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이 한 달째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관련 뉴스를 살피다 보니, 의사의 용접공 폄하 발언 논란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파업 중인 의사 가운데 누군가가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병원 때려치고 용접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자, "용접이 만만해 보이냐?"는 반발이 관련자 및 관련 기관으로부터 빗발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용접공은 보수를 많이 받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반대로 업무 자체도 힘들고 자격증 따기도 어렵다는 것이 중론인 듯하다. 논란이 된 발언 자체는 단순히 이직에 대한 의향을 밝혔을 뿐이라고 두둔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의사들의 실언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눈총을 받는 셈이다.


문득 이사벨 아옌데의 에세이집 <모든 삶이 기적이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파티에서 만난 어느 치과 의사가 "저도 은퇴하면 소설이나 써 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자, 빈정 상한 소설가가 대뜸 이렇게 받아쳤다는 것이다. "나도 은퇴하면 사람 이빨이나 뽑고 다녀야겠네요." 쉽게 말해 "소설이 만만해 보이냐?"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겉으로는 만만해 보여도 막상 겪어 보면 어렵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나온 의사들의 실언은 어쩐지 이런 당연한 이치를 망각한 내로남불 수준이 대부분이다 보니 대중의 지지와 응원은 고사하고 거꾸로 집단 이기주의라며 성토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애초에 상황을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파업과 실언으로 대중의 반감을 불러 일으킨 의사의 자책도 적지 않아 보인다. 어찌어찌 타협으로 상황이 마무리되더라도 이번 일로 의사에 대한 대중의 "리스펙"만큼은 확실히 날아간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이번 일로 인해 의료 비즈니스와 환자의 선택권에 대한 문제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게 된다. 태어나도 병원, 아파도 병원, 죽어서도 병원이라는 식으로 의료에 과잉 의존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의료도 사업이라면 고객의 권리는?


잠정 결론은 질병과 그 궁극인 죽음에 대한 실존적 태도일 것인데, 이게 말만 쉽지 행동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최근에 돌아가신 여러 어르신들만 봐도 평소에는 책과 강연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감하게 발언해 왔지만, 당신들도 막판에 가서는 무척이나 초라하고 비굴해서 주위 사람들이 놀랐다니까...




[*] 그나저나 아옌데의 에세이는 이미 예전에 한 번 지적했듯이 고유명사 표기가 엉망이다. 저자의 배우자인 미국인 Willie 를 "윌리" 대신 "위예"로 표기한 것을 비롯해서, "우디 앨런"을 "우디 아옌", "제레미 아이언스"를 "제레미 이론스", "위노나 라이더"를 "위노나 리데르"로 표기하는 등, 영어 인명까지 모조리 스페인어식으로 읽는 이상한 삽질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번역자도 문제지만 편집자/출판사가 더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