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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또 아는 척 하고 나서 알라딘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다 보니, 이번에는 윌리엄 블래티의 <엑소시스트>가 새로운 번역본으로 간행되었다고 해서 또 깜짝 놀랐다. 예전에 범우사에서 <무당>으로 나왔다가 나중에 <엑소시스트>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나왔었는데, 저자명으로 검색해 보니 구판 정보도 아직 알라딘에 남아 있다.


공포영화 쪽에서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음악도 유명한데, 그렇잖아도 그저께였나 라디오에서 "문라잇 섀도"라는 노래가 나오기에 이게 마이크 올드필드의 노래였지 싶어서 결국 유튜브로 "튜블라벨스"까지 한 번 틀어보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버진 회장 자서전을 보면 이 음반으로 처음 대박을 터트렸다는 증언도 나와 있다.


<엑소시스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이 났는데, 여기서 악귀와 싸우는 젊은 신부로 나온 제이슨 밀러는 원래 배우가 아니라 극작가였다. 그것도 대표작 <아, 우리가 챔피언 먹었던 그해>로 1973년 희곡 부문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진짜배기 극작가이다.(이 작품은 현대미학사의 희곡 선집 <마로윗츠 햄릿>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래 전에 구입해서 한동안 방치하던 책 가운데 하나인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괴이한 제목을 가진 책 잡담 책을 뒤적이다가 제이슨 밀러의 특이한 이력을 (아울러 고향 동네 이야기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밀러의 희곡은 과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등학교 농구부의 주전 선수들이 이제 중년이 되어 다시 모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노인이 된 당시의 코치까지 모셔 놓고 서로의 근황을 묻는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이내 서로의 갈등과 불만과 문제가 부각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과거의 오점까지 들먹여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보잘것 없는 삶을 살아가며 과거의 영광을, 그것도 정당하게 얻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되뇌는 그들의 모습은 경멸과 동정을 한꺼번에 불러 일으키며, 코치의 주도하에 "우리가 남이가!"로 다시 한 번 갈등을 무마하는 마무리에 가서는 씁쓸한 여운을 남겨준다.


지금 다시 살펴보니 1982년과 1999년에 두 번이나 영화화도 되었던 모양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1982년 작의 출연자 명단을 보니 브루스 던, 마틴 신, 폴 소르비노처럼 이제는 그 자녀가 우리에게 더 친숙한 배우들이니 새삼스레 세월을 실감하게 된다. 아쉽게도 이후 영화 출연이 많아지며 밀러의 희곡 창작은 급감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뜬금없이 지금 와서 왜 <엑소시스트>인가 했더니만, 역시나 리메이크판 영화인지 시리즈인지가 제작되는 모양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식의 리메이크가 하도 많아지고 빨라져서 어떤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모를 지경이다. 문제는 리메이크가 뛰어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원작이나 최초 각색에 먹칠도 종종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어공주> 실사판의 경우처럼 어설픈 리메이크와 정치적 공정성 도입은 오히려 반발을 불러오는 부작용이 있으니, 나귀님처럼 제법 나이 많은 올드 팬들로서는 우후죽순 식의 리메이크 바람이 도무지 반가울 리가 없는 실정이다. 새로 나온다는 <엑소시스트> 소식에 기대보다는 불안을 먼저 느끼게 되는 것도 그래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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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번역본 <그림 동화>에 대해서 또 뭔가 아는 척 끄적끄적하고 나서 알라딘을 이리저리 해파리처럼 방황하고 있자니 첫화면에 나온 신간 중에 표지 디자인 비스무리한 것이 있어서 뭔가 하고 살펴보니 무려 스티븐 킹의 시간인데 제목이 <페어리테일>이다.


처음에는 제목 그대로 "우리 시대의 동화"를 제임스 서버 식으로 써 놓았나 궁금해서 미리보기를 클릭해 보았는데, 구구절절한 묘사와 함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장편인 듯하다. 프랭클린 이야기만 해도 막 공포스러워지는 작가이니 우화는 무리일까.


그나저나 맨 앞의 헌사를 보니 REH, ERB, HPL이라는 이니셜이 등장하기에 뭘까 생각해 보니,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알겠는데 두 번째는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고민 끝에 결국 구글링해 보았더니 나처럼 궁금해 한 독자들이 많았는지 이미 답변이 나와 있다.


