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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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모든 책을 읽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의 첫 에세이를 사지 않기도 어렵다. 다만 이제 미뤄 온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황정은은 지나치게 윤리의식에 몰두해 있다.
그 치열함이 오래된 독자인 나에게도 따분하다. 오히려 이런 윤리적인 집요함마저 클리셰가 되어가는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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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2021-10-1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하고 싶지 않다.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조깅을 하고 돌아왔더니 운동화 바닥에 토끼똥이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도 쓰고 싶다. 다음에 쓸 수 있을까? p.76

카프카 2021-10-18 0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좀 엉뚱한 이야기도 쓰고싶은 게 있어요. 막 귀신 얘기도 쓰고싶고 이상한 이야기 막 쓰고 싶고. 그런 얘기도 준비를 많이 해놨었는데 다 지금 순서가 밀려있죠. 왜냐면 너무 현실이 압도적이라서 지금 저한테 다가오는 얘기들을 뒤로 미룰 수가 없는거예요 그래서 당장 닥쳐오는 이야기들을 쓰다보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좀 이상하고 신기한 얘기들이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는데... ˝<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 인터뷰>

2021-10-2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즈미 2022-06-25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 다른 작가를 읽으면 될 일. 황정은이 따분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따분함을 느끼는 상태가 된 것이지요. 그의 문장은 여전히 환상적이고 빛이 납니다.

해줘 2023-10-2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이제 알았습니까? ㅋㅋ 결이 좀 다르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지루함과 유사하죠. 전라도 사투리로 ‘유세 부린다‘고 하는 겁니다. 집요함보다는 관성운동이고, 치열함이라기 보다는 수난의 발가벗은 표정에서 힙한 방향으로 살짝 업그레이드 된 ‘포즈‘에 가깝죠.
 
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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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타인의 해석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원제는 'Talking to strangers'. 직역하자면 '이방인(타인)에게 말 걸기' 정도가 되겠습니다. 홉스는 이미 17세기에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정의했지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불가항력에 의해 타인과 마주합니다. 출근길에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이든,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메뉴판을 건네는 점원이든, 휴가를 맞아 집에서 칩거를 하는 와중에 울리는 통신사의 사랑고백이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타인을 마주하게 되지요. 오늘 소개드릴 책은 타인을 마주할 때, 즉각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툴을 제공해줄 책입니다. 그런 기능을 내포한 장비 치고는 참 저렴하지요.

2.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됩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타인을 오해하게 되는 근거와 타인을 파악하기 위한 기술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를 비롯한 책으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요. 수많은 저널리스트들의 귀감이 되어주었고,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 역시 여전히 말콤 글래드웰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 야사를 비롯해 최근의 시사지식까지, 적합한 사례라면 아낌없이 가져다 쓸 수 있는 스펙트럼이 말콤 글래드웰의 큰 장기 중 하나겠지요. 그리고 그 유려함은 이번 신작에서도 여전합니다. 책의 프롤로그는 2페이지 분량의 짧은 경험담을 소개하는데 짧지만 강력하지요. 저자의 장기는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때론 심리학과, 또 때로는 자연과학과 버무러져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투명성은 일종의 신화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지나치게 많이 보고 소설을 너무 많이 읽으면서 주워들은 관념인 것이다. 이런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걸핏하면 “깜짝 놀라 입이 쩍 벌어지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계속해서 쉬츠볼의 말을 들어보자. “분명 참가자들은 자기가 놀람을 느꼈고, 또 놀람은 특유의 얼굴 표정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추론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추론은 오류였다.” 나는 이런 착오, 즉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완벽하게 들어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 친구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그의 감정 표현이 얼마나 특이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p202)

3.

