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이 한 달째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관련 뉴스를 살피다 보니, 의사의 용접공 폄하 발언 논란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파업 중인 의사 가운데 누군가가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병원 때려치고 용접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자, "용접이 만만해 보이냐?"는 반발이 관련자 및 관련 기관으로부터 빗발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용접공은 보수를 많이 받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반대로 업무 자체도 힘들고 자격증 따기도 어렵다는 것이 중론인 듯하다. 논란이 된 발언 자체는 단순히 이직에 대한 의향을 밝혔을 뿐이라고 두둔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의사들의 실언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눈총을 받는 셈이다.


문득 이사벨 아옌데의 에세이집 <모든 삶이 기적이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파티에서 만난 어느 치과 의사가 "저도 은퇴하면 소설이나 써 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자, 빈정 상한 소설가가 대뜸 이렇게 받아쳤다는 것이다. "나도 은퇴하면 사람 이빨이나 뽑고 다녀야겠네요." 쉽게 말해 "소설이 만만해 보이냐?"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겉으로는 만만해 보여도 막상 겪어 보면 어렵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나온 의사들의 실언은 어쩐지 이런 당연한 이치를 망각한 내로남불 수준이 대부분이다 보니 대중의 지지와 응원은 고사하고 거꾸로 집단 이기주의라며 성토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애초에 상황을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파업과 실언으로 대중의 반감을 불러 일으킨 의사의 자책도 적지 않아 보인다. 어찌어찌 타협으로 상황이 마무리되더라도 이번 일로 의사에 대한 대중의 "리스펙"만큼은 확실히 날아간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이번 일로 인해 의료 비즈니스와 환자의 선택권에 대한 문제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게 된다. 태어나도 병원, 아파도 병원, 죽어서도 병원이라는 식으로 의료에 과잉 의존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의료도 사업이라면 고객의 권리는?


잠정 결론은 질병과 그 궁극인 죽음에 대한 실존적 태도일 것인데, 이게 말만 쉽지 행동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최근에 돌아가신 여러 어르신들만 봐도 평소에는 책과 강연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감하게 발언해 왔지만, 당신들도 막판에 가서는 무척이나 초라하고 비굴해서 주위 사람들이 놀랐다니까...




[*] 그나저나 아옌데의 에세이는 이미 예전에 한 번 지적했듯이 고유명사 표기가 엉망이다. 저자의 배우자인 미국인 Willie 를 "윌리" 대신 "위예"로 표기한 것을 비롯해서, "우디 앨런"을 "우디 아옌", "제레미 아이언스"를 "제레미 이론스", "위노나 라이더"를 "위노나 리데르"로 표기하는 등, 영어 인명까지 모조리 스페인어식으로 읽는 이상한 삽질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번역자도 문제지만 편집자/출판사가 더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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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 나왔다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코 넘어갔다가 며칠 뒤에 책더미에서 <요푸공의 아야>와 함께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산 책이었는데 이미 읽고 버린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절판본이지만 딱히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더니만, 애니메이션의 영향 때문인지 다른 출판사에서 복간될 예정이라니 좀 의외다.


여하간 이왕 찾아냈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았고, 이번에는 확실히 버리기 위해서 아까 바깥양반이 약속 있다며 나갈 때 지하철에서 읽고서 만난 사람 아무개 줘 버리라고 해서 처리해 버렸다. 나름 절판본이니 중고샵에 한 번 올려라도 볼까 싶었지만, 이것저것 연락 주고받고 포장하고 뭐하고 하는 것도 이제는 영 귀찮으니 아무렇게나 처리해야 되겠다.


내용을 돌이켜보면 관계에 대한, 또는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법하다. 제목 그대로 로봇이 꿈을 꾸게 만든 원인이었던 주인공의 행동이 그리 납득가지는 않지만,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끼던 물건, 애완동물, 자녀, 애인, 배우자, 심지어 부모에 대한 은유라고도 볼 수 있는 확대 해석이라면 나 말고도 해줄 사람이 많을 듯하니...



