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에 얼굴을 파묻고 깍까~!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외할머니가 말씀하시던 까꿍인가 긴가민가 했다. 

다음 날에는 접혀있는 새 기저귀를 얼굴에 대고 깍까! 거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간식이 담겨 있던 스테인레스 양푼을 얼굴 앞에 들었다 놓았다 하며 깍까!란다. 

아무래도 까꿍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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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4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본다고 

아빠가 옆에서 이름만 한 번 불러줘도  

엄마 품을 떠나 온 몸을 던지며 가서 안긴다. 

엄마가 이것저것 일 하느라고 좀 오래 보살펴주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안아주고 얼러줘도 엉엉 우는 녀석이 

아빠가 안아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울음을 뚝 그친다. 

 

기저귀도 자주 갈아주고, 엄마 바쁠 때는 오래 안아주고, 즐겁게 놀아주고 

뭐 이런 자상한 아빠가 전혀 아닌데,  

누나랑 형 씻기는 동안 좀 돌보아 달랬더니  

텔레비젼에 넋을 놓고 있다가  

현관에 기어나가 고무신을 빨고 있어도 나 몰라라 하는 아빠인데,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나보다.  

그다지 표현은 안 하지만 아빠가 막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엄마 눈에는 잘 보인다. 

 

어제는 붙잡고 일어서기 딱 알맞은 높이인 블럭상자를 잡고 섰는데 

바퀴가 달려있어서 스르륵 밀려 앞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대로 미끄러져 엎어지지 않고 대여섯 걸음을 내딛으며 따라가서 무사히 벽에 닿았다. 

어쩌면 돌 무렵에 걸을지도 모르겠다. 

14개월에 아장아장 걸어서 구만 할머니댁 대문을 나서던 뒷모습이 엄마 머릿 속에 찍혀있는 누나는

어느 새 내년에 초등학생이 된다. 

막내도 그렇게 바람처럼 빨리 자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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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텔레비젼 켜는 시늉 좀 해 봐.  리모콘을 누르는 척 해! 

    (종이 두 장을 들고 엎드려 숨는다.) 

    - 틱,틱. 

- (고개를 번쩍 들고 일어나 앉으며 종이를 들고 읽는다.) 

     오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씨는 햇빗이쨍쨍  

     내리치고있으며곳곳에바람이   

     쪼금씩불것입니다. 

 

     곳곳에신종플루가전염 

     되고있다고합니다. 

     아이들도유치원에 

     못가고있다고합니다 

     오늘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서 뵙겠습니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커서 아나운서가 되려면 미리 연습을 좀 해야지, 안 그래? 

꼭 아나운서가 되고 말거야!!! 

 

가수, 축구선수, 야구선수, 요리사, 헤어디자이너,탕약 달이는 사람, 마지못해 한의사 등을 거쳐 

오늘은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기상캐스터와 앵커가 합동으로 뉴스 예고편을 내보내는 상황인가?ㅋ 

질문을 받을 때는 영문을 몰랐는데  

이 예고편을 완성하기 위해서  사전에 간단한 취재활동까지 했다.

 

- 엄마, 그 감기 이름이 신종 인플루엔자야? 

     - 신종 플루라고들 하더라. 줄여서 말하는 건가? 

- 그럼 이웃나라로 막 퍼지는 걸 뭐라고 해? 

     - 전염말이야?

 

개학이라 마땅히 유치원에 갔어야 하지만 

아이 셋 다 예방접종을 전혀 하지 않은데다 이제 10개월 된 막내까지 있으니 

일단 며칠 지켜보자는 아빠의 신중론 탓에 이번 주엔 집에서 놀기로 했다. 

미니에게 직접 이런 사정을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 대화랑 선생님께 전화드리는 것을 옆에서 듣고 상황을 알고 있었나보다.  

 

아빠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꿈이 많으니 좋다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뭔가 아주 강렬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엄마는 

딸이 이렇게 여러가지 일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래서 또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아서 더 좋고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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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9-02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부터 스스로 연습하고 노력하고! 멋져요!
 

우리 부부가 하루종일 막내를 어머니께 맡기고 추어탕을 한 솥 가득 끓여  

마당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저녁을 먹었다. 

