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노조,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삭발투쟁 강행
[오마이뉴스 2006-05-02 10:28]    
[오마이뉴스 신종철 기자]
▲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이 삭발하는 동안 법원경비대원들에 둘러쌓인 노조간부들이 사법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6 신종철

서울남부지법 A판사가 법원직원을 감금했다는 논란으로 사법부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의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요구를 대법원이 계속 거부하면서 급기야 사법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27일 대법원 청사에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연 데 이어, 1일에는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노조간부의 삭발투쟁이 벌어지는 등 극한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대법원도 사태수습을 위해 A판사에게 사실상 사과를 권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법관까지 A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유연하게 처리해 줄 것을 주문했다는 것. 그러나 법원직원들이 이용하는 법원내부 통신망을 폐쇄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법원노조, 삭발 투쟁 단행

1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법원노조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면담요구가 계속 거부당하자 삭발투쟁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

전국법원 각 지부장과 지역본부장들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가진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은 "대법원의 공식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오늘도 법원행정처장에게 면담요청을 했다"며 "위원장이 결연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인 만큼 사법민주화를 위해 삭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투쟁결의를 다졌다.

이들은 회의가 끝난 뒤 삭발식을 위해 4시 35분 서울법원종합청사 중앙로비로 향했다. 중앙로비에는 서울법원청사 경비책임자인 비상계획관과 경비대원 20여명이 나와 있었고, 곽승주 위원장에게 다른 장소를 이동해 줄 것을 요청하다가 법원노조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법원노조는 곽승주 위원장과 이성철 사무총장의 삭발식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저지하려는 법원 경비관리대와 몇차례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또한 경비관리대는 방송사의 촬영을 막으려다 "취재를 방해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출입문 굳게 닫은 대법원

삭발식 후 법원노조는 '언론탄압과 노조탄압책동 분쇄를 위한 투쟁 삭발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대법원으로 향하면서 "사법개혁 한다는데 대화거부 웬 말이냐"를 외치며 행진했다.

법원노조가 대법원 청사 정문에 도착한 시각은 5시 10분. 하지만 면담요청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닫힌 문 안쪽에서는 법원행정처 직원 30여명이 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김대열 법원노조 서울가정법원지부장은 이에 대해 "자유·정의·평등을 자랑스럽게 대리석에 새겨놓은 대법원이 대화를 하자고 찾아온 법원가족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고 있다"며 "우리가 불량배냐"고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곽승주 위원장도 "법원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고 문을 꼭 닫으면서 직원의 인권탄압을 일삼는 대법원장이 어찌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만들 수 있겠느냐"며 "이래서는 법원이 최후의 인권 보루가 될 수 없으니 대법원장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법원노조와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을 위해 행정관리실장과의 전화연락이 수 차례 오고가던 중 대표자 몇 명만 행정관리실장과 만나기로 협의되자, 교섭단체장 5명만 남고 5시 43분 법원노조사무실로 향했다.

"대법관까지 나서 해당 판사에게 '원만한 해결' 주문"

▲ 대법원이 청사 정문을 열어 주지 않자 법원노조 간부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6 신종철
이날 기자는 대법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법원노조와 만난 행정관리실장을 만나려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대법원도 긴급 회의를 소집해 만날 수 없었다. 더욱이 대법원 언론창구인 공보관조차도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입장표명을 피했다.

계속해서 법원행정처장의 입장을 들으려 시도했으나 "민감한 사안이고, 아직 정리된 입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법원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을 만나 현재 대법원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이날 저녁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법원가족간에 이런 사태로 번져간 것에 대해 대법원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법 수뇌부들도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초기에 사과만 했으면 사태가 커질 일이 아니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그 동안 A판사에게 유연하게 처리해 줄 것을 여러 루트를 통해 주문했으나 쉽지 않았고, 심지어 대법관까지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한 것으로 안다"며 사태 악화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한 "대법원이 법원내부통신망을 닫아버린 것이 사태확산에 기름을 부은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내부통신망을 막아 버린 것은 정말 잘못이다, 언제까지 닫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지시가 있었으니 내일은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행정관리실장을 만난 노조대표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원공무원들의 의사소통 공간인 법원내부 통신망을 닫아버리자 답답한 것은 대법원도 마찬가지. 그는 "대법원도 법원노조 홈페이지나 언론보도가 나간 이후에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일로 인해 사법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것이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자는 또 "대법원 누구도 입장 밝히기를 꺼리니 답답하다"고 하자, 그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어서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해해 달라, 오늘 오후 긴급회의를 가졌으니 조만간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대법원이 곧 입장표명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초유의 법원 충돌... 사태 왜 악화됐나