[*] 생각해 보니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요푸공의 아야>와 <랍비의 고양이> 모두 완간되지 못하고 중간에 끊겨버렸다. 프랑스 만화는 권당 출간 간격이 긴 편이기 때문에 완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번역서를 내다 보면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예전에 중도작파에 대해서 알라딘에서 투덜투덜 했더니만 <요푸공의 아야>는 번역자가 직접 등판해서 아쉬움을 토로했던 기억도 난다. 그나저나 <랍비의 고양이>는 <로봇 드림>에도 찬조 출연(?) 하여 반갑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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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알라딘에 들어와서 본 신기한 것들 가운데 최고는 끝도 없이 검색창에 뜨는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집 광고였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실제로 받을 거라고 믿은 사람은 드물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력한 후보인 듯 언론에서 설레발을 치더니만 결국 수상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알라딘 검색창의 광고 문구는 "패스트 라이브즈 미 아카데미 각본상 불발"로 나오고 있으니, 나귀님 입장에서는 이걸 보고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잘 모르겠다. 혹시 "각본상 수상"으로 예정했다가 "수상"을 못했으니 다른 단어로 바꾼답시고 굳이 "불발"로 적은 걸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노골적이다 보니 썩 보기 좋지는 않다.


굳이 따져 보자면 수상 대신 탈락, 또는 불발이 주제가 된 알라딘 이벤트는 이전에도 간혹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수지의 경우에는 무슨 해외 아동 문학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고 해서 알라딘에서 거창하게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축하 이벤트 페이지까지 만들었는데, 결국 수상에 실패하면서 축하라기보다는 위로 이벤트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경우에는 굳이 "각본상 불발"이라고 너무 빨리 결과까지 반영하기보다는 차라리 "각본상 후보작" 정도로 적어 놓았다면 무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첫 작품으로 아카데미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점은 어쨌거나 자랑할 만한 일일 것이니 말이다. 굳이 삐딱하게 보자면 수상 실패를 들먹이며 "멕이는" 건가 하는 느낌도 있으니까.


희곡 좋아해서 예전부터 이것저것 사 모으던 나귀님이라서 최근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활자화되는 것은 반가울 법도 한데, 대부분 화제작이나 흥행작 위주라서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은 영 아쉽다. 예전 무슨 영화 잡지에서 <7인의 사무라이> 시나리오를 전재하는 등 번역 작품도 일부나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다시 보기는 어려우려나.


김수현 극본집은 예전 단권짜리를 갖고 있었는데 최근 십여 권짜리 전집이 나온 모양이니, 기회가 되면 한 번 훑어보아야겠다.(그런데 <작별>이 빠졌네!) 여하간 최근 이런저런 각본집 출간 현상은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방송 작가 지망생이 많아진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반짝 인기라고 치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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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라딘 들어와 기웃기웃하다 보니 신기한 게 몇 가지 있어서 끄적끄적해 본다. 검색창 광고에 "엄인호"라는 이름이 뜨기에 이건 또 뭔가, 왜 엄레논인가, 무슨 음반이라도 새로 만드나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RECORD OF A LEGEND라는 음악가 전기 시리즈의 북펀드 광고로 연결된다. 


"전설을 노래한 가수들을 기록하다"라는 광고 문구에 나온 것처럼 저명한 가수들의 자서전을 만든다는 취지인 모양인데, 샘플 페이지에 나온 형식을 보면 아마도 대담의 녹취록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긴 자서전 집필보다는 그쪽이 훨씬 더 간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 시리즈의 첫 타자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갔는데, 두 번째가 안치환인 것을 보니 문득 이 사람은 아직 좀 이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에 무슨 논란이 있었던 듯한 기억이 나서 구글링해 보니 무려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논란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난 대선에서 김건희 논란이 부각되니까 대뜸 안치환이 풍자성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는데, 그 제목이 하필이면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어서 또 다른 논란을 부르고 말았던 거다. 잭슨이 생전에 성형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음을 기억해 보면 당연히 크나큰 모독이다.