내가 못 맞힌 사람은 바로 <타잔>과 <펠루시다>의 작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로버트 E. 하워드와 H. P. 러브크래프트인데, 로버트 실버버그의 "지옥의 길가메시"에서도 그랬듯이 종종 세트로 붙어 다니니 금방 딱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러브크래프트의 인기인지 유행인지는 솔직히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콜린 윌슨의 말마따나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뭔가 허술한 느낌도 없지 않은데, 바로 그런 저렴한 재미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더 있는지.


러브크래프트와 관련해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그에 대한 언급이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 두꺼운 책을 뒤적여 보았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철학자라면서 웬 코스믹 호러를 언급하나 싶어서 의아하고 또 신기했었다고 할까.


들뢰즈/가타리가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한 대목은 타자니 의태니 하는 개념과 연관지어서였던 것 같은데, 그 전후 맥락만 살펴본 것이어서 정확한 의미까지는 역시나 불명이었다. 핑크 팬더도 나오던데 그게 영화인지 만화 캐릭터인지 영화 속 보석인지도 애매했고.


가만 보면 철학자인 저자들은 영화나 소설에서 가져온 사례를 이용해서 개념을 설명하는데, 독자나 연구자는 오히려 실제보다 더 심오한 의미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라이너스의 담요를 굳이 라이너스 폴링의 담요로 오역한 실제 사례처럼.


물론 들뢰즈/가타리를 숙독했다고 해서 러브크래프트가 더 재미있어질 리야 없겠지만, 러브크래프트를 숙독한 사람이라면 들뢰즈/가타리를 읽으면서 좀 더 잘 이해할 만한 대목이 몇 개쯤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양쪽을 다 본 사람이 흔치야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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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선생의 <그림 동화> 번역본이 새로 나왔다는 것 자체는 반가운 소식이나, 책소개 글에서 하버드 클래식스 선정 도서 운운 하는 대목을 접하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림 형제의 저 민담집이야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고전 중의 고전인데 왜 지금 와서 굳이 하버드 간판을 들먹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의 간판 내세우기는 아동서의 각종 수상 내역으로부터 시작해서 최근 수년간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무려 <그림 동화>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뭔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하버드 선정 고전 여부가 그토록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라면, 서울대 선정 고전 가운데 하버드에서 외면한 것들은 가치가 떨어지는 셈일까?


노벨문학상이며 퓰리처상 같은 것이야 그나마 알려진 편이지만 기타 문학상 중에는 그런 게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영 생소한 인물이며 사안을 기념하는 것도 많으니, 결국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가끔은 출판사에서도 잘 모르는 듯 오타까지 내곤 하는 각종 수상 실적을 굳이 갖다 붙이는 것도 결국 속물 근성의 소산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여하간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오래 전에 이데아총서 중 한 권으로 시작했다가 야금야금 전집의 꼴을 갖춰 가던 도중에 기약 없이 멈춰 버린 어느 작가의 작품이 속간될 때에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화판에서 질데로이 록하트를 연기한 배우가 감독하고 시빌 트릴로니를 연기한 배우가 주연한 고전 영화의 원작" 운운하는 문구가 등장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 생각해 보니 집에 이미 갖고 있는 <그림 동화>만 해도 여러 권이다. 예전 을유문화사의 김창활 완역본부터 시작해서 김열규 완역본의 분권(전2권)과 합본이며 한길사 김경연 세트(전10권), 거기다가 삽화가 마음에 들어서 샀던 비룡소의 세 권짜리 선집과 문지의 대형판과 길벗어린이의 초대형판, 그 정반대에 해당하는 현대지성사의 이솝/그림/안데르센 미니북까지 있으니까. 지난번 구미 친모/외조모 미스터리 소식을 접하며 체인질링 전설을 읽어보려고 꺼냈던 <독일 전설> 완역본과 그 선집도 있고, 그림 형제/동화에 대한 연구서도 한두 권쯤 있는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꽤 오래 전에 구입한 영역본도 어딘가 파묻혀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트루데 부인>도 있었지...)


