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나수지의 보도 동영상 가운데 "뉴욕엔 왜 유독 비계가 많을까?"가 있어서 눌러보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렇잖아도 지난번 <이서진의 뉴욕뉴욕>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내내 비계 밑으로 지나다니는 장면이 하도 많아서 '도대체 저기는 왜 이렇게 공사가 많지? 구역 전체를 재개발이라도 하나?' 하고 의아해 하던 참이었다.


알고 보니 뉴욕의 비계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민간의 얄팍한 꼼수가 어우러지며 생겨난 대환장 파티라고 할 만했다. 과거 건물 외벽이 파손되며 행인이 다치는 등의 사고가 생기면서 정기적인 외벽 검사가 의무화되었고, 그 결과 비계를 임시로 설치하는 곳이 늘어났는데, 한 번 설치하고 나자 또 이런저런 이유로 철거가 미루어져서 수년씩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뉴욕에는 무려 8300개의 비계가 있었다고 하니, 이것 자체로 이미 공해라 할 만하겠다. 미관상 좋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어디까지나 임시 구조물인 비계 자체의 안전과 위생 문제도 제기되는 모양이다. 안전을 도모하는 것도 좋지만, 유연성 없는 행정 조치는 결국 지금처럼 부조리의 차원에 도달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비계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음이의어인 돼지 비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식당에서 삼겹살을 주문했는데 비계가 대부분인 것이 나왔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식당 주인이 뒤늦게 사과하며 마무리되나 싶더니만, 제주 지사가 뜬금없이 지역 특유의 식문화를 감안해야 한다며 실언하는 바람에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동음이의어는 서울의 지명이다. 흑석동에서 국립묘지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의 버스 정류장 이름이 '비계'인데, 처음 들었을 때에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궁금해서 노선표를 확인하기도 했었다. 정식 행정 구역명까지는 아니고 지역민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이름이라니 삼양동과도 비슷한 셈인가 싶었는데... 지금은 삼양동도 장식 행정 구역명으로 부활한 모양이다!


이 지명을 새삼 떠올리게 된 까닭은 최근 재개발에 들어간 흑석동 일부 지구에서 뜬금없이 '서반포'라며 존재하지도 않은 지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행정 구역상 반포와는 분명히 별개인 동네인데도 저 유명한 지역의 이름을 악용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인터넷 댓글 중에서 '어떻게 거기가 서반포냐, 차라리 동노량진이라 해라'는 지적이 가장 사이다로 보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자칭 서반포 재개발 지구 바로 옆에 조선일보 회장 자택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가장 넓은 주택이라고 해서 유명한 곳인데, 한때 매일 두 번씩 지나다니던 곳이지만 커다란 대문과 언덕 위로 이어진 진입로만 봐서는 거기 누가 사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지금은 대문 옆에 조선일보 박물관이 있던데, 주택 보유세 회피용이라는 비판도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그 동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조선일보 회장 자택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작은 녹지였다. 지금은 명수대 현대아파트와 한강 현대아파트 사이의 스포츠센터 부지인데, 원래는 너비 50미터쯤 되는 작은 언덕 위로 나무며 풀이 우거지고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마 인근 땅 전체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려다가 협상이 결렬되어 그 녹지 부분만 남겨놓은 듯했다.


그런데 하루 두 번씩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막에서 초록초록한 모습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는 녹지의 모습이 점점 마음에 드는 거다. 마치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이 실사판 같았다고나 할까. 인도 옆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집의 모습은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나아가는 누군가의 고집처럼도 보였다.


그래서 부디 그 푸릇푸릇한 곳이 누군지 모를 그 주인과 함께 오래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이후 그쪽으로 한동안 발을 끊었다가 다시 가보니 언덕이며 녹지며 집은 결국 사라지고 지금과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기에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남들은 그냥 흘려 듣고 말았을 법한 '비계'라는 희한한 지명이 아직까지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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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님' 이야기를 했으니 내친 김에 '뉴진스' 이야기도 한 마디 해 보자. 유튜버 곽튜브의 최근 영상 가운데 일본인 여사친에게 한국 여행을 시켜주면서,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는 한국 아이돌 아스트로의 멤버 한 명을 섭외해서 직접 만나게 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나중에 소감을 묻는 곽튜브에게 여사친이 울면서 한 말이 꽤나 의미심장했다.


