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앤 더 시티 - 4년차 애호가의 발칙한 와인 생활기
이진백 지음, 오현숙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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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대형마트에 들를 때마다 한쪽 코너를 가득히 메우고 있는 와인들을 보게 된다. 전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와인들은 제각기 고유의 빛깔을 뽐내며 마치 미인 대회에 나온 것마냥 일렬로 나란히 서있는 것이다. 사실 대형마트에서까지 와인을 보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와인은 우리 일상생활에 이만큼 다가와 있다. 몇년 전 보졸레누보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었고 칠레와의 FTA가 체결되었을 때 칠레산 와인의 수입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을 보면 와인 문화가 이렇게까지 뿌리내렸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와인과 사람들 사이에는 아직도 심리적인 장벽이 놓여있는 것 같다. 어차피 술이란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마시고 즐기면 그 뿐인데 와인은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면서도 종류도 많아 왠지 공부하면서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인을 다룬 책들 가운데에는 딱딱하고 어려운 개론서들이 대부분이다. 이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와인책과는 확실히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와인 앤더 시티>는 분명 와인서적이긴 하지만 와인만 등장하는 책은 아니다. 와인에 입문한 지 4년째 되는 저자가 일상에서 와인을 보고 마시면서 생각했던 점을 가볍게 풀어낸 에세이다. 따라서 와인에 대한 전문용어가 간간히 등장하긴 하지만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요컨대 이 책의 타겟은 와인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은 초보자나 약간 관심만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초보자가 관심있어할 만한 와인에 대한 여러가지 호기심을 다루고 있다. 특히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다가 우연히 곁들인 저가 와인인 '플레지르'가 제대로 궁합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 햄버거나 샌드위치에 여러 와인을 접목시켰던 점은 저자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덕분에 저가 와인이라도 고급와인 못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한다. 이 밖에도 와인을 마실 때 어울리는 음악이라든지 와인 테이스팅하는 법이라든지 여러 시도를 통해 와인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와인을 좋아하는지 생생히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런 점이 자연스럽게 전달돼 독자들이 와인에 친밀감을 갖게 하고, '나도 한번 와인을 마셔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와인에 대한 정보라면 얻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 차라리 정보전달보다 재미에 의의를 둔 와인입문서야 말로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와인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저자는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말은 따로 있다. 와인 자체보다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같이 와인을 마시면서 나누는 얘기들과 술자리의 분위기가 더 값지다는 것이다. 어쨌든 와인도 술이니만큼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여럿이 즐기고 만족하면 그걸로 족하지 않느냐는 말인 듯 하다.

확실히 이 책은 에세이답게 전문성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주로 드러나있다. 그리고 어느정도 초보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도 찾을 수 있다. 와인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완화하고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도 이 책은 유용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을 하나 말하자면 이따금 등장하는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주석으로나마 설명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예 와인에 대한 상식이 없는 상태에서 '와이너리'. '디캔팅', '타닌' 등의 용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문맥을 대충 이해하는 정도로 넘어갔는데 뒤에서 이야기 중간에 설명해 주는 것도 있지만 차라리 주석이나 따로 부록같은 것을 첨부했으면 보기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와인 앤더 시티>는 와인입문서로써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무슨 와인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백번하는 것보다 와인 마시는게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사람들을 와인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가볍지만 강하게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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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살림지식총서 143
신정아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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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웅장하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른다. 반면 저자는 바로크 하면 로마의 나보나 광장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한 저자의 친구는 이 말에서 왠지 세련되고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듯 바로크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 자리잡아 나름의 이미지를 심어놓고 있다. 그러나 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제각각의 바로크에 대한 개념은 바로크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 한마디로 익숙하면서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바로크 시대와 그 직후에 살았던 사람들 조차 바로크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 꽤 부정적 이었다는 점이다. 