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의 생애>가 재출간된 모양이다. 알라딘 광고에서 본 표지는 어쩐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도 비슷하기에 그 시리즈에 넣기에는 약간 의외의 선택이 아닐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처음 보는 출판사에서 처음 내는 책인 듯하다.(그나저나 첫 책으로 무려 이 작품을 펴내는 출판사라면 앞으로 도대체 뭘 또 펴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도 한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켰다면 '의외의 선택'이었으리라고 굳이 말한 까닭은 이 작품이 오늘날에 와서는 그 저자나 주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제일 두드러지는 문헌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발표 당시에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지만, 오늘날 그 저자를 이야기할 때에 항상 거론되고 세계문학전집에도 이미 한 자리씩 차지한 작품은 오히려 악동 소설이다.
심지어 나귀님도 오랫동안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전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엔가 브레히트의 <시몬 마샤르의 환상>을 읽고 나서 잔 다르크 관련 자료를 도로 찾아보게 되었는데, 뒤늦게야 이 책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기류를 꽂아 놓은 책장에 가서 찾아내고 보니 실제로는 전기가 아니라 역사 소설이라기에 살짝 난감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사실은 잔 다르크의 명성에 비해 정작 우리말로 구할 수 있는 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어린이용 전기는 물론 여러 가지 있었지만 본격적인 전기는 로로로 시리즈의 <잔 다르크>뿐이고, 그보다는 차라리 실러며 쇼며 브레히트가 쓴 각색물이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희곡이다!) 더 많이 간행되어 있는 실정이니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잔 다르크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로로로 시리즈의 <잔 다르크>에 따르면, 후대에 가서야 우후죽순으로 나온 갖가지 전설을 제외하면 정작 이 사람에 대해 실증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은 문자 그대로 한 줌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모순된 내용이 많고, 보기에 따라서는 천차만별로 해석이 가능한 모양이다.
결국 잔 다르크야말로 현실보다는 오히려 전설로서 더 유명해졌다고, 또는 이미 전설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정작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논의조차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래서는 아닐까. 어쩌면 또 다른 '애국 소녀' 유관순에 대해서조차 사실과 전설을 둘러싼 시비가 있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나저나 이번에 나온 책의 소개 자료를 보니 저자가 생전에 동네 꼬마를 만나서 '톰과 헉 같은 악동 소설 말고 잔 다르크 소설을 읽어라. 이거야말로 내 최고 걸작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들은 말이라고 하니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진심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농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의 진심이라고 치면, 아마도 톰과 헉이 활개 치는 가벼운 악동 소설보다는 잔 다르크가 등장하는 진지한 역사 소설로 인정받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하게 코넌 도일만 해도 저 유명한 탐정 소설의 저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지금은 기억해 주는 사람도 드문 역사 소설의 저자로 더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는 안타까운 일화가 전해진다.
저자의 농담이라고 치면, 아마도 키플링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톰 소여의 궁극적 운명과도 유사하게 위악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 유명한 악동의 성인기를 묘사한 소설을 쓸 예정이냐는 키플링의 질문에, 트웨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긋지긋한 질문이라는 듯, 톰을 국회로 보내거나 아니면 교수형에 처하는 내용으로 구상 중이라고 쏘아붙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내용의 속편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물론 얼떨결에 아프리카에 다녀오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터뷰만 놓고 저자가 평소에 악동을 싫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그의 단편 중에는 주일학교 공과공부 책에 나온 대로 착하게 살다가 인생을 망친 착한 소년과 오히려 못되게 살아서 호의호식한 못된 소년이 나오는 것들도 있었으니까...
[*] 나귀님이 가진 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 소설은 1992년에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잔 다르크의 생애>이다. "타오르지 않는 덤불"과 "춤추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붙여 전2권으로 간행했는데 알라딘에는 엉뚱하게도 1권의 부제로만 등록되어 있다.
[**] 그나저나 잔 다르크 전설을 차용한 각색물 중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새로운 잔 다르크>라는 두 권짜리 만화책이었다. 나귀님은 그것도 잔 다르크에 대한 전기 만화라고 착각해서 구입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잔 다르크 사후에 또 다른 잔 다르크가 되어서 예전 동료들을 (질 드 레도 당연히 포함!) 만나러 가는 또 다른 소녀의 이야기라서 살짝 실망했다. 사실 내용은 둘째 치고 그림이 예뻐서 구입했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가 상당히 유명한 (무려 건담과 야마토의 원작자!)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건 안 버렸겠지 싶어서 만화 책장을 한참 뒤졌는데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언젠가 결국 내다 버렸든지 뭐했든지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마크 트웨인 책을 버리고 이 만화책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