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그 날따라 파도가 높았던 것이었다.

산골소년은 조그만 쾌속선을 타고 먹은 우유를 다 토해내며 칭얼거렸다.

누나는 배가 아프다며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후쿠오카 하카다 항에 상륙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생생해졌다.

새벽녘 해뜨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을 맞으면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는 벳부의 노천온천

- 이건 들은 얘기고 밤에 큰언니의 도움으로 잠든 태민을 안고 야경을 바라본 것이 전부다 -, 

옥색의 깊은 물 위로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거센바람이 인상적인 아소의 활화산 분화구,

오오쯔루하시 유메라는 계곡에 걸린 다리에서 내려다본 가족폭포(아기폭포는 말라 있었다.)

- 바람이 너무 심한데다 태민은 모자도 씌우지 않아서 중간에서 뒤돌아 섰지만 -

버스만 타면 버둥거리는 태민이를 달래는 사이사이 가이드가 들려주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선배, 동기들과 그 가족들, 동감 회장단, 졸업생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보낸 2박3일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건강이 완전하지 않은 큰언니와 해빛나에게 크게 기댄 날들이었다.

언니가 같이 가지 않았더라면 어찌했을지 모르겠다. - 무지무지 미안하다

특히 마지막에 하카다항 대합실에서 더할 수 없이 큰소리로 울고 보채며 뻗대어 유종의 미를 거두느라

더 힘들고 다녀와서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온 가족 첫나들이다.

 

집에 돌아온 첫 날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 엄마, 일본에는 숟가락이 없어?

- 응, 젓가락만 있어서 국물이 있는 것은 그릇을 들고 마신대.

-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럼 나라도 일본 사람들한테 숟가락을 빌려줄까?

 

막내이모가 사준 유아용 도넛모양 놀잇감은 "탕"이 되었고,

저녁에 세숫대야에 발을 담궈 씻다 말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 엄마, 나 아주 큰 탕에 발 씻은 적이 있었어! 오렌지도 둥둥 떠 있고.

 그런데 오렌지는 왜 넣어놓은거야?

 

일본에서 한 일 중에 호텔에서 잔 것이 가장 좋았다는 수민,

산길에 접어들자 꼬불꼬불한 길이 시작되고 소나무가 보이니 집에 다 온 모양이라며 무척 즐거워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뭐니뭐니해도 역시 우리집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보낸 나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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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3-0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애 데리고 다니면 아무리 좋은 곳도 아무리 맛있는 것도 힘들어서 잘 모르지.. 아직은 힘든 시긴가봐. 그래도 조금 수월하게 지내고 왔으면 좋으련만.. 태민이도 제딴엔 뭔가 새로운 상황이 불편했던게지..
그래도 부럽다^^;;

miony 2007-03-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타면 버둥거리고 보채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내려서 어딘가 다니면 업혀서 쿨쿨~! 잠들면 무척 무겁기도 하거니와 이왕 데리고 간 것이니 같이 구경하고 싶었는데 내가 욕심을 부렸나 싶더라.

hsh2886 2007-03-3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겠다~~~~~~
나도 일본가고싶은데..
 

가끔 시댁에 가 있으면 논밭에 소 몇 마리 키우는 작은 마을에도

여호와 증인을 믿으라며 파수대인지 파수꾼인지 작은 인쇄물을 나누어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는 말끔하고 무언가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같아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여러가지 자기 일들은 팽개치고 그리 돌아다니는 것이지 싶다.

어제는 진입로 가파른 길을 남자 둘, 여자 둘이 걸어올라오길래

아랫마을에서 민박한 사람들이나 가끔 지나가는 등산객이려니 했는데 자꾸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마침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던 중이어서 없는 척 할 수도 없었다.

문을 열어주었더니 두 여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면서 성경을 펼쳐서 읽어주고 인쇄물을 주고 간다.

여기서 사느냐, 살림집으로 지은 것이냐 몇 가지 질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느라 제법 오래 세워두었는데 마음은 이 골짜기까지 온 사람들 잠깐 들어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또 이런저런 얘기 길게 늘어놓을까봐 짐짓 모른 체 하였다.

