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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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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


제목부터 끌린다. 상반된 개념이 만나도록 것은 문장, 글의 힘을 아는 이가 손댄 흔적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천천히 읽었다. 자유의 폭력이라 하지 않고, 폭력의 자유라 한 점이 무엇이었을까? 의문이 들자 잠시 읽기를 쉬었다. 읽는 것을 쉽지 않게 하는 습관은 오래된 버릇이고, 무조건 받아들였던 때의 무지를 벗어보고자 애쓴 흔적이 이 책에서도 툭툭 기어올라왔다.

먼저 저자의 고생이 보였다. 그러나 그 반대로 역사란 거의 다 그러하지 않던가. 흑백에 대한 논의에서 흑이 있기에 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그러나 흑은 보여주면서 백은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지면의 한계라고 해두어야 하거나 껄끄러운 부분이 생략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의 입장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평형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누구의 편이 좋다면, 그 좋음이 싫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 현실화되었을 때, 그것의 부작용은 늘 따라오지만 대부분 숨겨져있거나 미화되는 것이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여서다. 그런 관점에서 미화되거나 축소 또는 본능적으로 숨겨둔 듯한 부분을 읽어가려는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보수언론이라고 지칭한 조중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들이 물론 잘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보든 보수든 공격성을 띄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언론 재벌의 문제를 일반 서민의 민생고까지 펼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언론이 정치에 묶여있어선 안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여실히 밝혀주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명박의 <기관지확장증>이라는 병역면제를 밝힌 부분이다. 병역면제 후에 술을 엄청나게 마셨고,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거짓이라 생각했다. 폐는 다치면 재생이 되지 않는 까닭에 평생 그대로 살아야 하는 해서다. 그런 점을 짚어냈다는 것은 훌륭한 점이다. 필자는 근거가 있는 글을 채택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근거가 꽤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편이다. 그러면서 원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 모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성이지 않던가. 도덕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래서 진보와 보수의 언론들이 새로운 신문을 만들 수 있기를 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언론은 접하지만, 객관적 기사라고 하더라도 주관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지 않겠는가. 상대방을 공격하여 흠집내기 위한 것이 정치의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그 둘은 공론화를 보다 확실하게 펼쳐야 한다. <폭력의 자유>는 그 공론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귀한 자료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제 치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기자의 가치관은 높이 살 정신이라 보았다.

언론을 움직이려는 시도는 좋은 뜻도 왜곡되기 마련인데, 법률까지 만들어 옥죄게 했다는 점은 탐탁하지 않은 부분이다. 우리나라에 국한된 언론은 남북의 대치로 인해 다른 나라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 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나 언론의 기획과 취재는 연재소설과 같은 지속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단편적인 뉴스의 흐름을 쯪는 경향을 보임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정치도 중요하지만 생활이 가장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알 권리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의 알권리를 무시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에 대한 우려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경계해야할 일이라고 본다.

일관성을 유지하는 책은 흔치 않다. 책 속에서 내러티브로 이야기하는 저자는 아마도 기자생활을 오래도록 했기 때문에 몸에 밴 습성이겠지만, 각 시대의 맞는 챕터에 반드시 언론의 조장에 관한 팩트를 찾아서 넣어두었다. 이런 조사가 쉽지 않았을지라도, 다른 각도의 이야기도 실었으면 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좌우에 대한 입장을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보가 중요하다면 보수의 주장이 왜 좋고 나쁜지 이야기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으나 진보와 보수라는 운동성의 범위와 한계는 넘어서, 화합으로 가는 길은 없었을까―라는 기대를 다음에 기대를 해보게 됐다. 언론 재벌 머독과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소개와 위키리스크의 상반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저자의 혼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했다. 허나 역사에서 위키리스크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 때는 없었다. 조선왕조에서도 왕은 자신의 역사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언론을 통제하게 되면, 기록을 변경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과 그 사건의 당위성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에서 사회의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제1부 1장 일제의 '문화정책'과 친일언론
제2부 5장 이승만의 악정과 4월 혁명
제3부 9장 자유언론 실천운동
제4부 2장 해직언론인들의 조직운동과 권력의 언론 조작
제5부 4장 수서사건과 '죽음의 굿판'
제6부 4장 '황태자 김현철'과 '사고공화국' 문민정부의 몰락
제7부 3장 국민의 정부 1주년과 '옷 로비 사건'
제8부 5장 노무현의 죽음과 언론의 표변
제9부 5장 한국 언론사상 최대의 방송 연대파업

