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같은 사람,
성격이 비슷한 사람,
학력이 같은 사람,
혈액형이 같은 사람,
별자리가 같은 사람..

우리는 여러가지 연관성과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고,
이런 면에서 같거나 비슷한 사람은 부지기 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소울 메이트가 될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게 왜이리 어려운가?

나이따윈 상관 안한다.
성별 또한 묻지 않는다.
외모를 중시하지 않으며,
재력 역시 무시하는데도,,

함께 공감하고 느끼고 정신의 친구를 갖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친구들,
이성 친구들,
취미 맞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 사이에 소울 메이트의 자리가 남아 있어
바람이 솔솔~ 들어간다.

도당췌 어딨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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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자는 도서관을 찾았다.

오후 한시.
한산할꺼라고 상상한 도서관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었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자가 상심해 누워 있을때,
다른 사람들도 누워 있을거라 생각한다.

여자가 외로울때,
다른 누군가도 외로워하겠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여자가 책을 보고 있을때,
그녀가 모르는 누군가도 역시 책을 보고 있었다.

여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남을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여자에게 들었다.

여자가 웃고 있으면,
다른 누군가도 웃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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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0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같기도 하고...^^

motoven 2004-05-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란 생각은 못했는데요? ㅋㅋ
그냥 도서관을 찾은 느낌을 편하게 적어봤어요. ^^
 

 

난 첫사랑을 이뤘어요........
당신이 내게 첫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지.
내 몸과 내 마음의 모든 기쁨이 당신에게만 열려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당신뿐이지.

그날, 당신의 숨소리가 기억나네.
그 가쁘던 숨소리.. 세상을 다 삼켜버릴 듯 하던, 그 거센 숨소리가...


윤이 알프스 근방으로 되돌아온 것은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밤 늦은 시간, 모텔 바깥에서 바라보는 러브호텔 밀집지역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동네처럼 보였다.

건물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기교들을 뽐내 고풍적이거나 초현대적으로 지어져 있었고
하나같이 다 밝은 네온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밝은 네온빛 사이로, 멀리 언덕 위 알프스의 간판도 보였다.
1년 전 건물 개축을 하면서 사장은 엄청난 돈을 들였으나, 아무래도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사장은 네온도 꼬마전구가 반짝이는 것 정도로만 만족했다.

그러나 윤에게는 언덕 위 그 간판이 정겨웠다.
윤은 언덕 아래에서 그 정겨운 간판을 올려다보며 한동안을 망설였다.

아직은 사장을 면대할 용기가 나지 않는 듯싶었다.
윤은 한숨 끝에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포장마차가 보였고 윤은 저녁을 거른 것을 그때서야 생각해 냈다.

갈 곳이 생긴 것이 다행이라는 듯 윤은 서둘러 포장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요기를 하면서 사장에게 빌 용서의 말을 궁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포장마차 안은 이제 곧 러브호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될 쌍쌍의 남녀들이 마시는
술 냄새와 안주 냄새로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윤은 포장을 들추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빈자리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그 포장마차 안에 혼자인 손님은 윤과, 안주 진열대 앞에 의자 하나만 차지하고 앉아
바쁜 주인에게 자꾸만 술을 권하고 있는 늙은 남자 한 사람뿐이었다.

늙은 남자는 가뜩이나 바빠서 단무지 한 접시 더 달라는 소리조차 성가실 판인 주인에게,
듣거나 말거나 장광설을 늘어 놓고 있는 중이었다.

웅엉거리듯 울려오는 그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찢어질 듯한 배고픔에 관한 이야기이다가
난데없이 연애 시절의 어떤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불효하는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이다가 정치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윤이 가락국수 한 그릇을 다 먹고 지갑에서 돈을 꺼낼 즈음에,
그 늙은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돈을 꺼내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양반...... 그럼........ 사랑은.........도대체 사랑은 어디 가서 하라는 거요?"

그 늙은 남자가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윤은 그 남자가 바로 사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은 지갑에서 꺼낸 지폐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서둘러 사장의 뒤를 쫓아 포장마차를 나섰다.
어쩌면 잘못을 빌 기회는 지금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장님. 저 잘못했어요..
사장의 뒤를 쫓는 바쁜 걸음과 함께 윤의 입술도 바쁘게 달싹 거렸다.
당장 갈 데가 없어요. 그러니 일하게 해주세요...