승용차로 산길을 올라도 15분이 걸리는 해발 500미터 산골에 다섯 집이 모여 사는데

이런 곳까지 찾아와 겨울 북서풍을 맞으며 서서 몇 마디하고 인쇄물 한 장 주고 내려가다니

그것이 옳든 그르든 어떤 방향을 향한 것이든 사람의 신념이란 정말 놀라운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여호와 증인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종교도 생활의 전부보다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저마다의 삶에 더 좋으리라 생각하기에

그들의 신념과 열정의 방향을 자신의 일상으로 돌려보게 되길 맘 속으로 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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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2-2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까지 그런 사람들이 찾아 가는구나... 들여놓지 않길 잘했어. 합리적인 사고가 어려운 상황인 사람들일테니까...
 

돌 되기 전에 뭔가 호소하며 울부짖을 때 <엄마엄마엄마엄마~!>라고 외쳤던 것 같은데

그건 내 기억의 오류일까?

요즘 태민이가 하는 말(?)은 두 단어인데 감탄사 <우아~!>, 그리고 <응아>이다.

응아는 마치 중국어 테이프에서 사성을 소개할 때 듣던 소리처럼 들린다.

<응>은 발음이 짧고 약한 반면 <아>만 길고 높게 말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누나를 부르는 소리인가 했었는데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엄마를 부르는 말인가 보다.

음운학 강의에서가 아니라도 입만 다물었다가 떼면 엇비슷한 소리가 나도록

세계 여러나라 언어의 <엄마>는 다들 미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우리집 소년은 그 입만 다물었다 떼는 것이 아직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발음 가능한 자음은 이응 하나 뿐인 것 같다.

그래도 가끔씩 얼굴을 바라다보며 제법 다정하게 <응아~?>하기도 한다.

응아거리는 태민이를 안아들고 <아빠! 아빠! 해 봐!>하는 아이아빠는 언제쯤이나 꿈을 이루려나?

참고로 8개월 먼저 태어났지만 동갑인 사촌 영준이는 <누나, 나도 좀 줘!>

일주일 먼저 태어난 영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엄마, 빵!> 할 뿐아니라

아빠를 살살 녹이는 <아빵~!>을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제대로 부를 날이 있을테니 볼에 발그레한 태독만 가셔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누나 먹는 것은 거의 다 먹는다.

빵, 치즈, 땅콩, 김 부각, 곶감, 김밥, 뻥튀기...

누나는 두 돌까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비롯하여 웬만한 것은 한 번도 먹이지 않고 버텼는데

둘째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누나가 무언가 먹을 때마다 손에 들고 도망을 다니면서 먹어도 결국 한 입 얻어먹고야 만다.

필사적으로 붙잡고 입을 엄청 크게 벌리고 무조건 머리를 들이밀다가 방문 기둥 모서리에 꽝 찧은 날도 있다.

먹기 좋아하는 것은 누나를 닮아서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모양이다.

 

누나는 황금달인 쓴 물을 젖꼭지에 바르자 단번에 배신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울며 다시는 젖을 물지 않았는데

태독으로 약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황금을 발라도 황련을 발라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열심히 먹는 바람에 결국 엄마를 스무 날 쯤 본의아니게 다이어트를 시키더니

(7킬로그램쯤 몸무게가 줄어서 태민이 낳기 전에 입던 바지를 드디어 입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낮 동안은 젖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데 (우유는 한 두 번 먹고 있지만)

밤사이 자다깨면 나오지도 않는 젖을 꼭 물고 잠이 들려고 한다.

이것도 곧 완전히 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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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2-14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야 다 차이가 있고 처음에 조금 늦은 듯해도 한창 할때는 또 그 순서가 어찌될지 모르더라구요..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땅콩이나 견과류, 초컬릿은 자제해야할듯해요.

지금여기 2007-02-1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아? 혹시 응가를 응아라고 하는건 아닐까?ㅋㅋ

miony 2007-02-1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 견과류는 안되는군요.좋은 정보 고마워요!
Yeisland님! 산골소년은 아직 어려서 쉬,응가를 가릴 줄 모른답니다. 아무래도 엄마가 확실한 듯^^;;

hsh2886 2007-03-3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제는 모처럼 비가 내렸다.