[**] 아니, 그나저나 선생님, 지금 괴테 전집을 서둘러 완간하셔야 할 참인데, 어째서 그림 동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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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 관한 책을 하나 미리보기 하면서 이런저런 오류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아는 체 하고 났더니, 알라딘에서 비슷한 책 몇 권을 추천하는데 이번에는 <고쳐쓰기>란 것도 있다. 역시나 미리보기로 뒤적뒤적 하다 보니 루드비히 베멜만스의 그림책 <마들린느>의 내용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살짝 알쏭달쏭한 구절이 등장한다. 바로 "포도나무로 뒤덮인 파리의 오래 된 기숙사"라는 구절이다. 보통 포도나 아이비나 담쟁이 같은 식물을 vine이라고 지칭하기 때문에 생긴 오류가 아닐까 싶은데, 원문을 살펴보니 역시나 vine이고 시공주니어의 번역서에서는 모두 "덩굴"로 옮겼다. 물론 담쟁이도 포도과 식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수원도 아니고 "포도나무"는 좀 그렇지 않나 싶다. 책을 더 좋게 만들자는 "고쳐쓰기"의 장점과 방법을 설파하는 책 치고는 살짝 체면이 구겨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차저차 해서 핑곗김에 "마들린느" 시리즈 가운데 현재 갖고 있는 네 권을 꺼내 오랜만에 완독했다. 가장 덩치가 작으면서도 가장 까불어 대는 마들린느의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수녀 선생님의 다급한 걸음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서둘러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뛰어가지만, 잔뜩 기울어진 상체에 비해서 하체는 긴 치마에 덮여 있기 때문인지 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제자리에만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악몽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경우를 그림으로 묘사하자면 대략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마들린느와 개구장이>에 나오는 장난의 수위는 요즘 기준으로는 꽤나 높은 것 같아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물론 마들린느도 평소 장난만 놓고 보면 요즘 기준으로는 딱 개초딩이라 그 부모 집에 포스트잇깨나 붙을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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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에 관한 책이 새로 나온 것 같아서 뒤적뒤적 해 보려는데 어째서인지 미리보기 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워낙 컴퓨터가 깜박깜박하는 바람에 (방금 전도 자판이 먹히지 않아서 껐다가 다시 켰다) 그런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본문을 볼 수 없으니 밑에 나온 카드 리뷰인가 뭔가를 눌러보니 (이거 평소에 절대 안 눌러보고 건너뛴다. 동영상도 마찬가지고. 사실 책/글자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한 가지 오류가 눈에 띈다.


바로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을 출간 비화를 설명한답시고 출판사 이름 Faber and Faber 를 (아마도 영국식 발음이라 넘겨짚은 듯) "파버앤드파버"라고 적은 것인데, 이건 "페이버앤드페이버"가 맞다. 설립자의 손자인 토비 "페이버"가 나온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페이버앤드페이버"라고 확인사살을 했으니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랴. 미국의 "크노프"(Knopf) 출판사와 함께 헛갈리는 출판사 이름의 양대산맥이었는데, 인터넷 덕분에 이젠 속이 다 후련하다.


카드 리뷰에 들어 있는 내용을 알라딘에서 지어낼 리는 없을 터이니, 십중팔구 책 안에도 "파버앤드파버"로 적혀 있을 터인데, 비록 사소한 오류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편집" 씩이나 다룬다는 책이다 보니 살짝 민망함을 느낄 만하지 않나 싶다. 이것 말고도 눈에 걸리는 대목은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십중팔구 출판사가 작성했을 법한) 책소개 내용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묘비명에 friend 대신 frend 라는 "오탈자"가 적혀 있다고 지적한 대목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frend는 friend의 고어(중세 영어)이지 오탈자가 아니다. 이건 마치 훈민정음 서문에 나온 "어린"을 "어리석은"의 오탈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궁금해서 원서를 구글링해 보니 오탈자가 아니라 철자의 변천에 관한 대목에서 언급되는 모양이다. 물론 책에서는 "오탈자로 보이는데 ... 사실은 중세 영어다"라고 제대로 설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소개(보도자료)에서 대놓고 "오탈자"라고 단언한 것은 과도해 보인다.(이거야말로 박제감이 아닌가).


그나저나 여기까지 쓰고 다시 살펴보니 무슨 영문에서인지 이제는 미리보기 버튼이 나오기에 클릭해 보니, 약간 의아한 대목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을 실수로 무려 2만 부나 찍어 본 경험도 있다"(17쪽)는 구절인데, 원문을 살펴보니 2천 부를 찍어야 할 책을 실수로 2만 부 찍었다는 게 아니라, 제목에서 "진지함"에 해당하는 단어를 고어인 Earnest 대신 현대어인 Ernest 로 오타를 낸 채 2만 부나 인쇄했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번역에서도 차라리 "실수로" 대신 "제목에 오타가 난 채로" 정도로 수정해 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은 오스카 와일드의 성 Wilde 도 종종 Wild로 오타가 발생하기 쉬운데,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의 초상> 표지에 딱 그렇게 잘못 쓴 철자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적하자면 저자 서문에 나온 "가동 활자"는 아마 그냥 "활자"라고 써야 맞을 것이다. "활자" 그 자체가 moveable type, 즉 조판과 해체가 가능한 자유로운 개별 타이프(자)라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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