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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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의 모든 존재를 향해 미술이 뻗어나가는 상상력 "

미술 에세이라고 해서 명화에 대한 감상과 일상을 잔잔하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보다 깊이 있고 진한 색깔을 지닌 메시지를 담아서 독자들에게 보낸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름다움만이 미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일종의 퍼포먼스이건, 설치미술이건, 노래이건 간에, 인간과 세상의 공존에 대한 메세지를 그려낼 수만 있다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박보나 작가가 소개한 여러 작품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을 몇 가지 골라보자면,


제3장 : 돌로 구분을 부수고 - 지미 더럼


미국의 미술가 지미 더럼은 본격적인 미술작가로 활동하기 전에 미국 원주민을 위한 여러 사회운동에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원주민 정책과 인디언 조직의 태도와 방향에 실망감을 느끼고 멕시코와 유럽 등에 거주하며 시인이자 미술가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인 [나의 석상인 척하는 자화상]을 봤을 땐, 자연으로부터 왔으면서 문명을 만들어 자연과 분리되어 살고자 하는 인간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의 재치가 느껴졌고, [X이틀과 영화Xitle and Sprit]에서는 눈과 입이 그려진 큰 바위가 기술을 상징하는 자동차를 누르고 있는 모습에서 논리와 이성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자연과 본능 그리고 자유가 보이는 듯해서 유쾌하다.


제4장 : 빛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말할 때 - 주마나 에밀 아부드


캐나다 출신이지만 원래 팔레스타인인이었던 작가는 이스라엘과의 영토분쟁으로 초토화된 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레몬 밀반입하기]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있는 레몬 나무에 예쁘게 달려있는 레몬을 따서 이젠 폐허가 되어버린 가자 지구에 쌓아놓는다. 고향을 되찾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스라엘에 고향을 빼앗겨버린 저자의 조용한 아픔과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제5장 : 돼지는 잘 살기 위해서 태어났을 뿐 - 조은지


조은지 작가는 [개 농장 콘서트]에서 복날 하루 전날 우리에 갇혀있는 개들에게 

[백만 송이 장미] 를 들려준다. 생명으로서 존중받아 본 적 없는 개들의 구슬픈 울부짖음이 들렸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봄을 위한 목욕]에서 작가는 도살될 예정인 소를 깨끗이 목욕시켜준다. 소의 크고 맑은 눈동자 때문에 끝까지 퍼포먼스 영상을 볼 수 없었다 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박보나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 보고자 했다. (중략)"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아주 따뜻한 미술 에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 작품만 감상하다가, 경제와 권력 논리로 똘똘 뭉친 인간 사회에 아주 강력한 메세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어서 매우 신선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타 인종을 차별하고 동등한 생명체에게 폭력을 가한다. 평소에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그런 일들을, 미술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생태계 보존이나 생명존중 등등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하게끔 해주는 좋은 책인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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