겨울 가뭄이 극심하다더니 참 좋은 일이라는 대화를 나누며

비 온 탓에 공사도 하루 쉬니 아이들과 온천에도 다녀오고

구례시장(사실은 농협마트에서 카트타고 한 바퀴 도는 것이다.)에도 들렀다.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챙겨넣고 한 숨 돌리니 어느 새 창밖은 깜깜했다.

밤중에 잠결에만 거의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고 낮에도 분유가 많이 줄었지만

잠들기 전에는 200ML이상 꼭 챙겨먹고 자는터라

태민이 팔에 안고 어두운 방에 앉았노라니

창 밖 어딘가에서 마치 와글와글거리는 듯 한 소리가 요란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개구리인가 싶다가도

경칩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개구리가 나왔을까?하니 무슨 새소리 같기도 하고

어제만하여도 전혀 들리지 않던 소리가 하루 사이에 온 산을 뒤덮고 있으니

좀 기괴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 저게 무슨 소리지? 수민아, 잘 들어봐!

- 엄마, 자꾸 그런 소리 하지마!!!

어디서 무엇이 내는 소리인지 알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소리가

정체가 모호하니 애나 어른이나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모양이다.

한여름밤에 개굴개굴거리는 소리와는 다른 데가 있으니 맹꽁이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데 태민이는 잠이 들었다.

잠시 후 2층에서 내려온 수민아빠가 개구리 소리라고 단정을 지어 말했지만

근처에 그럴 듯한 개울 하나 없는데 참 신기하다 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녘까지 요란하더니 해 뜰 무렵(안개가 자욱하여 앞산이 보이지 않는 아침이었지만) 조용해졌다.

낮 동안은 쉬는가 했더니 점심 때도 되지 않아 다시 와글와글거린다.

태민이 낮잠 자는 동안에 얼른 구들장에 불을 넣으려고 서두르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주차장으로 쓰느라 땅이 많이 패어 비오는 날은 진흙탕이 되는 집터가 내려다 보였다.

알고보니 타이어자국이 흙을 패어낸 자리에

어제 제법 후두둑거리며 내린 비가 고여 모양만 손바닥만한 연못(?)이 생긴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아하~ ! 하였다.

봄처럼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이더니 개구리도 이렇게 일찍 잠깨어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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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2007-02-0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산골에는 벌써부터 개구리가 나오는군요.... 도시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는데.....

miony 2007-02-1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어제 밤에도 비가 제법 내리더니 와글와글 요란했단다. 그런데 비 내리고 나니 찬바람이 엄청 불고 개구리 노래도 다시 끊겼단다.
 
동그란 지구의 하루 아이세움 지식그림책 15
안노 미츠마사 외 지음, 김난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 엄마,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죠?

지구가 아파요라는 컴동화, 우주에 여행가는 만화영화 따위를 보더니 요즘 틈만 나면 하는 질문이다.

오랫만에 여러 권의 책을 주문해서 사 주었더니 다른 책에만 관심을 두고 처음엔 옆으로 밀어두었다.

내용을 보니 새해 첫 날을 맞은 세계8개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양쪽 페이지에 작은 그림으로

함께 담은 것인데다 시차와 날짜의 차이, 계절의 차이 등

아직 40개월이 안된 산골소녀가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수준이라 좀 넣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야시 아키코가 그린 일본 편의 그림을 보더니 "엄마, 은지 같다!"라면서 읽어달랜다.

새해를 맞아 아키라는 일본 여자아이가 겪는 일을 그림만으로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야기 한 편이 실려있어 

 수민이와 자꾸 넘겨보면서 지구에는 여러나라가 있고 낮이 되는 나라, 밤이 되는 나라가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더니 전부터 해가 지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던 것이 풀렸다.

아빠가 시소 태워 줄 때 마지막을 꼭 비행기로 마무리하면서 가고 싶은 나라를 얘기하라고 해서

대한민국, 미국, 일본 정도의 나라는 알고 있었던 터라 여러나라가 있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였고

서산으로 지는 해가 우리가 잠자는 동안 다른 나라에 갔다가 그 해가 다시 동쪽으로 뜬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해서 눈이 반짝했던 산골소녀!

그래도 재미있게 모두 읽기엔 아직 이른 책이라 다음을 기약한다.

브라질 어린이들이 새해에 연을 만드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던지 다음엔 아빠비행기로 브라질에 가겠단다.

그래서 브라질,브라질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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