위의 장은 저자의 깊은 통찰이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현대 한국사의 흐름도 엿볼 수 있으므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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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 - 의사결정에 관한 행동경제학의 놀라운 진실
마이클 모부신 지음, 김정주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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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마라


아무래도 우리는 책을 고를 때 끌리는 제목이 있다. 또한 누가 저자인지도 한 몫을 하고 이 책에 대해 누가 어떤 평을 했는지도 책을 선택하는 데 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찬사의 글은 글이 시작되기 전 첫 페이지에 실려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학자 마이클 모부신이 쓴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아님을 책의 거의 말미에 가면 알아챌 수 있다. 즉, 증권 계통에서의 똑똑하다는 사람을 일컫는다. 저자의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책의 과정은 ’전문가‘의 생각 내지는 행동 등에 대해 아이러니하게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서 거침없이 일격을 가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CEO, 투자자, 정치가, 소비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메시지는 단지 책의 판매를 위한 광고일 따름이다. 광고 너머 책의 속살은 드러나지 않았다. 광고가 비늘이라면 책읽기는 살을 맛보는 것이므로.

2장 선택의 폭 열어두기에서 편견을 일으키는 생각의 습관이 담겨져 있다.

기준점 설정은 판단을 내릴 때 실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것을 뭉뚱그리면 터널 비전(시야 협착증)이라고 할 수 있다(p59) 사람들이 문제를 보는 방법이 문제를 푸는 방법까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따지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를 풀 때 그 문제의 표현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p60

편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마치 시가 내용은 전혀 일관성이 없고 그저 상상으로만 엮어냈어도 수식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단어로 표현만 하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시라고 일컬어지듯이 말이다. 여기서 '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편견 자체가 내용을 바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논리적인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습관적인 편견의 요소가 더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인생은 뒤를 돌아봐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을 보며 살아야 한다.
p83

일반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데 실패하나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는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애시당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해결방법은 판단을 내린 근본적 이유를 적고, 과거의 행동을 일관되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일기를 쓰면 나중에 확신편향을 상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쉬울 것이다.
 

와인의 가치 =  -12.14540 + 0.00117(겨울 강수량)
                    + 0.61640(평균 식물성장기 기온) - 0.00386(수확기 강수량)

경제학자이자 와인광인 오를리 아센펠터는 프랑스보르도 지역 레드와인의 품질을 설명하기 위해 이 회귀방정식을 만들어냈다.
p89

이제 방정식으로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더 신뢰할 수 있게 그리고 속물처럼 맛을 보지 않고도 와인을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90

컴퓨터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므로 그 가운데 열로 계속 침입할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까지 세계 체스 챔피언을 무찌른 컴퓨터는 아직 없었다. - 중략 - 그러나 이것도 시간 문제일 뿐이다. 컴퓨터 의 힘이 더 위대해짐으로써, 이 경기에서도 컴퓨터가 우승을 거두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p94

통계적 방법이 전문가들의 임상 판단보다 탁월하거나 비슷했다.
p98

 

위 3장의 글에서 전문가들이 살아남는 세가지 방법은 전문가 전당의 붕괴의 내용을 역으로 뒤집은 것에 다를 바 없다. 컴퓨터 시스템을 얘기할 때의 자신 있는 글에 비해 세 가지 방법 중 두 번째 방법의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세 번째 사람을 다루기 위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등 살아남을 수 있는 해결 방안이 적절치 못함을 알 수 있다. 문장 곳곳에 전문가들에 대해 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데 전문가들을 컴퓨터나 통계적 방법과 비교하여 가치를 떨어뜨린다.
 
다음 페이지 부분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전문가를 활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다.
 
   1. 직면한 문제를 가장 적합한 해결 방법과 연결하.
      전문가들은 여러 상황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므로, 다른 접근법으로 전문가의 견해를
      보충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다양성을 추구하자
      전문가의 예측이 전반적으로 미흡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수할 때가 있다.
   3. 가능하다면 첨단기술을 이용하자.
      모든 접근법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은 없다.
p107

①에서 우선 전문가들을 낮추고, 다른 접근법으로 보충해야 한다 했다.
   다르기 전의 접근법도 제시되질 않았기에 다른 접근법이란 개념도 모호하게 남는 문장이다.