물론 정치 풍자도 할 수 있고, 대선 후보 마누라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결국 영부인씩이나 하는 오늘날까지도 이것저것 설쳐서 논란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김건희야말로 욕을 먹어 싼 사람이기는 한데, 그래도 왜 상관 없는 마이클 잭슨은 들먹여서 논란을 자초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마 양키고홈 구호를 외치던 쌍팔년도 운동권의 사고방식으로 대중 가수, 특히 미 제국주의자들의 음악가 따위는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싸이와 BTS를 비롯한 이른바 케이팝이 전세계를 호령하는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부적절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보니 알라딘의 북펀드에서는 영 이상한 그림이 나오고 말았다. 문제의 북펀드 광고 문구가 다음과 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흔히 외국에는 대통령이나 정재계 인사들뿐만이 아니라 마이클 잭슨, 마돈나,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의 유명한 대중 아티스트의 자전적 도서가 많이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외모를 들먹여 고인 모독을 가했던 안치환의 자서전 북펀드 광고에서 대놓고 마이클 잭슨을 맨 앞에 내세운다? 이건 누가 봐도 좀 아니다 싶다.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의 가장 최근 사례인 손흥민과 이강인의 화해 사진보다도 훨씬 더 어색해 보이는 조합처럼 보인다.


민중 가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오만이 거론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는 그 대표쯤 되는 사람에게서 그런 기미가 엿보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포장마차"나 "영삼이의 일기"처럼 풍자와 해학이 두드러지던 민중 가요를 기억하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울러 한 마디 덧붙이자면, 마이클 잭슨 자서전은 미국에서도 출간 당시에 딱히 좋은 평판을 얻지는 못했었고, 타계 직후 우리나라에 간행되었던 초판본도 80년대 일어 중역본을 베낀 것이어서 상태가 완전 개판이었다. 따라서 이 북펀드의 광고 문구는 이래저래 부적절했다고 봐야 할 것만 같다.


해외 연예인의 자서전도 대부분 대필 작가가 써주는 것이어서 장점을 강조하고 단점을 축소하는 일종의 변명 같다는 비판이 흔히 따르며, 좀 더 객관적인 평가는 훗날의 결정판 전기에서나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엄인호와 안치환의 자서전도 훗날의 평가를 위한 일종의 기초 작업인 셈이다.


조만간 나올 안치환의 자서전에 마이클 잭슨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가 들어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더 나중에 안치환의 전기가 나온다면 십중팔구 해당 논란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 아울러 그 오만에 대해 결코 좋은 평가가 나올 리 없으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 말 나온 김에 마이클 잭슨 관련 수집품 사진 하나 투척. 쌍팔년도에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문워커> 보러 갔다가 얻은 증정용 카세트테이프이다. <배드>의 수록곡으로 영화에서도 나왔던 BAD, SPEED DEMON, SMOOTH CRIMINAL, MAN IN THE MIRROR까지 모두 4곡이 들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왜 이걸 봤을까 후회막심했고, 이 테이프도 어디 굴러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함부로 방치했었는데, 마이클 잭슨의 사후에 생각이 나서 꺼내 보니 세월도 제법 흘렀겠다 이제는 골동품 취급을 받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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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삼일절 105주년 기념으로 독립선언서의 일부 문구를 집어넣은 에코백이며, 독립선언서의 전문을 축쇄한 투명 책갈피며 하는 사은품을 만든 모양이다. 독립선언서라 하니 문득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육당 최남선 전집> 제1권을 꺼내 보았다. 1973년에 현암사에서 전집 1차분(1-8권)을 내놓으면서 사은품으로 독립선언서 복제본을 끼워 주었는데, 훗날 내가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에도 다행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B5 판형에 딱 맞게 제작된 하얀 봉투를 열면 독립선언서와 그 소장자였던 월탄 박종화의 소개글(19세 때에 탑동공원에서 배포한 독립선언서 가운데 한 장을 받아서 이제껏 보존하고 있었다는 설명), 출판사의 해설까지 깔끔하게 인쇄한 가로 65센티미터, 세로 48센티미터의 얇은 한지가 나온다. 독립선언서 자체는 가로가 45센티미터쯤 된다고 하니, 이 복제본은 실제보다 더 넉넉하게 여백을 두어 제작했다고 봐야 하겠다.


