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웃 높은 학년 동화 30
박효미 지음, 마영신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나라라 들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던 나라, 인도는. “근데 거기는 자주 씻기 어려워. 벌레도 무지 많고.” 이런! 간절한 바람이 순식간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외출하지 않으면 잘 씻지 않을 정도로 청결을 중요시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맘대로 씻지 못한다는 사실은 마음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상상만 해도 찜찜했다.

일주일간의 블랙아웃이 그려진 동화를 읽으면서 인도를 떠올렸다.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씻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식수뿐 아니라 변기 물도 내리지 못하는 장면이 묘사될 때, 몸에서 작은 벌레가 슬금슬금 기어가는 듯 소름이 돋았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학교일이 대폭적으로 많아졌다. 편리하라고 도입된 기기이니 일이 줄어야 정상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작업으로 채점을 하거나 생활기록부를 쓰던 때보다 일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학년 초와 학년말에 집중적으로 바쁘고 간간이 한적한 시기도 있었건만 지금은 일 년 내내 일이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학교에서 한 시간 정도 정전된 적이 있다. 정적이 감돌았다. 가쁘게 호흡하던 일들이 한순간에 숨을 멈추었다. ‘어둠은 모든 할 일을 삼켜 버렸다.(p37)’ ‘전기가 나가고 나니 별안간 할 일 없는 시간이 용도를 모르는 선물처럼 던져졌다.(p92)’ 빠르게 달리는 기차 속에서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가 싶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니 업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해방감조차 들었다. 삶속에 이런 시간들을 간지처럼 끼워도 괜찮을 듯싶었을 정도로. 전기 없는 시간을 만든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동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블랙아웃은 끝내 미제의 사건으로 마무리되지만 일부 이기적인 인간들의 의도된 행위가 아니었을까 의심할만한 정황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런 와중에도 몰래몰래 자기들끼리 사는 인간들이 있다는 거야.(p187)’ 블랙아웃으로 인해 생필품을 독점으로 공급하게 된 에이마트. 그곳에만 환히 켜진 전기불 앞에 개미떼처럼 줄을 서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체한 것처럼 가슴이 막혔다.

게다가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왕자님도 아니고 현실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비슷한 상황들이라니! 뭉쳐야 힘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장면들은 중간 중간 또 나를 답답하게 했다. 교회 신도들에게만 몰래 주는 물이라든가,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적으라고 종이를 내미는 경찰관이라든가, 아이들에게서 쌀을 빼앗아가는 이웃집 아줌마라든가, 새벽에 몰래 열어 생필품을 비싸게 파는 시장 안 슈퍼라든가. 뉴스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몇몇 사실들을 떠올리니 화가 치밀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동화 밖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일곱째 날에 독점 마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촛불을 생각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처럼 잠잠하다가 순식간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지다가 쓰나미가 될 수도 있거든. 그게 바로 민심이라는 거야.(p104)’ 내내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동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본다.

블랙아웃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2011915일에 전국 대규모 정전사태가 5시간 정도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태양의 흑점 활동이 활발해지면 태양풍 입자가 급증하여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처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인 것이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그려진 블랙아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블랙아웃의 형태든 또 다른 형태로든 답답한 상황들이 현실 속으로 툭 던져질 것 같은 느낌에 며칠 씻지 못한 사람인양 다시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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