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앨범들도 처음에는 닳고 닳도록 들으며 동고동락했을 터인데 지금에 와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한 때 연인보다 더 열렬히 사랑했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또는 정말 명반인데 모르고 지나쳐 갔었던 앨범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아마도 여기 소개하는 앨범들은 모두가 나름대로 매니아 정신에 입각해 들었던 것들일 것이다. 그 때의 그 매니아 정신을 다시 한번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저 멀리... 저 높이...

글 / 문양미 in changgo.com
디자인 / 정미선 in changgo.com

Beatles - Revolver (Capitol, 1966)

[Rubber Soul], Abbey Road], [Sgt Pepper] 등과 함께 비틀즈의 5대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앨범은 비틀즈의 가장 화려했고 진보적이었던 시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케네디와 함께 60년대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 이들의 영향력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고 거기에 한 몫 단단히 한 것이 바로 이 [Revolver]이다. 비틀즈의 음악적 중반기에 놓인 이 앨범은 14곡 모두 존 레논(John Lennon)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등 한 멤버에게로의 치우침 없이 멤버간의 균형 잡힌 조화가 가장 돋보인다. 또한 사운드 효과나 믹싱 부분에 있어서도 기존의 그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와 방법론으로 완성도 높은 음악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체에게 던져진 돈에서조차 세금을 내야 하는 가사로 영국 사회를 비판하는 조지의 ‘Taxman', 락과 클래식을 절묘하게 조합한 폴의 ‘Eleanor Rigby', 존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는 ‘I'm Only Sleeping’ 등 한 곡도 버릴 곡 없는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비틀즈의 앨범 중 가장 독창적이며 혁신적인 역할을 한 최고의 사이키델릭 명반.

Black Sabbath - Never Say Die! (Warner, 1978)

다양한 보컬리스트들의 변화를 거쳐 온 블랙 새버쓰의 활동 당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대는 영원히 기억될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재적 당시이며, 두 번째는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 시절, 세 번째는 이안 길런(Ian Gillan) 시절, 네 번째는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가 새롭게 이끄는 블랙 새버쓰의 모습이다. 이 중 [Never Say Die!]는 오지가 탈퇴하기 전 발표한 블랙 새버쓰 제1의 전성기에서의 마지막 앨범으로 그 의미가 더욱 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Technical Ecstasy]에서부터 음악적 혼란과 멤버간의 불화로 오지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등 우여곡절 끝에 나온 앨범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억될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음산하고 어두웠던 초기와는 전혀 다른 사운드이긴 하지만 전작보다 화려해진 사운드와 재즈적인 어프로치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의 블랙 새버쓰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이라면 오지의 보컬이 여전함에 위안을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렬한 락큰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경쾌한 느낌의 타이틀곡 ‘Never Say Die', 애절한 보컬이 인상적인 ‘Junior's Eyes’, 여전히 격렬함을 지향하고 있는 ‘Shock Wave' 등 이 앨범을 끝으로 오지의 괴기스럽고 신비스러운 보컬을 중심으로 한 제1기 블랙 새버쓰는 막을 내리게 된다.
Blur - The Great Escape (EMI, 2000)

전작 [Parklife]의 엄청난 성공(‘브릿 어워즈’에서 최우수 밴드, 앨범, 싱글, 비디오 등 4개 부문 석권)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5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 네 번째 앨범 [The Great Escape]는 블러 역사상 가장 참패한 앨범임과 동시에 그들을 브릿팝에서 미국적인 얼터너티브로 변화시켜준 의미 깊은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록곡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유쾌하고 톡톡 튀는 경쾌한 사운드는 전작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싱글 ‘Country House', 'The Universal' 등에서는 관악기가 내뿜는 블러만의 쿨한 사운드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데이먼 알반은 이 앨범 이후 ‘브릿팝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노이즈 가득한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가지고 돌아와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The Great Escape]는 블러의 브릿팝적인 사운드가 담긴 마지막 앨범으로 그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Gorillaz - Gorillaz(Limited Edition) (Virgin, 2001)