바로크란 말이 본래 포르투갈 어로 모양이 고르지 못한 진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18세기에 '불완전함', '불규칙함'이란 뜻으로 파생 되었고 이것이 음악, 미술 분야로 적용 되면서 바로크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바로크란 용어를 음악에 처음 적용한 노엘 앙투완 플뤼슈와 루소 모두 바로크를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인위적인 음악형태로 정의를 내렸고 건축분야에서도 바로크는 기이함의 뉘앙스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미학자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바로크 미술이 재평가를 받은 이래 20세기에 들어서는 바로크 문학의 복원과 함께 오늘날엔 바로크시대가 유럽문명의 중요한 일부분이자 창조성이 빛나던 시기로 여겨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로크 양식은 17세기에 번성 했지만 장르나 지역에 따라 바로크 예술의 시대적 분포가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바로크 시대의 모든 예술이 바로크 예술이라고 할 수 없으며, 바로크 시대를 벗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은 모두 바로크 예술이 아니라고 말 할수도 없다. 하지만 여러 바로크 예술작품을 통해 바로크는 인간정신의 한 표현이면서 하나의 세계관이자 시대정신 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크 문학에 등장하는 물, 연기, 거품, 바람, 나뭇잎 등의 이미지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사랑을 비롯해 그 어떤 것도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당대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세상은 극장이며 인생은 연극이라는 가치관도 바로크 시대의 연극과 오페라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가면을 바꾸어 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느 것이 과연 나의 참모습인지 고뇌하는 모습에서 흔들리는 바로크인의 정체성 문제가 반영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멕베스> <당신이 좋으실대로>에 나오는 대사들과 코르네유의 <연극적 환상>, 로트루의 <성 주네>에서 쓰인 극중극 기법은 그 일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관념은 꿈과 현실,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뜨린다. 덧없고 유한한 삶에 대한 바로크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관한 사유를 불러온다. 죽음은 바로크 문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바로크인들은 삶에 죽음의 이미지를 투영하기를 좋아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란 문구는 처음부터 삶 속엔 이미 죽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럼으로써 바로크는 주어진 인생의 가치를 찾고자 몸부림 쳤던 당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르니니의 걸작인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나 <성 테레사의 무아경> 같은 예술작품, 대규모의 합창과 관현악, 무용 그리고 마술적인 효과와 다양한 장치로 많은 볼거리를 보여줬던 오페라 등 바로크 예술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화려하게 보인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 뒤에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에 뒤엉켜 혼란스러워 하는 바로크인의 고뇌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어쩌면 우리가 바로크에 대해 모호한 이미지를 갖는 것은 당연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불확실성과 혼돈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바로크의 꿈과 판타지는 현대인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로크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들뢰즈가 바로크를 '무한으로 향하는 주름'이라고 말한 것처럼 바로크는 17세기 유럽을 떠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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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의 영웅들을 만나다 제우수의 역사 탐험기 1
임명현.김이철.놀자북 기획팀 지음, 김이철 그림 / 놀자북(돋을새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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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은 너무도 유명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위인들의 업적을 살펴보는 데 교과서격이 되는 책이다. 나폴레옹도 외로웠던 사관학교 시절 이 책을 읽고 큰인물이 되겠노라 결심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오랜세월동안 다양한 판본으로 번역 됐는데 이 책은 딱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보면 좋을 책이다.

책표지부터 살펴보면 어린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책을 펼쳐들고 읽어나가다 보면 꽤 신경쓴 모습이 보인다. 칼라사진이나 삽화도 어느정도 있는 편이며 책 가장자리에 주석이 풍부하게 있어 배경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각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면 <역사와 신화의 경계>라는 코너를 통해 해당 인물과 관련된 신화나 문학작품,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여 고대 그리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은 테세우스, 리쿠르고스, 솔론, 페리클레스인데 각기 아테네와 스파르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다만 테세우스는 신화상의 인물에 가깝고 리쿠르고스는 전설 혹은 실제론 여러 사람이었다는 설도 있다. 원래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은 두명의 위인을 소개하고 비교하여 윤리적인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이들 인물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건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폴리스의 성격과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주의깊게 읽은 부분은 부록으로 수록된 <플루타르크 영웅전 속의 역사와 신화>이다. 그리스 문명의 기원인 미노아, 미케네 문명부터 시작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까지 고대 그리스 역사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으며, 폴리스의 특징이나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대해서도 따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델포이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 올림피아 제전, 디오니소스 극장 등 건축, 예술에 대한 상식도 전해주고 있다. 