웃은 건 정말 잘못했어요....
사장은 취한 사람 특유의 걸음걸이로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러나 윤은 마음과는 다르게, 선뜻 사장을 불러 세울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 정도의 말로는 사장의 화를 풀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내게는 병든 남편이 있어요.
그러나 한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청년이었지요.
그의 어깨와 등은 늘 까맣게 타 있고, 또 늘 꺼풀이 일어나 있었지요.

나는 그의 어깨에 일어난 꺼풀을 가만가만 뜯어내며,
그의 비린 땀냄새를 맡던 것을 기억한답니다.

그때 나는 그를 사랑했지요. 그는 내 첫사랑이었거든요..
그러나 이제 나는 그에게 돌아갈 수가 없어요.
돌아가는 순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거든요.

나는 지쳤어요. 3년이면 돌부처도 돌아앉을 만한 시간이에요.
내가 그의 몸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이제 노동에 지쳐 있던 그의 검붉은 어깨 위에
일어나 있던 꺼풀 정도거든요.

매일매일 내가 벗겨내면 또 새살로 돋아 오르던..
그러나 이제는 아주 사라져버린,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사장님........ 날 알프스에 있게 해주세요.
그를 아주 버릴 수 있게, 사장님, 내게 좀더 시간을 주세요.

사장은 대취한 것 같았다.
그의 뒤를 쫓고 있는 한 여자의 마음속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든 간에,
그는 흔들흔들 걸으며 홀로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 가서 하냐구........도대체 어디 가서....."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길 한복판에 서서, 주먹을 흔들며 이렇게 소리 지르기도 했다.

"뭐가 문제라는 거야? 딴 데도 아니고 꼭 내 집에서 새끼를 까는 것들도 있는데!
딴 데도 아니고 꼭 내 집이어야만 한다는데!
그놈들은 그럼 어디로 가라는 거야. 도대체 어디로!"

윤은 더 이상 사장의 뒤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사장은 길을 건너고 있었고, 사장과 윤 사이로 승용차 두 대가 연거푸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사장은 이미 차도를 다 건너 언덕 위의 알프스 가는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또 무엇이 복받치는가.
느닷없이 허공으로 주먹을 흔들어대기도 하면서.

사장의 뒷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윤은 그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사장하고만 마주치면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오곤 하던 웃음은,
슬픔으로 인해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윤은 처음으로,
자신이 어쩌면 저 사람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다음번에 최종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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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장이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실은 청소는 미뤄둔 채 러브체어 위에
올라앉아 있던 그녀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그와 똑같은 자세로 사장이 그 위에
올라앉아 있었을 때, 그녀가 터뜨렸던 웃음소리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가슴속으로 고여들기 시작한 웃음의 충동은 이미 속수무책이었다.
어금니까지 앙다문 윤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이봐, 아줌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사장이 기어코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윤의 앙다문 입술 사이에서 기어코 으흑, 하고 울음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뭐야? 아줌마, 우는 거야?"
사장이 놀란 듯 목소리를 낮춰 물었으나, 느닷없이 쩔쩔매는 듯한 사장의
그 목소리는 윤의 웃음보에 불을 질러버렸다.

으흑, 했던 그 소리가 울음소리가 아니라 웃음소리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장이 책상 위의 무언가를 집어던지는가 싶더니
윤의 뒤쪽에서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알프스 산의 풍경화를 담고 있는 거대한 액자가 산산조각이 되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곳, 지구  반대편의 산과 구름과 하늘은,
순식간에 잘게 깨진 유리조각이 되어버렸다.

윤은 전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
그 종점에서 다시 표를 끊어 또다시 전철에 올라탔다.

사장실에서 쫓겨나온 후, 윤은 다른 직원들의 충고대로 잠시 사장의 눈을 피해 있기로 했다.
세탁실이나 청소원 대기실에 숨죽여 있더라도 사장이 일부러 그녀를 찾아다닐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모텔 밖으로 나와 있는 게 좋겠다 싶었다.

사장의 화가 어느 정도 풀리기까지를 기다려 그녀는 사장에게 잘못을 빌 작정이었다.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럴려면 일자리가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잠자리가 제공되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모텔에서 쫓겨난다면 당장 그녀에게 갈 곳이라고는 집밖에 없었다.
남편이 누워있는 집, 늙은 시어머니가 지키고 있는 집...

그녀에게 집은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그녀가 돌아가지 않고 있는 한은 언제든지.
그러나 돌아가는 순간부터는 집은 '떠나야할 곳'이 되었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떠나야 할 곳.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할 곳...
그러나 윤에게는 아주 떠나야 할 곳 같은 데는 없었다.

