌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