②는 전문가를 고슴도치와 여우로 분류한 점을 예로 들었는 데 한 가지의 렌즈를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고슴도치와 많은 것들을 약간씩 아는 경향이 있는 여우의 예로 여우가 고슴도치보다 더 나은 예측가로 본다는 테드록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인 정신이 무언가. 한 가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다 통하게 된다. 또한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은 문학, 음악, 철학, 수학을 다 섭렵했었다. 그것도 여우와 같은 얕은 지식이 아님은 통합적인 판단을 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옳게 이끌기 위함이다. 깊이가 없는 얕은 앎으로 과연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의 위 예화는 적합하지 않게 여겨진다.

③은 유일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상황이 변하기에 의사결정자가 자신의 문제를 밝히고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을 고려하라는 얘긴데 좋은 해결 방법은 제시하질 못했다.


책에서 <똑똑한 사람>은 수학을 다루는 직업군을 말하는 데,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월가의 문제를 역으로 짚어내려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논증은 적당하지 않았다. 시스템 트레이딩(System Trading)에 관련 분야를 다루는 것은 까다롭다. 괜챦은 수식 하나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변수를 처리를 하게 되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다. <어리석은 결정>는 것이 암시하는 바는 선택하기 전 재료나 자료가 충분하다는 암시가 있다. 그러나 날씨 예측이나 주식의 예측은 간단한 수학 2차방정식의 해가 결코 아니다. 그가 말하려는 첨단기술을 이용하는 것만이 최적의 해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의구심은 오래 남는다. 삶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자본사회에서 크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제목에서는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그 무엇을 알리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행복지수가 금융 즉 자본의 실에 얽혀 행복할 수 없다. 자본, 개인에게 있어 돈은 중요하지만 절대는 아니다.

의사결정과 행동심리학의 결합이라고 한 책은 전반적으로 읽기 수월했다. 그러나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가?>라는 데에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까닭은 수학의 공식은 한 가지 답을 유츄하는 데 특별할 뿐, 다른 답에 대한 관용은 상당히 떨어지는 게 우리 부부의 입장이다.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게 있는 게 세상이다. 의사결정수decision tree같은 나무에 국한시킨 것은 아닐까. 숲의 이야기가 없지 않으나 나무+나무=숲이라는 등식이 성립시키려는 왜곡이 적지 않다. 경영의 의사결정이 진보하는 이유는 사회가 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역으로 보면 제대로된 공식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플롭스Floating Point Operations per Second라는 컴퓨터 연산처리 능력인 플롭스는 Tera까지 왔고, Peta도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수인 Pico는 아직 정상적이지 않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의사결정의 가장 심각한 모순은 소비자의 선택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데 있다. 그것은 의사결정이 가격·생산·재고 같은 통상적 업무를 합리적이며 능률적으로 다루고자 하여서다.

책의 제목은 원제를 의역한 것인지는 모르나 어리석은 결정이 조금 스몄다고 보았다. Think Twice : Harnessing the Power of Counterintuition 가 원제인데 심사숙고를 하라는 뜻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의사결정과 직관에 대한 예증을 풀려고 한 내용과 책 제목은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외국의 영화가 들어올 때 전혀 다른 제목으로 상영관에 걸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마켓에서 본 상품명과 내용이 다를 경우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무모한 선택에 대한 관찰은 쉽지 않다. 수학적 증명이 최고라고 확신하는 내재적 결함에 대한 쓴 소리만이 탁월한 결정을 얻을 수는 없다. 회귀로 복귀하는 것도 있으나 선회하는 것도 있다. 수치모델이 혁신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이 책의 뿌리는 말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비상식이 주도권을 잡는 행동에 대한 언급이나 논증은 그리 탁월하지 않다. 증명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례는 일상 곳곳에 스며있다. 주식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게 시행착오였듯, 의사결정은 그런 모델링이 당장 아픈 곳만 치료하는 반창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의사결정모델은 수치화가 되면서 더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관계없는 것이라 소홀했던 것에서 충격이 내포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은 컴퓨터 연산처리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더딜 것이다.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지속적으로 축적된 사람의 언행을 데이터화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패턴을 발견하려고 무모할 정도로 정보기기에 투자하더라도 예측은 논리 예측이지 비이성 논리 예측이 아니다. 삶을 지배하는 것이 감정처럼 심리적 측면이 적지 않으므로, 가치귀착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책이다.

