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 옆에는 메데르카라는 광장(잔디밭)이 있다.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이 광장에 서있는 100m높이의 국기게양대에 말레이시아 국기를 게양하고 독립을 선언했다는 뜻깊은 곳이다.

 

마침 우리가 찾아간 날이 일요일이라 이 광장에서는 여러가지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청소년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던 듯하다. 벽화 그리기대회, 족구경기 비슷한 대회, 그러나 아깝게도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점이어서 거의 파장 분위기에 가까웠고 이미 행사가 끝난 곳도 여럿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열댓 명 정도의 무리가 작은 무대를 둘러싸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무대에 있는 발랄한 모습의 남녀 사회자 두 명이 아주 빠른 말투로 재잘재잘 뭐라고하자 그 열댓 명의 관객은 쭈볏거리며 중앙무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무대라고 하기에는 매우 소박한 공간에 불과하지만.

 

경쾌한 음악이 흐르자 남녀 사회자 두 명은 리듬에 맞춰 군무를 이끌어 나갔다. 관객은 나이와 성별 구분이 무색했고 대부분 동작이 굼뜬 나이 든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말레이시아 노래인 듯한 곡에 아주 단순한 발 동작이 주를 이루는 춤이었다. 대학 때 배웠던 헛슬 비슷한 춤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자니 절로 흥이 나서 앉은 채로 발 동작을 따라해보았다.

 

한 곡이 끝나고 두번째 곡이 시작되었는데, 짐작이 가겠지만, 깜찍하게도 원더걸스의 Nobody가 흘러나왔다. 외국에서 듣는 애국가가 이 보다 더 반가웠을까. 오동통한 20대 중반의 남자 사회자의 까불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유쾌하다. 나도 저들의 무리에 끼어들어서 깜찍한 모습으로 이 유명한 안무를 해보련만, 안타깝게도 이 춤을 추어 본 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배워두는 거였는데.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앞으로 동남아에 가시려거든 이미 유행 지난 Nobody 춤 한자락 제대로 배워서 나가시길.

 

이렇게 말레이시아에서 우리의 '자랑스런' K-pop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쇼핑몰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는 K-pop, 정말 많았다. 그냥 흘려듣고 지나가려해도 딸아이가 자꾸 가르쳐준다. 저건 샤이니, 저건 비스트, 저건 어쩌구 저쩌구. 대부분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 곡들이었다. 심지어는 휴대폰 벨 소리도 K-pop이었다. 물론 이것도 딸아이가 가르쳐주었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말라카의 어떤 옷가게에선 조용필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좀 묘했다. K-pop을 향한 이들의 일방적인 사랑이 좀 지나치고 이상하지 않은가. 음악도 일종의 상품이라는 생각, 씁쓸하다.

 

K-pop에 대한 이들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도 그들의 대중가요 cd를 한 장 고르기로 했다. 음반 매장에서 직원에게 제일 유명한 말레이시아 가수가 부른 cd를 골라주기를 부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중에 들어보았다. 느낌은, 역시 다문화 국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랍풍이기도 하고 인도풍이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의 K-pop 사랑,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다.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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