데이먼 알반(Damon Alban)이 주축이 된 다국적 프로젝트 밴드 고릴라즈의 첫 번째 정규앨범으로 독특함과 신선함을 주무기로 한 실험 정신이 깊게 배어있다. 일명 '카툰 밴드’답게 실명이 아닌 머독, 2D, 러쎌, 누들 등의 캐릭터명을 사용한 이들의 음악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음악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이들이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락에 테크노와 힙합, 랩을 혼합하여 새롭게 만든 사운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그만큼의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실망한 이들도 있겠지만 그 번뜩이는 아이디어만큼은 크게 살만하다. 무엇 하나 튀지 않는 것이 없는 이 앨범에서도 가장 주된 무기는 익히 알려진 애시드재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Clint Eastwood’와 ‘19-2000’으로 음악은 물론 캐릭터를 이용한 뮤직비디오 역시 압권이다. 제목 그대로 경쾌한 펑크 사운드 가득한 ‘Punk', 노이즈 가득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일관하고 있는 'Sound Check' 등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앨범 수록곡 모두 보컬은 데이먼이 맡았는데 그래서인지 블러에서 들려줬던 그의 독특한 개성 역시 느낄 수 있다.

Machine Head - Supercharger (Roadrunner, 2001)


머신 헤드의 네 번째 앨범으로 그들 특유의 솔직하고 무자비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판테라(Pantera)세풀투라(Sepultura)의 아류라는 수식어도 있었지만 이제 이들에게 그러한 말들은 전혀 불필요한 것들이 되버렸다. 뭐라고 하던 간에 정통 헤비메틀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물론 [The Burning Red]에서는 하드코어적인 성향도 느낄 수 있었지만..) 이 앨범은 [Burn My Eyes], [The More Things Change], [The Burning Red]에서 보여줬던 파워에 비교해 볼 때 좀 더 단순해진 기타 리프와 멜로디를 강조한 사운드가 눈에 띈다. 초기 앨범에서의 스래쉬적인 요소나 [The Burning Red]에서의 강렬한 랩핑은 많이 사라지고 멜로디 위주의 곡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과 타협을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둡고 무거운 것 안에서 밝음을 찾으려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분노를 폭발해간다. 온갖 불만을 실은 듯한 파워 있는 드럼 비트로 시작하는 ‘Bulldozer'는 듣는 그 순간 머신 헤드의 포로가 되버릴 만큼 여전히 강한 매력을 발산하며, 'White Knuckle Blackout'에서의 곡 중간 중간 롭 플린(Robb Flynn)의 개성 넘치는 랩핑 역시 그대로이며, ‘Kick You When You're Down'에서 로건 메이더(Logan Mader)의 빈자리를 채운 아루 러스터(Ahrue Luster)의 기타 사운드 역시 주목할 만 하다. 또한 'Only The Name'에서는 지금까지의 머신 헤드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사이키델릭하면서도 아름다운 연주까지 들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머신 헤드의 모든 것이 이 앨범에 전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New Order - Republic (Qwest, 1993)

영향력 있던 밴드가 해체한 후 남은 멤버들로 인해 재결합한 밴드 중 이전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밴드의 해체의 원인이 멤버 중 한 명의 자살로 인한 것이라면 더욱 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명성에 뒤지지 않는 밴드가 바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잿더미 속에서 나온 뉴 오더이다. 신서사이저를 사용한 독창적인 음향, 최첨단 드럼머신의 사용 등 첨단을 달리는 그들의 사운드는 탄탄대로의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1990년 이들은 멤버 각자의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해체하고 만다. 이 앨범은 해체했던 밴드가 1993년 재결성되어 만든 앨범으로 이전과 같은 상업적 성공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뉴 오더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밴드 해체설과 불화설 등 각종 루머에 휩싸이게 만든 [Republic]은 10년 동안 변함없는 라인업의 당시 멤버들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인 앨범으로 여전히 변함없이 한결같은 그들의 음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세련된 테크노사운드와 전자적인 요소 가득한 드럼 연주는 이 앨범의 지루함을 없애주고 있으며 더욱 모던한 느낌을 전해준다. 곡 구성이 비교적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만 빼면 곡 하나 하나는 전혀 버릴 것 없는 수작이다. 여름에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편안하고 댄서블한 곡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특히 Time Changes'에서는 의외로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의 랩핑도 들을 수 있다.