이 책과 더불어 읽어볼만한 서적으로는, 스웨이(Sway)이다. 궁합이 잘맞기에, 서로 보완해줄 뭔가가 있다.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단지 기본적 경영개념을 조금 알아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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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CEO 특강 2 - 글로벌 리더 EBS CEO 특강 2
『EBS CEO 특강』제작팀 지음 / 마리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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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CEO를 Cheif Executive Officer에서 Crisis Energetic Observer라고 바꾸곤 했다. Chief 라는 단어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한 몫했다. 까닭은 Chief라는 개념에서 적지 않은 모순을 느껴서였다. 지금은 예술문화연구회에서 문헌을 담당하고, 개인적으로 아내와 철학과 사진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가끔 비평을 쓰기도 한다. 이전에는 최적제어에 관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엔지니어였고, 기술이사였다. 그런 일을 해왔기에, <CEO 특강2>는 경험과 이론의 차이를 조금 볼 수 있다. 서문에 성공한 CEO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한다. 기업가 정신과 개척정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이다. 라고 글을 펼친다. Executive와 Energetic의 차이이지 않겠는가.

책은 1부에 하이퍼포먼스 경영, 2부에는 변화와 혁신경영, 3부에 휴먼 캐피탈 경영을 배치했다. 여기에 나오는 회사는 유한킴벌리, 삼양사, 한미파슨스, 구글코리아, 인텔코리아, 시스코 시스템즈, Fedex 코리아, ADT 캡스, S-Oil--모두 9개로 굵직하고, 나름대로 그들만의 암묵지가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 직원을 Worker가 아닌 Lover로 만들어라/유한킴벌리
  • 인사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다/삼양사
  • 직장인의 천국을 만들어라/한미파슨스
  • 즐거운 이노베이션을 일으켜라/구글코리아
  • 과감하게 생각을 바꾸어라/인텔코리아
  • 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시스코 시스템즈
  • 직원이 최고의 브랜드다/Fedex 코리아
  • 행복한 글로벌 리더를 꿈꾸어라/ADT 캡스
  • 리더십의 핵심은 사람과 미래이다/S-Oil

라는 부제는 직원 곧 사람과 관계에 대한 집중 조명을 하고 있다.

그 중 유한킴벌리를 집중적으로 읽게 됐다. 유한양행과 직간접 영향을 받은 까닭도 있어서며, 그 내용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경영문화가  관리에서 리더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소제목들이다. 일을 Work와 Job으로 표현하는데 둘 다 지배적인 속성이 스며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데, 어찌하여 일이 능동이 아닌 수동으로 바뀌어가고 있을까. <일>을 하는 입장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문제는 책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책은 단순한 경영서가 아니라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했는가 하는 프리젠테이션이다. 절대절명에서 그들은 수많은 길 중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스트레스는 뇌량(腦量)를 감소시키는 데, 특히 결정을 내려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극복하면 이전의 병도 씻은 듯 낫는 경우도 있으나, 실패한 경우는 참담해져 우울증은 물론 자살로 이어지거나 대인기피까지 올 수 있다. 인간 누구나 장애를 겪는다. 자칫 무용담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책을 두어번 더 읽게 되었던 이유는 객관적으로 어떻게 다가갔는지를 살펴보려해서였다.

이덕진/직원을 Worker가 아닌 Lover로 만들어라/유한킴벌리

유한킴벌리는 3S를 실천하는 조직으로 Say, Stay, Strive 으로 최고의 직장을 이렇게 정의했다. 유한킴벌리에게도 위기가 왔는데, 주력업종이 여성용품으로 경쟁자가 초기에는 없었다. 1990년도에 추격을 당하기 시작했는데, 점유율이 계속 떨어져 1995년도에는 20%로 뚝 떨어졌고, 경쟁사는 60%였기에, 사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2009년 현재, 유한킴벌리의 시장점유율은 55.8%이고, 경쟁사는 20.5%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 대개혁의 핵심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2. 환경친화적 경영
  3. 평생학습 경영
지식반감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업환경이 계속 지식을 요구하고, 인간존중을 위한 방침이기에 개개인이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High Performance Organization을 구현할 수 있는데, 매우 참여적인 조직이며 자율경영팀이라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평생학습은 매우 중요한 데, 그 결과를 밝히자면

