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마카오 기행문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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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셋-길을 찾는 사나이, 프란시스 자비에르>
프란시스 자비에르. 16세기 초 스페인 태생의 Jesuit 파 수행자. 아시아 지역 포교활동을 위해 1542년 인도의 고아에 도착. 10여 년 간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하다 1552년 중국의 Sancian에서 사망. 그의 유골이 고아로 옮겨질 것에 대비하여 살을 빨리 썩게 하기위해 석회를 4포대나 뿌렸는데도 살이 썩지 않았다는 것. 2개월 후에 말라카에서도 그대로였고 1554년 고아로 이전되기 위해 무덤에서 나왔을 때도 전혀 썩지 않았다는 것. 1614년 선교의 목적으로 오른팔을 잘라 일본과 로마로 분배되었고 1636년에는 내장의 기관이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나누어졌단다. 이런 연유로 생전 보다 생후에 더 주목 받게 된 자비에르. 지금은 유리관에 시신을 보관하여 고아의 한 성당에 안치되어있다. 나는 바로 그 유리관에 안치된 시신을 보았었다. 2005년 1월이었다.


마카오의 남단에 있는 콜로안 섬의 콜로안 마을에서 한가로이 동네를 둘러보다 마주친 예쁜 예배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너무나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고 그곳을 벗어나기도 못내 아쉬웠다. 이 마을은 드라마 <궁>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정작 나는 이 드라마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예쁜 성당이 그 드라마에 나온 지도 몰랐고 알았다 해도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여행 3일째라 긴장이 풀렸던지 그동안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자료들을 호텔에 두고나와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나오는 바람에 그 이름을 보고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성당이 바로 <프란시스 자비에르 예배당>이라는 것이다.


나의 아둔함이란. 처음엔 동명이인쯤으로 여겼다. 고아의 자비에르가 이곳에서도 이렇게 되살아나고 있음을 한참 추리 끝에 파악하였다. 1928년에 자비에르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이 예배당은 특히 일본의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자비에르가 일본에 처음으로 카톨릭을 전파해서일까.

 

보물찾기 같았던 프란시스 자비에르. 400여 년 전 태어나서 새 길을 개척하고자했던 사나이. 썩지 않는 시체 덕에 지금도 기억되고 추앙 받고 있는 사나이. 포르투갈의 마카오 지배와 세월을 함께 달린 자비에르는 지금도 길을 개척하고 있는지, 죽어서도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엽기적이기까지 한 일들에 열광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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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못배기거나 알고싶어서 안달이 났던건 아니지만 내내 프란시스 자비에르라는 신부님을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위의 글에 나오는 말라카라는 지역이 몹시 궁금했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는 관심이 없으나 가보지 못한 곳은 가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니 어떻게보면 나에게도 끈질긴 구석이 하나 있긴 하다.

 

말라카. 말라카가 그렇게 유명한 곳인 줄은 몰랐다. 혼합된 분위기의 도시는 흡사 우리나라의 경주와 인천의 소래포구를 합쳐놓은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아시아 일대의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만큼 유물이나 유적이 지천에 널려있으며, 이 역사 도시를 보러온 사랄들이 마치 주말의 소래포구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3박 4일 동안은 특히나 춘절과 겹쳐 나날이 축제의 연속이었다.

 

박물관은 왜 그리 많은지, 구시가 일대는 한 집 건너 박물관으로 둥근 원을 이루며 언덕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 학구적이지 않은 우리 가족은 겨우 두세 곳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그리고 볼 것 먹을 것이 많아 굳이 박물관에 갈 필요를 못 느꼈으나, 박물관 관람 좋아하는 사람은 필히 이 곳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내가 가 본 곳 중에서 기억나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은 스위스의 바젤 만큼이나 박물관이 많은 도시가 말라카이다. 역사의 한 시기를 주름 잡는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말라카의 유명한 유적지 중에 역시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이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곳은 동방의 사도 자비에르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1849년에 지은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라고. 경내에는 소박하고 겸손해 보이는 자비에르 동상이 서있고 그 옆에는 일본에서 그를 모셨던 일본 신부의 동상이 나란히 있었다. 마카오의 자비에르 성당에는 일본 순례자들이 많다고 하더니 이곳도 아마 그럴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2005년 인도 고아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던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시신 관람후, 마카오의 유적지를 거쳐 말라카의 유적지까지, 나는 뜻하지 않게 프란시스 자비에르 순례를 하게된 셈이다. 마카오기행문에서 '엽기적'이라고 썼던 표현을 수정해야겠다. 나의 순례행위를 엽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뭐 좀 더 공부해보겠다고 얼마전 돈(48,170원)과 시간(열하루)을 들여 구입한 (1918)라는 책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활자본이 아닌, 책을 복사해서 편집한 오래된 책을 얕은 지식과 어학 실력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을 구입한 자체가 엽기적인 만용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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