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엽기인물 세계사
호리에 히로키 지음, 이강훈 그림,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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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영웅으로 칭송하고 위인으로 존경하던

인물들의 음흉하고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속살을 들추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 책은 대개 주인공의 위대하고 훌륭한 업적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달리 말하자면 보기 좋게 꾸며진 모습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때로는 기이하고 괴팍하며 어리석기까지 한 행동을 한다. 어쩌면 그게 더욱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 책 [엽기 인물 세계사]는 그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 역사 속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짧지만 흥미진진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읽다 보니, 이 책은 역사 책이라기보다는 역사를 통해 본 인류의 범죄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물들의 엽기적이거나 변태스러운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대개의 이야기들은 저자의 철저한 역사 고증을 통해서 드러난 진실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마치 역사 속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인물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런 행동의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에는 제목과 관련된 인물들의 짤막하지만 임팩트 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1. 우리가 미처 몰랐던 ' 두 얼굴의 위인 ' 이야기

2. 위대한 군주도 피해 가지 못한 위험하고 치명적인 성욕

3. 평범함 속에 감춰진 비범함으로 세계사를 뒤흔든 기묘한 인물 이야기

4. 인간에게 가장 잔혹했던 인간들 이야기

5. '성'과 '사랑'을 도구로 부와 권력을 쟁취하려 분투한 사람들 이야기

6.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악마'의 본성이 깨어나다

각 장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선 1장에 등장하는 과학자 마리 퀴리는 방사성 원소 라듐을 발견한 천재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라듐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독하고 교활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위대한 발명을 이끌어낸 위인이 감추고 있던 추악한 비밀을 알아낸 느낌이었다.

2장에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해 21년간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아내를 영원히 사랑하려는 로맨틱하고 애틋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있었으나, 사실은 극과 극으로 치닫는 심리를 가진 인물이었다. 죽은 아내에게 집착하여 그녀를 닮은 딸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들들을 심하게 차별하는 바람에 (첫째만 예뻐함) 분노한 둘째가 형님을 참수하는 끔찍한 일도 발생했다. 그의 노후는 처참했다고 하는데, 한때 무굴제국을 호령했던 그의 이면에 어린 어둠과 우울함이 엿보였다.

이외에도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 " 악마 성직자 라스푸틴" 그리고 "잔혹한 살인마 잭 더 리퍼" 와 같은, 인간의 이상 심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듯한 소름 돋는 이야기들도 뒤에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인간의 마음속엔 비밀스러운 지하실 같은 곳이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폭력적인 본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둬두는 지하실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계기나 사건으로 인해 그 지하실 문을 열었고, 그 결과로 인해서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인간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고 흥미진진했던 책 [엽기 인물 세계사]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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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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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임신을 선택한 여자

하지만 현실은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지옥이었다!”

능력이 있건 없건 여자의 역할은 따로 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답답한 일본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 한 당찬 여성의 투쟁기인 [가짜 산모 수첩]. 대놓고 여자를 차별하는 분위기에 지지 않겠다는 발칙하고 대담한 주인공의 가짜 임신 여정기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주제인데다가, 언제 들킬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이어져서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책에 몰입되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인공인 여직원 시바타의 회사 생활을 피곤하기 짝이 없다. 복사기에 카트리지가 떨어지면 그걸 채우러 뛰어가야 하고 쓰레기통이 꽉 차면 비우는 것도 시바타의 몫이다. 사무실에 누가 있건 없건 전화는 시바타가 받아야 하고 회사에 손님이 오면 커피를 접대해야 하는 등등 잡다한 일은 모두 시바타에게 돌아간다. 잡스러운 일들은 여직원이 맡아야 한다는 룰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누구에게 항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어느날, 회의를 마치고 나온 사원들 중 한 명이 커피잔에 담배꽁초를 가득 채운 뒤 치우지 않는다. 그걸 치워야 하는 사람은 누구? 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사무실 유일한 여직원인 시바타이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럴 순 없다. 분노의 뚜껑이 열리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시바타는 담배꽁초로 가득 찬 커피잔을 치우라는 상사의 종용에 자신은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 바로 " 임신했기 때문에"

