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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기쁨"은 금정연과 정지돈이 함께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크게 1.2015년 여름~ 2016년 여름까지 "작가세계" 잡지에 연재했던 소설에 관한 대담 2. 오한기의 "의인법"과 이상우의 "프리즘"에 대한 해설을 재수록(이 부분은 재탕이라고 해야하나) 3. 경기문화 재단 웹진 '톡톡 talk talk'에 연재했던 페이퍼 시네마 '펫 시티'의 일부와 그에 대한 코멘터리로 이루어져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대담/해설/페이퍼 시네마(+코멘터리)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것이다. 대담이면 대담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형식주의자인 나는 찝찝했다. 왜 이런 구조가 된 것인가 이것은 마치 만화가들이 단행본을 낼 때 모자란 페이지 수를 데뷔 때의 단편으로 채우는 것 같은 것일까.. 알 수는 없고 특별히 알 이유도 없다. 



- 한국 소설을 누가 읽지? - 

  어문학과를 나는 늘 소설을 누가 읽을까 생각해왔다. 삼성의 갤럭시가 얼마나 팔렸나는 기사에서 볼 수 있지만 책이 얼마 팔렸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어째서??? 출판사도 기업인데 판매량 체크는 할 것 아닌가. 알라딘에서 판매지수를 보면 감이 올까? 물론 종종 유명 작가가 이만큼이나 팔았다고 기사가 나오기는 하는데 그 수는 영화 천만 관객에 비하면 발가락 정도의 수치다. 이광수의 오빠 부대가 있었던 시절이 있다고 하지만(아직도 존재한다고 한다...) 지금 와서 소설은 약간 LP판 같은 게 아닐까... 

  하지만 거의 모든 학교에는 국문과 혹은 문창과가 있다. 없어지는 추세인 것 같지만.. 그럼 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지 않을까? 국문과는 "국어국문"의 줄인말이기 때문에 크게 어학/문학으로 나뉘고 어문학과인 나는 어학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졸업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반대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만... 


  "문학의 기쁨"은 금정연과 정지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아할 수밖에 없고 한국 현대 문학, 특히 소설과 비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국문과 사람들이 알아듣는 국문과 개그/드립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자면 '시흥의 밤'에서의 사사키 아타루에 대한 것인데


무아지경에 빠져 랩을 하는 사사키

의식이 절정에 오르는 순간,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손목을 자른다.

잘린 손목에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피!!

('시흥의 밤' 186)


  설명하면 개그가 아니라고 하지만 설명을 해보자면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풉하고 웃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라 모든 드립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패러디 만화의 모든 패러디를 잡아낼 수 없지 않은가. 최대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봤지만 위상수학이 나올 때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네이버의 설명이 너무 불친절한 것도 있었다. 저자와의 만남에 갔다면 설명해달라고 했을 텐데....

  뒷표지에 본문 인용이 있는데 가장 대담스러운 부분을 인용한 것 같다. 그러나 대담에서도 갑자기 금정연은 변기를 업고 나타나서 곤란한 부분을 말할 때 변기물을 내려버린다.(나중에는 그냥 재미로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의 사정 때문인가? (미국은 땅이 넓어서 서로 디스를 해도 만나려면 한참 걸리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조심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싶으면서도 어떤 소설은 재미가 없다거나 별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두 분의 대담집을 계속 단행본으로 내주거나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아날리얼리즘 vol.2를 빨리 내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출판되면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소설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이 책 사진도 들어 있고 무려 칼라다!! 호화로워..!
(루페는 문학동네 임프린트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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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집착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내가 책을 사는 이유가 읽기 위해서인지 쌓아두기 위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신권들이 한 권 두 권 밀리는 마당에 기다리던 황정은 작가의 소설집이 나왔고 샀고 쌓여있는 책들에게 살짝 미안했지만 바로 읽었다. 

  내가 이 책을 기다린 이유는 이 책에 '상류엔 맹금류'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2014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에도 실렸던 이 소설은 신형철이 극찬한 소설로 2013의 최고의 소설이라고 했다는데(알라딘 책 설명에도 나와있다.) 2013년에 내가 모든 단편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생각했고 그 근처에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좋았다. 물론 이전에도 황정은 소설을 좋아했지만 '상류엔 맹금류'이후로 황정은은 "믿고 보는 황정은"이 됐다고 해야할까.