Rush - 2112 (Mercury, 1976)

완벽한 테크니션 집단에게서 오는 지루함과 무거움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지만 러쉬는 그러한 징크스를 깨뜨린 밴드 중 하나이다. 심오한 가사와 킹 크림슨(King Crimson)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혼합시킨 듯한 이들의 음악은 초반에는 그다지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112]를 발매함과 동시에 화려한 날개짓을 시작하게 된다. 앤 랜드의 소설 ‘Anthem'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인 [2112]는 비인간적인 하이테크놀로지 사회에 대항하는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컨셉앨범인데 이는 이후 러쉬의 음악적 기본 바탕이 된다. 20분이 넘는 대곡 ‘2112’ 한 곡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곡은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광활한 우주의 적막을 깨는 강렬한 기타 연주의 ‘Overtune', 찢어질 듯한 게디 리의 보컬이 인상적인 ‘The Temple Of Syrix’, 처음으로 음악을 발견한 기쁨을 잔잔한 기타 선율로 표현하고 있는 ‘Discovery’, 오페라틱한 게디 리의 보컬이 자유자재로 독재자와 싸우는 'Presentation', 도피하는 자의 슬픔을 절규어린 목소리로 표현하는 'Oracle'과 'Soliloquy', 비장감 넘치는 기타 리프가 기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Grand Finale'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동양적인 느낌 가득한 ‘A Passage To Bangkok', 편안한 듯 하면서도 휘몰아치는 강렬한 임팩트를 느낄 수 있는 연주가 끝을 알리는 'Something For Nothing' 등에서는 첫 번째 곡과는 다른 또 다른 러쉬를 느낄 수 있다. 러쉬의 앨범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반이다.

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Warner, 1977)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펑크의 시대를 몰고 온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데뷔앨범으로, 영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조소와 비난 덕분에 전 영국을 들끓게 만든 문제의 싱글 'Anachy In The U.K', 영국 왕실에 대한 비판을 담아 금지곡이 되었던 ‘God save The Queen’ 등이 담겨 있어 더욱 강력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강렬한 펑크 정신과 ‘시드와 낸시’의 독특한 사랑 역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물론 1995년 재결성하긴 했지만 시드 비셔스(Sid Visious)가 죽기 전) 이들의 유일한 정규앨범이기 때문에 더욱 소장 가치를 높이고 있는데 도저히 70년대 음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들의 혁신적인 시도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들에게 귀감을 줄 만하다. 진정한 펑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음악을 들어라.

Smashing Pumpkins - Gish (Virgin, 1991)

잘 다듬어지지 않은 듯 하면서도 그것 자체가 매력이 되는 스매싱 펌킨스의 데뷔앨범으로 사이키델릭한 기타 사운드와 담백하면서도 개성 있는 빌리 코건(Billy Corgan)의 보컬이 돋보인다.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모던락 차트에서 히트를 기록하지만 같은 해 발매된 너바나(Nirvana)[Nevermind]의 빛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운의 앨범이다. 두 번째 앨범 [Siamese Dream]이 이들을 세계적인 밴드로 이름을 알린 계기를 마련한 좀 더 대중적인 곡들 위주라면 이 앨범은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의성어를 조합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빌리의 취향도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앨범 타이틀부터 물건을 휘두를 때 나는 소리인 'Swish', 개에게 공격하라는 신호인 'Sic'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경쾌한 드럼 비트가 곡의 시작을 알리는 ‘I Am One', 거친 기타 리프 속에 소름끼칠 정도로 오싹한 슬픔이 숨겨져 있는 'Siva', 빌리의 우울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보컬이 저절로 슬픔을 자아내는 ‘Rhinoceros’ 등 이 불운의 데뷔앨범은 시애틀 그런지와는 차별화되는 시카고 출신의 스매싱 펌킨스만의 독특하면서도 슬픈 사운드를 가득 담고 있다. 프로듀서는 너바나의 [Nevermind] 프로듀싱을 맡은 부치 빅.

Van Morrison - Astral Weeks (Warner, 1968)

기타, 드럼, 색소폰, 하모니카 등의 악기 연주는 물론 싱어송 라이터인 아일랜드의 저항시인 밴 모리슨의 명반 중 하나로 뒤늦게 발매되어 안타까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전하는 앨범이다. 뛰어난 작곡 능력과 보컬, 완벽한 하모니 등 천재적인 뮤지션 밴 모리슨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되는 이 앨범은 어쿠스틱한 포크 선율 위에 드라마틱하면서도 절제된 보컬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그야말로 완성도 100%의 곡들이 담겨 있다. 제이 베리너(Jay Berliner)의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독특한 울림을 주는 보컬이 애절한 동명 타이틀 ‘Astral Weeks'는 빈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꽉 짜여진 느낌을 주는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The Way Young Lovers Do'에서 존 페인(John Payne)의 플룻과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는 곡의 경쾌함을 더해준다. 이 밖의 모든 곡들이 각자의 개성이 조화를 이루어 멋지고 아름다운 곡들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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