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를 가면서 항공권을 케세이퍼시픽항공으로 정한 건 홍콩 때문이었다. 홍콩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여행이란 게 그런 면이 있다. 여행을 끝내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울적해지면서 묘한 감상에 젖는다. 그 증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 방법은 중간 경유지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다. 중간 경유지로는(아시아에서) 보통 싱가포르, 대만, 홍콩, 일본, 방콕 정도이다.

 

2010년 여름, 인도의 라다크일대를 여행한 후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 며칠 머물렀었다. 우리 가족이 홍콩을 찾은 건 그때가 두 번째였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거나 새로운 볼거리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여행을 간단히, 갑작스럽게 끝내고 싶지 않은 미련 때문이었다. 왜 여행 끝에는 미련이 남는지, 왜 우울해지는지, 는 나중에 궁리하기로 하고.

 

여행 다니면서 고급 식당이나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유명 식당 탐방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곳들이다. 우리 가족은 그때그때 현지 식당에서 아무거나 먹는다. 물론 유명한 곳을 아주 외면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인도의 콜카타에서 여행자거리에 있는 유명 샌드위치가게나 라씨코너 같은 데는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래도 식당 하나쯤은 기억에 담아두기도 하는데, 바로 홍콩 침사추이에 있는 자그마한 태국식당이 그랬다. 홍콩을 소개하는 이런저런 가이드북에는 절대로 실리지 않을 작은 식당이지만 우리에게는 인상에 남는 곳이었다. 특히 음식이 먹을 만했다. 쇼핑몰 푸드코트 같은 데서 먹다가 어쩌다 이곳에서 먹어본 음식은 '이게 요리구나' 싶었다.

 

두 번째 홍콩 여행의 기쁨을 그 태국식당에서 맛보기로 했다. 음식에 대한 기대를 품고 테이블에 앉으니 태국출신의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우리가 일 년 전에 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글쎄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물론 기뻤다. 고맙기도 했다. 홍콩이 마음 속의 고향으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바람처럼 여행하는 게 실은 쓸쓸한 일이기도 하다. 그건 가족끼리 다녀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오래된 여행자'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이런 '군중 속의 고독'에 절어있던 우리에게 태국 식당 아주머니의 아는 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전율과 같은 살아있는 기쁨을 주었다. 여행이 주는 보너스 같았다.

 

그렇게해서 우리가 홍콩에 가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이번에도 재회의 기쁨을 상상하며 귀국길에 홍콩을 들렀다. 숙소를 잡자마자 멀지않은 그 태국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일단 태국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부터 하기로 했다. 출입문을 빼꼼히 열고 아주머니를 찾는데, 이상하다. 분명 얼굴은 비슷한데 입성이 낯선 모습이다. 그전에 보았던 단정한 차림의 태국 전통의상이 아니라 유니폼으로 입는 빨간 티셔츠 차림이었다. 게다가 헤어스타일도 야성적으로 달라져있었다. 긴가민가해서 남편에게도 확인을하니 그 분이 맞는 것 같단다.

 

먼저 인사를 한다. "Hello! How have you been?" 순간 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못알아듣자 옆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서양남자가 내 말을 또박또박 다시 반복해준다. "How have you been?" 다시 당황해하는 아주머니를 보고서야 얼른 말을 고친다. "How are you?" 내 딴에는 인사랍시고 한 건데 너무나 교과서적인 표현이지 싶었다.

 

우리를 알아보던 총명함이 사라진 아주머니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우리는 약간 서운하고 허탈해졌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우리를 기억하느냐를 추궁하듯 묻고는 두어 시간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나왔다. 아, 괜히 홍콩에 왔다보다. 입 밖으로 말은 못했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약속한대로 그날 저녁밥을 태국식당에서 해결했다. 약간 서운함이 남았지만 음식은 여전히 맛이 좋았다. 그러면 되었지, 뭐.

 

다음 날 저녁. 밥을 먹으로 일단 숙소 밖으로 나왔지만 이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주변에 깔린 게 식당이고 게다가 한국식당도 여럿 있었다. 혹 태국식당에 그 아주머니가 있으면 들어갈까 해서 열심히 유리창 너머를 훔쳐보았지만 없/었/다. 동네를 서너 바퀴 돌았지만 역시 돌고나면 '그집앞'이었다.

 

눈 딱 감는 게 이런 것일 게다. 그냥 들어가기로 마음 먹으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좀 전까지도 안보이던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으러왔다. 배불리 음식을 먹고 맥주까지 마시고 나니 그제야 기분이 좀 풀린다. 그 기분에 아주머니한테 이런저런 말을 한다. 어제 왔을 때 우리를 못알아봐서 매우 서운했었다고.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냔다. 오늘이 홍콩 마지막 날이라고 말한다. 계산을 마치고 일어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어느새 그 아주머니와 내가 포옹을 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흘리기에는 술기운이 좀 약했지만.

 

 

홍콩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이번엔 우리가 묵었던 한인 민박에 대한 얘기다. 지난번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옮겨본다.