즉 자기는 일본에서 아스트로를 직접 만나려고 앨범을 잔뜩 구입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놀랍고 고마웠다는 거다. 그러면서 보여준 휴대전화 속 사진에는 실제로 시디 스무여남은 장이 찍혀 있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현재의 케이팝 아이돌 산업에서의 큰 문제점에 대한 간접적 고발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잖아도 최근 일본에서 한국 아이돌 세븐틴의 앨범이 멀쩡한 채 길거리에 다량 폐기되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아이돌을 직접 만나는 행사에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이른바 '앨범깡'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전에도 아이돌 포토 카드를 구하기 위해 빵을 사서 먹지 않고 내버려서 논란이 되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나귀님 보기에도 최근 카리나 연애 논란, 르세라핌 라이브 논란, 어도어 대 하이브 논란으로 3연타를 맞으면서 이른바 케이팝 아이돌의 여러 문제가 대거 부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애초부터 개별 가수의 재능보다 소속 회사의 역량이 성공을 좌우하는 판이었으니, 곪은 데가 터지는 것도 시간 문제가 아니었을까.


현재 진행형인 어도어 대 하이브 논란의 경우에는 당사자인 민희진의 육두문자 기자 회견이 큰 화제였다. 일각에서는 '속이 시원했다'느니, '할 말은 했다'느니, 심지어 '저렇게 경솔한 것을 보니 음모를 꾸밀 사람은 아닌 듯하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현재 업계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지닌 회사의 대표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고용주며 모회사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내 새끼들'에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방시혁으로부터 업계 최고 대우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민희진이 대뜸 쌍욕부터 박고 나서 수락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지금의 '내 새끼들'도 여차 하면 '개새끼들'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 말한 사례들과 유사한 앨범 '밀어내기' 관행을 기자 회견에서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민희진에게 공감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수시로 '나'와 '내 것'과 '내 업적'을 강조하는 발언의 배후에는 혹시 소속 가수를 프로듀서나 회사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왜곡된 사고방식이 자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했다.


마치 '강바오'가 판다월드를 에버랜드에서 독립시키려고 송바오며 오바오와 공모하다가 적발되자 '바오걸스는 사실상 내가 낳은 딸들'이고, '에버랜드는 해준 게 없다'면서, '나는 롯데월드에 갔더라도 충분히 너구리를 교배해 판다를 분만시켰을 만한 인재'라고 주장하며, '부산 가서 오뎅 국물이나 구걸하는 개저씨'를 저격한 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일각의 지적처럼 애초에 자기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면, 사주나 모기업의 눈치를 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정 의견이 맞지 않으면 조용히 나올 일이지, 이런 식으로 일파만파 사태를 키워서 도대체 무슨 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기자 회견에서 보여준 태도만 봐도 앞으로 그와 손을 잡을 투자자는 사실상 없지 않을까.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199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했던 프로듀서 김창환이다.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 박미경, 클론, 홍경민, 채연에 이르기까지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른 여러 가수와 명곡을 내놓아서 미다스의 손이라 평가되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여러 논란을 겪으며 지금은 사실상 몰락한 상태이다.


자전적 에세이 <나와 함께한 천재들>에 따르면 원래는 대학 중퇴 후에 디스코장에서 DJ로 활동하며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어학 테이프를 제작하던 회사의 자회사에 음반 프로듀서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신승훈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음반을 제작해서 대박을 터트리고, 이후 연이은 성공으로 전성기를 누린다.


김창환의 시대까지만 해도 실력 있는 무명 가수를 발굴해서 스타로 육성하는 것이 음반 프로듀서의 주된 역할이었다. 노래보다는 춤과 외모, 라이브보다는 립싱크를 당연시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아이돌은 김창환의 시대가 햐항세로 접어들던 1990년대 중후반에 이수만 등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봐야 맞겠다.


어떤 면에서 김창환은 여전히 주먹구구 방식으로 돌아가던 음반 제작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데에 기여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단순히 성공담을 늘어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회사인 라인음향 소속 작곡가, 편곡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디자이너(강원래의 형 강원도)의 역할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노이즈와 클론에 뒤이어 혼성 그룹 콜라를 데뷔시킨 직후인 1997년에 나온 자전적 에세이는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마무리되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김창환의 하향세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맞겠다. 탈세 혐의로 세무 조사를 받은 모회사 라인음향과 결별하고 독립해서도 간간히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년 전 소속 가수 폭언과 폭행으로 완전 몰락했다.


