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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 어스 - 수천 년간 지구를 빛낸 색의 과학사 ㅣ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40
필립 볼 지음, 서동춘 옮김 / 살림 / 2013년 3월
평점 :
1.
오늘 소개드릴 책은 '살림'에서 출간된 '브라이트 어스'입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종류의 과학사 책이에요. 그러니까 과학사 일반이 아니라 '색깔'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과학일반을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특정 지점에서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는 형태이고, 저는 그 깊이를 일종의 필연이라고 보는 편이에요. 넓이와 너비도 중요하지만 과학이라는 주제는 얼마간 깊이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재미가 있거든요. 올리버 색스가 추천사를 쓰기도 한 책인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색을 만들어내는 재료에 대해 예술적으로 서술한 것은 물론, 이 방대한 문화예술사를 한 권에 담아낸 역작이다....
2.
저자는 '필립 볼'. 작가라고 해야 할까요. 20년 넘게 《네이처》의 편집자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화학을, 브리스톨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이력이 중요할 테지요. 과학 및 대중 매체에 주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저널리스트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국내에선 정말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작가인데요. 과학사를 이처럼 흥미로운 부분을 선정해, 유려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작가가 있다는 게 정말 부럽기도 해요. 대표적인 저술로는 <H2O>가 있는데, 오늘 소개드리는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총 12장인데요. 1장은 '보는 사람의 눈'. 다시 말해 화실에 들어선 과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벌써부터 재밌잖아요. 2장은 물리학과 화학을 무지개라는 현상과 연결지어 설명하게 되고 이어지는 장들에선 색의 과학사, 그리고 화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술작품, 염료, 모더니즘에 관한 담론까지 유려하게 펼쳐나가는 책이에요. 긴 말 필요없이 본문을 볼까요.
3.
지오토의 자연주의는 시간을 그림의 한 구성요소로 편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미지는 더 이상 불변의 상징이 아니라 실제 흐르고 있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고정시킨 것이었다. 이것이 화가들에게 끼친 효과는 실로 굉장했다. 자연에서 보이는 한 장면은 주위의 빛에 의존하며 그 빛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어두컴컴해 음산하거나, 지중해의 강력한 햇살에 하얗게 표백되거나, 저녁놀에 부드러워질 수 있다. 이것은 화가들에게 극적인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자연에 미치는 빛의 효과를 철저히 이해해야만 가능했다. 자연에 충실할 것을 고집함으로써, 화가들은 중세적 구성의 양식화된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은 무한히 다양한 형태와 색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주의는 새로운 도전을 제기했다. 화가들이 만족스런 구성을 하는 데 필요한 색과 대상의 조화로운 배열을 부과하는 법칙이 자연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책이 경망스럽지 않은 선에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담아내기도 하고, 색이라는 테마에 한정해서 깊이를 확보해내기도 하는 탁월한 책이에요. 많은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