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탐방이 아닌 대학 구경이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외국에 나간 김에 대학 구경을 껴넣었을 뿐이다. 딸아이를 위한 짓이라고 우리 부부는 신이나서 추진했지만 정작 딸아이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가뜩이나 고등학교 입학을 코 앞에 둔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주눅이 든 아이에게는 이런 짓거리들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삶의 모든 흥미가 사라질 판에 대학 그것도 외국 대학이라니.

 

그렇게해서 찾아간 말레야 대학. 택시 기사가 묻는다. 어떤 college에서 내리겠느냐고. 알 수가 있나. 대강 내리고보니 대학 캠퍼스가 너무나 넓다. 날씨는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무덥다. 정보 하나 없이 무턱대고 찾아왔으니...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 캠퍼스는 중첩된 건물 숲이건만 이곳은 그야말로 넓은 그것도 드넓은 땅에 자리잡고 있다. 이정표도 인색하기 짝이 없고 돌아다니는 대학생도 겨우 한둘 볼까말까다.

 

그래도 우연히 도서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들어가서 잠시 더위를 식혀가며 눈치를 살펴보았다. 이곳 대학생들 공부하는 것도 보고 서가도 보고 싶었지만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분증은 말할 것도 없고 여학생 가방 검사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구경은 해야지, 하는데 딸아이는 재미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냥 가자고 한다. 그럴 수야 없지.

 

정복을 입은 직원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있는 우리 딸이 언젠가는 이 대학에서 공부할지도 모른다. 한 번 도서관 구경을 할 수 있겠느나?" 들어갈 수는 있다는 데, 반바지 차람으로는 안된단다. 반바지를 입은 남편과 딸아이는 안되고 할 수 없이 긴바지를 입은 나만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만 살겠다고 하는 모양 같아 이내 멈칫거리다가 그냥 돌아나와버렸다. 하릴없이 택시 타고 돌아오면서 하는 남편의 말 " 그래도 하나는 알게 되었네. 말라야 대학 도서관은 반바지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꿈을 심어주고자 찾은 외국 대학에서 딸아이에게 각인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녀서는 안될 대학? 절대로 다니고 싶지 않은 대학?

 

그래서 대학 한군데를 더 가보았다. 이번엔 홍콩으로 넘어와서 홍콩대학에 갔다. 역시 좁은 땅에 지은 대학답게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눈에 익숙한 풍경이다. 서울스럽다고나 할까. 대학 캠퍼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오고가는 학생들의 옷차림이 수수하고 평범하니 딸아이도 조금씩 흥미를 보인다. 수능을 보지 않고 외국에서 공부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것같아 애초에 못을 박는다. 일단 한국에서 대학을 입학한 후에 유학을 생각하라고. 힘든 길이지만 남들이 하는 만큼의 고생은 해봐야한다고.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겠는가. 좀 더 쉬운 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찌들어가는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꿈을 불어넣어주고 싶었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열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학을 향한 앞으로의 3년이 전부가 아님을, 세상은 그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남들보다 1~2년 뒤떨어지는 것에 겁먹지 말기를, 어렸을 때 무작정 하는 공부보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 확실한 목표를 찾았을 때 공부에 매달려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뜩이나 대학 구경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길을 모색할 때, 부모인 우리가 보여준 이런 그림들이 문득 어느 순간에 힘이 되고 자극이 되고 방향이 된다면 좋겠다. 대학 구경 하나 가지고 너무 큰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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