  1. 1인당 평균 제안활동 건수가 많아졌다.
  2. 평생학습으로 안전(산재)사고가 감소했다.
  3. 유아용품의 생산성이 2배 이상 증가했다.
  4. 소비자 불반 최적, 세계 최고 품질 수준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실질적으로 우리 회사의 사원들이, 회사가,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혁신이 일어나기 전에는 직원들이 일에 치여서 기부나 봉사, 여가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을 기본으로 하되 '삶의 질'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부와 봉사, 여가활동이 가능해졌고 교양교육, 해외연수, 가사, 육아, 자기개발 등 이 모든 것을 함께 즐기며 재충전할 수 있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pp33

혁신은 공즉시색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혁신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근로자 또는 노동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해지는 자본사회에 살고 있다. 그들은 기생물이거나 애완동물이 아닌데도, 착취한 역사에서는 전태일도 보인다. 가치형태론, 이동론, 역사적 반복론은 단단한 매듭이라 잘 풀리지 않는다. 기수奇數처럼 나누어 1이 떨어지는 게 있는 것이 포지티브 게임이라 생각해왔다. 네거티브나 제로섬 게임에 익숙해서 타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역사가 동서양 즐비하다.

귀족 자신이 본질적으로 부르조아화했다. 신의信義, 사랑, 그리고 믿음이라는 덕목 대신 이제 귀족은 주로 사탕무우, 브랜디, 양모를 거래했다. 귀족의 으뜸가는 시합종목(토너먼트)는 양모 판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Karl Max, 1848/12/10, 신新 라인신문, 맑스·엥겔스 전집 제6권 pp104
라는 브루조아의 변형이 자본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동질화 과정과 사회화 과정은 맥락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위험을 이겨내자고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근로자가 따르지 않으면 노동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내외의 문제를 터닝포인트로 삼은 유한킴벌리의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후에도 실패에 대한 가책을 받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노동은 3H로 나뉘는 데, Hand·Head·Heart 라고 하며 이를 참여경영이라 하는 듯 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일의 목적과 의미가 주요하다. 여기에는 소비자와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도 포함된다(pp35) 라고 Heart를 소개하며 사람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가 진정한 성공이라 정의를 내렸다. 그것의 운동방향은 비전경영(Visionary), 감동경영(Inspirational), 혁신경영(Innovation), 팀조직경영(Collabora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재육성경영(Building Talent)라 소개했다. 인재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덕목이라는 것을 유한킴벌리는 확고하게 믿고 있다고 할까. 혁신의 관점을 구조주의나 자유주의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의 가치에 맞추고 있는 경영을 말하고 있다. 특이한 용어, 휴먼 캐피탈(Human Capital)이라는 개념을 체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선하다.

책 한 권에 9개의 경영방침이 있어 할당된 페이지는 적다. 그래서 난독이 생길 수 있는 위기 대처법은 인간중심주의로 자본주의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고 조금 더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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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너머의 역사책 3
임상혁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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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비로소이다

 

현現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척도는 재산 즉, 몇 평의 아파트인지, 몇 CC의 무슨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지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 등등 가시적으로 기준을 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의 사회는 노비의 양이 현 사회의 물질적인 양으로 대체된 듯 싶다. 

 "나는 노비로소이다"라는 제목을 대할 때 어떤 사회적인 소송이라기 보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책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머리말의 저자 임상혁의 글을 대할 때 이 책 한 권에  실렸던 저자의 내면 자체가 곧 나는 노비로소이다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책의 구성은 총 5장으로 칼럼 세 편을 부록식으로 중간에 끼어 넣었다. 또한 마지막에는 '부록'이란 장을 마련하여 1517년 노비결송입안과 이지도 판결문 전문 그리고 미주로 마무리 했다. 독특한 구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주 내용이 조선시대 나주 관아에서 벌어진 노비 소유권 문제를 다루었는 데 대부분 각 단원마다 다른 내용으로 단원마다 끊어져 있는 데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고 중간에 삽입 요소들이 무궁무진 하다. 물론 그 요소들은 조선시대 노비의 문제나 이두, 현행 민사소송과의 비교, 판례, 소송심리 순서에 입각한 구성이나 실체법적인 민사 규정 등을 섞어 놓고 있다. 이는 소설처럼 한 번에 읽어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구성 자체가 흥미와 판결의 궁금증을 더하게 했고, 지루할 수 있는 소송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재밌는 예화를 들어 결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게 엮어냈다.

