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이나 가정파괴범이나 후안무치안 정치인들을 보면
왜 최대형의 제한이 있는지 분개하게 되고
그 가족의 재산까지 몽땅 몰수하지 못하는 데 분노한다.
하지만 말이다.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법과 사회>였던가?
강사님의 얼굴도 이름도 잊었지만, 이 분 꽤나 멋진 얘기를 하셨는데,
현대법은 '탈레오의 법칙'이 아니라 '덕치'와 '성선설'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구형을 할 때도 판결을 할 때도 범죄인에게 선처의 여지는 없는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면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지,
처벌을 하더라도 인도적 수준인지 고민해야 하고,
형의 집행 역시 교화가 목적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즉 양형기준이란 죄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을 막는 것보다도
죄에 비해 너무 과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도록 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는 것이다.
새삼 아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내게 로또보다도 일주일의 낙이 되는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 때문이다.
요샛말로 닥본사는 기본이요, '나는 가수다'가 언급된 기사와 댓글을 정독하면서
처음에는 유독 옥주현에게 냉담한 기자와 악플러가 많은 이유가 궁금했더랬다.
하지만 성형, 고속도로 운전 사진, 슈퍼스타K, 할로윈파티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질책과 비난은 양형기준과 가중처벌을 뛰어넘어도 한참을 건너뛰었다.
내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감히 성경을 인용한다면(난 무교 혹은 범신교다)
예수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라고 한 건
어쩌면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즉 죄없는 사람만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은 죄에 비쳐 그녀가 지은 죄가 과연 돌팔매질을 당할 정도의 죄인가
죄의 크기를 비교해 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난 예수가 기독교의 원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저지르는 온갖 잘못을 죄라고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내가 감히 말하는 건
옥주현은 그녀의 잘못보다 지나치게 많은 돌을 맞았다는 것이고,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그녀가 너무 많이 맞은 돌에 대해
과연 누가 어떻게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아울러 정리되는 생각들...
온라인서점간 중복리뷰에 대해 교수들의 중복논문게재 또는 자기표절에 빗대
몇몇 알라디너들을 공격했던 게 왜 문제였는지 이제야 반박할 수 있겠고,
타블로 사건 당시 내가 왜 막연히 타블로 편을 들었던 건지 날 이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