물론 시바타는 임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불공정한 환경을 참을 수 없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짜 임산부 여정이 시작된다. 잡무와 본인 업무로 인해서 항상 야근을 해야 했던 시바타는 회사의 배려로 칼퇴근을 하고 본격적으로 임산부 역할에 돌입한다. 그러면서 임산부 요가나 에어로빅 교실에 다니면서, 다른 임산부들의 진짜 현실을 알아버린다. 힘들어 낳는 것도 여자의 몫, 낳아놓으니 밤잠 못자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었다. 띠지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아이를 가져도, 세상은 여자에게 일종의 " 지옥문 "을 열어주었던 것.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 표지엔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주시하는 한 산모가 보인다. 담담해 보이는 눈길이긴 하나, 매우 야무지게 보이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공정의 아이콘인 회사와 동료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단호한 결심이 눈빛에 묻어있기 때문일까? 이 글의 저자 야기 에미는 이 책으로 제 3회 다자이 오사무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이 책이 대중성 뿐만 아니라 작품성 동시에 놓치지 않고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시바타의 가짜 임산부 여정기인 [가짜 산모 수첩].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었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남자들이 더 읽었으면 하는 책이라서 신랑에게 먼저 추천해보고 싶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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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2 - 내 안의 살인 파트너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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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소망은 중요하지 않아."
아이가 들은 말이었다
거기서부터 먼 훗날 오늘의 살인이 시작되었다

명상 치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환자가 살인자이건 범죄자이건 적재 적소에서 갈등을 해결해 줬으니. 첫번째 소설이었던 [명상 살인]에서 마피아 보스의 변호사였던 비요른은 다양한 명상 원칙을 이용하여 살인과 폭력과 같은 어두운 삶의 문제들을 다소 코믹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살인과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평화롭게 삶을 살긴 원한다. 그러나 2편에서는 분노로 가득 찬 그의 " 내면 아이 " 가 깨어나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하니, 이를 어찌하리.

주인공 비요른과 그의 오른팔 부하 사샤는 1편 [명상 살인]에서 함께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나 명상 치료의 도움을 받아, 둘 다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마피아 보스 드라간을 죽이긴 했으나 다른 보스 보리스는 지하실에 가두고 보살피고 있다. 그가 원하는 평화로운 삶이 잘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런데? 알프스 산장에서의 하루가 다시 비요른을 과거의 악몽으로 이끌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폭력적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알프스 산장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 비요른. 최근 별거 중인 아내 카타리나와 극적 화해라는 소망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의 카이저슈마른과 알름두들러 ( 팬케이크와 탄산음료 ) 가 뭐길래..
주문을 제대로 받지 않고 태도도 건방진 종업원 닐스에게 그만 분노 폭발해버린 비요른. 악의적인 장난을 쳐서 그만 종업원 닐스가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 간접 살인 )

일종의 " 멘붕 " 혹은 " 정신적 위기 " 상태에 빠져버린 비요른은 한때 도움을 받았던 명상 치료사인 요쉬카 브라이트너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미처 알지 못했던 " 내면 아이 " 에 대한 이야기를 치료사로부터 듣게 된다. 비요른이 일으켰던 모든 분노와 폭발은 사실, 이성적이고 상식적이지만 다정하지 않았던 그의 부모님이, 한번도 비요른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멍"을 안은 채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 그의 "내면 아이"가 일으킨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후 비요른은 매일 그의 "내면 아이"를 돌보라는 충고를 듣게 되는데....

[명상 살인 2]를 읽고 나니, 꼭 1편인 [명상 살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리스 탈출 사건과 그 뒤에 이어진 협박 메일 사건 등등...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상상 못했던 비요른의 대처가 폭소를 자아낸다. 이게 과연 끔찍한 살인을 다루는 장르 소설이 맞는지 의문이 생길 만큼 책은 독특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블랙유머라고 해야 할까? 얽히고 설키는 상황 속에서도 "내면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비요른이 너무 웃긴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길... 비요른의 "내면 아이"는 결코 착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 그가 원하는 건 바로,,, 또다른 살인?

살인과 폭력 등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심각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소설 [명상 살인 2]. 이 책은 대놓고 웃기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슬슬 웃게 된다. 마피아 조직과 변호사와 같은 심각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마치 시트콤같았던 책 [명상 살인2]


이 서평은 출판사의 협찬으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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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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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막막함에 몸부림치다가도,

손을 키보드에 올려놓고, 첫 문장을 적어내고,

또 다음 문장을 적어내다 보면....”

사람을 책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이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고요한 겉모습 안에 단단한 심지를 가진 외유내강형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의 문장 하나하나에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오래 묵힌 된장 같기도 하고 가벼운 샌드위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쉬운 안내서인 동시에 삶과 글쓰기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겸비하고 있다.

사실 누구든지 글쓰기 과제를 앞에 놓고 끙끙대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게나 쓸 글들도 과제나 숙제의 형식이 되어버리면 잘 쓰고자 하는 노력 때문에 오히려 더 망치게 된다. 이 글의 저자는 그런 점을 꿰뚫어보고 책에 이런 제목을 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고 머릿속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최대한 맥락에 맞게, 자유롭게 써보면 어떨까요? 하고 권유하는 저자.