전체의 맥이 되는 내용은 원고가 양반인 이지도(李止道)라는 남성이고 피고는 여든이 된 노파 다물사리(多勿沙里), 그리고 그 재판을 담당한 송관은 김성일 나주 목사로서 노비 소유권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의 과정을 풀어놓는다. 조선시대와 현대의 법률 용어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법관이나 법원의 구실 등에 대해 조선시대와 비교할 수 있는 상세한 해석이 주를 이룬다. 

나주 목사인 학봉 김성일은 일본 정부의 위협과 무례에 대해 남들은 적당히 넘어가려는 사회적 분위기 앞에서 당당히 시정을 요구하며 맞설 정도로 강직함이 소문난 사람이었다. 특히, 1574년 경연(經筵)에서 임금이 신하들에게 "경들은 나를 이전 시대의 제왕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임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때 누군가는 "요순 임금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학봉은 "요순이 될 수도 있고, 걸주(桀紂)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요순과 걸주가 어디 같은 부류인가?"라고 물었다. 김성일은 "올바른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엉뚱한 생각을 하면 미치광이가 됩니다. 전하께서는 타고난 자질이 고명하시어 요순이 되기 어렵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겨 간언을 거부하시는 병이 있습니다.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걸주가 망한 원인 아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이런 예화 뿐만 아니라 저자는 학봉 김성일에 대한 법관으로서의 자질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또한 임씨 ·나씨의 소송으로 김성일의 수난을 얘기하고 있다. 쟁쟁한 집안인 두 가문의 겹친 민형사로 얽힌 판결은 문제가 되었던 듯 싶은 데 이는 임씨의 아버지는 장흥의 수령을 지낸 고관이며, 그녀의 큰 오라비는 문명을 크게 떨친 백호 임제였고  「북정일록」을 보면 김성일이 임제를 만났다는 기사가 있어 면식이 있는 관계였음에도 문벌가인 임제 집안에게 불리한 판결을 서슴없이 내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법제는 양인과 천인이 서로 통혼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였고, 엄한 처벌 규정도 마련하였다. 양천간의 혼인으로 나온 자손을 노비가 되도록 한 것도 그에 대한 규제일 수 있다. 노비인 첩의 자녀, 이른바 천첩자녀는 또한 노비로서 아버지의 다른 자손들에게 상속될 수 있는 존재이다. 곧,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에게 부려지게 되는 것이다. p65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때 천첩자녀도 자신의 피가 흐르는 자식임에 틀림없는데, 그를 비롯한 자손들이 이후 노비로서 다른 자식들에게 부려지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일 수 없음은 일반적인 정리이다. 그리하여 일정한 지위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의 비첩(婢妾)소생들을 양인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p66

조선시대의 재판에 대하여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구별이 없었다거나, 사실상 구분되기 어려웠다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 하지만 오래전부터 민사절차와 형사절차는 개념상 구별되어 있었고, 그 운영도 달랐다. 중략 - 같은 기관에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둘의 차이가 없었다고 해서는 안된다. 지금도 동일한 법원에서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을 수행하고 있으며, 법관들도 또한 두 업무를 두루 맡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중앙에서는 오히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담당기관이 분리되어 있었다. 곧 전택(田宅)에 관하여는 한성부가, 노비에 관하여는 장예원이 맡았고, 형사소송은 형조가 담당하였던 것이다. 가헌부는 풍속에 관한 사건을 맡았다. 사안이 다르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그 절차 또한 달리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p106