물론 신화에 관한 내용도 마치 기회만 되면 얘기 하려는 듯 자주 나온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인물로 보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본래 취지보다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데 상당히 비중을 둔 듯한 느낌이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내용상 의아한 부분이 좀 있었는데 22쪽 테세우스 편에서 아테네가 9년에 한번씩 크레타에 공물을 바친다고 나왔는데 157쪽에선 해마다 바친다고 나와있다(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찾아보니 그 책은 '매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솔론편에서는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솔론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가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에게 멸망당했을 때 화형을 당하기 앞서 솔론의 이름을 외쳤다는데 물론 이런 설도 있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크로이소스가 키로스의 뒤를 이은 캄비세스 시대에 이르러서도 조언자로서 크게 활약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물론 이 책은 플루타르코스의 책을 기본으로 삼았고, 95쪽의 주석에서도 솔론과 크로이소스가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는 역사가들의 의견도 소개해놓기도 했지만 크로이소스의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고 또 그가 화형당하는 삽화까지 그려놓은게 좀 마음에 걸려 그에 대한 여러가지 설을 주석으로나마 좀더 자세하게 소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면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한다는 이 책의 의도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초중등생 자녀를 가진 학부모가 자녀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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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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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역자가 책 맨 뒤의 해제에서 밝혔듯이 이런 종류의 고전 소설은 어렸을 때 접한 동화책이나 중고등학교 시절 교육을 통해 대충 줄거리는 알아도 작품 전체를 접하기 힘들다. 나만 해도 춘향전, 심청전같은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봤고 드라마로도 봤지만 정작 완전한 작품을 읽은 적은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고전소설만큼 인지도는 엄청나게 높으면서도 정작 다 읽은 사람은 흔치 않는 그런 장르도 드문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소개를 보고서도 줄거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고전소설의 줄거리 전개 패턴이 대개 천상의 인물이 죄를 얻어 인간세상에 태어나서 무럭무럭 잘 자라 무난히 과거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지만 전쟁에 휘말리고 간신들의 참소에 귀양을 가는 등 고생하다가 모든 위기를 넘기면 많은 자손을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설정이나 줄거리가 이 패턴과 약간 다른 작품들도 있는데 가령 어렸을 때 만화로 본 <별당아씨전> <홍계월전>처럼 주요 패턴에서 주인공만 여성으로 한 소설도 있고 딱히 영웅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는 <사씨남정기>같은 작품도 있다.

다만 이 옥루몽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 소설이 이전의 고전소설의 특징들을 죄다 합쳐놓은 듯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가 연이어 나오는데 강남홍이 주인공 양창곡과 헤어진 후 겪은 고초를 보면 <춘향전>과 비슷하고 전쟁터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또 <삼국지연의>와 유사하다. 그리고 벽성선이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나 귀양가는 스토리는 <사씨남정기>를 보는 듯 하다. 게다가 알고보니 꿈이었다는 설정은 제대로 <구운몽>에서 따온 것 같다. 따라서 옥루몽은 이전의 고전소설 패턴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스케일이 매우 크다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옥루몽을 보면서 남녀간의 사랑, 정치적 투쟁 그리고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읽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스케일이 크다고 해도 기본적인 패턴에서 벗어난 건 없기 때문에 이 책에서 딱히 신선하거나 창의적인 면을 찾기가 쉽진 않다. 옥루몽도 분량이 꽤 많기는 했지만 4권을 넘어가면서부터 긴장감이 풀려 1~3권을 읽었을 때와 같은 흥미진진함이 느껴지진 않았다(이때까지는 이야기 전개의 그 방대한 규모에 힘입어 기본패턴을 따르면서도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아리따운 기생 ㅡ> 카리스마 있는 장군으로 강남홍이 급격한 신분변화를 일으키는 게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 책은 뻔한 줄거리를 이어나가면서도 세세한 면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남영로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기본 줄거리야 뻔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면을 강조한 부분이 많다. 양창곡이 올린 과거시험 답안지나 상소문을 보면 현실 정치의 개혁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아예 새로운 인사제도에 관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저자가 옥루몽을 지은 19세기 초가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했던  시절이었고 저자 자신도 부패한 과거제도에 환멸을 느껴 벼슬길에 나아가는 걸 포기했던 경험도 있는 만큼 소설 속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 같다. 그 밖에도 자연환경이나 풍속에 대한 묘사나 등장 인물들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센스가 상당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줄거리 파악보단 이런 사소한 것에 더 신경써서 읽기도 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보면 의외로 자기들끼리 농담따먹기를 하거나 장난을 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한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옥루몽은 문학사적으로 이전의 고전소설을 집대성한 훌륭한 작품이다. 1840년대 지어진 이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필사본이 조선 전역을 떠돌았고, 이 책의 등장인물을 독립시켜 <강남홍전>과 <벽성선전>과 같은 이본이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수십년이 지난 1910년대에도 여러 종류가 출간되기도 했다는 걸 보면 옥루몽의 인기가 엄청났으며 과연 고전소설의 완성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결말은 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만큼 결말이 기대되지 않고, 책을 읽기전 등장인물 이름만 알고도 결말을 맞춘 책도 없다. 