비록 시기와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김창환의 흥망은 현재 연예계의 가장 뜨거운 논란 당사자인 민희진과 방시혁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아 보인다. 솔로부터 그룹까지 전설적인 가수를 여럿 제작했고, 심지어 작사작곡까지 담당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그의 업적이라면 지금의 두 유명 프로듀서에게 충분히 버금갈 만해 보이니 말이다.


맨 먼저 기억할 점은 제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미다스의 손이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창환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고 최소한 2000년대까지는 체면을 세웠다고 할 수 있으니 대략 20년간은 거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셈이다. 넓게 봐서 한 세대인 30년이 그 시한이라고 보면, 이번 사태가 방시혁과 민희진 모두에게는 꽤나 의미심장해 보인다.


흥망은 세상만사의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두 사람 모두 20년 넘게 성공가도를 달렸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겠지만, 유행이 항상 바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능력인지 행운인지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될 듯하다. 당장 이번 사태로 이미지가 급락한 것만 보아도 그들의 능력인지 행운인지는 이미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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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맞아서 '뉴진스님' 윤성호가 광화문 광장에서 디제잉을 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젊은 세대에게 불교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것이니 좋다는 의견이 대부분인 듯하지만, 과연 그게 정답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불교'가 아니라 그저 승복을 입고 디제잉을 한다는 희화화에서 비롯되는 '개그'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요즘 세상에서는 종교도 어떤 식이든지 홍보가 필요하겠지만, 진지함이 희석된 경쾌함만 남아서는 곤란할 것이다. 앞서도 불교에서는 현각이나 혜민처럼 학벌을 내세우는 홍보로 재미를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붓다 역시 신통력 같은 눈요깃거리로 대중을 모으는 행위를 긍정할 리 없었으니까.


종교의 핵심은 성과 속의 구분이다. 불교의 경우에는 사찰의 산문을 기준으로 양자가 정확히 구분됨으로 인해 외경심이 우러난다. 카톡과 유튜브와 풀소유가 대세인인 세상에서는 오히려 침묵과 마음챙김과 무소유라는 불교의 미덕이 더욱 돋보일 수 있지 않을까. 어설픈 방법으로 세상에 다가가기보다, 항상 거기 있으면서 세상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또 한편으로 보자면, 윤성호의 부캐 뉴진스님이나 그 이전의 일진스님이 보여준 승려의 속된 행동이야말로 각종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한국 불교에 대한 야유나 다름없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오히려 승가를 바로세우고 엄격한 수행에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저변을 넓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단순히 시선을 끈다는 것만으로 포교를 다 했다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문득 몰몬교를 소재로 한 뮤지컬 <몰몬경>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연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미국에서는 2011년에 토니상 9개 부문을 휩쓸 정도로 압도적인 호평을 받은 걸작이다. 내용은 황당하지만 음악은 훌륭한데, 특히 "안녕하세요"와 "너와 내가 (대부분 내가)" 같은 노래가 그렇다.(전자는 2012년 토니상 시상식 개막 공연이 정말 걸작이다).