저처럼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책을 집어든 분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변죽만 울리는 자기계발서들이 서점을 채워가는 요즘입니다. <타인의 해석>은 우리를 둘러싼 타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새학기를 맞아, 또 누군가는 이직을,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출발을 맞은 모든 분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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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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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면을 구비하는 게 특히 중요해진 요즘이다. 평소에 암만 튼튼한 내면을 구축해 놓아도 한국사회에서는, 곳곳에 위기가 도사린다. 설날과 추석이 그것이고, 취업과 결혼이 다음이다. 이보다 큰 공포는 이러한 위기가 반복된다는 것이며, 그 종류는 훨씬 더 다양하고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취업은 언제 할 거니? 수입은 얼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그래서 공무원 시험은 언제니? 등등.

물음표는 총구가 되어 우리의 내면을 겨눈다. 아아, 때론 명상을 통해, 또 때로는 영화를 통해, 만리장성처럼 고이 쌓아온 우리의 내면은 손쉽게 부서진다. 오늘 소개할 신간은 정민 교수의 <습정>.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라는 부제가 붙었다.

2.

<습정>이 어떤 책이냐 묻는다면 마음을 다스리는 글 묶음이라 하겠다. 각 장에는 침정신정, 능내구전, 등의 사자성어가 제시되며 이에 관한 저자의 고찰 등이 후술된다. 사자성어를 비롯해 많은 고전과 야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 신정일 저, 김영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어딘가 통속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어두웠던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 <습정>역시 책 어디를 펼쳐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이야기가 스며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전사료가 깃들어 있어 옛 선조들의 묵은 지혜를 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3.

고전사료를 동력삼아 글을 묶은 책이라 잡다한 수식보다는 책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뻔한 어구를 <습정>에서는 어떻게 다룰까. 책은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바로 명나라 왕상진이라는 (나로서는) 낯선 학자의, <일성격언론, 섭세 편>의 말을 소개한다.

무릇 정이란 다하지 않은 뜻을 남겨두어야 맛이 깊다. 흥도 끝까지 가지 않아야만 흥취가 거나하다. 만약 사업이 반드시 성에 차기를 구하고, 공을 세움에 가득 채우려고만 들 경우, 내부에서 변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바깥의 근심을 불러온다(P209).

즉, 이러한 원문을 소개한 후에 저자의 통찰이 후술된다. 사람들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남는 것은 회복 불능의 상처 뿐이다 더 갈 수 있어도 머추고, 끝장으로 치닫기 전에 머금어야 그 맛이 깊고 흥취가 커진다. 저만 옳고 남은 그르며, 더 얻고 다 얻으려고만 들면 , 없던 문제가 생기고 생각지 못한 근심이 닥쳐온다(P210).

책은 이런 식의 주제를 4부로 나누어 다룬다. 사실 자꾸만 무너지는 내면을 세우는 데는 책만한 것이 또 없을 것이다. 잠깐 세상이라는 총알을 피해 고전의 품에 숨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습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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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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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 균, 쇠>라는 획기적인 저술로 대한민국을 휩쓴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신간을 소개한다. <대변동>을 러프하게 소개하자면 현대사회의 만연한 위기를 소개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관한 통찰이라고 하겠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와 1장에서는 '개인'이라는 단위에서의 위기를 파악한다. 이후,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의 역사와 당면한 위기를 살핀다. 당연하게도 마지막 3부에서는 그 위기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다루게 된다. 따라서 <대변동>에는 위기, 선택, 변화라는 부제가 붙었다.

2.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가장 탁월한 점은 이러한 학술적인 주제를 에피소드로 풀어나가는 방식일 것이다.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그것은 조금 다르달까. 경박하지 않고 어딘가 묵직하다. <총, 균, 쇠>의 총알을 장전시킨 질문은 한 원주민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저자를 스쳐나간 그 질문은 인종주의와 선민의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많은 편견들을 '과학적'으로 종식시켰기에 걸작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대변동>에서는 어떨까. <대변동>의 프롤로그는 두가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3.