하지만 굳이 고전소설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읽지 않아도 의외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은 흥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현재 제작되고 있는 애니메이션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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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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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길가메쉬의 영웅적인 활약,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보다는 이 서사시의 배경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신화'보다는 '인류 최초의 문명'과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1852년 옛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에서 발견된 점토 서판에는 길가메쉬 왕 뿐만 아니라 수메르인의 사회, 종교, 일상 생활 그리고 그들이 했던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에 19세기 후반~20세기 초의 영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문학 작품도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길가메쉬 서사시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수메르인에 관한 그리 많지 않은 자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길가메쉬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배경이 더 궁금했던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루루 여신이 찰흙으로 엔키두를 창조하고 엔릴신의 분노로 인한 대홍수가 인간세상을 휩쓸었을 때 우트나피쉬팀과 그의 부인이 살아남은 것 등 베레쉬트와 그리스 신화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즉, 베레쉬트에서 신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고, 그리스 신화에서 데우칼리온 부부가 제우스신이 일으킨 대홍수 가운데서도 무사히 살아남아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내용이 서사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접하고 있는 베레쉬트나 그리스 신화보다 수메르어로 기록된 길가메쉬 서사시가 훨씬 이전 작품이고, 앞의 두 작품은 그것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었다. 아마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대홍수 이야기도 불규칙한 범람으로 큰 피해를 주었던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의 자연환경과 관련하여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수메르어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수메르 신화의 '아류'와 같은 신화들도 수메르가 몰락한 한참 후에야 등장했기 때문에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그 가치를 드러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히브리 신화와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미쳤던 최초의 신화로써 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메르 문명의 영향력은 물론 고대 근동에 기원을 둔 종교의 기본틀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길가메쉬 서사시는 그 자체로도 수메르 문명의 귀중한 유산이지만 고대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시인 릴케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서사시(das Epos der Todesfurcht)'라고 했다. 한낱 만용만 부릴 줄 알았던 젊은 길가메쉬가 절친한 친구 엔키두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멀고 먼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장면, 그 고단하고 힘든 여정을 통해 영생을 갈구했던 길가메쉬의 모습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길가메쉬가 방랑 중 만난 여인숙 주인 씨두리는 인간이란 어차피 죽을 운명이므로 삶을 즐겁게 보내라고 충고하지만 그의 욕망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우트나피쉬팀의 '생명의 식물'까지 잃어버림으로써 길가메쉬의 절망은 더욱더 깊어진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길가메쉬는 고독에 휩싸이지만 이는 성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엔키신의 말처럼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거나 절망하거나 의기소침할 것도 그리고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듯 앞으로 남은 일생을 '당연히 맞게될' 죽음을 걱정하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이처럼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한 영웅의 모험담일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덧 길가메쉬 서사시 자체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최초의 신화' 그 자체로도 큰 가치를 갖고 있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삶과 죽음에 관한 위대한 서사시이다. 죽음에 관한 등장 인물들의 대사는 구구절절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통찰이 절절히 배여있다. 사나이들의 우정, 영웅적인 행위, 영생에 대한 욕망 그리고 죽음. 인생의 빛은 결국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밀려난다. 그러나 길가메쉬 서사시는 죽음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의연하고 당당하게 맞이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비록 수메르 문명이 오랜세월 잊혀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화에 영향을 주어 후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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