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주 등장하는 접속사가 과속방지턱처럼 걸렸다. 겉도는 묘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직전에 읽은쓰기의 말들의 후유증이 컸나. 깔끔한 일식의 맛이 나던 은유 작가의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맴돌았나보다. 1아프게 짝사랑하라가 끝날 때까지 이 책의 문장들은 설 끓인 김치찌개 맛처럼 마음 언저리를 겉돌았다. 2막다른 골목에 접어들면서 고민했다. 그냥 여기서 멈출까. 첫 번째 에피소드만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어느 거지의 변>은 신의 한 수였다.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담겨 있다. 은행나무를노란 화관으로 표현한 문구가 두 번 나오면서 나의 눈은 다시 날카로워졌지만, 경험담이 많아지면서 눈 끝은 뭉툭해진다. 사고의 폭이 넓어질 기회를 놓칠 뻔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2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놓은 장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 아닌가. 그 마음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북극의 에스키모족도- 알아듣는 만국 공통어이다.(p68)’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느껴진다. 마음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이니.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내 짝꿍은 손이 뭉툭했다. 굉장히 친절하고 마음씨가 고왔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은했던 친구의 미소는 맑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도 인상적이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p104)’순수한 이성적 판단이 담긴 대학생의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무심코 지나치던 사회의 모퉁이를 돌아본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에서는노인과 바다가 등장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나 일상적인 산문에서 공통으로 권장하는 도서가 고전이다. 참 신기하다. 몇 백 년 전에 쓴 글이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종의 어딘가에는 공통된 감성의 스위치가 존재하는 걸까. 고전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풍성해질 것만 같다.

 

3더 큰 세상으로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가, 4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작가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수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기억 상자 속을 여행했다.

<엄마의 눈물>에서는 연탄재를 배경으로 한 어린 시절로 후다닥 타임 슬립을 하였다. 추운 새벽 연탄을 갈던 어머니, 일하러 나가신 사이 연탄을 간답시고 번개탄을 거꾸로 놓고 불이 안 피워진다며 땀 흘리던 기억, 온 집안에 배경음악처럼 자욱하던 연탄가스냄새가 훅 끼얹어졌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 돈이 모아지는 대로 쌀을 한 말씩 사던 날들이 빈번했다. 눈뜰 때마다 선명했을 일상, 그 막막한 무게를 껴안던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셨다.

 

나의 어렸을 때 꿈은 주로어디에 가고 싶다가 많았다.(p124)’<>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던 참이다. ‘엄마는 세계 여행 한군데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디 가고 싶어?’중국에 있는 딸이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 묻는다. 딸에게 답문을 보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이라고. 한동안 잊고 있던 30대의 꿈이 생각났다. 겨울 새벽 2시쯤이었던가. 광해를 피한답시고 아파트 옥상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에 옥상 문을 개방했던 시기였다. 오리온자리 옆에 있던 토끼자리를 맨눈으로 관측해다. 벅차게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때의 열정을 떠올리자 가슴이 뛰었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p135)’작가의 문장 앞에서 오만했던 나를 반성한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 정답을 정해놓고 감히 작가의 글을 채점하려 덤빈 꼴이 아닌가. 글은 곧 삶이고, 모든 삶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을. 표현이 다소 투박하면 어떤가. 삶에서 우러난 진심이 담겨있다면 지금처럼 마음을 출렁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 생애 단 한번이란 책의 제목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목을 다시 음미하며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일렁이는 마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책이다. 뚝배기 같은 글이랄까. 작가만의 삶이 글 안에 담겨 서서히 온도를 높이다 불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 끓게 되는. 그녀만의 삶이 전해주는 맛을 느끼며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덩달아 따스해지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p51, 1째줄, 북극성은 1100광년이래. 너무 멀어서 기록마다 편차가 있지만, 북극성까지의 거리는 약 400광년으로 알려져 있다.(참고: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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