줄거리를 보면 몰몬교 선교사 두 명이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 가서 겪는 우여곡절이고, 결말만 살피면 '좋은 게 좋은 거'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신랄한 유머가 들어 있어서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하쿠나 마타타"를 패러디한 듯한 "하사 디가 이보와이"라는 노래가 그런데, 힘들 때마다 되뇌는 말이라기에 희망적인 격언인 줄 알았더니 "하느님 씹새끼"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대놓고 비꼬는 내용이다 보니 몰몬교 측 반발도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창작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요지의 조심스러운 반응만 나왔다. 나중에 뮤지컬이 인기를 끌자 몰몬교에서는 아예 <몰몬경>의 팜플렛 한귀퉁이를 빌려 "뮤지컬을 보셨으니 이제 그 원작도 읽어보세요! 항상 그렇듯이 원작이 더 훌륭하답니다!"라고 재치 있는 광고를 집어넣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음악과 내용 모두 유쾌한 뮤지컬 <몰몬경>이지만, 그렇다고 이걸 보고 나서 몰몬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역시나 이 뮤지컬을 보고 나서 몰몬경이나 몰몬교를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일 것이다. 경전 <몰몬경>과 뮤지컬 <몰몬경>의 차이란 결국 진짜 승려와 부캐 뉴진스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몰몬교에 대해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했던 부분은 그 교리나 선교가 아니라 오히려 그 건축이었다.(아울러 저 유명한 몰몬교 합창단의 음악도 포함시켜야 맞을 것이다). 내가 본 몰몬교 건물들은 일반 교회와 달리 단층으로 아담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었는데, 마침 옆 동네에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몰몬교 지부가 철수하면서 내부를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어느 가구 판매 업체에서 그 교회 건물을 인수해서 전시장 겸 커피숍으로 개조해 놓았기 때문인데, 매번 밖에서만 보던 건물 내부가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요즘의 전형적인 교회 건축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문득 내가 몰몬교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저 유명 뮤지컬보다는 차라리 이 오래 된 건물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고나... 



[*] <몰몬경>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유튜브로 감상하다가 아예 씨디를 사려고 보니 알라딘에서 품절이었다. 한동안 중고가 없나 기웃거리다가 재작년에 운 좋게 구입했는데, <사우스파크> 제작진의 작품답게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작품이다 보니 씨디 비닐 포장에 미성년자 주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라도 몰몬교 선교사들을 길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의 유명한 대사("지금 종교를 바꾸시는 분께는 예수가 직접 쓴 책을 무료로 드립니다!" <겨울왕국>에서 올라프를 연기했던 배우가 뮤지컬 도입부에서 하는 헛소리다)를 읊어주려고 열심히 연습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앞서 말했듯이 인근의 몰몬교 지부가 없어지면서 이 동네에서는 더 이상 몰몬교 선교사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는 내가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또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니 몰몬교 선교사를 향해 뮤지컬 <몰몬경>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외국인이 처음 본 한국인에게 대뜸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들먹이며 한국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처럼 꼴불견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몰몬경> 음반은 어째서인지 지금 검색해 보면 알라딘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구매한 기록이 있기에 해당 페이지 주소를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쩌면 이것 역시 알라딘의 숱한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없는 책들'의 사례 가운데 하나인 걸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2316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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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의 생애>가 재출간된 모양이다. 알라딘 광고에서 본 표지는 어쩐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도 비슷하기에 그 시리즈에 넣기에는 약간 의외의 선택이 아닐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처음 보는 출판사에서 처음 내는 책인 듯하다.(그나저나 첫 책으로 무려 이 작품을 펴내는 출판사라면 앞으로 도대체 뭘 또 펴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도 한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켰다면 '의외의 선택'이었으리라고 굳이 말한 까닭은 이 작품이 오늘날에 와서는 그 저자나 주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제일 두드러지는 문헌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발표 당시에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지만, 오늘날 그 저자를 이야기할 때에 항상 거론되고 세계문학전집에도 이미 한 자리씩 차지한 작품은 오히려 악동 소설이다.


심지어 나귀님도 오랫동안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전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엔가 브레히트의 <시몬 마샤르의 환상>을 읽고 나서 잔 다르크 관련 자료를 도로 찾아보게 되었는데, 뒤늦게야 이 책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기류를 꽂아 놓은 책장에 가서 찾아내고 보니 실제로는 전기가 아니라 역사 소설이라기에 살짝 난감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사실은 잔 다르크의 명성에 비해 정작 우리말로 구할 수 있는 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어린이용 전기는 물론 여러 가지 있었지만 본격적인 전기는 로로로 시리즈의 <잔 다르크>뿐이고, 그보다는 차라리 실러며 쇼며 브레히트가 쓴 각색물이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희곡이다!) 더 많이 간행되어 있는 실정이니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잔 다르크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로로로 시리즈의 <잔 다르크>에 따르면, 후대에 가서야 우후죽순으로 나온 갖가지 전설을 제외하면 정작 이 사람에 대해 실증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은 문자 그대로 한 줌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모순된 내용이 많고, 보기에 따라서는 천차만별로 해석이 가능한 모양이다.


