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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평점 :
“ 여자의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임신을 선택한 여자
하지만 현실은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지옥이었다!”
능력이 있건 없건 여자의 역할은 따로 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답답한 일본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 한 당찬 여성의 투쟁기인 [가짜 산모 수첩]. 대놓고 여자를 차별하는 분위기에 지지 않겠다는 발칙하고 대담한 주인공의 가짜 임신 여정기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주제인데다가, 언제 들킬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이어져서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책에 몰입되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인공인 여직원 시바타의 회사 생활을 피곤하기 짝이 없다. 복사기에 카트리지가 떨어지면 그걸 채우러 뛰어가야 하고 쓰레기통이 꽉 차면 비우는 것도 시바타의 몫이다. 사무실에 누가 있건 없건 전화는 시바타가 받아야 하고 회사에 손님이 오면 커피를 접대해야 하는 등등 잡다한 일은 모두 시바타에게 돌아간다. 잡스러운 일들은 여직원이 맡아야 한다는 룰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누구에게 항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어느날, 회의를 마치고 나온 사원들 중 한 명이 커피잔에 담배꽁초를 가득 채운 뒤 치우지 않는다. 그걸 치워야 하는 사람은 누구? 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사무실 유일한 여직원인 시바타이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럴 순 없다. 분노의 뚜껑이 열리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시바타는 담배꽁초로 가득 찬 커피잔을 치우라는 상사의 종용에 자신은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 바로 " 임신했기 때문에"
물론 시바타는 임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불공정한 환경을 참을 수 없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짜 임산부 여정이 시작된다. 잡무와 본인 업무로 인해서 항상 야근을 해야 했던 시바타는 회사의 배려로 칼퇴근을 하고 본격적으로 임산부 역할에 돌입한다. 그러면서 임산부 요가나 에어로빅 교실에 다니면서, 다른 임산부들의 진짜 현실을 알아버린다. 힘들어 낳는 것도 여자의 몫, 낳아놓으니 밤잠 못자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었다. 띠지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아이를 가져도, 세상은 여자에게 일종의 " 지옥문 "을 열어주었던 것.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 표지엔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주시하는 한 산모가 보인다. 담담해 보이는 눈길이긴 하나, 매우 야무지게 보이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공정의 아이콘인 회사와 동료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단호한 결심이 눈빛에 묻어있기 때문일까? 이 글의 저자 야기 에미는 이 책으로 제 3회 다자이 오사무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이 책이 대중성 뿐만 아니라 작품성 동시에 놓치지 않고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시바타의 가짜 임산부 여정기인 [가짜 산모 수첩].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었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남자들이 더 읽었으면 하는 책이라서 신랑에게 먼저 추천해보고 싶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