“ 결국 글쓰기는 우리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나가며, 그 시선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우리는 시선의 존재가 되기 위해 글을 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 글쓰기는 ‘지연’에서 시작되어 ‘절제’에서 결실을 거둔다. (.....) 그 모든 것을 멈춘 채 바라보며 대상 이면, 인간 이면의 풍요로움을 발견해나가는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이 세상에 이롭다.”



글쓰기에 정답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 나 "라는 사람이 바라본 사물과 풍경, 그리고 사람들은 특정 맥락 안에서 특별함을 띄게 된다고 한다. 똑같은 들꽃이라도 "누가"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작가의 의견을 읽다 보니 유명한 시구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어구가 생각났다. 결국 글쓰기란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란 게 저자의 결론인 듯하다.

“ 많은 경우 글쓰기의 꾸준함은 인정욕망에서 나오는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관심, 사랑을 받고 싶을 때 의외로 글쓰기는 그에 이르는 제법 괜찮은 통로가 되어준다.”

"지지 받고 있다는 느낌이 확고하다면, 그래서 나의 글쓰기가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아니며, 나의 고통 또한 바보 같은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주어질 때, 사람은 계속 글을 쓴다."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독서 친구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힘들어서 낑낑대면서도 왜 우리는 글을 쓸까?"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던 것 같다. 우리의 글을 누군가 읽고 공감해 주거나 인정받을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내가 쓴 글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타인과의 연결고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오프라인 생활이 힘든 이 시점에 글을 통해 타인과 상호 소통할 수 있어서 감사한다.

정말 신선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다. 이 작은 책 하나에 작가의 세계가 온전히 들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삶을 함께 음미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만큼, 책이 너무 좋았다. 저자 정지우 님이 매일 글을 쓰시는 분이라 이렇게 내공이 쌓이셨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일상을 이야기하고 삶 속의 글을 노래하는 작가 정지우 님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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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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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 미술이 뻗어나가는 상상력 "

미술 에세이라고 해서 명화에 대한 감상과 일상을 잔잔하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보다 깊이 있고 진한 색깔을 지닌 메시지를 담아서 독자들에게 보낸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름다움만이 미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일종의 퍼포먼스이건, 설치미술이건, 노래이건 간에, 인간과 세상의 공존에 대한 메세지를 그려낼 수만 있다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박보나 작가가 소개한 여러 작품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을 몇 가지 골라보자면,


제3장 : 돌로 구분을 부수고 - 지미 더럼


미국의 미술가 지미 더럼은 본격적인 미술작가로 활동하기 전에 미국 원주민을 위한 여러 사회운동에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원주민 정책과 인디언 조직의 태도와 방향에 실망감을 느끼고 멕시코와 유럽 등에 거주하며 시인이자 미술가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인 [나의 석상인 척하는 자화상]을 봤을 땐, 자연으로부터 왔으면서 문명을 만들어 자연과 분리되어 살고자 하는 인간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의 재치가 느껴졌고, [X이틀과 영화Xitle and Sprit]에서는 눈과 입이 그려진 큰 바위가 기술을 상징하는 자동차를 누르고 있는 모습에서 논리와 이성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자연과 본능 그리고 자유가 보이는 듯해서 유쾌하다.


제4장 : 빛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말할 때 - 주마나 에밀 아부드


캐나다 출신이지만 원래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작가는 이스라엘과의 영토분쟁으로 초토화된 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레몬 밀반입하기]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있는 레몬 나무에 예쁘게 달려있는 레몬을 따서 이젠 폐허가 되어버린 가자 지구에 쌓아놓는다. 고향을 되찾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스라엘에 고향을 빼앗겨버린 저자의 조용한 아픔과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제5장 : 돼지는 잘 살기 위해서 태어났을 뿐 - 조은지


조은지 작가는 [개 농장 콘서트]에서 복날 하루 전날 우리에 갇혀있는 개들에게 

[백만 송이 장미] 를 들려준다. 생명으로서 존중받아 본 적 없는 개들의 구슬픈 울부짖음이 들렸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봄을 위한 목욕]에서 작가는 도살될 예정인 소를 깨끗이 목욕시켜준다. 소의 크고 맑은 눈동자 때문에 끝까지 퍼포먼스 영상을 볼 수 없었다 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박보나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 보고자 했다. (중략)"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아주 따뜻한 미술 에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 작품만 감상하다가, 경제와 권력 논리로 똘똘 뭉친 인간 사회에 아주 강력한 메세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어서 매우 신선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타 인종을 차별하고 동등한 생명체에게 폭력을 가한다. 평소에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그런 일들을, 미술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생태계 보존이나 생명존중 등등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하게끔 해주는 좋은 책인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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