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님' 이야기를 했으니 내친 김에 '뉴진스' 이야기도 한 마디 해 보자. 유튜버 곽튜브의 최근 영상 가운데 일본인 여사친에게 한국 여행을 시켜주면서,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는 한국 아이돌 아스트로의 멤버 한 명을 섭외해서 직접 만나게 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나중에 소감을 묻는 곽튜브에게 여사친이 울면서 한 말이 꽤나 의미심장했다.


즉 자기는 일본에서 아스트로를 직접 만나려고 앨범을 잔뜩 구입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놀랍고 고마웠다는 거다. 그러면서 보여준 휴대전화 속 사진에는 실제로 시디 스무여남은 장이 찍혀 있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현재의 케이팝 아이돌 산업에서의 큰 문제점에 대한 간접적 고발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잖아도 최근 일본에서 한국 아이돌 세븐틴의 앨범이 멀쩡한 채 길거리에 다량 폐기되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아이돌을 직접 만나는 행사에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이른바 '앨범깡'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전에도 아이돌 포토 카드를 구하기 위해 빵을 사서 먹지 않고 내버려서 논란이 되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나귀님 보기에도 최근 카리나 연애 논란, 르세라핌 라이브 논란, 어도어 대 하이브 논란으로 3연타를 맞으면서 이른바 케이팝 아이돌의 여러 문제가 대거 부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애초부터 개별 가수의 재능보다 소속 회사의 역량이 성공을 좌우하는 판이었으니, 곪은 데가 터지는 것도 시간 문제가 아니었을까.


현재 진행형인 어도어 대 하이브 논란의 경우에는 당사자인 민희진의 육두문자 기자 회견이 큰 화제였다. 일각에서는 '속이 시원했다'느니, '할 말은 했다'느니, 심지어 '저렇게 경솔한 것을 보니 음모를 꾸밀 사람은 아닌 듯하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현재 업계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지닌 회사의 대표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고용주며 모회사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내 새끼들'에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방시혁으로부터 업계 최고 대우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민희진이 대뜸 쌍욕부터 박고 나서 수락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지금의 '내 새끼들'도 여차 하면 '개새끼들'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 말한 사례들과 유사한 앨범 '밀어내기' 관행을 기자 회견에서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민희진에게 공감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수시로 '나'와 '내 것'과 '내 업적'을 강조하는 발언의 배후에는 혹시 소속 가수를 프로듀서나 회사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왜곡된 사고방식이 자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했다.


마치 '강바오'가 판다월드를 에버랜드에서 독립시키려고 송바오며 오바오와 공모하다가 적발되자 '바오걸스는 사실상 내가 낳은 딸들'이고, '에버랜드는 해준 게 없다'면서, '나는 롯데월드에 갔더라도 충분히 너구리를 교배해 판다를 분만시켰을 만한 인재'라고 주장하며, '부산 가서 오뎅 국물이나 구걸하는 개저씨'를 저격한 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일각의 지적처럼 애초에 자기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면, 사주나 모기업의 눈치를 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정 의견이 맞지 않으면 조용히 나올 일이지, 이런 식으로 일파만파 사태를 키워서 도대체 무슨 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기자 회견에서 보여준 태도만 봐도 앞으로 그와 손을 잡을 투자자는 사실상 없지 않을까.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199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했던 프로듀서 김창환이다.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 박미경, 클론, 홍경민, 채연에 이르기까지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른 여러 가수와 명곡을 내놓아서 미다스의 손이라 평가되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여러 논란을 겪으며 지금은 사실상 몰락한 상태이다.


자전적 에세이 <나와 함께한 천재들>에 따르면 원래는 대학 중퇴 후에 디스코장에서 DJ로 활동하며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어학 테이프를 제작하던 회사의 자회사에 음반 프로듀서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신승훈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음반을 제작해서 대박을 터트리고, 이후 연이은 성공으로 전성기를 누린다.


김창환의 시대까지만 해도 실력 있는 무명 가수를 발굴해서 스타로 육성하는 것이 음반 프로듀서의 주된 역할이었다. 노래보다는 춤과 외모, 라이브보다는 립싱크를 당연시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아이돌은 김창환의 시대가 햐항세로 접어들던 1990년대 중후반에 이수만 등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봐야 맞겠다.


어떤 면에서 김창환은 여전히 주먹구구 방식으로 돌아가던 음반 제작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데에 기여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단순히 성공담을 늘어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회사인 라인음향 소속 작곡가, 편곡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디자이너(강원래의 형 강원도)의 역할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노이즈와 클론에 뒤이어 혼성 그룹 콜라를 데뷔시킨 직후인 1997년에 나온 자전적 에세이는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마무리되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김창환의 하향세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맞겠다. 탈세 혐의로 세무 조사를 받은 모회사 라인음향과 결별하고 독립해서도 간간히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년 전 소속 가수 폭언과 폭행으로 완전 몰락했다.


비록 시기와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김창환의 흥망은 현재 연예계의 가장 뜨거운 논란 당사자인 민희진과 방시혁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아 보인다. 솔로부터 그룹까지 전설적인 가수를 여럿 제작했고, 심지어 작사작곡까지 담당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그의 업적이라면 지금의 두 유명 프로듀서에게 충분히 버금갈 만해 보이니 말이다.


맨 먼저 기억할 점은 제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미다스의 손이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창환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고 최소한 2000년대까지는 체면을 세웠다고 할 수 있으니 대략 20년간은 거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셈이다. 넓게 봐서 한 세대인 30년이 그 시한이라고 보면, 이번 사태가 방시혁과 민희진 모두에게는 꽤나 의미심장해 보인다.


흥망은 세상만사의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두 사람 모두 20년 넘게 성공가도를 달렸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겠지만, 유행이 항상 바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능력인지 행운인지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될 듯하다. 당장 이번 사태로 이미지가 급락한 것만 보아도 그들의 능력인지 행운인지는 이미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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