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책에 대한 자신만의 추억이 있다. 지긋지긋(?)한 교과서, 수업 중에 선생님 몰래 읽었던 무협지나 로맨스 소설, 젊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빨간책(?), 콧물을 훌쩍이며 정신없이 보았던 만화책,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켜주었던 인문과학 서적, 인생을 흔들어 놓았던 감명깊었던 책 등. 하얀 종이에 빼곡하게 수놓여 있는 검은 활자들이 살아 움직이듯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책이라고 하면 으레 종이를 떠올리지만 요즘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종이를 대신하는 e-Book으로까지 그 모습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글을 담은 매체만 바뀌었을 뿐 그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종이 이전에도 파피루스나 양피지가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새책에서 뭍어나오는 특유의 냄새나 아니면 오래된 책에서 뭍어나오는 냄새는 종이책이 아니면 맡을 수 없다. 그 냄새가 주는 느낌이 좋아 언제나 종이책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TV, DVD, DMB, 컴퓨터, 휴대전화 등 눈을 자극하는 볼거리들이 많다. 그만큼 책을 펼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책 대신에 다른 것을 본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이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드는데 비해, 책은 우리를 능동적으로 만든다. 때로는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주고, 때로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과 사색의 시간을 준다. 그래서 책이 좋은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책마니아(비블로바니아)가 쓴 글이다. 주제도 특이하다. 지은이는 책에 얽힌 소설 10편과 그와 관련된 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꾸미고 있다. 종래 보아왔던 책에 대한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인지 무척 흥미롭다. 책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어서인지 흡입력도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각 소설의 말미에 소설의 모티브가 된 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책에 얽힌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는지 몰랐다. 조선시대, 오늘날로치면 도서대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책점貰冊店이 있었고,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에도 에도 시대(1603-1867)에 걸어다니는 책 대여점인 카시혼야가 성행했다고 한다. 2008년 4월에는 런던의 한 호텔에서 사람 도서관을 개관해 동성애자, 남자 보모, 이슬람신자 등 15‘권’의 사람 책을 대출했다는 ‘사람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이외에도 장서가들과 그들의 책 관리법, 중세 유럽의 도서문화와 필경, 심지어는 책 도둑에 대한 이야기까지 실려 있다. 책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 대한 역사를 좀 더 많이 소개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책과 관련된 역사를 소설로 옮긴 지은이의 참신하면서도 독창적인 이야기는 단순히 책을 좋아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거의 책에 빠져 살아야만 가능한 일같다. 요즘 우리 출판계에서 다양한 인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역사와 인문학, 철학, 소설을 골고루 섞어 향을 더한 아주 맛깔스러운 글이 된 것 같다. 책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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