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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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펼쳐든 책이다. 희미한 아스팔트 색의 겉표지, 작은 창문으로 남산이 바라다 보이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겉모습이었다. 그냥 좋았다고 표현하기에는 나의 언어가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골목길을 누비고 다닌 기분. 날이 저물도록 볼거리가 풍성한 벼룩시장을 다녀오면 이런 느낌이 들까. 서울에 가서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할 때에도 이랬다. 내 마음에 작은 구멍이 뚫려 그 안으로 따뜻하고 달콤한 공기가 불어 들어와 풍성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런 세상도 존재하는구나, 이런 시각도 있구나.

 

20여 년 전쯤이었나, 현미경 연수를 가서 렌즈를 통해 도시락 김을 관찰한 적이 있다. 도시락 김 한 귀퉁이를 떼어내어 받침 유리에 올려놓았다. 별 기대 없이 들여다본 모습은 놀라움 자체였다.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손톱 주변에서 떼어낸 작은 피부 조각도, 머리카락도, 작은 꽃가루도, 두루마리 화장지 조각도 렌즈 아래에서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영화 <이너스페이스>의 주인공은 초소형 비행선을 타고 인체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이나 거인국으로 간 걸리버도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다른 세상을 체험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놀라운 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영화나 책이나 현미경에서처럼 공간과 건축물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이 없었는데도 책을 읽고 나면 전혀 다른 공간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변화는 머리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건축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전달 매체가 있다. 그것은 비어있는 보이드 공간이다.(p16)’ 이제껏 건물만을 보던 나를 향해 저자는 건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보라고 말을 했다. 열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각각의 소주제에 대한 결론은 명확했다. 공식에 대입하여 방정식을 풀어내는 듯 그의 서술에서는 이과적인 후련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여타 문학 작품을 읽은 것보다 묵직한 감동이 나의 감성을 조용히 흔들었다. ‘공간을 크게 느끼게 하려면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해야 하고,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하려면 기억할 사건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기억할 사건이 많게 하려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p291)’ 그의 책이 아주 커다랬다. 연필로 정교하게 그려진 세밀화를 감상한 듯 공간과 건축물과 도시에 대한 상식이 풍성해졌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작가는 건축을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걸까. 물컹한 마음이 이슬방울처럼 매달렸다.

 

건축물을 만드는 과정은 글을 쓰는 과정과 비슷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이다.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모일 목적지가 될 만한 랜드 마크 건물이 필요하고, 사람이 정주할 식당이나 카페가 필요한 것이다.(p280)’ 글을 쓰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 모일 장소를 만드는 일 아닌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일기는 나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읽히는 글은 그들의 마음이 머무는 장소가 되니 말이다. 글 안에 마련한 그루터기나 카페, 혹은 스릴 넘치는 바이킹 같은 공간 안에서 어떤 이는 휴식을, 또 다른 이는 기쁨을, 혹은 그리움을 느낄 지도 모를 일이다.

 

물질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건축이 궁극적인 목표여서는 안 된다. 그 이후에 만들어져야 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삶이 우리 건축가가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향점이다.(p149)’ 매년 2, 과학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어른이 되어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과학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구나. 건축을 하는 작가 역시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종종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의 본질, 시간의 빠르기, 시간이 연상시키는 이미지, 다른 이들과 공유했던 시간들, 과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영화 필름처럼 펼쳐보곤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간에 대한 생각은 깊이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내게 변화가 일어났다. 공간이 달리 보였다. 전통 한국화에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했다. 작가는 공간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 잉여가 아닌 존재감이다.

건축물 사이로 만들어진 거리를 걸을 때마다, 건축물 안에 소담스럽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들어갈 때마다 공간을 서걱서걱 썰면서 지나가는 듯 얼굴에 와 닿는 공기의 질감이 새삼스러웠다. ‘건축물 앞에는 설명서가 없다. 대신 공간이 말을 한다.(p381)’ 공간이 보였다. 공간이 말을 걸었다. 나를 담은 공간이 새롭게 펼쳐졌다.

 

p225, 마지막 줄 : 창의적이 아닌가? 창의적이지 ~

p354, 4째줄 : 꼭대기기에 서면 꼭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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