  황정은 작가는 자신의 소설집에 작가 소개랑 해설을 빼고 싶다고 했었던 것 같다. 과연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 이 책에는 작가 소개가 없고(물론 한국 소설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에게 그녀의 이름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름이 되버렸다.) 해설도 없다. 표지색도 무채색이다. 제멋대로의 상상이지만 사진과 뒷부분의 본문 인용도 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책의 물성도 그렇고 문체도 그렇고 "아무도 아닌"이라는 제목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건조하다. 고통이 존재하지만 그 고통을 삼키는,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참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게 취급당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 소설 속의 사람들이 외롭게, 간신히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파씨의 입문"도 읽었기 때문에 '웃는 남자'를 봤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한 언급은 참는다...나만 놀랄 수 없다.. 물론 미리 읽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디디의 우산'을 떠올리면 "아무도 아닌"의 세계는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런데 내가 본 황정은의 소설들 중에서 "아무도 아닌"을 보고 가장 많이 웃었다. 말장난 같은 것도 많았고 부조리와 아이러니에 기반한 웃음이라고 해야하나.. 이런 식이다. 다음은 백화점 판매원인 화자가 매장 매니저에게 듣는 말과 그에 대한 반응이다. 


게다가 자기야, 나는 무시당하는 쪽도 나쁘다고 생각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지. 존귀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나 진정으로 당하는 거야 무시를

(중략)


자존, 존귀, 귀하다는 것은, 존, 존나 귀하다는 의미입니까.('복경' 202)


  황정은의 소설을 처음 본다는 사람에게 "백의 그림자"를 입문작으로 추천했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아닌"을 추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언어학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황정은 작가의 문체 좀 분석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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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나왔다. 문학 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 나는 이 작품집을 꽤나 고대하는 편이다.

 

  문학계의 여러 일을 반영하듯, 이번 작품집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휘두르는 성폭력과 관련된 소설이 세 편 있었고 레즈비언 커플을 다룬 두 편의 소설이 있었다. 


  단편만 모아둔 것이 아니라 단편-단편에 대한 작가의 말(작가 노트) - 평론가 해설로 이루어진 점이 좋다.

이번에는 작가 노트에 인상적인 말이 많았다. 내년도 기쁘게 기다리겠다. 실린 작품에 대한 짧은 정리를 해본다.


임현 '고두'

  윤리 과목을 맡은 남자 선생과 학교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여학생 연주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자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읽게 되는 소설이다. 그래서 좋은 의미로 찜찜하고 불편하다.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어릴 때 작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강윤희가 병에 걸린 작은 아버지의 아들을 잠시 자기 집에 맡게 된다. 

  이전에 빨간 책방에서 "목련 정전"의 일부를 작가가 낭독한 적이 있다. 그 때 소설을 들으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촘촘하게 잘 구성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의 이름이 초반에 쏟아지기 때문에 고유명사에 약한 나는 정신차리고 읽어야 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이 담담하게 툭 던져진다. 그 부분이 나를 상당히 긴장시켰다. 언제 이상한 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공포영화를 보듯이.

 

김금희 '문상'

  희극배우의 연극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송"이 부친상을 당한 희극배우를 방문하러 동대구로 가는 이야기이다.

  '너무 한낮의 연애'도 그렇고 작가에게 연극이란 무엇일까? 친하지도 멀지도 않은 민망한 인간관계의 묘사가 좋았다.


백수린 '고요한 사건'

  서울의 낡은 동네로 이사한 소녀의 청소년기를 보여준다. 

  2010년도의 중산층 여성의 유년기-성장 소설이라고 해야할까. 해설 부분에 엄마의 말뚝과 비교하는 부분이 있다. 

  쉽사리 결론내지 않으려는 마지막 부분이 제일 좋았다. 주인공이 또 보고 싶다. 연작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이미 되어있을지도..)


강화길 '호수-다른 사람'

  '나'는 내키지 않지만 민영의 남자친구와 호수를 방문한다. 민영은 호수 근처에서 사고를 당했고 의식 불명의 상태다.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나'가 수상쩍은 민영의 남자친구에게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런 감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이 소설의 핵심은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해요?"라고 생각한다.


