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앤 더 시티 - 4년차 애호가의 발칙한 와인 생활기
이진백 지음, 오현숙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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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대형마트에 들를 때마다 한쪽 코너를 가득히 메우고 있는 와인들을 보게 된다. 전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와인들은 제각기 고유의 빛깔을 뽐내며 마치 미인 대회에 나온 것마냥 일렬로 나란히 서있는 것이다. 사실 대형마트에서까지 와인을 보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와인은 우리 일상생활에 이만큼 다가와 있다. 몇년 전 보졸레누보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었고 칠레와의 FTA가 체결되었을 때 칠레산 와인의 수입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을 보면 와인 문화가 이렇게까지 뿌리내렸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와인과 사람들 사이에는 아직도 심리적인 장벽이 놓여있는 것 같다. 어차피 술이란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마시고 즐기면 그 뿐인데 와인은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면서도 종류도 많아 왠지 공부하면서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인을 다룬 책들 가운데에는 딱딱하고 어려운 개론서들이 대부분이다. 이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와인책과는 확실히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와인 앤더 시티>는 분명 와인서적이긴 하지만 와인만 등장하는 책은 아니다. 와인에 입문한 지 4년째 되는 저자가 일상에서 와인을 보고 마시면서 생각했던 점을 가볍게 풀어낸 에세이다. 따라서 와인에 대한 전문용어가 간간히 등장하긴 하지만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요컨대 이 책의 타겟은 와인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은 초보자나 약간 관심만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초보자가 관심있어할 만한 와인에 대한 여러가지 호기심을 다루고 있다. 특히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다가 우연히 곁들인 저가 와인인 '플레지르'가 제대로 궁합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 햄버거나 샌드위치에 여러 와인을 접목시켰던 점은 저자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덕분에 저가 와인이라도 고급와인 못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한다. 이 밖에도 와인을 마실 때 어울리는 음악이라든지 와인 테이스팅하는 법이라든지 여러 시도를 통해 와인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와인을 좋아하는지 생생히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런 점이 자연스럽게 전달돼 독자들이 와인에 친밀감을 갖게 하고, '나도 한번 와인을 마셔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와인에 대한 정보라면 얻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 차라리 정보전달보다 재미에 의의를 둔 와인입문서야 말로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와인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저자는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말은 따로 있다. 와인 자체보다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같이 와인을 마시면서 나누는 얘기들과 술자리의 분위기가 더 값지다는 것이다. 어쨌든 와인도 술이니만큼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여럿이 즐기고 만족하면 그걸로 족하지 않느냐는 말인 듯 하다.

확실히 이 책은 에세이답게 전문성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주로 드러나있다. 그리고 어느정도 초보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도 찾을 수 있다. 와인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완화하고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도 이 책은 유용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을 하나 말하자면 이따금 등장하는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주석으로나마 설명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예 와인에 대한 상식이 없는 상태에서 '와이너리'. '디캔팅', '타닌' 등의 용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문맥을 대충 이해하는 정도로 넘어갔는데 뒤에서 이야기 중간에 설명해 주는 것도 있지만 차라리 주석이나 따로 부록같은 것을 첨부했으면 보기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와인 앤더 시티>는 와인입문서로써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무슨 와인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백번하는 것보다 와인 마시는게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사람들을 와인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가볍지만 강하게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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