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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ㅣ 살림지식총서 143
신정아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평점 :
바로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웅장하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른다. 반면 저자는 바로크 하면 로마의 나보나 광장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한 저자의 친구는 이 말에서 왠지 세련되고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듯 바로크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 자리잡아 나름의 이미지를 심어놓고 있다. 그러나 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제각각의 바로크에 대한 개념은 바로크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 한마디로 익숙하면서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바로크 시대와 그 직후에 살았던 사람들 조차 바로크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 꽤 부정적 이었다는 점이다. 바로크란 말이 본래 포르투갈 어로 모양이 고르지 못한 진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18세기에 '불완전함', '불규칙함'이란 뜻으로 파생 되었고 이것이 음악, 미술 분야로 적용 되면서 바로크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바로크란 용어를 음악에 처음 적용한 노엘 앙투완 플뤼슈와 루소 모두 바로크를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인위적인 음악형태로 정의를 내렸고 건축분야에서도 바로크는 기이함의 뉘앙스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미학자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바로크 미술이 재평가를 받은 이래 20세기에 들어서는 바로크 문학의 복원과 함께 오늘날엔 바로크시대가 유럽문명의 중요한 일부분이자 창조성이 빛나던 시기로 여겨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로크 양식은 17세기에 번성 했지만 장르나 지역에 따라 바로크 예술의 시대적 분포가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바로크 시대의 모든 예술이 바로크 예술이라고 할 수 없으며, 바로크 시대를 벗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은 모두 바로크 예술이 아니라고 말 할수도 없다. 하지만 여러 바로크 예술작품을 통해 바로크는 인간정신의 한 표현이면서 하나의 세계관이자 시대정신 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크 문학에 등장하는 물, 연기, 거품, 바람, 나뭇잎 등의 이미지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사랑을 비롯해 그 어떤 것도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당대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세상은 극장이며 인생은 연극이라는 가치관도 바로크 시대의 연극과 오페라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가면을 바꾸어 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느 것이 과연 나의 참모습인지 고뇌하는 모습에서 흔들리는 바로크인의 정체성 문제가 반영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멕베스> <당신이 좋으실대로>에 나오는 대사들과 코르네유의 <연극적 환상>, 로트루의 <성 주네>에서 쓰인 극중극 기법은 그 일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관념은 꿈과 현실,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뜨린다. 덧없고 유한한 삶에 대한 바로크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관한 사유를 불러온다. 죽음은 바로크 문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바로크인들은 삶에 죽음의 이미지를 투영하기를 좋아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란 문구는 처음부터 삶 속엔 이미 죽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럼으로써 바로크는 주어진 인생의 가치를 찾고자 몸부림 쳤던 당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르니니의 걸작인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나 <성 테레사의 무아경> 같은 예술작품, 대규모의 합창과 관현악, 무용 그리고 마술적인 효과와 다양한 장치로 많은 볼거리를 보여줬던 오페라 등 바로크 예술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화려하게 보인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 뒤에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에 뒤엉켜 혼란스러워 하는 바로크인의 고뇌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어쩌면 우리가 바로크에 대해 모호한 이미지를 갖는 것은 당연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불확실성과 혼돈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바로크의 꿈과 판타지는 현대인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로크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들뢰즈가 바로크를 '무한으로 향하는 주름'이라고 말한 것처럼 바로크는 17세기 유럽을 떠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