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비 온 뒤라 공기도 깨끗했고, 햇빛이 비춰서 따사로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간병 생활이 끝났다. 혈압도, 심박수도, 호흡수도 정상이었지만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나는 간호사를 부르고, 간호사는 의사를 불렀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침착한 표정으로 들어선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를 대고 한참을 있더니 시계를 봤다. "10시 43분, 돌아가셨습니다."
사망선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시계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의료직에 종사하는 시누이들은 알면서도 아니라고 믿고 싶어했다. 죽음은...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왔다.
사망선고가 내려진 뒤 어머님은 이 생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지막 3일을 너무 고통스러워하셨다. 진통제도 안 들어서 몰핀을 맞으시면서도 아파하셔서 결국 수면제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신장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해 다리는 이렇게 부을 수 있나 싶을만큼 퉁퉁 부어 너무 무거웠고, 침도 삼키지 못해 거즈에 물을 묻혀 입술만 적실 뿐이었다.
위급했던 당일은 온 가족들 다 만나보시려고 돌아가시지도 못하고, 다음날은 큰시누 결혼기념일이라 견디시고, 그 다음날은 신랑 생일이라 버티셨다. 그렇게 3일을 아파하시면서도 이 생의 끈을 놓지 못하시더니, 다음날 아침 모두 아침 다 먹고, 커피 사 와서 웃으면서 추억을 얘기할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자식들이 모두 모여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 들으시다가 돌아가신 거다. 모두에게 자신과 이별할 시간을 주시고 말이다.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하는데, 시어머님을 보고 느꼈다.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그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끝까지 자식들 좋은 날 다 피하고, 생전에 하시던 말씀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을 때... 자식들 편하라고..
그래도 아들 얼굴 실컷 보셔서 마음이 놓인다. 암이 재발한 이후부터는 어머님과 밥도 자주 먹었고, 꽃구경도 갔고, 병원에도 매일같이 갔다. 자영업이다 보니 시간을 쓰는 게 나름 자유로워 할 수 있었다. 지금 일한다고 어머님께 자주 못가면, 신랑이 나중에 많이 후회할 거 같았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돈이야 어차피 계속 벌면 되는거니까.
장례가 끝나고... 매일 가던 병원에 안 가니 이상했다. 지금 병원 갈 시간인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간다. 신기한 일이다.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는다. 누구나 다 죽지만, 죽음은 슬프다. 빈 자리는 어떻게든 메워지지 않는다. 함께 하던 시간들은 추억으로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 곁을 맴돈다. 그래서 더 슬픈지도 모르겠다. 부재의 고통으로 많은 것들은 아름답게 남는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내가 신랑을 만났을 때부터 어머님은 편찮으셨고, 신랑은 나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아픈 어머니와 함께였다. 결혼하고는 언제나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깜짝 깜짝 놀라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오는 전화에 놀라지 않는다. 그 변화가.. 씁쓸하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이미 많은 후회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