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본다. '단일'이어서 모든 기준도 '단일'이어야하는 삶은 매우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따라는 것도 결국엔 '단일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닐지.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별로 할 일이 마땅치 않아서 쇼핑몰 구경을 질리도록 했다. 쇼핑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명품가방을 사는 따위 내 인생에서는 절대로 없을 일이면서, 그래도 쇼핑 자체는 즐거웠다. 우선 무더운 더위를 피할 수 있고, 그림의 떡 같은 상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어쩌다가 저렴한 개구리 한 마리쯤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 천리포 수목원의 설립자인 민병갈이라는 분은 평소에 개구리를 좋아해서 다시 태어나면 개구리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에 감명(?)받은 남편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개구리 수집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구경 중에 구경은 단연 사람 구경이리라.  말레이시아는 다인종 다민족 국가라서 사람들의 모습이 다종다양하다. 피부색깔, 두상 크기, 복장, 헤어스타일 등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만해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특히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모습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여성들의 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 나 보다 키 작은 여성들을 만나면 가족들이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는 했는데 여기 이 나라에선 완전히 환호성 연발이다. 나 보다 키 작은 여성들을 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널리 돌아다니는 보람이 있다. 세상의 잣대에 마음 약해지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현상이 가속화되면 이런 폭력적인 잣대가 좀 줄어들까.

 

여기서 잠시 궁금해진 점. 이 나라에는, 수많은 표준이하의 사람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열패감을 안겨주는 표준신장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인종별로 분류되어 있을까. 이 정도까지 알아보려면 오래오래 더 머물러야하는데, 아쉽다.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말레이시아에서는 우리에게 현지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못 알아듣고 멍한 표정을 지으면 겸연쩍어하며 오히려 외국인이었냐며 씩 웃고는 했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달랐다. 지난번 홍콩에 왔을 때도 그랬다. 침사추이 번화가에서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아주머니, 가짜 가방", "아주머니, 짝퉁 시계"를 연발하며 우리를 불러세우곤 했다. 그 많은 동양인들 중에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지 귀신같았다. 한국인을 알아보는 그 기준이 무엇일까? 늘 무언가에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얼굴에 새겨져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짝퉁을 좋아하게 생겼나?

 

하여튼 "가짜"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보인다는 건 무척 쪽 팔리고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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