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 이 왔다.

둘째 녀석은 6살 부터 사춘기였다고 그 아이 크는 내내 툴툴거렸는데, 그건 진짜 새발의 피였다는 사실. 더 무서운건 나 자신.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시기였는데도 막상 닥치니 나도 다시 사춘기가 된 것 같이 적응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사춘기여자'였던 시절을 잘 넘어가주고 있는 큰 딸이 새삼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집 '사춘기남자'는 현재 모든게 마음에 안든다. 

점심 도시락으로 싸주는 햄버거에 케찹이 많다해서 좀 줄여주면 어김없이 집에 오자마자 케찹은 어디갔냐며 쌍심지를 켜고, 잠깐 노트북 좀 쓸라치면 TV 보며 누워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숙제 해야되니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린다. 쇼파와 한 몸이 된지는 몇 개월 되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일을 - 간식먹기, 숙제하기, 게임하기 등등- 쇼파 위에 비스듬히 앉아 해결한다. 그러면서 계속 허리가 아프다길래 허리에 안좋으니 바로 앉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바로 발끈한다.

"난 이 자세여야 제일 집중이 잘 돼. 엄마랑 달라!"


"엄마는 말투가 왜 그래, 기분 나쁘게!" - 계속 짜증내길래 한 마디 했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들어올 때 노크는 왜 안해? 사생활 침해야!" - 13년 동안 한번도 안한 노크도 해야 할 판.

"진짜 그게 맞대? 엄마가 확인해 봤어? 안그럴 수도 있는거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 지구상에서 증명된 모든 사실들을 믿을 수가 없단다.

"왜 집 안에서 축구하면 안돼?" - 이걸 말이라고...


하루 종일 이런 대사들을 중저음에 변성기가 막 시작되려는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이 아이의 어렸을 적부터의 범상치 않은 생각과 태도, 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 덕에 나도 나름 훈련 받아왔다고 적응해 왔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빠뜨린게 있었다. 이런 당혹한 순간 순간 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매사에 불평 불만인 녀석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예상 밖을 벗어나지도 않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내 감정은 좀 낯설다. 적응이 안되는건 내 반응.


누군가가 사춘기는 뇌를 뒤집어 엎어 새로 정리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매일 매일 혼란스럽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자신에 대해 당황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널뛰는 매일을 살아내는 아이 곁에서 엄마는 그저 바라봐주고 자리를 지켜주고 응원해 주면 된다는데......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1969년에 초판이 나온 <부모와 십대 사이>에서는 사춘기 자녀의 부모들이 겪을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불시에 찾아오는 난감한 순간들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감정적 변화에 대한 대응 뿐만 아니라 이성교제, 성문제, 음주, 운전(미국 나이로 16세가 되면 면허를 딸 수 있고 운전을 할 수 있다), 마약 (미국에서는 공공연한 일) 등의 문제에서 실제 부모 자녀간의 대화나 부모들 간의 대화를 통해 어렵지 않게 생각할 꺼리들을 얻을 수 있다.





십대 아이들의 부모들은 오도가도 못 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도와주면 원성을 듣는 상황에서 도움 주는 방법을, 안내를 거절하는 상황에서 안내하는 방법을, 배려가 공격으로 오해받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의사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십대 아이들과 부모들이 과연 서로 평화롭게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그렇게 살 수 있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p.21


저자인 기너트 교수는 이스라엘에서 나고 뉴욕에서 일을 한 사람이니 아마도 유대인이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평화로운 대화'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과연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뇌의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하기 어려워 하는 내 자신이 문제처럼 느껴지니 사실 부담감을 팍팍 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이의 변화 앞에서 감정적으로 널뛰고 있는 나도 같이 변화를 겪고 같이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은 그나마 긍정적인 것이고, 욱하는 아이와 같이 욱하고 나서는 뒤돌아서서 자책하고 연민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분명 뛰어넘어야 하는 일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친절하고 무조건 잘해주며 지켜보라는 것도 아니다. 화를 내야 할 때 적절히 내야 하고 따끔하게 혼을 낼 때 혼을 내야 한다는데 그것의 전제 조건은 <모욕 주지 않기>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유익한 비판>과 같이 꼭 익혀야 할 부분. 


"모욕을 주지 않고 화를 내라는 말만큼 유용한 지적도 없어요. 그게 성숙한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 같아요. 그렇게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침착함도 유지할 수 있어요. 나는 한가하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비난에나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의 자책감을 씻어내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에요. 어려운 상황을 처리할 때는 마음 속으로 방향을 설정해요. 무엇이 핵심 의도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자. 논점을 혼돈하지 말자..." p.118


와...이런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려면 대체 어떤 내공을 쌓아야 하는가. 

