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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틈틈이 짜투리 시간으로 읽기보다는 집중해서 읽어야 할 듯하다.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100여 년 전의 6개월에 걸친 북극초원탐험 기록을 따라가는 일이 처음에는 지루한 듯하면서도, 서서히 그 여정에 빠져들어가는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한마디로 읽다보면 빠져드는 책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동물학자인 시턴의 과학자다운 관찰과 기록, 100여 전이라는 시대의 낭만적인 모습, 미지의 공간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을 넘나드는 탐험 등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읽다보면 100년이라는 세월 저쪽이 생생하게 다가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과학자다운 관찰과 기록의 일면을 보자.

 

(152쪽) 둥지는 모두 77개였고, 그 외에도 오랫동안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다른 둥지들이 있었다. 둥지 바깥에서 부패하고 있는 다섯 개를 제외하면 알은 모두 163개였다. 거의 모든 둥지에 알이 두 개씩 들어 있었고, 알이 세 개 든 둥지가 세 개, 알이 네 개 든 둥지가 다섯 개, 알이 한 개 든 둥지가 네 개였다.

 

(285쪽)...물에 빠져 죽은 각다귀로 가득 찬 수면을 가르며 하루 종일 배를 저었다. 물가에서 약 20미터쯤 떨어진 수면까지는 평방인치당 열 마리 정도가 떠 있었고, 그다음 200, 300미터 떨어진 곳까지는 평방피트당 열 마리 그리고 그 이후로 400미터 폭에서는 평방킬로미터당 열 마리 정도가 떠 있었다. 

 

둥지나 죽은 각다귀 따위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일일이 세어보는 시턴을 떠올려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다. 내가 늘 퇴근길에 걷는 생태공원에도 철새가 드나들고 갯벌에는 게들이(심지어 이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들락날락하는데 이런 과학자다운 시선으로 관찰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턴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196) 이 사람들(인디언 부족)이 사용하는 동물 이름을 기록하다 보니 친숙한 동물일수록 이름도 짧은 것을 보고 놀랐다.....물건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부드러운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날카로운 부분은 닳아 없어지듯이, 자주 사용하는 말일수록 당연히 짧아지게 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오늘'의 치페위안족 말은 '토호친네이'이고, '내일'은 '콤페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턴은 여행 중 현지안내자로 인디언이나 혼혈의 현지인을 고용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인디언에 대한 비호감이나 편견등이 없지 않으나 그가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연맹'이라는 자연친화적인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했고, '평생을 자연과 인디언 문화 보전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일화 중, 다음 이야기는 어쨌거나 100년 전의 낭만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272) 다음 날 위소와 나는 동쪽으로 난 산등성이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소총을 들고, 나는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는 카메라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잘 몰랐지만 사석에서 빌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순록을 잡을 때는 저런 총이 훨씬 낫겠어."

 

시턴의 철두철미한 여행자다운 면모는 자못 감동적이다. 이를테면,

 

(354)...여행을 나온 사람이 실내에 자리를 깔고 누울 수는 없다는 고집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텐트를 치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근처에는 개똥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곳이 없어서 냄새 또한 고약했다. 그래서 130일 동안 야외에서 잔 기록을 깨고, 131일째인 이날은 정말 어쩔 수 없이 허드슨베이 사 건물 마루에서 밤을 보냈다....누워 있었다고 했지, 잤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턴은 결국 순록의 대이동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데는 실패한다. 며칠에 걸친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순록의 대이동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순록의 큰 무리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끝없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한 지점을 통과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332) 그걸 만나기 위해서는 시턴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탐험 이상의 탐험이 필요한 듯하다. 여기서 잠시 호시노 미치오가 떠오른다. 그는 순록의 대이동을 사진에 담아낸 사람이다. 그의 고난이 어떠했을지는 글쎄 상상이 가지 않는다. 또 하나, 시턴과 비교되는 호시노 미치오의 일면은 그가 시종일관 인디언이나 원주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화이트피쉬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 그 물고기에 대한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241)...외부인에게 '화이트피쉬'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매혹을 그대로 전달하기란 참 어렵다. 북쪽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화이트피쉬는 물고기 중에서는 유일하게 인간을 위한 완벽한 음식이고, 사람이든 개든 절대로 싫증내지 않을뿐더러, 호수의 먹거리 중에서 유일하게 아무리 오랫동안 마음대로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 이 물고기는 무척 맛있고 영양가도 많아서 이 세상 다른 물고기들은 감히 발꿈치도 따라오기 힘들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그러나, 많이 읽힐 것 같지는 않다. 100년 전의 탐험이야기를 한가하게 읽을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리라. 알라딘의 서평단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굳이 이 책을 일부러 찾을까 싶다. 그러나 손에 잡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책에 빠져들게 되고 시턴이라는 인물에 매혹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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