▲ 삭발식을 마친 법원노조원들이 법원행정처장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법원종합청사를 나오며 사법개혁을 외치고 있다.
ⓒ2006 신종철
법원노조는 서울남부지법 사태를 판사의 '불법감금'과 '인권유린'으로 규정하면서 A판사의 공식사과와 대법원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했다. 이에 법원행정처도 신속하게 진상조사를 벌여 A판사를 전보조치 했으나 법원노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

대법원이 지난달 27일 공식사과 없이 A판사에 대한 전보조치를 발표하자, 법원노조는 즉각 대법원 청사 로비에서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가졌다. 물론 이날 법원노조를 저지하려는 대법원 경비관리대와의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대법원이 법원노조의 면담요구를 거부한 것.

이런 사실들이 법원내부통신망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법원공무원들이 대법원을 비난하는 글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고, 법원노조 홈페이지에도 평소 방문자의 2∼3배가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며 수많은 글을 올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원공무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한데 이어 지난달 27일부터는 법원내부통신망을 원천 봉쇄하면서 법원공무원들의 분노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법원이 통신망에 올라 온 글들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27일부터는 자유게시판 글을 무단 삭제하는 수준을 넘어 글쓰기 기능 자체를 막아버렸다. 이에 법원공무원들도 이미 올려져 있던 글을 수정해 투쟁 속보와 비난 글을 올리자 이번에는 그 글도 삭제하고 수정 기능도 마비시켰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메일기능도 통제했다. 법원노조에 따르면 노조위원장이 이 같은 부당성을 알리는 메일을 노조원들에게 27일 오후 6시 30경 발송하고 28일 오전에 확인해 보니 한번 발송하는데 200명까지 가능했던 것을 10명만 발송되도록 제한했다.

이에 자극된 법원공무원들은 급기야 경조사란에 '코트넷 사망'이라고 올리자 법원공무원들의 경조사를 올릴 수 있는 이 공간마저도 글쓰기 기능을 28일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법원제안 코너도 마찬가지.

이에 격분한 법원노조는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언론탄압의 망령을 되살리는 법원행정처는 즉각 중단하라"며 맹비난 하고 나섰다.

법원노조는 이날 투쟁결의문을 통해 "단순한 판사의 직원 핍박에서 시작된 투쟁이 법원가족간의 걷잡을 수 없는 불신으로 번지고 있고, 심지어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가 발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노조는 또한 ▲법원내부 통신망 폐쇄를 중단하고, 법원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책임자 처벌 ▲서울남부지법 사태에 대해 법원직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로운 발바닥 2006-05-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원에 있는 선배로부터 들은 사건의 전말로는 이렇게까지 커질 사건은 아니었는데 한 판사의 섣부른 처신이 사건을 키운 듯하다. 그렇다고 법원에서 삭발식까지 하는 것은 좀 오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개인도 이 이슈에 관하여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것이다. 단지 누리던 특권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법원내부로까지 투쟁과 반목의 불길이 번진 것일 수도 있고...쉽게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암튼 여러모로 씁슬한 생각이 든다...
 

김앤장 “우린 법대로 했다고요”

[한겨레]
안과 밖
김앤장 법률사무소 문제를 취재하겠다고 덤벼들어 한참을 헤맨 끝에 몇 사람의 제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묻기도 했다. “진실을 말해주면 그걸 쓸 용기가 있느냐.” 나는 물론 “진실이라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고 여러 차례 사실 확인을 거쳐 기사를 내보냈다.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 김앤장과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 시대 마지막 성역이라고도 부르는 김앤장. 지난 몇 달의 취재를 통해 나는 김앤장의 실체에 그나마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본다. 최근 김앤장에 대한 의혹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김앤장을 위한 변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앤장을 감싸겠다는 것은 아니고 우선 김앤장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앤장을 둘러싼 첫 번째 쟁점은 쌍방대리 논란이다. 김앤장은 과거 에스케이그룹과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 때 소버린의 주식취득신고를 대행해줬으면서 동시에 최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논란이 되는 건 김앤장을 통해 에스케이그룹의 기밀 정보가 소버린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느냐는 의혹 때문이다.

에스케이 분식회계 사건을 담당했다는 김앤장 변호사의 설명은 이렇다. 그는 친히 최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는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에스케이가 어떤 기업인데, 만약 우리가 에스케이와 소버린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를 했다면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사건을 맡기겠는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변호사들은 진짜 중요한 정보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고객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문제는 그 고객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김앤장은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경영권 분쟁 때도 양쪽을 모두 대리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진로는 1997년부터 구조조정 계획 전반에 걸쳐 김앤장에게 법률자문을 받았는데 그 김앤장이 나중에 골드만삭스의 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홍콩 자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은밀히 사들여 채무 변제를 요구하다가 결국 진로를 법정관리로 밀어붙였다.