현재는 소장을 제출한 후부터 소송이 시작되는 데 3장의 '법에 따라 심리한다'에서 조선시대는 피고를 직접 데리고 와야 했으며 그렇더라도 우선은 소지 즉 판결을 구하는 소지를 제출해야 하며 그것이 지금의 소장이 되는 셈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이두가 섞여 있는 문장으로 된 소장을 보여 민사상 구제와 함께 사기죄에 대한 형사상 고소의 예를 현재의 소장처럼 해석해 표현해 이해를 돕고 있다. 공문서에서 이두 즉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우리말을 기록한 이두에 대해 참고 문헌을 -조선시대의 문헌-소개하며 이 자료들을 활용하고 보존해 온 서리들의 계층에 대해 사회 경제적 법률 업무에 대해 관하고 있다. 소송법서인 『사송유취』 등 중요한 법령들과 법전들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실체법과 절차법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의 남겨진 기록을 꼼꼼이 찾고, 해석할 수 있었던 저자의 이면에는 아마 법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해박한 법규정에 대해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다는 것은 그저 지식적인 학습뿐만 아니라 법관들의 판결에 대해 어떤 회의가 들었는지도 모른다. 곳곳에 조선시대의 판결과 슬쩍 비교하거나 조선시대 때의 명판결의 예화를 든 이유가 현재 문제시 되고 있는 판결에 이의를 든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달리 생각해 보면 '노비'라는 최하위 계층을 들어 그래도 그 노비들의 살 궁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는 점은 돈이 없으면 소송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대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법관의 자질은 그저 시험에 합격이 되면 인성은 그저 관심 밖의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는 조선시대 나주 관아에서 벌어진 노비 소유권 문제를 다룬 것으로, 원고는 양반 남성 이지도(李止道)이고 피고는 여든이 된 노파 다물사리(多勿沙里), 그리고 그 재판을 담당한 송관은 김성일 나주 목사로서, 그 문제를 어떻게 판결해 냈는지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라고 오마이뉴스에도 올라온 걸 보면, 노비는 현대에도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카스트 제도가 계급사회를 지칭하지만, 포루투칼 언어였고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만든 확대된 개념이라 할 때, 노비는 자본주의가 만드는 현대판 노예제도 속의 사람들을 건지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책은 조선에서 건너오면서, 닳고 낡아 행간을 오로지 상상력으로 읽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까짓 노비의 기록보다는 양반의 기록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한 당시 사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다. 시간이 더 속도를 내어 책을 밖으로 글자를 꺼낸다. 멋진 책이다.

 

二乙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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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경제학>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불평등의 경제학
이정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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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하여


불평등이 무엇인가, 라는 화두로 경제라는 생물체를 바라본다. 경제라는 것, 쉽게 말해서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마지노선을 책은 정해놓았다. 책을 이해하기 앞서 고조선의 8조법금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①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②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
③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자속(배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

오래 전, 그런 게 있었나 상상조차 쉬 허락되지 않던 고조선에도 원칙과 불평등의 조항이 들어있다. 경제를 성장에 촛점을 둔 것이 아니라 평등에 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불평등의 경제학>은 이 평등에 기초를 하고 있고, 현대 노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닌가 유추할 수 있다. 모 대학의 경제학 강의를 해온 저자의 고뇌가 듬뿍 들어가 향신료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은 책을 읽으면서 사라졌다. 민주주의 시대인데 과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가? 라는 의문은 책에 나타난 숫자와 흐름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고대 사회 이후 줄곳 권력과 부의 집중 문제는 사라지는 부의 집중이 아니라 바톤을 이어받는 것과 같다고 해야한다. 지금이야 머리가 잘 돌지 않으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공부한 정수론과 최적제어이론 등 여러 사회이론이 어떻게 수학의 증명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했다. 낙향이라 치고, 덜 복잡한 사회로 온 지금에서 본 서울과 도시와 글로벌이란 유행은 오감을 마비시키는 최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책은 상류(上流)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하류(下流)에서 상류를 보며 말하고 있다. 하류에서는 상류에서 물에 버린 것들이 쌓이기 마련인데, 그래프로 치환되는 이론들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신간서평 평가단에서 이런 난이도가 높은 서적을 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해서 조금씩 읽어 책을 뚫었다. 어찌된 일인지 뚫릴수록 멍해졌다. 선택적 숫자가 만드는 그래프의 이면, 그 뒷골목을 다시 보게 되었다. 통계는 선택과 취사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현존하는 정규분포의 오류성에 대하여서도 언급을 조금 하려 했을까-저자는 1장 서론 중 3절의 펜과 난장이의 행렬에서 새로운 분포도를 들고 왔다. 낯선 분포도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그래프였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로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때로는 혼란스럽긴 하지만 아주 용감하게 개략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대체로 진보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평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보수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평등과 효율의 관계를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시장의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 해괴한 문제를 나는 막스베버에서 잠시 찾곤 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막스베버는 '의도하지 못한 결과'가 바로 자본주의라고 못 박았다. Karl Max의 자본론에서도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없다. 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쉽게 쓰이기 위해 자본주의라고 명명되었듯, 현재의 자본주의는 머리와 꼬리를 잘라낸 물고기처럼 보이곤 한다. 프랑스대혁명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정신을 되찾고자 함이었으나 평등과 박애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의 역사가 동양에도 있으나 중상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구조주의를 발전시킨 유럽의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관찰해야만 자본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근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어떤 이유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다가 <불평등의 경제학>에서 진화된 기피가 어렴풋하지만 어렵지 않게 잡게 되었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증가 현상과 부동산의 문제, 빈곤 문제, 세계화와 복지국가 문제, 세계화와 불평등 문제, 성장이냐 분배냐…를 야인의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그가 교수이면서 지방에 있기에, 현장의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까닭이다. 이론만으로 무장된 경제는 미국발 금융사고를 일으키게 하지 않았던가. 숫자는 노동이 아니기에 땀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금융회사가 자본을 대표하던 월스트리트의 잉여놀음은 노동의 가치를 추락시키지 않았던가. 돈을 번다는 것과 축적한다는 것이 선성장과 후분배라지만, 화장실 갈 때와 갔다오고 나서 달라지는 탐욕의 심리가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다.

