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역자가 책 맨 뒤의 해제에서 밝혔듯이 이런 종류의 고전 소설은 어렸을 때 접한 동화책이나 중고등학교 시절 교육을 통해 대충 줄거리는 알아도 작품 전체를 접하기 힘들다. 나만 해도 춘향전, 심청전같은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봤고 드라마로도 봤지만 정작 완전한 작품을 읽은 적은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고전소설만큼 인지도는 엄청나게 높으면서도 정작 다 읽은 사람은 흔치 않는 그런 장르도 드문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소개를 보고서도 줄거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고전소설의 줄거리 전개 패턴이 대개 천상의 인물이 죄를 얻어 인간세상에 태어나서 무럭무럭 잘 자라 무난히 과거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지만 전쟁에 휘말리고 간신들의 참소에 귀양을 가는 등 고생하다가 모든 위기를 넘기면 많은 자손을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설정이나 줄거리가 이 패턴과 약간 다른 작품들도 있는데 가령 어렸을 때 만화로 본 <별당아씨전> <홍계월전>처럼 주요 패턴에서 주인공만 여성으로 한 소설도 있고 딱히 영웅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는 <사씨남정기>같은 작품도 있다.

다만 이 옥루몽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 소설이 이전의 고전소설의 특징들을 죄다 합쳐놓은 듯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가 연이어 나오는데 강남홍이 주인공 양창곡과 헤어진 후 겪은 고초를 보면 <춘향전>과 비슷하고 전쟁터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또 <삼국지연의>와 유사하다. 그리고 벽성선이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나 귀양가는 스토리는 <사씨남정기>를 보는 듯 하다. 게다가 알고보니 꿈이었다는 설정은 제대로 <구운몽>에서 따온 것 같다. 따라서 옥루몽은 이전의 고전소설 패턴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스케일이 매우 크다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옥루몽을 보면서 남녀간의 사랑, 정치적 투쟁 그리고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읽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스케일이 크다고 해도 기본적인 패턴에서 벗어난 건 없기 때문에 이 책에서 딱히 신선하거나 창의적인 면을 찾기가 쉽진 않다. 옥루몽도 분량이 꽤 많기는 했지만 4권을 넘어가면서부터 긴장감이 풀려 1~3권을 읽었을 때와 같은 흥미진진함이 느껴지진 않았다(이때까지는 이야기 전개의 그 방대한 규모에 힘입어 기본패턴을 따르면서도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아리따운 기생 ㅡ> 카리스마 있는 장군으로 강남홍이 급격한 신분변화를 일으키는 게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 책은 뻔한 줄거리를 이어나가면서도 세세한 면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남영로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기본 줄거리야 뻔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면을 강조한 부분이 많다. 양창곡이 올린 과거시험 답안지나 상소문을 보면 현실 정치의 개혁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아예 새로운 인사제도에 관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저자가 옥루몽을 지은 19세기 초가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했던  시절이었고 저자 자신도 부패한 과거제도에 환멸을 느껴 벼슬길에 나아가는 걸 포기했던 경험도 있는 만큼 소설 속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 같다. 그 밖에도 자연환경이나 풍속에 대한 묘사나 등장 인물들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센스가 상당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줄거리 파악보단 이런 사소한 것에 더 신경써서 읽기도 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보면 의외로 자기들끼리 농담따먹기를 하거나 장난을 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한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옥루몽은 문학사적으로 이전의 고전소설을 집대성한 훌륭한 작품이다. 1840년대 지어진 이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필사본이 조선 전역을 떠돌았고, 이 책의 등장인물을 독립시켜 <강남홍전>과 <벽성선전>과 같은 이본이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수십년이 지난 1910년대에도 여러 종류가 출간되기도 했다는 걸 보면 옥루몽의 인기가 엄청났으며 과연 고전소설의 완성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결말은 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만큼 결말이 기대되지 않고, 책을 읽기전 등장인물 이름만 알고도 결말을 맞춘 책도 없다. 하지만 굳이 고전소설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읽지 않아도 의외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은 흥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현재 제작되고 있는 애니메이션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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