6억 이상 연봉 114명 ‘율사천국’

2003년 진로의 법정관리 재판에서 골드만삭스는 부장판사 출신의 김 아무개 변호사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배후에서 골드만삭스를 대리한 것은 김앤장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오죽하면 판사가 김 변호사에게 “당신은 잘 모를 테니 김앤장에게 물어보고 오라”고 했을까. 취재 과정에서 김앤장도 이를 시인했다.

역시 담당 변호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때는 이미 진로와 법률 자문 계약이 끝난 때였다. 장진호 전 회장 등 경영진이 모두 아웃된 상황에서 김앤장이 진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장 전 회장 입장에서 보지 말고 진로라는 회사 입장에서 보자. 그때 진로는 법정관리가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진로가 장 전 회장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앤장은 다른 법률회사들과 달리 창업 이래 지금까지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를 고집하고 있다. 일단 외형만 보면 변호사들이 모두 개인 사업자로 등록돼 있고 개별적으로 사건을 수임해서 이익을 내고 책임지는 구조다. 그래서 이를테면 김앤장의 다른 변호사들이 에스케이와 소버린을, 또는 진로와 골드만삭스를 동시에 대리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적어도 법적으로 문제될 부분은 아니다.

두 번째 쟁점은 김앤장과 일련의 외국계 사모펀드, 그리고 정부 관료들의 유착 가능성이다. 김앤장은 제일은행의 대주주였던 뉴브리지캐피털과 한미은행의 대주주였던 칼라일펀드, 그리고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펀드의 법률 자문을 맡았다. 은행법에 따라 사모펀드는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데도 이들은 모두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은행의 경영권을 넘겨받았고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거나 챙길 예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 내부 문서에 김앤장과 법무법인 세종의 법률 검토가 비중 있게 인용돼 있다는 것이다. 금감위가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검토하고 있던 무렵인데 칼라일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었던 법률회사가 바로 이 두 회사였다. 이들의 의견이 곧 칼라일의 의견이었던 셈인데 금감위가 이를 가져다가 이들에게 은행을 넘기는 근거자료로 썼다는 이야기다.

김앤장 관계자는 “그 자료가 금감위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금감위 관계자들도 “오래된 일이라 모르겠다”고만 말했다. 칼라일을 대리했던 김앤장의 정 아무개 변호사가 3년 뒤 론스타를 대리해 금감위에 외환은행 주식취득 승인신청서를 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의 의혹은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뿐만 아니라 멀리는 1999년 7월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인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편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였던 이헌재씨와 금감위원장이었던 이근영씨가 각각 김앤장과 세종의 고문으로 옮겨갔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자리만 바뀌었을 뿐 등장인물이 매번 같은 것이다.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나 이들의 경기고와 서울고 인맥은 여전히 유효하다. 심지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수사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전윤철 감사원장도 이 인맥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모든 의혹의 핵심에 있는 사람은 역시 이헌재 전 부총리다. 김앤장 관계자는 “퇴직 관료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자리를 만들어주었는데 이헌재씨는 사무실에 출근도 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김앤장이 이 전 부총리 뿐만 아니라 재경부와 금융감독원, 금감위, 국세청,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망라해 퇴직 관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김앤장의 일선 변호사들은 이들 고문들의 역할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들의 연봉에 대해서도 철저히 함구했다. 김앤장은 최근 론스타의 세금 탈루 의혹과 관련해서도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데 김앤장에는 론스타의 이의신청을 심사중인 국세심판원장 출신 고문도 두 명이나 있다. 국세청장과 지방국세청장 출신도 여러명이다. 론스타 관계자는 “이들은 변호사들을 도와 자문 역할을 할 뿐”이라고 밝혔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 직전 3년 동안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분야에 퇴직 이후 2년 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는 대상기업이 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 거래액 연간 150억원 이상으로 한정돼 있다. 김앤장의 수임료는 물론 150억원이 훨씬 넘지만 김앤장은 주식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참고로 지난해 국정감사 때 강기정 열린우리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봉 6억원 이상인 150명의 변호사 가운데 114명이 김앤장 소속 변호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앤장의 변호사는 모두 220여명인데 절반 이상이 6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고액 납세자 20위 안에 드는 김 아무개 변호사의 경우 국세청 신고기준으로 연봉이 216억원에 이른다.

