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50. 서서히 노안이 나타날 나이. 작은 글씨가 안 보인다는 또래 사람들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라식 수술을 한 사람들은 근시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 노안이 왔다는 증거라던데 요즘 부쩍 멀리 있는 물체가 흐릿한 것을 보면 내게도 드디어 왔구나 싶다. 눈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와 닿을 때마다 언제까지 노트북에 글을 쓰며 지낼 수 있을까 불안하다. 눈이 어리어리해서 책조차 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종종 울적하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p33~34, <천성>)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시를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은 직장일과 집안일로 할애되지만, 퇴근 후나 휴일에는 대부분 글과 함께 보낸다. 절대적으로 적지만 환한 여백으로 채워지며 내 삶을 빛나게 하는 시간이다. 책읽기와 리뷰와 시 쓰기의 시작은 작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우연은 단단한 화장지의 심이 되어 나의 시간을 돌돌 말아가기 시작했다. 10여년이 넘어서자 이 모든 시간들이 필연의 의미를 띄었다. 뭉툭하던 연필 끝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서툴지만 가끔은 삶이 지닌 디테일을 나만의 질감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글이 매력적인 것은 읽는 사람마다 다른 색채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어머니>라는 부제의 2장에서는 생경한 낱말들이 어찌나 많던지. 서문안, 달비, 철기날개, 관사, 숙고사, 자미사, 법단, 양단, 세루, 스란치마, 은조사, 우장, 장무새, 적산, 측천무후, 모본단, 차부, 마메다쿠시. 인터넷 사전을 찾아가며 음미하다보니 종종 걸음으로 촘촘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 부분은 오히려 <가을>이라는 부제가 달린 3장이다. 주변 생명들에 대한 시를 음미하며 나의 어머니를 자주 떠올렸다.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p88, <사람의 됨됨이>) 궁핍하게 살았지만 어머니는 베푸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러운 의미를 지닌 동사로서의 나눔을 알려주신 분이다.

백일장 대회에 나가 <이팝꽃처럼 솔솔>이란 시로 입상을 한 적이 있다. 공양주로 일하시던 어머니께서 절에서 남은 밥을 가져오셔서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어느 날 그 밥이 삭아버려 버렸던 경험에서 만들어진 시이다. 입상 결과가 발표나자 자랑하듯 이메일로 시를 보내드렸다. 내 시를 보고 우셨다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우쭐했다. 으흣~ 드디어 나도 정말 감동적인 시를 쓰게 된 거야 라고. 당신께 내 시는 보다 진한 색채였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생생한 하루. 그게 내 기억의 전부였건만,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던가 보다. 많은 하루들을 모조리 담고 계셨던 당신의 울림은 생각보다 깊었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p106, <>) 그 시절들이 어쩌면 당신께는 한이었던 걸까. 이 시를 읽다보니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든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안과 밖의 묘사가 균형을 이룬다. 내면의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그의 사유는 안으로만 함몰되지 않고 바깥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동양화에서 붓으로 그려지는 대상과 여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감흥을 자아내듯이. 세상을 꼬집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통쾌하다. ‘음식이 썩어 나고/ 음식 쓰레기가 연간 수천 억이라지만/ 비닐에 꽁꽁 싸이고 또 땅에 묻히고/ 배고픈 새들 짐승들/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p113, <까치설>)

둘째, 작가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만의 표현 방식과 그만의 이야기가 담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에 독자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하소설을 쓴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박경리님의 시를 보서 깨닫는다. 당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구나 하고. 당신과 글과 어머니와 가족과 주변과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글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색채를 띤다.

 

나는 아직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두렵다. 언제쯤 되어야 늙어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경지에 오를까.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p16, <옛날의 그 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말이 계속 마음을 두드린다. 이토록 가뿐해 보이는 문장들이 왜 이리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소설 <토지>를 집필한 25년의 세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걸까. 희끗해진 머리. 돋보기를 쓰고 펜을 움켜쥔 채 책 표지 안쪽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노작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p140)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p30, <바느질>) 십여 년이 지난 오늘 노작가의 생애가 기록된 약력을 담담한 마음으로 따라가며 글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제 퀼트. 글을 쓴다는 건 이런 의미일까. 자신만의 글 안에 시간도 꿰고 마음도 꿰며 삶이라는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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