윤에게는 친정이라 이름 붙일 만한 데가 없었다.
부모는 그녀가 어려서 세상을 떴고,
그녀를 보살피던 할머니도 그녀가 어른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을 버렸다.

남편을 만나기까지 그녀는 늘 혼자였다.
남편이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그녀가 감동했던 것은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고
널 위해 평생 살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자.
남편에게서 그 말이 떨어지지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짐을 쌌다.
우리집,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에게도 집이 생긴 것이었다.
내 집, 내 방이 아니라 우리 집, 말이다.

여보, 그날이 생각나네.
우리 집의 문을 처음 들어서던 날..
나는 당신이 내게 말했던 우리 집이란 게 그렇게 낡고 누추하다는 데에 놀라
입이 그만 딱 벌어졌었지.

손바닥만 한 마당에는 철사줄로 엉겨놓은 풀라스틱 함지박에 구정물이 고여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온갖 고철덩어리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무슨 사과궤짝들은 그렇게 많았을까...

그 사과궤짝 속에는 10년 20년도 더 되었을 것 같은 신발들이 가득 들어 있었지.
당신 어머니는 무엇이든 내다 버리지를 못하는 사람이라,
그 좁은 마당은 쓸모없는 물건들의 쓰레기장 같아 보였어.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니까.

겨우 두 칸뿐인 방은 오죽했을까.
벽지는 비얼룩으로 젖어 다 일어나 있고,
그 틈틈으로 쏟아져 내린 쥐똥들이 무더기였어.

방 안에도 사과궤짝들이 있었지.
한 궤짝 안에는 양말, 또 한 궤짝 안에는 속옷, 또 한 궤작 안에는 바지, 이런 식으로.

어머니는 살림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
설거지한 그릇하고 수저조차도 가지런히 놓치를 못하는 양반이었으니까.

방 닦은 걸레도 마당의 더러운 함지박 안에 툭 던져놓고 한나절이나 잊어버리고 있고,
반찬그릇 덮는 뚜껑도 한번 제대로 귀 맞춰놓는 걸 못 봤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당신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평생 바깥일만 했지 집안일에는 시간 팔 겨를이 없었던 양반이라고,
당신이 변명처럼 말을 할 때 어머니는 도끼눈이 되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

당신 알아? 그날, 내가 우리 집엘 처음 가던 날,
당신이 잠깐 화장실에 가고, 내가 쭈뼛쭈뼛 어머니를 도울 양으로 부엌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내 팔뚝을 할퀴면서, 난데없이 "요년!"이라고 소리를 쳤어.

당신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 건,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냥 단 한 번 "요년!" 그 소리 뿐이었으니까.

팔뚝의 할퀸 자국도, 아마 어디서 이미 생겨난 것일 거라고 난 그냥 그렇게 믿어버렸지 뭐야.
그러나 놀란 마음이 가시지를 않아서 우리 지에서 처음 먹던 밥,
나는 그만 국그릇을 엎어버렸지.

여보, 그래도 난 그날 얼마나 행복했던지..
결혼식도 안 올리고, 혼인신고도 안 하고, 심지어는 인사 한번 제대로 안 올린 시어머니
사는 집을, 거기가 이제부터 우리 집이라고 짐부터 싸가지고 들어가던 날,
여보, 나는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던지..

당신 기억나? 그날 밤, 여인숙도 여관도 아닌 우리 집 방에서,
그래도 이불 하나는 정갈했던 방 안에서 당신 품에 안겨 내가 했던 말...

몸은 다 죽었어도, 정신은 나날이 맑은 당신,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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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체어가 각 객실에 배치된 이후, 청소원들은 걸레 하나씩을 들고
그 새로운 물건을 깨끗하게 닦기 위해 각 객실로 들어갔다.

트럭 기사의 말처럼 설명서가 한 장씩 붙어 있었다.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그 물건 위에 올라앉아 연출할 수 있는
각종의 체위를 그려놓은 그림 설명서였다.

윤은 옆방에서 울려오는 다른 청소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그림 속의 체위들을 살펴보았다.

사장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웃던 때와는 다르게,
윤의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 같은 게 퍼졌다.

그림들은 기괴하게 보이는 대신 유쾌하게 보였다.
윤은 걸레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러브체어의 여기저기를 툭툭 두드려보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올라앉아 무슨 요동질을 치든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할 물건이었다.