추어탕 한 그릇에 김치랑 나물 두서너 가지로 간소한 상차림이었지만 

설겆이 거리와 남은 반찬, 냄비 등 치울 것들이 큰 쟁반으로 서너번 옮겨야 할 정도는 되었다. 

나는 친정에서 저녁을 먹고 꼬리 셋을 달고 내려오면서 힐끗 보니  

바깥 상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부엌에 달려가 보니 역시나 남편이 다 옮겨다 놓았다. 

 

남편이 반찬들은 냉장고에 챙겨 넣고 설겆이는 깨끗하게 해서 그릇을 말끔히 닦아 정리 

할 리는 절대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냥 두면 저녁상이 밖에서 밤을 지새는 일도 다반사라  

왠일로 밖에서 날라다가 부엌 싱크대 앞에 나름대로 말끔히 놓아 둔 것들을 보니 

그 정도로도 입이 헤벌어지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 아빠가 저녁상을 치워주다니 엄마는 정말 감격스럽다." 

그랬더니 엄마 발치에 앉아서 책장을 뒤적이던 첫째 꼬리가 시큰둥하게 하는 말, 

" 당연하지!  

 드문 일이니까." 

- You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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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랫동네에 잠깐 데리고 갔던 아이가 버스랑 충돌할 뻔 했다고 아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빠가 손님이랑 말씀 나누시는 사이에 맞은 편에 있는 슈퍼(에 있는 과자)로 돌진한 모양이다. 

일단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려주었다고 방심한 탓이었나보다.  

 

작년에 터를 좀 더 닦아서 마당이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지만 

막무가내로 아무데나 쏘다니는 바람에 갇혀 지내다보니  

자동차를 타고 따라 내려가고 싶어서 동동거리는 모습이 늘 안쓰럽다. 

도착하는 차나 떠나는 차를 따라 쫓다보니 위험하기도 하고 

세워놓은 차 앞이나 차 안에 하염없이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그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한 번 데리고 내려가면 또 아이 뒤를 쫓느라 아무 일도 못하거나 

오늘처럼 아이가 위험한 지경에 처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서  

누군가 집을 떠날 때면 먼저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애를 쓴다. 

그래도 출발하는 낌새를 채고 먼저 차에 타고 떡 버티고 있을 때는 

울고 소리치는 아이를 말 그대로 끌어내야 하니 이렇게 늦되는 게 너무 야속하다. 

누나는 그 나이에 얼마든지 어디든지 데리고 다닐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여름이 시작될 때 장마에 잠깐 햇볕이 나는 짬짬이 공사를 해서 

부엌 창에서 내다보이는 곳에 정자(?)를 지었다. 

산골이라 식당이 없으니 없는 솜씨에 아이까지 어머니께 맡기고  

비록 며칠이지만 목수님들 하루 세 끼 밥을 지어 드리려니 정말 힘들었다. 

그러고도 지붕은 아직 소위 갑바라 불리는 파란천막을 쓰고 있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옷 대신 지리산 바람과 햇볕만 두르고 사는 둘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니 힘들었던 것도 잊을만 하다.  

 

문을 나서서 길을 따라 멀리 가지 않고 들렀다 올 목적지가 생긴 탓에  

요즘엔 문을 걸어잠그지 않아도 된다. 

아빠가 요즘 먹을 것을 늘 정자로 내어가니 그걸 보고 따라하는 건지 

자기 몫의 음식이 담긴 작은 접시 따위를 들고 가서 먹기도 하고, 

혼자라도 정자에 가서 앉았기도 하고 섰기도 하고  누워서 뒹굴기도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고 멍하니 한참 어딘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이다.

또 올 여름부터 외할머니가 하시던 일을 접고 계속 산에 와 계시니  

옆집인 외갓댁에도 자주 다녀올 수 있어서 그나마 바깥 바람을 쐴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어서 말문이 틔어서 유치원에도 가고 친구도 사귀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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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위험은 눈감짝할새라서~~~ ㅜㅜ
정자도 부럽고 지리산 바람과 햇볕만 두르고 사는 둘째도 부럽네요.^^
말문이 어여 틔여서 온갖 말을 다 할 날이 멀지 않을 듯...

2009-08-24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