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체어가 각 객실에 배치된 이후, 청소원들은 걸레 하나씩을 들고
그 새로운 물건을 깨끗하게 닦기 위해 각 객실로 들어갔다.

트럭 기사의 말처럼 설명서가 한 장씩 붙어 있었다.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그 물건 위에 올라앉아 연출할 수 있는
각종의 체위를 그려놓은 그림 설명서였다.

윤은 옆방에서 울려오는 다른 청소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그림 속의 체위들을 살펴보았다.

사장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웃던 때와는 다르게,
윤의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 같은 게 퍼졌다.

그림들은 기괴하게 보이는 대신 유쾌하게 보였다.
윤은 걸레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러브체어의 여기저기를 툭툭 두드려보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올라앉아 무슨 요동질을 치든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할 물건이었다.

툭툭 두드려보다가 어깨에 억센 힘을 주고 물건의 받침대를 꾸욱 눌러보기도 했다.
러브체어는 한 여자의 팔힘 정도는 능히 받아낼 수 있다는 듯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도 불안한 것처럼 윤은 조심스럽게 체어 위에 한 발을 올려놓아 보았다.
꿋꿋했다. 마치 오래전 남편의 허벅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윤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한 발이 마저 체어 위에 올라갔고, 잠시 후 그녀는 받침대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넓게 벌려 발판 위에 올려놓았다.

편안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윤은 그렇게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선가 복숭아 냄새가 퍼져오는 것 같았다.

지방의 공사현장을 떠돌며 중장비를 몰던 남편이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봉투 속의 복숭아.....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윤이 기겁을 하며 보름 만에 만난 남편을 피해 도망쳤고
남편은 웃음을 터뜨리며 어린 소년처럼 그녀를 쫓아다녔다.

잘 익은 복숭아 냄새가 온 마당을 가득 채웠다.
윤은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 복숭아를 씻는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마당 수돗가의 큰 함지박에 복숭아 털이 둥둥 떠다녔다.
그러나 남편의 손이 복숭아를 몇 번 문지르자, 복숭아는 곧 매끈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뿌옇게 떠올랐던 털들은 말끔히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윤은 연신 팔과 목을 긁어대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남편의 뒷모습을 놓칠 수가 없어 끝내 외면하지 않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복숭아를 씻는 내 남자..... 복숭아를 씻는 내 남자....
남편이 불현듯 어깨를 돌려 잘 씻은 복숭아 하나를 마루 위의 그녀에게 던졌다.

윤이 엉겁결에 그 복숭아를 받아들고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윤의 입가로 손톱만 한 크기의 두드러기들이 툭툭 불거져 올랐다.

그래도 행복한 그녀의 웃음...
복숭아 과육을 입가에 잔뜩 묻히고 두드러기가 돋아 오른, 한 여자의 행복에 겨운 미소...

그날 밤, 남편은 그녀를 끌어안고 절정에 겨운 채 물었다.
하고 싶었지? 너도 하고 싶었지?

그때 그녀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가려워, 여보.......
내 생의 이 숨 가쁜 순간이 내 몸속 어딘가를 자꾸 가렵게 하나 봐.
여보, 나를 좀 긁어줘. 복숭아 털이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어요.

제발, 여보, 나를 좀 긁어줘. 털 벗지 못한 복숭아 같은 내 몸......
내 몸을 힘차게 씻어 싱싱하고 매끈하게 만들어줘요.

- 그래........무엇이든 하렴.
러브체어 위에 다리를 넓게 벌리고 편안하게 누워, 윤은 홀로 중얼거렸다.

- 살아 있는 몸일 때, 너희들, 무엇이든 하렴...... 그렇게 하렴......

그렇게 중얼거리고, 홀로 미소 짓고, 눈을 뜨자마자 윤은 기절을 할 듯 놀라
의자 위에서 나동그라지듯이 떨어져 내렸다.

객실 입구에서 한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이었다.

사장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는데,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아줌마는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게 요지였다.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사장과 눈을 맞추고 있을 수가 없어
윤은 사장실의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장실은 깨끗하지 않았다.
객실 청소에 대해서는 그렇게 까탈을 부리면서도 정작 자기 방의 청결 상태에 대해서는
무심한 사람이 사장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깨끗한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자기 방은 하루 묵어 가는 방이 아니니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고.

머리카락도 떨어져있고 담뱃재도 묻어 있고 소파에서는 땀 냄새도 적당히 풍겨야 한다고.
사장의 그런 요구가 청소원들에게는 더 힘겨웠다.

사람 냄새가 날 만큼 적당히 지저분하다는 거은 어떤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꽁초 쌓인 재떨이를 비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고
비운 재떨이를 닦아놓지 않을 수도 없었는데, 그때마다 청소원들은 그것이 해도 좋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어 공연히 안절부절을 했다.

소파의 쿠션을 털 때도, 책상 위를 마른걸레로 닦을 때에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윤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장실 바닥 카펫에는 담배 자국이 보였다.
며칠 전 청소를 할 때에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마 사장은 사장실에 있는 동안에도,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장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윤의 시선이 언뜻 사장의 얼굴로 가 닿았는데
마치 불에 덴 듯이 그 시선은 얼른 다시 바닥으로 떨궈져 내렸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사장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참을 수 없는 것은 웃음이었다.

물레방앗간을 외치던 그의 새된 음성이 떠오르고, 한낮의 모텔 마당 한복판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러브체어 위에 올라앉아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럼 사랑은 어디에서 하라는 거냐는 그의 탄식이 떠오르고..
윤은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6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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