육당 전집이라면 초판이 최소한 수천 부쯤은 간행되었을 법하니 이 복제본도 대략 그 정도 숫자가 돌아다닐 법도 한데, 의외로 지금은 대부분 그 존재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이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도 드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각에서는 현암사 복제본을 마치 원본인 양 착각하는 듯하니 우스운 일이다.(예를 들어 <한국일보> 미국판의 다음 기사를 보라. http://dc.koreatimes.com/article/20160301/973257)


그나저나 독립선언서의 복제본이 육당 전집에 사은품으로 따라온 까닭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이 문건이 최남선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훗날의 친일 행적 때문에 요즈음에 와서는 최남선이라는 이름 석 자만 언급해도 '친일파'라는 딱지가 따라붙게 마련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독립선언서 작성부터 역사 연구, 고전 보급, 언론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한 선각자 겸 지식인의 면모가 분명히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친일 행각 때문인지 과도하리만치 부정적인 이미지를 최남선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억지 비판도 없지 않던데, 예를 들어 독립선언서 첫 줄에서 "조선"이 "선조"로 오식된 것조차도 육당 탓을 하는 주장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는 육당이 작성한 글을 인쇄소에서 식자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임이 분명하며, 당시에 인쇄 작업이 비밀리에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일어날 법한 아쉬운 실수일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런 실수가 서지학적으로는 초판본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향후 어디선가 오래 된 독립선언서가 발굴되었을 경우, 첫 줄에 "선조"라는 오식이 없다면 그 역사적인 날에 나온 초판본까지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라딘 에코백에 들어 있는 문구에는 "선조"가 "조선"으로 바로잡혀 있으니, 이것 역시 독립선언서 초판본의 충실한 재현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물론 알라딘에서야 단지 오식을 바로잡으려는 선의의 수정을 시도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원문씩이나 가져다가 인쇄하기로 결정했던 애초의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없었다면 더 좋았을 법한 실수 때문에 지금 와서는 애꿎은 육당만 원흉 취급을 받아 비난을 받는 실정이지만, 이쯤 되면 "선조"라는 오식도 105년 전 그 날 그 사건과 함께 이미 역사의 일부분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추가]


글을 올리고 나서 사진을 첨부하고 다시 살펴보니, 현암사의 독립선언서 복제본에 붙은 설명에서 "육당이 밤을 새우며 직접 쓰고 조판, 교정한 이 '독립선언문'은" 하는 구절이 뒤늦게야 마음에 걸렸다. 작성이야 본인이 했다 치더라도 식자와 인쇄까지는 도맡지 않았을 터이며, 심지어 인쇄도 천도교 측 보성사에서 담당했었다고 전하는데, 어째서 이 설명에서는 육당이 "직접" 조판과 교정까지 담당했다고 나오는 걸까?


그제야 관련 자료를 뒤져 보니, 앞서는 간과했던 몇 가지 사실을 새로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육당이 "직접 쓰고 조판, 교정"을 담당했다는 설명은 사실이다. 독립선언서 원고를 완성한 후에 자신의 인쇄소인 신문관에서 직접 조판(식자)과 교정을 해서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로 넘겼다기 때문이다. 육당은 17세 때 출판사 겸 인쇄소인 신문관을 설립했으니, 인쇄 실무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알았을 것이다.