결국 잔 다르크야말로 현실보다는 오히려 전설로서 더 유명해졌다고, 또는 이미 전설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정작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논의조차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래서는 아닐까. 어쩌면 또 다른 '애국 소녀' 유관순에 대해서조차 사실과 전설을 둘러싼 시비가 있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나저나 이번에 나온 책의 소개 자료를 보니 저자가 생전에 동네 꼬마를 만나서 '톰과 헉 같은 악동 소설 말고 잔 다르크 소설을 읽어라. 이거야말로 내 최고 걸작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들은 말이라고 하니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진심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농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의 진심이라고 치면, 아마도 톰과 헉이 활개 치는 가벼운 악동 소설보다는 잔 다르크가 등장하는 진지한 역사 소설로 인정받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하게 코넌 도일만 해도 저 유명한 탐정 소설의 저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지금은 기억해 주는 사람도 드문 역사 소설의 저자로 더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는 안타까운 일화가 전해진다. 


저자의 농담이라고 치면, 아마도 키플링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톰 소여의 궁극적 운명과도 유사하게 위악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 유명한 악동의 성인기를 묘사한 소설을 쓸 예정이냐는 키플링의 질문에, 트웨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긋지긋한 질문이라는 듯, 톰을 국회로 보내거나 아니면 교수형에 처하는 내용으로 구상 중이라고 쏘아붙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내용의 속편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물론 얼떨결에 아프리카에 다녀오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터뷰만 놓고 저자가 평소에 악동을 싫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그의 단편 중에는 주일학교 공과공부 책에 나온 대로 착하게 살다가 인생을 망친 착한 소년과 오히려 못되게 살아서 호의호식한 못된 소년이 나오는 것들도 있었으니까... 




[*] 나귀님이 가진 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 소설은 1992년에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잔 다르크의 생애>이다. "타오르지 않는 덤불"과 "춤추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붙여 전2권으로 간행했는데 알라딘에는 엉뚱하게도 1권의 부제로만 등록되어 있다.






[**] 그나저나 잔 다르크 전설을 차용한 각색물 중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새로운 잔 다르크>라는 두 권짜리 만화책이었다. 나귀님은 그것도 잔 다르크에 대한 전기 만화라고 착각해서 구입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잔 다르크 사후에 또 다른 잔 다르크가 되어서 예전 동료들을 (질 드 레도 당연히 포함!) 만나러 가는 또 다른 소녀의 이야기라서 살짝 실망했다. 사실 내용은 둘째 치고 그림이 예뻐서 구입했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가 상당히 유명한 (무려 건담과 야마토의 원작자!)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건 안 버렸겠지 싶어서 만화 책장을 한참 뒤졌는데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언젠가 결국 내다 버렸든지 뭐했든지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마크 트웨인 책을 버리고 이 만화책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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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009>의 "연재재현판"을 읽다 보니, 이 작품에 대해 그간 알고 있었던 몇 가지 내용과 상충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그런지 알아보려 구글링을 하다 보니 얼떨결에 이 만화의 연재 이력이며 단행본 수록 순서 등에 대해서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답게 워낙 다양한 내용이 워낙 많은 지면에 워낙 오래 연재되다 보니 자연스레 혼란이 생겨난 셈이었다.


"연재재현판"은 이름 그대로 잡지 연재분을 판형과 디자인 그대로 영인한 판본이다. 심지어 페이지 모서리에 실린 광고 문구까지도 그대로 번역해 실었기 때문에 <거인의 별>, <게게게의 기타로>, <악마군>처럼 같은 지면에서 경쟁한 유명 만화에 대한 언급을 찾아내는 소소한 재미도 맛볼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의 전면 광고를 그대로 옮겨 놓은 페이지까지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보다는 더 일반적인 방식대로 잡지 연재분을 일정한 분량씩 엮어 간행한 "단행본판" 번역서는 오래 전에 시공사에서 전18권으로 간행되었다가 지금은 절판되어서 부르는 게 값이 되어 버렸다! 아쉽게도 나귀님이 지금 갖고 있는 책은 그중 도입부에 해당하는 단행본 1-3권뿐으로, 1964-65년의 <주간 소년킹> 연재분인 "탄생편"부터 "뮤토스 사이보그편"의 앞부분까지뿐이다.