“매국노? 어차피 누군가는 한다”

김앤장은 최근의 비난 여론이 몹시 부담스러운 눈치다. 사실 김앤장 입장에서는 론스타를 대리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있었을 뿐이다. 외국계 사모펀드를 대리했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일지언정 법적으로 문제되는 일은 전혀 아니다. 일부에서는 김앤장을 매국노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우리가 하지 않아도 결국 다른 법률회사가 한다”는 것이다. 법률회사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만약 김앤장이 론스타를 대리하지 않았으면 다른 법률회사가 넘겨받았을 것”이라며 “김앤장을 공격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앤장 말고도 론스타와 자문 계약을 맺으려는 법률회사들이 얼마든지 줄을 서 있다고도 했다. 국내 법률회사들 가운데 해외 업무를 맡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 김앤장이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라서 의뢰가 몰리는 것일 뿐 그것만으로 김앤장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한 변호사는 “내년이면 법률시장이 개방될 텐데 대형 법률회사가 하나쯤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다른 한 변호사는 김앤장은 몸통이 아니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우리가 론스타를 대리했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큰 그림은 이미 미국 법률회사인 스캐든앱스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 등이 다 그려왔다. 우리는 한글로 서류를 꾸미고 한국 정부와 소통하는 역할 정도만 맡았을 뿐이다.”

김앤장 관계자는 김앤장을 제외한 다른 국내 대형 법률회사들은 대부분 외국 법률회사들과 제휴를 모색하거나 제안을 받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실제로 독일은 법률시장 개방 이후 9개 주요 법률회사 가운데 7개가 인수·합병됐다. “이제 외국 법률회사들이 굳이 김앤장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아마 머지않아 이들이 국내 법률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다.”

김앤장 변호사들의 주장은 상당 부분 옳다. 김앤장이 하지 않았으면 다른 법률회사가 했을 일이고 그것과 관계없이 어떤 식으로든 외환은행은 론스타에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그 과정에서 김앤장의 고문들과 정부 관료들의 유착 의혹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왜 비난 또는 비판을 받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김앤장의 순진한 변호사들은 회사의 상층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왜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좀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투명성이 요구된다는 이야기다. 고문들의 지위와 역할을 명확히 정립할 필요도 있고 이익충돌의 문제도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법률시장 개방 시대, 김앤장의 생존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앤장을 비판하려면 핵심을 잘 짚어야 한다. 론스타를 대리한 것을 비난하는데 그칠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현직 정부 관료들과의 유착, 그리고 그들의 불법행위를 밝혀내는 게 핵심이다. 고액 연봉을 받고 옮겨간 퇴직 정부관료들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애초에 이들이 이런 의심 받을만한 자리에 가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게 또 다른 론스타를 막는 방법이다.

이정환 /<이코노미21> 기자 cool@economy21.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머니투데이 여한구기자]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24일 소환조사로 한달여에 걸친 검찰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이제 남은 것은 정 회장과 그의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지에 대한 검찰의 '판단' 뿐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엄중 처벌'과 '경제를 고려한 선처' 등의 여러 시나리오가 엇갈려 흘러 다니고 있다. 검찰이 어떻게 결정을 하더라도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르면 이주 안으로 내려질 검찰의 최종 결정에 경영계는 물론 국민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경우의 수=그간의 검찰 수사에서 정 회장 부자가 최소 수백억원대로 알려진 비자금 조성 및 불·편법 경영권 승계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만큼 '기소유예'나 '불기소' 등의 선처를 받을 여지는 없어 보인다.


검찰도 정 회장 부자 모두를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소환한데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의 말을 빌어 수차례 "책임질게 많다"고 언급해와 이 부분은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기정사실화된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사법처리의 강도가 초미의 관심사이면서 검찰과 현대차의 고민이 함께 접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검찰은 "정 회장 조사 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여전히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3가지로 압축된다. 정 회장 부자 모두를 구속하거나 정 회장과 정 사장 중 한명만 구속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이중 정 회장 부자 둘다 구속하는 안은 부자를 동시에 처벌한 전례가 드문데다 현대차가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향후 "검찰이 경제를 말아먹었다"는 역풍이 돌아올 여지가 많아 검찰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 회장 부자 둘 중 한명만 구속하는 안이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이 "대기업은 1인 기업이 아니지 않느냐" "혐의 시인 여부는 구속·불구속 판단과는 무관하다"는 등의 연이은 강경발언으로 사전 분위기를 잡고 있는 것도 결국 이 방안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검찰 주변에서는 경영권 승계 비리의 수혜자인 정 사장이 아닌 '총 사령관' 격인 정 회장이 최종 타깃이 될 것이라는 설에 비중이 더 실리고 있다. 정 회장이 그룹 내에서 비자금 조성 및 집행의 전권을 쥐고 있는데다 비리 재벌총수를 엄단했다는 상징성도 부여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검찰도 "(정 사장 보다) 조사할 양이 더 많다"고 말해 정 회장에게 무게중심을 더 두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더욱이 정 회장이 고령(68세)인데다 국가경제 발전에 고려한 점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법원에서 선처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정 회장 책임론'에 힘이 쏠리고 있다.