 

어쩌다 홍콩에 여러 번 가게 되었다. 딸아이의 말이, 부산보다 홍콩을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단다. 일부러 홍콩에 간 것은 단 한번. 인도 여행 끝이나 말레이시아 여행 끝에 잠깐 들르다보니 홍콩에 자주 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홍콩은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접근이 무척 단순하고 옥토퍼스라는 교통카드의 사용이 편리할 뿐더러 넓지 않은 지역에 재미있는 여행 요소가 많아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홍콩에 가게 되면 편리함 때문에 그냥 별 생각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게 된다. 빌딩의 한 부분을 임대해서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여 여행자의 숙소로 만든 곳이다. 내가 그간 묵었던 곳은 세 곳이었는데 공통점은 아침밥이 제공된다는 것, 방이 비좁다는 것,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한다는 것, 외국인 여성을 가정부로 두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묵었던 민박은 유달리 정갈한 곳이었다. 다른 두 곳은 청소도 대충이었고 음식도 그저 그랬는데 이번 민박은 청소, 음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틀째되는 날은 솔직히 청소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다른 곳처럼 대강하거나 내버려두겠지 싶어서 입던 옷도 그냥 침대에 걸쳐놓고 양말도 침대 머리맡에 널어놓고 가방도 구겨진대로 방치해 놓고 외출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너무나 말끔히 정돈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리해놓고 나가는 거였는데,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고나서였다. 어젯밤부터 눈물을 글썽거리던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울먹거리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득 고였다.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밤에 한국인 주인이 와서 혼을 내고 갔다고 한단다. 누군가 홈페이지에 그녀가 손님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서러운 호소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그녀의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침대 자체가 들어갈 방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단지 얇은 매트 한장 깔고 자는 방이었고, 그 방마저 누군가에게 주고나면 그녀의 잠자리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구석진 곳 바닥이라고 한다. 천정에는 빨래 건조대가 걸려있고 바닥에는 냄새 제거를 위해 선풍기 따위가 널려 있는 아주 협소한 공간이다. '그게 네 방이다'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6년간 일한 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며 그녀는 다시 울먹거린다. 

 

잠깐만 보아도 민박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열 개 가까운 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그 필리핀 여성 혼자였다. 아침 밥 준비부터 청소, 손님 체크인, 체크아웃 등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곳치고는 정말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었다. 왠만한 호텔 수준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빨아널은 양말은 건조대에 걸려 있었고 화장실 바닥은 물기가 닦여져 있었고 소지품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박에서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미안했다.

 

아직 싱글인 이 필리핀 여성은, 하루 중 자기 시간이라고는 잠잘 때 뿐이라며 하루 종일 일, 일, 일, 일 뿐이며 휴일도 없다고 한다. 마치 노예의 하루 같았다. 한국인 주인이 꼬박 챙기는 것은 손님의 숙박 요금이라며 아마도 철저하게 챙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인데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그냥 영어만 사용하란다며 그 부분에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6년간의 분노와 슬픔과 피곤으로 얼굴의 표정이 몹시 상해있었고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으리라. 더하면 더했을 터.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작은 민박이었지만 일거리는 상당했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거리의 정도가 금방 파악이 된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가 없다. 그래서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한 덕분에 누군가는 하루종일 밖에서 맛있는 것 먹고 룰루랄라 놀다 들어와서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치워놓은 방을 보고 콧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그걸 당연한 대우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한 돈을 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렇게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아침 밥과 만족스러운 방 청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한숨과 눈물이 숨어 있는데 그걸 몇 푼의 돈으로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을 무시하며 자기 이익만을 노리는 한국인 주인과 내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빨래를 했다.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 몇시간 동안은 세제냄새가 온집안에 가라앉아있어 냄새를 견뎌야한다. 냄새가 싫어 헹굼을 여러번해도 냄새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빨래 냄새를 맡으니 다시 그 필리핀 여성의 눈물 범벅 얼굴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그 가녀린 몸매와 큰 눈망울이 내내 떠올랐다

 

 

이 글을 내 블로그에다 올렸다가 성에 차지 않아서 엇그제 그 문제의 숙소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려보았다. 주인에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그래야 좀 달라지지 않을까해서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오지랖도 넓다. 집요하다.'라고 했지만 '약자를 도와주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보통 남의 일에 나서는 사람이 절대 아니고 오지랖은 커녕 내 앞자락도 버거워 늘 헉헉거리는 소심한 사람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다음 날, 홍콩의 그 숙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나 공손하게 해명하고 내 의도를 너무나 쉽게 이해해주는 듯한 친절하고도 간절한 목소리였다. 요지는 내 글을 삭제해도 되겠느냐는 거였다. 뭐라 하겠는가. 근로여건이 개선되길 바랄 뿐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궁금하다. 어떻게 처우가 달라졌는지, 내 글 때문에 그 필리핀 가정부가 더 곤욕을 치르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알아본담? 홍콩에 가면 다시 그 숙소에 묵으리라 다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홍콩에 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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