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도서관에서 운이 좋아 그녀의 신간을 빌리게 되어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과정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자신과 생소한 언어를 배운 소설가가 그 언어로 소설까지 썼다고 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탈리아어는 그녀의 모국어가 아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영어로 소설을 썼고, 퓰리처 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미국 토박이도 아니다. 그녀의 이름에서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줌파 라히리는 이민자의 딸이다. 그녀의 부모는 집안에서 벵골어를 쓴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디아스포라에 대해 정의를 내린 뒤,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 조국, 고국, 모국이 분열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란 폭력적으로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과 그 후손들을 지칭한다. 또한 조국은 선조의 출신국이고 고국은 자신이 태어난 곳, 모국은 자신이 국민으로 속해있는 나라이다. 위키피디아를 잠시 참고해보니 그녀의 부모는 서 벵골에서 런던으로 이주했고, 줌파 라히리를 낳았다. 그 후 그녀가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녀의 조국은 인도이고, 고국은 영국, 모국은 미국이다. 상까지 받은 소설가라 미국의 언어에 익숙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는 언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줌파 라히리는 오랫동안 자신이 벵골어와 영어 사이에서 떠도는 느낌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외부에 언제나 있다고 생각한다."(42) 부모의 언어도, 사는 곳의 언어도 아니었던 이탈리아어는 그녀의 새로운 도피처인 동시에 얼기설기한 무기였다.

  그녀가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된 과정은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했구요.." 같은 느낌이고, 배운 계기는 계시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서술된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을 꿰뚫고 있는 호수의 비유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뜬구름 잡는 듯 한 부분이 있다. 오히려 에세이보다 짧은 소설 두편이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변화'에서 스웨터로 보여주는 언어에 대한 은유는 굉장히 세련되어서 감동을 주었다. 이 소설 하나만으로도 이 작은 책은 가치가 있다. 그녀의 다른 소설로 가는 마중물이 될 것 같다.

  표지가 예쁘고 얇고 딱딱하다. 문고본처럼 나왔어도 좋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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