툭툭 두드려보다가 어깨에 억센 힘을 주고 물건의 받침대를 꾸욱 눌러보기도 했다.
러브체어는 한 여자의 팔힘 정도는 능히 받아낼 수 있다는 듯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도 불안한 것처럼 윤은 조심스럽게 체어 위에 한 발을 올려놓아 보았다.
꿋꿋했다. 마치 오래전 남편의 허벅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윤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한 발이 마저 체어 위에 올라갔고, 잠시 후 그녀는 받침대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넓게 벌려 발판 위에 올려놓았다.

편안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윤은 그렇게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선가 복숭아 냄새가 퍼져오는 것 같았다.

지방의 공사현장을 떠돌며 중장비를 몰던 남편이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봉투 속의 복숭아.....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윤이 기겁을 하며 보름 만에 만난 남편을 피해 도망쳤고
남편은 웃음을 터뜨리며 어린 소년처럼 그녀를 쫓아다녔다.

잘 익은 복숭아 냄새가 온 마당을 가득 채웠다.
윤은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 복숭아를 씻는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마당 수돗가의 큰 함지박에 복숭아 털이 둥둥 떠다녔다.
그러나 남편의 손이 복숭아를 몇 번 문지르자, 복숭아는 곧 매끈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뿌옇게 떠올랐던 털들은 말끔히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윤은 연신 팔과 목을 긁어대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남편의 뒷모습을 놓칠 수가 없어 끝내 외면하지 않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복숭아를 씻는 내 남자..... 복숭아를 씻는 내 남자....
남편이 불현듯 어깨를 돌려 잘 씻은 복숭아 하나를 마루 위의 그녀에게 던졌다.

윤이 엉겁결에 그 복숭아를 받아들고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윤의 입가로 손톱만 한 크기의 두드러기들이 툭툭 불거져 올랐다.

그래도 행복한 그녀의 웃음...
복숭아 과육을 입가에 잔뜩 묻히고 두드러기가 돋아 오른, 한 여자의 행복에 겨운 미소...

그날 밤, 남편은 그녀를 끌어안고 절정에 겨운 채 물었다.
하고 싶었지? 너도 하고 싶었지?

그때 그녀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가려워, 여보.......
내 생의 이 숨 가쁜 순간이 내 몸속 어딘가를 자꾸 가렵게 하나 봐.
여보, 나를 좀 긁어줘. 복숭아 털이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어요.

제발, 여보, 나를 좀 긁어줘. 털 벗지 못한 복숭아 같은 내 몸......
내 몸을 힘차게 씻어 싱싱하고 매끈하게 만들어줘요.

- 그래........무엇이든 하렴.
러브체어 위에 다리를 넓게 벌리고 편안하게 누워, 윤은 홀로 중얼거렸다.

- 살아 있는 몸일 때, 너희들, 무엇이든 하렴...... 그렇게 하렴......

그렇게 중얼거리고, 홀로 미소 짓고, 눈을 뜨자마자 윤은 기절을 할 듯 놀라
의자 위에서 나동그라지듯이 떨어져 내렸다.

객실 입구에서 한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이었다.

사장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는데,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아줌마는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게 요지였다.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사장과 눈을 맞추고 있을 수가 없어
윤은 사장실의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장실은 깨끗하지 않았다.
객실 청소에 대해서는 그렇게 까탈을 부리면서도 정작 자기 방의 청결 상태에 대해서는
무심한 사람이 사장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깨끗한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자기 방은 하루 묵어 가는 방이 아니니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고.

머리카락도 떨어져있고 담뱃재도 묻어 있고 소파에서는 땀 냄새도 적당히 풍겨야 한다고.
사장의 그런 요구가 청소원들에게는 더 힘겨웠다.

사람 냄새가 날 만큼 적당히 지저분하다는 거은 어떤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꽁초 쌓인 재떨이를 비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고
비운 재떨이를 닦아놓지 않을 수도 없었는데, 그때마다 청소원들은 그것이 해도 좋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어 공연히 안절부절을 했다.

소파의 쿠션을 털 때도, 책상 위를 마른걸레로 닦을 때에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윤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장실 바닥 카펫에는 담배 자국이 보였다.
며칠 전 청소를 할 때에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마 사장은 사장실에 있는 동안에도,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장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윤의 시선이 언뜻 사장의 얼굴로 가 닿았는데
마치 불에 덴 듯이 그 시선은 얼른 다시 바닥으로 떨궈져 내렸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사장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참을 수 없는 것은 웃음이었다.

물레방앗간을 외치던 그의 새된 음성이 떠오르고, 한낮의 모텔 마당 한복판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러브체어 위에 올라앉아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럼 사랑은 어디에서 하라는 거냐는 그의 탄식이 떠오르고..
윤은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6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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