아이가 사춘기를 맞기 전에 미리 충분히 성숙한 성인이 되어야 하던지 아니면 훌륭한 대화법을 미리 배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처럼 이미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는 중에 있거나 이미 지나버린 사람들은 절망할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참 부모의 자리가 새삼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진실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진실함'은 통하겠지.




 이 책과 같이 읽은 책은 2010년에 출간된 <내 아이와의 두 번째 만남>. 홍진표, 박수빈 두 저자는 기너트 박사가 교육자인 것과는 달리 의대를 나와 소아정신과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의사들이라 그런지 조금 더 물리적인 접근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최근 책이고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춘 책이니 구성 면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중독, 부모의 이혼문제, 또래 사이의 따돌림 문제, 진로문제, 이성교제, 학습 문제 등에서 아이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을 같이 기술했다. <부모가 느끼는 내 아이>, <아이가 느끼는 내 부모>, <구체적인 대처법>, <체크리스트> 등으로 구분을 잘 해서 마치 몇몇 사례들의 매뉴얼 같은 느낌도 든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때에 따라 찾아 보면 좋을 듯.


<부모와 십대 사이>가 좀 더 교육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대화 중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내 아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실제적이고 대처 방법 중심적이라 상황이나 사례가 잘 맞는다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하다......그리고 나도 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고, 또 반면 즐거운 웃음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건 뭐 정신병도 아니고...아이들과 같이 널을 뛰고 있다. 부모가 되기 전에 완벽한 부모로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고 (이론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부모가 안되어 봤는데 어떻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질 수가) 그저 좀 더 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 아프려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부모로서, 엄마로서의 내 자신을 내가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껴야 겠다는 뜬금없는 생각. 

내가 나 자신을 부모로서 부족하다 생각하고 자격없다 생각하는 그 순간이 결국 아이와의 관계도 깨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저 선물이라 생각하고 기쁘고 즐겁게 누리도록 애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소유도 아니고 남편 소유도 아니고 그저 이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신일 뿐이니.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듯이 아이들도 그렇게.


오늘도 역시 반쯤 누워 숙제하는 아들 옆에서 엄마가 이렇게 고민하고 잘 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옆에서 이 책들을 읽어댔다ㅋㅋ 제목 보고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지만 엄마 마음 알겠지 뭐. 그래도 모르는 척 하면 알려주지 뭐.


"내가 널 많이 사랑해."

"잘 자라고 있는 네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우리 잘 지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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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4-12-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09 23:32   좋아요 0 | URL
응원까지 해 주시니 갑자기 더 힘이 나는걸요? 감사합니다!^^

댈러웨이 2014-12-10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합니다 2. 반갑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님.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0 10: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댈러웨이님^^ 반가워요~

라로 2014-12-1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일찍 이 페이퍼를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라도 만나서 좋네요!!^^*100% 공감합니다!!!! 전 요즘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일단 아이가 바쁘니까 그걸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0 23:24   좋아요 0 | URL
아이가 바쁜 것도 정말 중요하죠~ㅎㅎ
이럴땐 서로 뭔가에 각자 집중하는 시간도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아롬님은 아이들과 정말 잘 지내실 것 같은데요?^^

울보 2014-12-1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집에도 있습니다 .전 너무
우울학 요즘 아무것도 제가 하기싫어지기도 합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2 03:07   좋아요 0 | URL
벌써 그렇게 컸군요~^^ 여기저기 이집저집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네요.
저도 자주 우울하고 속상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아이들인데요 ㅎㅎ
우리 같이 힘내봐요! 울보님도 화이팅!!

아이리시스 2014-12-1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일단 웃고~ 다들 조금씩 그렇겠지만 이 소년은 예전부터 좀 달랐죠.. 시도 좋고.. 근데 진짜 웃겨요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2 03:09   좋아요 0 | URL
시를 쓰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간걸까요? ㅋㅋ
보통 사춘기에 감성이 폭발하던데 이 녀석의 감성은 사춘기를 기점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ㅋㅋ

수이 2014-12-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_ 왜 이리 공감 가죠. 딸아이랑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어~ 그러면 십대인 딸아들을 가진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는 원수만 안 되면 다행이다_해서 움찔움찔거리고 있어요;;; 그래도 소년~ 엄마 마음 잘 알겠죠.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01:09   좋아요 0 | URL
ㅎㅎ 원수까지 될 일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엄마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되는건 맞는 것 같아요. 아이도 역시 그런 시기일텐데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고민만 하다가 소년이 청년이 되어 버릴까 그것도 걱정이네요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