최은영 '그 여름'

  18세 때부터 사귄 이경과 수이. 둘 다 여자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경은 수이에게 점점 거리감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지인이 "그냥 최은영 소설 같아요.."하며 기대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도 좋았다!! 오래된 관계의 헤어짐에서 오는 고통스러움이 절절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었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와 같은 문장을 쓰는 작가를 나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한지와 영주'에서도 그랬듯이 최은영 작가의 인물들은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사람들이다.


천희란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효주"와 "선생님"의 편지로 흘러가는 소설이다. 

  그야말로... 문학 공부할 때 잘 등장하는 "서간체 소설". 형식의 이점을 너무나도 잘 이용하고 있다. 선생님은 (내가 읽어본 소설 기준으로) 전무후무한 인물이라 매력적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구는 역시 "이 모든 게 진심이니까"가 아닐까? 

  작가의 말에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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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관광지를 방문할 때,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쇠락한 것도 모자라 정체 불명의 것들이 모여 서로 어색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관광지를 구성하는 것들이 나에게

"이거 이렇게 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부끄럽다. 관광지에 오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건 나인데 창피한 건 왜 내 몫인가. 자동으로 세금의 낭비도 떠오르기 때문에 입맛이 씁쓸해지고, 그 공간이 미워지기까지 한다.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타워는 쇠락하였고, 이상한 전시물이 있고, 황폐하다. 접근성도 나쁘다. 그러나 저자는 나와 반대로, 이런 상황을 즐거워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차피 타워는 쓸데없는 장소이고, 그 쓸데없는 부분이 저자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타워가 왜 좋은지 열심히 설명한다. 타워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깊고 다정하여 나도 모르게 설득된다. 개성적인 표현도 재미를 준다. 여기 등장하는 타워뿐 아니라, 그동안 나에게 슬픔을 주었던 쇠락한 관광지에 방문해 보고 싶다.

  책의 물성이 마음에 든다. 판형도 좋고, 종이도 좋고 무려 글씨 크기와 자간도 마음에 든다. 다만 관련된 사진을 보려면 본문을 좀 지나쳐서 봐야한다. 본문에 맞는 사진이 바로 근처에 붙어있지 못하여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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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줌파 라히리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도서관에서 운이 좋아 그녀의 신간을 빌리게 되어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과정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자신과 생소한 언어를 배운 소설가가 그 언어로 소설까지 썼다고 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탈리아어는 그녀의 모국어가 아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영어로 소설을 썼고, 퓰리처 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미국 토박이도 아니다. 그녀의 이름에서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줌파 라히리는 이민자의 딸이다. 그녀의 부모는 집안에서 벵골어를 쓴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디아스포라에 대해 정의를 내린 뒤,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 조국, 고국, 모국이 분열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란 폭력적으로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과 그 후손들을 지칭한다. 또한 조국은 선조의 출신국이고 고국은 자신이 태어난 곳, 모국은 자신이 국민으로 속해있는 나라이다. 위키피디아를 잠시 참고해보니 그녀의 부모는 서 벵골에서 런던으로 이주했고, 줌파 라히리를 낳았다. 그 후 그녀가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녀의 조국은 인도이고, 고국은 영국, 모국은 미국이다. 상까지 받은 소설가라 미국의 언어에 익숙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는 언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줌파 라히리는 오랫동안 자신이 벵골어와 영어 사이에서 떠도는 느낌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외부에 언제나 있다고 생각한다."(42) 부모의 언어도, 사는 곳의 언어도 아니었던 이탈리아어는 그녀의 새로운 도피처인 동시에 얼기설기한 무기였다.

  그녀가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된 과정은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했구요.." 같은 느낌이고, 배운 계기는 계시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서술된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을 꿰뚫고 있는 호수의 비유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뜬구름 잡는 듯 한 부분이 있다. 오히려 에세이보다 짧은 소설 두편이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변화'에서 스웨터로 보여주는 언어에 대한 은유는 굉장히 세련되어서 감동을 주었다. 이 소설 하나만으로도 이 작은 책은 가치가 있다. 그녀의 다른 소설로 가는 마중물이 될 것 같다.

  표지가 예쁘고 얇고 딱딱하다. 문고본처럼 나왔어도 좋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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