깊어가는 검찰 '고민'=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찰도 편안치는 않다. 어떤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상당한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 부자 둘 중 하나를 구속하는 유력한 시나리오가 현실화 됐을 경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봐주기 수사', '용두사미 수사' 라는 '돌팔매'가 날아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경제계에서는 "경제를 생각치 않았다"는 반대 지점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이 재벌을 겁박해서 1조원이나 뜯어냈다"는 비아냥마저 들리고 있기까지 하다. 여기에 경제계는 정 회장의 소환에 맞춰 정 회장 부자를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압박강도도 높여가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수뇌부는 검찰이 감당해야할 부담의 몫을 최소화하는 '방어논리'


도 검토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동욱 수사 기획관이 이례적으로 "여론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한 점도 이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검찰이 경제도 고려하고, 사법정의도 세우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를 내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로운 발바닥 2006-04-2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대학교 때 수없이 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전출처 : 로쟈 > 박노자의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가 지난달 18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정교-진보운동-사회주의'라는 주제의 초청강연을 가졌다(이날 강연에는 학생들과 시민 17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 녹취록이 있기에 옮겨온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도록 권유하기 위해서이다(종교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녹취록은 '푸하'님의 서재에서, 그리고 강연회 사진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갖고 온 것이다. 군데군데 굵은 글씨로 표시한 강조와 간혹 덧붙여진 군말은 나의 것이다.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종교사회학에서는 상식적인 얘기이다. 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자리' 곧 '좋은 목'이라는 사실을 목사님들의 상식이듯이. 이미지는 김종서 교수의 <종교사회학>(서울대출판부, 2005)을 가져왔는데, 내가 오래전에 종교학 과목을 수강하며 읽었던 책은 오경환의 <종교사회학>(서광사, 1990)이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맑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맑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맑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맑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맑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맑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맑시스트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맑시스트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50억 빚 탕감' 정부쪽 묵인없인 불가능
[중앙일보 2006-04-15 05:19]    

[중앙일보 김종문] 현대차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다음 주부터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수사에 나서겠다"는 검찰의 계획이 조금 앞당겨진 것이다.

연결고리는 김동훈(구속)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다. 검찰은 김씨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위아.아주금속 등 현대차 계열사의 부실 채권 중 550억원을 탕감받게 해 주는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금감원.자산관리공사(캠코) 측에 금품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여러 사람이 교묘하게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건이다. 이는 말도 안 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 빚 탕감 어떻게 했나=검찰에 따르면 채무를 탕감받는 수법은 철저한 각본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CRC.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를 내세워 캠코와 산업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담보부 채권을 저가에 낙찰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낙찰 승인가격을 알아내기 위한 로비는 필수적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날 검찰에 긴급체포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 등은 김씨에게서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다.

검찰은 거액의 채무가 탕감되면 이는 국민의 조세 부담을 초래해 결국 공적자금으로 충당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현대계열사가 탕감받은 550억원의 빚은 그만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채무조정은 산업은행과 캠코는 물론 정부 쪽의 묵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올 1월 말 현재 공적자금 회수액은 76조1000억원으로 1997년 11월부터 투입된 전체 공적자금 168조2000억원의 45.3%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위아 등에 대한 채무 조정은 정상적인 매각과정을 거쳤다"며 "당시의 일은 로비와는 무관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정건용 당시 산업은행 총재도 "현대차 계열사의 부실 채무 탕감 로비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다"며 "당시 일이 총재까지 올라오는 결재 사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 로비 수사 어디까지 이뤄질까=검찰이 이날 현대차의 이정대 재경본부 부사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 등을 체포하면서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검찰은 최근 현대차에 대한 압수수색과 임직원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대차가 관리해 온 국내 금융기관의 비밀계좌 존재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 본부장이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과 집행에 깊숙이 개입한 단서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날 금융기관 관계자 등 10여 명에 대해 추가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은 특히 이들을 통해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혐의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몇 달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 세상과 당신사이- 중앙일보 구독신청 (http://subscribe.joins.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