손자 최학주의 회고록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에도 "당신이 직접 신문관에서 조판하고 교정까지 본 후에 인쇄만 천도교 측 보성사로 넘겼다. (...) 급박한 상황에서 극비리에 진행한 일이라 선언문 첫머리에 '조선'이 '선조'로 돼 있는 것을 놓쳤다"(159쪽)는 증언이 들어 있으니, 이쯤 되면 (나귀님이 앞서 쓴 글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문제의 오식에 대해서만큼은 육당을 탓해도 딱히 변명할 여지가 없을 듯하다.


다만 인쇄 업무의 특성상 육당 외에도 여러 사람이 이후 작업에서 관여했음이 틀림없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처럼 눈에 띄는 오식을 미리 발견하고 수정한 사람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중에도 민족 대표 33인의 명단이 몇 차례 바뀌는 바람에 수정이 이루어졌으며, 최남선의 초고에 대해 오세창이 이의를 제기해서 단어 수정도 이루어졌다고 전하니 말이다.


구글링해 보니 고맙게도 한양대 사학과 박찬승 교수가 "3.1.독립선언서 인쇄 과정과 판본의 검토"라는 논문에서 독립선언서 제작 부수 관련 논란이며, 서로 상이한 초판본 존재에 따른 진본 논란 등 여러 가지 쟁점을 명료하게 규명한 상태였다. 이 논문에 따르면 육당이 자신의 인쇄소 신문관에서 직접 활자를 조판해서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로 보냈다는 증언이 당시의 수사 자료며 언론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보성사의 당시 책임자는 육당이 만든 활판의 세로 길이가 자기네 인쇄기에는 맞지 않아서 새로 조판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조선"이 "선조"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선/선조"의 위치가 첫 줄 상단임을 감안하면 해당 활자를 굳이 움직였을 가능성은 없고, 보성사의 책임자 역시 당시 활판의 내용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고 증언했으니 추가 교정도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후 33인의 명단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연판이 3종이나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선/선조" 오식도 미리 파악하기만 했었다면 이처럼 충분히 수정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육당의 친일 행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난 까닭인지, 지금은 이런 실수에다가 오세창의 단어 수정 제안까지도 졸지에 육당을 폄하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제의 "조선/선조" 오타가 훗날의 독립선언서 원본 논란에서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는 현재 8점이 남아 있는데, 훗날 최남선의 신문관에서 별도로 인쇄한 것이라고 주장되는 독립선언서 이본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 이본은 조판과 서체 등이 기존의 독립선언서와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그 진본 여부를 놓고 팽팽한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자칭 신문관 이본이 후대의 맞춤법을 따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 때문에 (예를 들어 ㅅㄱ 대신 ㄲ을 사용했다) 초판본이 아니라 1950년대에 제작된 위작으로 입증되었는데, 어째서인지 이런 사실이 제대로 규명되기도 전에 문화재청에서 보성사 진본과 신문관 위작 모두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양쪽 모두 국가등록문화재 2016-1호와 2016-2호로 남아 있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어째서인지 문화재청에서는 구체적으로 진위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그냥 다 문화재로 지정해 버리자는 식의 황당한 논리를 즐겨 펼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진달래꽃> 초판본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전까지 초판본으로 간주되던 한성도서본과 다른 중앙서림본이 발굴되고, 그 소장자의 조사로 맞춤법의 차이(ㄲ와 ㅅㄱ)가 결정적인 단서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규명 없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발굴과 보존뿐만 아니라 진위 판별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정부 기관으로서는 영 어울리지 않는 행태인데, 그만큼 고서나 서지학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나중에 가서는 나귀님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현암사의 1973년 복제본 사은품조차도 월탄 박종화 소장 독립선언서 원본으로 인정되어 국가등록문화재 명단에 오르는 것도 시간 문제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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