첫 번째 이야기는 코코넛 그로브 화재 사건. 1942년 11월 28일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급속도로 번지며 손님들로 붐비더 코코넛 그로브라는 보스턴의 나이트클럽을 완전히 휘감았다. 질식이나 연기 흡입, 압사나 화상 등으로 총 492명이 사망했고......(p17)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이야기는 1956~1961년 사이에 악화된 영국의 국가적 상황을 다룬다. 즉, 전술된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이며 후술된 이야기는 국가적 차원의 이야기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그의 한 조각인 프롤로그의 구성을 이루는 일관된 치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프롤로그 뿐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적절한 에피소드를 양분처럼 공급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강한 장력을 조성하여 '위기'라는 주제의식을 극복할 혜안을 600여페이지에 담아 제공하는 것이다.

4.

<총, 균, 쇠>라는 걸작의 가장 훌륭했던 점 중 하나는 사회학적인 논의를 과학이라는 툴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대변동> 역시 그런 부분이 돋보이지만 이는 <총, 균, 쇠>로 물꼬가 트인 하나의 작법이 되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변동>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대놓고 다루는 책이라 장르를 넘나드는 탁월함을 찾는 재미보다는 세계적인 석학의 어떤 통찰을 어깨 너머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책이라는 매체로 다루기에는 가변적이고 거대한 이 지구촌을 특정한 시선으로 포착해내는 저자의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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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자연 - 생물학이 사랑한 모델생물 이야기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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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공이 뭐예요?"

한국의 대학진학률은(떨어졌다고 하나 여전히) 70%를 웃돈다. 즉, 우리 중 열에 일곱은 무언가를 전공한 전문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노트북에 파란 화면이 떴을 때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한 친구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묘한 대답을 듣는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2.

우스꽝스러운 이 일화는 학과마다 각자의 형태로 전해진다. 오늘 우리가 알아볼 학과는 다름아닌 생물학과. 그렇다면 생물학과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해질까. 생물학자들끼리 만나는 장소에서 "저는 유전학을 연구합니다"처럼 구태의연한 수사는 없다. 그런 어이없는 소개를 들은 상대방으 ㄴ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뭐로 연구하시는데요?" (p17)

3.

즉, 생물학자들은 본인의 전공을 다루기 위해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모델생물. 우린 모델생물을 이용해 유전학이니, 분자생물학이니, 하는 생물학의 세부전공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초파리가 대표적이며 예쁜꼬마선충, 지브라피시 등이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오늘 소개할 <선택된 자연>은 당연스레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은 모델생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4.

책은 총 30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을 할애해 대략 24종의 모델생물을 다룬다. 여기에 가장 대표적인 모델생물인 초파리는 제외되었는데 이는 전작인 <플라이룸>에서 다뤄진 바 있다. 모델생물을 통해 생물학일반을 다루는 저자의 전략은 탁월해보인다. 이를 테면, 10장의 옥수수 파트에서는 멘델과 매클린톡에 관한 이야기로 화두가 던져진다(p82).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멘델 정도야 유전학의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추측이 가능하지만 매클린톡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매클린톡이 발견한 유전자의 jumping 현상은 학계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해진다. 바이러스의 기원을 여기서 찾는 학자도 있고, 향후 염색체 연구에 있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델이 되는 생물을 바탕으로 일반생물학 전반을 다루고 있어 구성적인 면에서 굉장히 유려한 모습을 보인다.

5.

전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전공에 대한 이야기로 서평을 마쳐볼까. 앞서 말했던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한 학생이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더욱 깊고 디테일한 세부사항을 공부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전공의 세속화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공은 자본을 위한 도구적 툴로 기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학같은 대부분의 자연과학이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는 철 지난 우려도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가 다루기에 거대한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선택된 자연>같은 자연과학의 기본교양을 쌓을 수 있는 책이 소중한 것이다. <플라이룸>에 이어 <선택된 자연>까지.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전공서적들 사이에 파묻혔던 야화들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며,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선별된 교양을 안전하게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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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2020-03-01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의도를 너무 잘 간파하셨네요. 훌륭한 서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