이번에 읽은 "연재재현판"은 1966-67년의 <주간 소년매거진> 연재분인 "지하제국 요미편"과 몇 가지 부록만 수록하고 있는데, 연재 순서로 편집했다면 아마도 시공사의 단행본판에서는 5-6권쯤에 수록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런데 내용만 놓고 보면 "지하제국 요미편"은 다른 편들에 비해 독립적, 완결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심지어 주인공들의 기원도 달리 설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단행본판에서는 주인공이 자동차 경주 선수로 활동하던 중에 납치되어 사이보그로 개조당하지만, 연재재현판에서는 주인공이 소년원에서 탈출하던 중에 납치되어 사이보그로 개조된다. 다른 동료들의 과거사도 단행본판과 연재재현판의 묘사가 서로 달라졌고, 심지어 "지하제국 요미편"의 결말에서는 002와 009가 최후의 결전 직후 나란히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암시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사이보그 009>는 계속 연재되어서 결국에는 그때까지의 분량의 세 배나 되는 전18권의 단행본이 나오고 말았다. 구글링해 보니 여러 번 지면을 옮기는 과정에서 도입부며 마무리를 바꾸다 보니 이렇게 상충되는 내용이 나왔다고 한다. <도라에몽>도 이와 유사하게 최종화를 내보냈다가 독자의 항의로 연재를 재개하느라 내용이 번복되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이보그 009>는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던 것도 같다. 1980년대에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게 만화로도 나와 있다는 사실은 얼마 뒤 친구 집에 갔다가 단행본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일본 만화를 간행하면서도 원작자 이름을 한국인인 척 바꿔놓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이게 번역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여하간 그때 맨 처음 본 <사이보그 009> 만화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목은 008이 적의 습격을 받아 머리만 남기고 완파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공사의 단행본에는 그런 내용이 없기에 내가 잘못 기억했나 싶더니만, 이번에 "연재재현판"을 보니 그 장면이 나와 있었다! 결국 내가 예전에 친구 집에서 본 만화책은 "지하제국 요미편"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아울러 이번에는 그 장면 이후의 상황에 암시된 민감한 내용까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아프리카 출신 흑인인 (원래 도입부에서는 노예로 팔려갈 뻔하다가 탈출한 것으로, "지하제국 요미편"에서는 밀렵 감시원인 것으로 묘사된다) 수중 능력자 008이 부상당하자, 사이보그 부대 지도자인 과학자가 성능을 개선시킨답시고 검은 피부를 물고기 비늘로 싹 교체한 것이다!


결국 008은 인간다움의 마지막 흔적이었던 사람의 피부마저 빼앗긴 것을 한탄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자기보다 더 심하게 손발이며 몸통마저 기계로 개조당한 004가 건넨 위로의 말에 마음을 풀게 된다. 만악의 근원인 박사는 '검은 피부보다는 비늘이 낫다'고 인종차별적 궤변을 내놓았다가, 동료 003으로부터 '008은 피부색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듣기도 한다.


여하간 나귀님으로선 오랫동안 궁금했던 008의 부상에 대한 의문이 풀렸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그때 본 만화책 임자인 동네 친구는 이후 다니는 학교가 달라져서 거의 못 보고 지내다가, 나중에 공주교대에 갔다는 소식만 접하게 되었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를 둘러싼 논란을 뉴스로 자주 접하다 보니, 새삼 40년 전의 그 친구, 아직 선생 노릇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 그나저나 최근 <애꾸눈 선장>과 <천년여왕>과 <은하철도 999> 같은 명작들이 줄줄이 번역되는 것으로 미루어, 시공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사이보그 009> 단행본도 재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이번처럼 일부 에피소드만 "연재재현판"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단행본 전체 재간행은 어려운 건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 사이에 "완결편"이라는 다섯 권짜리가 나오기도 했었는데, 이건 저자가 생전에 구상한 줄거리를 사후에 다른 사람들이 작화해서 내놓은 일종의 스핀오프라고 알고 있다.




[**] 이번에 다시 읽은 시공사판 2권에는 "비싼 성의 남자편"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P. K. 딕의 공상과학 소설 제목에서 가져온 "높은 성의 남자"(高い城の男, The Man in the High Castle)를 오역한 결과물로 보인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서야 구글링 끝에 비로소 알아채게 된 오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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