10장 빈곤을 서평에서 중점적으로 파고 들어가려 했다. 까닭은 자본은 상대적으로 빈곤을 다루지 않으면 자본주의라 할 수 없어서다. <순수하게 신체적 늉률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한의 필수품을 정의하고 이들 필수품을 사는 데 필요한 소득에 미달할 때 1차적 빈곤의 상태로 보았다. 그것은 생활이라기 보다는 생존의 수준이다. 라운트리가 말하는 1차적 빈곤이란 아무리 현명하고 주의 깊게 소비하더라도 신체적 능률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를 충족하기에 수입이 불충분한 상태를 말한다. 이에 대해 2차적 빈곤은 역시 빈곤의 타격을 받고 있는 가구이지만 그 수입이 음주나 도박 등 평소와 다른 것에 소비하지 않는 한 그런대로 빈곤선(貧困線)  이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p328> 에서 빈곤의 기조를 데려온다. 경제가 선성장에 머물거나 그들을 옹호하는 대변자자일 때,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쓴소리다.

빈곤을 다루는 날카로운 칼은 아무 것이나 자르지 않는다. 책은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을 다루는데, 경제학의 지표들은 거의가 절대적 빈곤으로 통계를 내기 때문이라설 게다. <신체적 능률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라는 개념은 너무나 협의의 것이어서 현대에는 맞지 않으며, 그것보다는 사회적·심리적 필요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라고 밝혀주면서 절대적 필요(Absolute needs)를 필요의 사회적 결정(social determination of needs이라는 개념으로 치환하고 있다. 그리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의 빈곤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다. <① 상대적 빈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절대적 빈곤을 너무 협의로 해석해 '절대적 필요'는 일정불변인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절대적 빈곤의 개념도 시간적·공간적으로 변화하는 여러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며, 그렇게 보면 절대적 빈곤 개념에도 어느 정도 융통성이 생긴다. ②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성취한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음으로 인해서 절대적으로 덜 성취한다는 것, 이 두가지를 상대주의자들은 같게 보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점이다. 센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적 궁핍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자본주의의 예측은 성장에 몰려있다. 성장예측과 위험관리는 모두 실패의 문제를 떠안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러나 잘하려 하지 마라, 잘못 하는 게 없으면 잘하는 것이라는 옛말이 있듯, 예측이란 빈곤에 뿌리를 두고 해석을 내리는 게 변수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경제학은 쉽지 않다. 온갖 함정이 숨어 있기에 경제 여행이 망설여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더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런 딱딱한 책을 읽어야 한다. 단독(單讀)이 아니라 장독(長讀)으로 천천히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청소년 교양서로 나온 서적도 필수적으로 읽어두는 게 좋을 듯 하다. 서가에 꽂혀 있는 베버와 이 책을 소걸음으로 읽는 누릴 수 있어 행복한 새벽이다. 불평등을 올바로 보려는 데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비로소 본능 중 하나를 벗할 수 있지 않을까. Economy and Society, Max Weber, Bed Minster Press(1968)을 낡은 책을 다시 꺼내게 한 몹쓸 책이다. 그래서 새벽이 밝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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